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이 - 13. 소유가 남해태자를 무찌르고 용왕의 환대를 받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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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소유가 남해태자를 무찌르고 용왕의 환대를 받다

 

 

日未明 一聲疾雷鍧鍧, 簸却水晶宮殿, 龍女忽警覺而起 宮女報急曰 :

“大禍出矣. 南海太子駈無數軍兵, 來陣山下 請與楊元帥決雌雄矣.”

尙書大怒曰 : “狂童何敢乃爾?”

일미명 일성질뢰굉굉 파각수정궁전 용녀홀경각이기 궁녀보급왈

대화출의 남해태자구무수군병 래진산하 청여양원수결자웅의

상서대로왈 광동하감내이

 

갑자기 날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우레 같은 소리와 쇠북소리가 들리며 수정궁전(水晶宮殿)이 키 까불리듯이 뒤흔들리기에, 용녀가 문득 사리를 깨닫고 일어나는데, 궁녀가 급히 아뢰기를,

“큰 화가 일어났나이다. 남해 태자가 무수한 군병들을 몰고 와서, 산 아래에 진을 치고 양원수와 자웅을 겨루자고 청하였나이다.”

상서가 크게 노하여 이르기를,

“미친 아이가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느냐?”

 

拂袂而起跳出水邊, 南海兵已圍白龍潭.

喊聲大震陣雲四起, 所謂太子者躍馬出陣而大叱曰 :

“爾爲何人而掠人之妻乎? 誓不與共立天地間也.”

불몌이기도출수변 남해병이위백룡담

함성대진진운사기 소위태자자약마출진이대질왈

이위하인이략인지처호 서불여공립천지간야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물가로 걸어서 나아가니, 남해의 병사들이 이미 백룡담을 에워싸고 있었다. 함성이 크게 진동하고 진운(陣雲)이 사면에서 일어나는데, 태자라는 자가 말을 달려 진을 나와 크게 꾸짖기를,

“너는 어떻게 생긴 인물이기에 남의 아내를 빼앗아 가는고? 맹세코 천지간에 너와 함께 서지 아니하리라.”

 

尙書立馬大笑曰 : “洞庭龍女 與少游有三生宿緣, 卽天宮之所簿, 眞人之所知也,

我不過順天命也 奉天敎也. 幺麽鱗虫 何無禮若是耶?”

太子大怒 命千萬種水族, 鯉提督 鼈參軍 鼔氣賈勇, 騰跳而出

尙書一麾而斬之, 擧白玉鞭一揮之, 百萬勇卒 齊發蹴踏, 不移時敗鱗殘甲 已滿地矣.

상서립마대소왈 동정룡녀 여소유유삼생숙연 즉천궁지소부 진인지소지야

아불과순천명야 봉천교야 요마린충 하무례약시야

태자대로 명천만종수족 이제독 별참군 고기가용 등도이출

상서일휘이참지 거백옥편일휘지 백만용졸 제발축답 불이시패린잔갑 이만지의

 

상서가 말을 세우고 크게 비웃기를,

“동정 용녀와 소유는 삼생(三生)의 깊은 인연이 있음은, 천궁(天宮)의 명부에 기록된 바이라. 진인(眞人)께서도 아시는 것인즉, 나는 천명에 따르고 하늘의 가르침을 받드는 것에 불과하도다. 변변치 못한 물고기 새끼가 무례함이 어찌 이 같을까?”

태자가 대로하여 천만 가지의 물고기들에게 상서를 잡도록 명을 내리니, 잉어 제독(提督)과 자라 참군(參軍)이 기운을 돋우고 용맹을 내어 뛰어나왔다.

그러자 상서가 군사들을 한 번 지휘하여 다 목을 베고, 백옥 채찍을 들어 한 번 휘두르니, 백만의 용감한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그들을 차고 짓밟았다. 삽시간에 부스러진 비늘과 깨어진 껍질이 땅에 가득 찼다.

 

太子身被數矢不能變化, 終爲唐軍所擭縛致麾下, 尙書大悅 擊金收軍 門卒報曰 :

“白龍潭娘子親詣軍前進賀元帥, 仍飽軍卒矣.”

尙書使人邀入, 龍女進賀尙書之全勝, 以千石酒萬頭牛 大饗三軍,

士卒鼔腹 而歌翹足而舞, 輕銳之氣百倍矣.

태자신피수시불능변화 종위당군소획박치휘하 상서대열 격금수군 문졸보왈

백룡담낭자친예군전진하원수 잉포군졸의

상서사인요입 룡녀진하상서지전승 이천석주만두우 대향삼군

사졸고복 이가교족이무 경예지기백배의

 

태자는 몸에 여러 개의 화살을 맞아 몸을 바꿀 기회를 놓치고, 마침내 당군(唐軍)에게 잡혀 휘하에 묶여 오기에 이르렀다. 상서가 크게 기뻐하고 징을 쳐서 군사를 거두고 있는데, 문을 지키는 병사가 아뢰기를,

“백룡담의 낭자께서 몸소 진 앞에 나아와 원수께 치하를 드리고,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자 하시나이다.”

상서가 사람을 시켜 맞아들이자, 용녀가 나와서 원수의 전승함을 치하하고, 술 천 석과 소 만 필로써 삼군에 큰 잔치를 베풀었다. 사졸(士卒)들이 배불리 먹고 즐거워하여 노래를 부르고 발을 흔들며 춤을 추니 날래고, 예리한 사기는 전보다 백배나 더하였다.

 

“我奉行天命征伐四夷, 百鬼千神莫不從命, 汝小兒不知天命敢抗大軍, 是自促鱗鯢之誅也.

我有一介寶劍 卽魏徵丞相, 斬涇河龍王之利器也.

當斬汝頭 以壯軍威而, 汝父鎭定南海慱施雨澤, 有功於萬民 是以赦之,

自今勉悛舊惡, 幸勿得罪於娘子也.”

아봉행천명정벌사이 백귀천신막불종명 여소아부지천명감항대군 시자촉린예지주야

아유일개보검 즉위징승상 참경하룡왕지리기야

당참여두 이장군위이 여부진정남해단시우택 유공어만민시이사지

자금면전구악 행물득죄어낭자야

 

“내가 천자의 명을 받아서 사방의 오랑캐를 정벌함에, 온갖 귀신도 감히 내 명을 거역하는 자가 없었도다. 너는 조그만 아이로 천자의 명을 알지 못하고 감히 대군을 항거하니, 이는 스스로 죽기를 재촉함이로다.

내게 한 개의 보검이 있는데, 이는 위징(魏徵) 승상이 경하(涇河)의 용왕을 벤 매우 잘 드는 칼이로다. 내 마땅히 네 머리를 베어서 장한 우리 군사들의 위엄을 떨칠 것이로되, 네 아비가 남해를 진정하고 비의 은택을 베풀어 만민에게 공이 있으므로 네 죄를 용서하노라. 지금부터 힘써 네 전의 나쁜 행실을 고쳐, 행여 다시는 낭자께 죄를 짓지 말지어다.”

 

仍命曳出 太子屛息 戢身鼠竄而走.

忽有祥光瑞氣自東南而至矣, 紫霞葱鬱 彤雲明滅,

旌旗節鉞自太空, 繽粉而下 紫衣使者 越而進曰 :

“洞庭龍王知楊元帥破南海之兵, 救公主之急, 極欲躬謝於壁門之前 而職業有守, 不敢擅離故,

方設大宴於凝碧殿, 奉邀元帥 元帥暫屈焉. 大王亦令小臣陪貴主同歸矣.”

잉명예출 태자병식 집신서찬이주

홀유상광서기자동남이지의 자하총울 동운명멸

정기절월자태공 빈분이하 자의사자 월이진왈

동정룡왕지양원수파남해지병 구공주지급 극욕궁사어벽문지전 이직업유수 불감천리고

방설대연어응벽전 봉요원수 원수잠굴언 대왕역령소신배귀주동귀의

 

이에 끌어내 보내도록 명하니, 태자는 겁이 나서 숨을 죽이고 몸을 추슬러 쥐 숨듯이 달아나 버렸다.

그러자 홀연 서광과 서기가 동남으로부터 이르는데, 붉은 놀이 자욱이 끼고 붉은 구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였다. 또 정기(旌旗)와 절월(節鉞)이 공중으로부터 어지러이 내려오더니, 붉은 옷 입은 사자가 종종걸음으로 와서 이르기를,

“동정 용왕이 양원수께서 남해 태자의 군사들을 격파하여, 공주의 위급함을 구하신 것을 아시고, 벽문(壁門) 앞에서 몸소 사례하고자 하시었사옵니다. 다만 소임이 영토를 지키는 일이라, 감히 자리를 마음대로 떠나실 수 없다 하시고, 바야흐로 응벽전(凝碧殿)에 큰 잔치를 베풀어 원수를 받들고 맞아들이라 하셨사옵니다. 원수께서는 잠깐 행차하옵소서. 대왕께서 소신에게 귀주(貴主)와 함께 돌아오도록 영을 내리시었나이다.”

 

尙書曰 : “敵軍雖退壁壘尙存, 且洞庭在萬里之外, 往返之間 日月累矣, 將兵之人 何敢遠出?”

使者曰 : “已具一車駕以八龍, 半日之內當去來矣.”

楊尙書與龍女登車, 靈風吹輪轉上層空, 未知去天餘幾尺也, 距地隔幾里也,

而但見白雲如盖, 平覆世界而已.

상서왈 적군수퇴벽루상존 차동정재만리지외 왕반지간 일월루의 장병지인 하감원출

사자왈 이구일거가이팔룡 반일지내당거래의

양상서여룡녀등거 영풍취륜전상층공 미지거천여기척야 거지격기리야

이단견백운여개 평복세계이이

 

상서가 이르기를,

“적군이 비록 물러갔으나 성벽과 성루가 아직 남아 있도다. 또 동정은 만 리 밖에 있으니 오고 가는 사이에 날짜가 오래 걸릴 것인즉, 장병들을 거느리는 사람으로서 어찌 감히 멀리까지 나갈 수가 있으리오?”

사자가 아뢰기를,

“이미 수레 하나를 준비하여 여덟 마리 용으로 매어 놓았으니, 반나절 안에 마땅히 갔다 올 수 있으리이다.”

양상서가 용녀와 더불어 수레를 타니, 기이한 바람이 사납게 불어 바퀴를 굴려 공중으로 올라가매, 하늘로 가는데 몇 척이나 남았는지 거리가 땅으로부터 몇 리나 떨어졌는지 알지 못하되, 다만 흰 구름만 일산(日傘)같이 평평하게 세계를 덮었을 뿐이었다.

 

漸漸低下至于洞庭, 龍王遠出迎之, 執賓主之禮 展翁婿之情,

揖上層殿 設宴饗之, 執酌而謝曰 : “寡人德薄而勢孤, 不能使一女安其所矣,

今元帥奮身威而擒驕重, 垂厚誼 而救小女, 欲報之德 天高地厚.”

점점저하지우동정 룡왕원출영지 집빈주지례 전옹서지정

읍상층전 설연향지 집작이사왈 과인덕박이세고 불능사일녀안기소의

금원수분신위이금교중 수후의 이구소녀 욕보지덕 천고지후

 

점점 아래로 내려가 동정에 이르니, 용왕이 멀리까지 나와서 그들을 맞이하며 주인과 손님의 예의를 차리고 장인과 사위의 정을 펼쳐 보였다. 허리를 굽혀 절하고 맨 위층의 전각에 오른 다음, 잔치를 베풀고 대접을 하는데, 술잔을 잡은 채 사례하기를,

“과인의 덕이 박하고 세력이 고단하여, 능히 한낱 딸자식에게조차 편하게 해 주지 못했소이다. 이제 원수께서 위엄을 떨쳐 교만한 아이를 사로잡고, 후의를 베풀며 어린 딸을 구하여 주었으니, 그 덕을 갚으려 한즉,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두텁나이다.”

 

尙書曰 : “莫非大王威令所及 何謝之有?”

至酒闌龍王命奏衆樂, 樂律融融聞有條絶, 而與俗果異矣.

壯士千人列立於殿左右, 手持劒戟 揮擊大鼓而進,

美女六佾着芙蓉之衣, 振明月之珮 飄拂藕衫, 雙雙對舞 眞壯觀也.

상서왈 막비대왕위령소급 하사지유

지주란룡왕명주중악 악률융융문유조절 이여속과리의

장사천인렬립어전좌우 수지검극 휘격대고이진

미녀육일착부용지의 진명월지패 표불우삼 쌍쌍대무 진장관야

 

상서가 답하기를,

“이는 다 대왕의 위엄있는 명령이 미친 바인데, 어찌 그토록 사례하심이 과하시나이까?”

술이 취하자, 용왕이 분부를 내려 여러 풍악을 들려주었는데, 그 음률이 화평하고 절조가 있어서, 세속의 풍악과는 정말로 달랐다. 장사 천명이 전각의 좌우에 벌리고 서서, 각기 자기 손에 칼과 창을 잡고 흔들며 큰 북을 울리면서 나왔다. 미인 여섯 쌍은 부용의(芙蓉衣)를 입고 명월패(明月珮)를 차고 표연히 한삼 소매를 떨치며, 마주 보고 춤을 추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尙書問曰 : “此舞未知何曲也.”

龍王答曰 : “水府舊無此曲, 寡人長女嫁 爲徑河王太子之妻, 因柳生傳書, 知其遭牧羊之困,

寡人弟錢塘君, 與徑河王大戰 大破其軍, 率女子而來, 宮中之人爲作此舞號曰,

錢塘破陣樂 或稱貴主行宮樂, 有時奏之於宮中之宴矣.

今元帥破南海太子, 使我父女相會, 與錢塘故事頗相似矣, 故改其名曰 元帥破軍樂也.”

상서문왈 차무미지하곡야

용왕답왈 수부구무차곡 과인장녀가 위경하왕태자지처 인류생전서 지기조목양지곤

과인제전당군 여경하왕대전 대파기군 솔녀자이래 궁중지인위작차무호왈

전당파진악 혹칭귀주행궁악유시주지어궁중지연의

금원수파남해태자 사아부녀상회 여전당고사파상사의 고개기명왈 원수파군악야

 

상서가 용왕에게 묻기를,

“이 춤에 쓰인 곡조가 무슨 곡조인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용왕이 답하기를,

“옛날에는 수부에는 이 곡조가 없었나이다. 과인의 맏딸이 시집가서 경하왕(徑河王) 태자의 처가 되었는데, 유생(柳生)이 전하는 글로 말미암아, 내 딸이 양을 치는 피곤함을 만난 줄 알고, 과인의 아우 전당군(錢塘君)이 경하왕과 크게 싸워, 그 군사를 크게 무찌르고 딸아이를 데려왔소이다. 궁중 사람들이 이 풍악을 짓고 춤을 붙여 이름하여 부르기를, ‘전당파진악(錢塘破陣樂)’ 혹은 ‘귀주행궁악(貴主行宮樂)’이라 하며, 궁중 잔치에서 때때로 연주한 것이외다.

이제 원수께서 남해 태자를 격파하고, 우리 부녀를 서로 만나게 해 주었으니 전당군의 옛일과 자못 서로 비슷하외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고쳐 ‘원수파진악(元帥破軍樂)’이라 하겠나이다.”

 

尙書又問曰 : “柳先生今何在耶, 未可相見耶?”

王曰 : “柳郞今爲瀛州仙官, 方在職府 何可來耶?”

酒過九巡 尙書告辭曰 : “軍中多事 不可久留 是可恨也, 惟願使娘子毋失後期也.”

龍王曰 : “當如約矣.”

상서우문왈 류선생금하재야 미가상견야

왕왈 류랑금위영주선관 방재직부 하가래야

주과구순 상서고사왈 군중다사 불가구류 시가한야 유원사낭자무실후기야

용왕왈 당여약의

 

상서가 또 묻기를,

“유선생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서로 만날 수 있사오리까?”

용왕이 답하기를,

“유랑(柳郞)은 지금 영주(瀛州)의 신선이 되어, 바야흐로 일을 맡고 있으니, 어찌 데려올 수 있으리오?”

술이 아홉 순배가 지나자 상서가 하직을 고하여 이르기를,

“군중에 일이 많아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우나, 오직 낭자로 하여금 뒷날의 기약을 놓치지 않도록 해 주기를 바라겠소.”

용왕이 답하기를,

“마땅히 언약대로 할 것이외다.”

 

出送於殿門之外, 有山突兀秀出五峯, 高入於雲煙, 尙書便有游覽之興,

問於龍王曰 : “此山何名? 少游歷遍天下 而惟未見此山及華山也.”

龍王曰 : “元帥未聞此山之名乎? 卽南岳衡山 奇且異也.”

尙書曰 : “何以則今日可登此山乎?”

출송어전문지외 유산돌올수산오봉 고입어운연 상서변유유람지흥

문어룡왕왈 차산하명 소유력편천하 이유미견차산급화산야

용왕왈 원수미문차산지명호 즉남악형산 기차리야

상서왈 하이즉금일가등차산호

 

용왕이 전문 밖에까지 나와 전송하는데, 산악이 우뚝 솟아 있고, 다섯 봉우리가 유독 빼어나 구름과 안개 사이로 높이 들어있어, 상서는 문득 유람하고 싶은 흥취가 일어났다.

용왕에게 묻기를,

“이 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나이까? 소유가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으되, 오직 이 산과 화산(華山)만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용왕이 답하기를,

“원수는 이 산의 이름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이는 곧 남악 형산(南岳衡山)으로 신기하고도 이상한 산이외다.”

상서가 묻기를,

“어찌하면 오늘 이 산에 오를 수 있소이까?”

 

龍王曰 : “日勢猶未晩矣, 雖暫玩而歸 亦未暮矣.”

尙書卽上車 已在衡山之下矣. 携竹杖訪石逕, 經一丘度一壑, 山益高境轉幽,

景物森羅不可應接, 所謂千岩競秀, 萬壑爭流者 眞善形容也.

용왕왈 일세유미만의 수잠완이귀 역미모의

상서즉상거 이재형산지하의 휴죽장방석경 경일구도일학 산익고경전유

경물삼라불가응접 소위천암경수 만학쟁류자 진선형용야

 

용왕이 답하기를,

“해의 형편이 아직 늦지 아니하였으니, 비록 잠깐 구경하고 돌아가도 또한 날이 저물지 않을 것이외다.”

상서가 곧 수레에 오르자 벌써 형산(衡山)의 아래에 다다랐다. 대지팡이를 짚고 돌길을 찾아가매 한 언덕을 지나고 한 구렁을 건너서니, 산이 더욱 높아지고 지경이 점점 그윽하며 경치가 빽빽이 널려 있어 이루 다 구경할 수가 없었다. 이른바 천암경수(千岩競秀) 만학쟁류(萬壑爭流)하는 신선 세계의 모습 그대로였다.

 

尙書柱筇聘矚 幽思自集 乃歎息曰 : “積苦兵間 獘情勞神, 此身塵緣 何太重耶?

安得功成身退, 超然物外之人也.”

俄聞石磬之聲出於林端, 尙書曰蘭若必不遠, 及涉絶巘上高頂 有一寺.

殿閣深邃 法侶坌集, 老僧趺坐蒲團 方誦經說法, 眉長而綠 骨淸而癯, 可知年紀之高矣.

상서주공빙촉 유사자집 내탄식왈 적고병간 폐정로신 차신진연 하태중야

안득공성신퇴 초연물외지인야

아문석경지성출어림단 상서왈란야필불원 급섭절헌상고정 유일사

전각심수 법려분집 로승부좌포단 방송경설법 미장이록 골청이구 가지년기지고의

 

상서가 지팡이를 짚고 둘러보니, 그윽한 생각이 저절로 모이거늘 탄식하기를,

“괴로운 군대 일이 쌓인 사이에 마음이 피폐하고 정신이 고달프게 되었으니, 이 몸의 속세 인연이 어찌 그리 중할까? 어찌하면 공이 이뤄지고 몸은 물러나 초연한 세상 바깥의 사람이 될 것인가.”

문득 석경(石磬) 소리가 숲속에서 들려오기에, 상서가 절간이 필연 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이어서 걸어 심히 가파른 언덕의 높은 꼭대기에 올라 가 보니, 한 절이 있었다. 전각이 깊숙하고 그윽하며 여러 중이 모여 있고, 노승이 포단(蒲團)에 부좌(趺坐)한 채 바야흐로 경문을 외우며 설법하고 있었다. 눈썹은 길고 푸르고, 골격이 맑고 파리하여 그 나이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見尙書至 率闍利下堂 迎之曰 : “山野之人聾聵, 不知大元帥之來, 未能迎候於山門請相公恕之.

今番非元帥永來之日, 須上殿 禮佛而去.”

尙書卽詣佛前焚香展拜, 方下殿 忽跌足驚覺, 身在營中 倚卓而坐, 東方微明矣.

견상서지 솔도리하당 영지왈 산야지인롱외 부지대원수지래 미능영후어산문청상공서지

금번비원수영래지일 수상전 예불이거

상서즉예불전분향전배 방하전 홀질족경각 신재영중 의탁이좌 동방미명의

 

상서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노승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당에서 내려가 맞이하며 이르기를,

“산야의 사람이 귀가 밝지 못하여, 대원수 오시는 줄 모르고, 산문까지 나가서 영접하지 못했으니 상공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라옵니다. 그러나 이번이 영구히 오는 날이 아니오니, 모름지기 전각에 올라 예불을 올리고 돌아가소서.”

상서가 바로 불전에 나아가 분향하고 참배한 후, 바야흐로 전각을 내려서는데, 홀연 실족하여 깜짝 놀라 깨어났다.

돌아보니 몸은 영중에서 탁자를 의지하여 앉아 있었고, 동방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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