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깊은 안개가 내려 앉는 이 아침에

New-Mountain(새뫼) 2019. 12. 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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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안개가 내려 앉는 이 아침에

 

오늘 깊은 안개가 내려 앉는 이 아침에

그만큼 꽤 멀리 달려왔어도 

내려 앉는 깊은 안개는 앞길을 감추었다.

어둑하니 잠긴 신호등은 붉게 깜빡이며 

가는 길 가야할 길 모두 험하다고 경고하는데 

기어이 오십이 벌써 넘었음에도 

이런 막막한 낯설음은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애초 정한 방향을 잃지 않으려 

처음도 끝도 없이 둥글게만 돌아가는 

둥근 핸들을 꼭 움켜쥐고 앞을 응시한다.

비상깜빡이의 째깍임에 스스로를 각성하며

시간과 공간을 구분할 수 없는 혼돈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를 밀어 넣어가는데 

여기쯤이 네거리이니 길을 선택해야 하고 

지금쯤이면 우회전하며 나를 바꾸면서

하나하나 어깨 너머로 지나쳐갔던 

신호등의 숫자를 헤아려본다. 

다섯이었던가 여섯이었던가 헤아리다가 

헤아리려다가 안개가 저렇게 자욱한데

그런 숫자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으렴인가. 

설사 벌써 오십을 넘게 헤아렸어도 

여전히 안개 가득한 여기에서 멈칫하거니

이제껏 달려왔어도 앞길을 알지 못하거니

여기까지 사고없이 다행하게 온 것처럼

앞으로도 사고없이 조심하며 갈 것이라면

그러면 깊은 안개가 내려 앉은 아침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고마운 것 아닌가.

아니 고맙게도 신기한 것 아닌가. 

남은 시간과 공간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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