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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 L군에게
늘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아무 때나 지나는 낯익은 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익숙하게 그냥 지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잠시 멈추었습니다. 작은 몇 송이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옅은 분홍빛조차 화려하게 매화 몇 송이가 감히 피어 있었습니다. 여전히 바람은 차가워서 아직 여미게 하는 쌀쌀함인데도 떨어지지 않고 송이들은 세상의 온도를 거역하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한참이나 머뭇거렸습니다. 떠났다 돌아올 즈음이면 이미 떨어져 다시 못 볼 것 같기에. 피어오른 송이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하나 둘. 그러다가 무심코 더 아직 피지 않은 송이까지 송이로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 송이들은 늘 보던, 여러 해 익숙하게 보았던 모습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사위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회복하려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렇게 봄이 오나 봅니다.
봄은 그렇게 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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