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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바람이 불 때는 몰랐습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칠 때도 정말 몰랐습니다.
잦아진 하늘, 상쾌한 봄 내음 속에서
비로소 내 주검 위에 누워진 내 주검을 보았습니다.
찢어지고 흩어지고 밟혀진 더 이상 어찌
수습할 수도 없는 시간 속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이제 아무도 내게 묻지 않습니다.
누구도 떨어져 썩어가고 있는 과거의 화려함에
간단한 시선하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지고 나면 잊혀지는 것,
그렇게 자리가 비워지면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 것
다만 나 자신만이 나를 바라볼 뿐입니다.
위를 올려다 봅니다. 저 높은 곳을 봅니다.
내가 떨어진 곳에 피어나는 새순 연두빛 잎들
누구도 그 옛날 모진 된서리 속에서
치열하게 처절하게 싸우던 작은 시간을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꽃잎은 떨어지고 그즐의 머리 속에서 조용히 썩어갑니다.
그 때 얼어붙은 눈발과 귓전을 때리던 된 소리
그래도 뿌듯하게 머리를 내밀던 잠깐의 환희
하지난 모두의 기억 속에 지워지며
이렇게 사라져 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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