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리움 미술관 방문기

New-Mountain(새뫼) 2017. 12. 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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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미술관 방문기

 

 

1.

추운 날이다. 거울 속에 비취어진 얼굴을 바라보며 정리되지 않는 수염 속에 부쩍 흰 터올이 더 늘어났음을 발견한다. 무디어진 면도칼로 맨 낯을 만들어보지만, 그 얼굴도 내 얼굴 같지마는 않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낯익은 얼굴은 언제였을까. 정의는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다만 그 때와 지금은 다른 때이고, 문득 시간의 흘렀기에 지금이 있고, 또 알기 어려운 시간을 향해 나아가면서 지금과는 또 다른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정도로만 가정될 뿐이다. 그 때는 흰 수염이 더 늘어 있으려나. 시답지 않은 상념으로 맞는 아침이다. 희든 검든 수염은 모두 깎이어져 없어졌는데. 그러자 대신 다른 고민이 들어온다. 하필이면 추운 날이다. 그럼에도 서울을 향하기로 한 오늘, 목적지가 왜 박물관이 아니라 미술관이라고 명명되었는지를 잠시 고민해본다. 유물과 미술의 간극을 잘 알 만큼 사유는 깊지 않다. 의미 없이 적혀지고 있는 이 글이 낙서인지 작품인지 아무도 관심을 두고 따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과 저것을 굳이 나누려는 것이 보편성을 얻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라는 존재와 지금이라는 시간, 여기라는 장소가 전부이고, 잠시 변기에 앉아 힘을 쓰는 일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시도하는 생체 사이클이라 신통치 않다. 서울은 낯선 장소이다. 서둘러야 한다는 조급증이 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운 아침이다.

 


2.

어두운 곳이다. 유물 보존을 위해 조명을 조절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어제도 그제도 여기는 저렇게 어두운 곳이었을 게다. 부처들은 여럿이서 유리벽 속에서 무표정하게 경직되어 서 있거나, 혹은 앉아서 관람자들을 지켜볼 뿐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다행으로 여길까. 그렇지는 않다. 각각의 유리벽 속에서 부처들에게 본연의 외로움보다 더 외로운 공간에 감금되어 있다. 저 속에서 스스로 구도할 수 있을까. 저 속에서 중생들을 계도할 수 있을까. 유리벽을 마주하고 묵언 수행을 강요받고 있는 중이라고 중얼거리다 외람되어 송구해진다. 다시 부처들은 채 한 뼘도 되지 않는데, 유리벽의 번뇌가 스스로를 감추려 움츠린 것은 아닌가.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을 텐데. 여기는 어두운 곳이다. 그러다가 단체 관람하는 아이들의 지루한 조잘거림이 현실을 불러온다. 저거 진짜 금이야? 그러고 보니 부처들은 금으로 된 가사를 걸쳤다. 모두들. 돌옷도 없고, 쇠옷도 없다. 정말 금이다. 번쩍이니 금이지 하는 생각으로 속물이 된다. 그래서 법당에 웅장하게 단좌한 시간보다, 여기보다도 더 어두운 금고 속에 갇혀 있던 시간이 더 오래지 않았을까. 제작 연도와 금 함유량으로 정량화 되어 이곳까지 오시지 않았을까 중얼거린다. 자꾸 송구해지기에 달리 생각하기로 한다. 하루에도 아래를 지나는 몇 백 몇 천의 중생들을 굽어보며, 자신의 작은 법당 안에서 금으로 된 낡을 가사를 걸치고,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늘 한결같이. 오늘도 어제처럼. 어두운 법당 안에서.

 

 

3.

국보이고 보물이다. 상감청자와 분청사기와 청화백자와 그냥 청자와 백자. 제작 방법과 사용 용도에 따라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게 달리 명명된 여러 그릇과 병과 화병들 앞에 서 있다. 도자기 앞에 붙여둔 텍스트들이 이성을 지배하는 탓에 저들은 곱고 화려하고 예술적인 기품이 뛰어나다. 그래도 저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땅 속에 묻혀 있었든, 덜컹거리는 수레에 실려 다녔든, 전란이 유난히 많고 심했던 이 나라에서 깨지지 않고 지금까지 무사히 버티어 온 생존력이리라. 또 도란도란 밥을 먹고 유쾌하게 술을 마셨던 옛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국보이고 보물인 이유이다. 문득 아내가 버려 달라고 박스에 가득 담아 두었던 그릇들을 떠올린다. 처음 살림 시작할 때 사두었다가 어느새 귀가 떨어지고 이가 빠져 버렸다. 첫 이유식이 담겼던 아이들만큼 예뻤던 녀석들도 이젠 공간의 부족함 때문에 밀려나고 있었다. 본래 기능보다 아스라한 추억이 많아 아쉽지만, 그렇게 버림으로써 다시 채우는 것이다. 아니 채우기 위해서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버려진 저들은 악착같이 모아져 다시 유리 찬장 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릇은 너무 곱고 화려하고 기품이 있어서 밥술을 얹기가 어색하고, 술병은 벗의 술잔보다도 바닥에 더 많을 술을 쏟게 할 것 같다. 그래서 이곳 미술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 실용성이라는 무지막지한 기준으로 저들은 평가한다. 국보이었고 보물이었다.

 

 

4.

이것은 진짜이다. 여기에서 송시열을 만났다. 아침 거울 속에서 확인했던 초라하게 늙어가던 내 얼굴과는 다른 고집스러움이 얼굴 가득한 주름의 골짜기에서 고여 있다. 그래도 결기라도 얻어갈 양 결연하게 송시열과 눈을 맞추어 본다. 평생 조정의 논란의 중심에 있던 사내, 자신의 옳음을 고집하기 위해 건너편의 그름을 강요하던 사내, 피바람 속에 귀양을 떠나고 사약을 마시고, 죽어서까지 시신이 찢기어졌던 사내.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저이가 주장하던 학문과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어서 그리 무섭게 살았을까. 송시열에 대해 이어가지 못하는 화두는 나의 천착한 부끄러움이다. 이게 나의 진짜이다. 조금 더 다가간다. 그런데 그림 속 사내는 알고 있는 초상이 아니다. 비슷하지만 같지 않다. 스마트폰은 그 이유를 금방 설명한다. 송시열은 여기 미술관에도 있고, 저기 박물관에도 있고 다른 곳에도 또 있었다. 그러면 어떤 초상이 원본인가. 더 찾아보려다 이것이 저것을 복제하고, 저것이 이것을 다시 복제했다고 간간하게 판단해 버린다. 원본은 이미 죽어 사라졌으니까 어느 것도 원본일 수가 없다. 어쩌면 사라진 원본조차도 학파나 당파를 복제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복제임을 숨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 송시열에 대해 가십거리로만 알고 있는 나의 몽매함은 용서가 될 수 있다. 그리 여기고 당당히 떠나려는데, 여전히 고집스러운 송시열의 주장을 발견한다. 나는 진짜다 라고.



5.

단절되어 있다. 미술관에서는 4층에 올라 1층으로 내려가라는 동선만을 강요한다. 시간은 아래로부터 켜켜이 쌓이는 것이라서, 위에서부터 한 켜 한 켜 걷어내야 본질을 제대로 알게 된다는 지독하게 상투적인 가르침인가. 4층과 2층 사이에는 반드시 3층이 매개되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의 설파인가. 건너뛰고 싶었지만, 입장료도 지불하였지만, 내 주장은 없으므로 이끄는 대로 따라 내려간다. 구획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위로한다. 그렇게 스스로 단절한다. 내려가고 또 흘러가다 보니 이제 1층이다. 나가는 문을 앞에 두고, 미술관 밖은 얼마나 추울까 고작 그것이나 걱정하다가, 내가 남겨둘 복제품은 과연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해본다. 미술은 아니어도 유물이라도, 아니면 아무 거라도. 부처도 아닐 거고, 그릇도 아닐 거고 초상도 아닐 거라. 그래도 몇 글자는 남겨 둘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방명록을 찾는다. 거기에 우리의 원본인 그들과, 그들의 복제품인 우리는 단절되어 있기에, 이곳은 미술관이 아니라 유물박물관일 뿐이라고 위대한 선언을 남겨두려 한다. 하지만 그 흔한 방명록은 찾지 못하고, 아침에 미처 해결하지 못한 일이 급하게 몰려옴을 느낀다. 그리고 현대화된 화장실 안에서 텍스트도 그 무엇도 아닌 것을 창작의 고통도 채 느끼지 못한 채 급하게 쏟아낸다. 그렇게 나의 복제품은 미술관에 남았다. 나와 단절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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