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님들께
지금은 학교입니다. 학생들의 방과후수업을 위해 출근하였다가, 잠시 비는 시간에 글월을 올립니다. 수업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등교한 것은 아니어서 학교는 조용합니다. 잠시 전에 2학년 2반 교실을 둘러보았는데, 왁자지껄했던 아이들이 종알거림은 들리지 않고, 두고 간 물건 몇 개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방학이구나 하고 새삼스레 중얼거리게 되었습니다.
바깥 기온이 퍽 쌀쌀합니다. 댁내 평안하신지요? 지난 번 인사드렸을 때는 한창 단풍이 익어가던 가을이었었는데, 벌써 겨울이 되었고, 다시 새 해가 되었습니다. ‘벌써 또 한 해가…….’ 하며 중얼거리다 보니, 무섭게 지나버리는 시간이 문득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작년 한 해 건강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고맙게 느끼고 있습니다.
먼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방학식을 하는 날 학생들의 성적표를 배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이번에 이 글과 함께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교사들에게는 연말연초에 일 년 중 가장 큰 일인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기록하는 것인지라 성적표를 보내는 일이 잠시 밀렸습니다.
생활기록부를 기록하면서 한 명, 한 명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아이들이 일 년 동안 학교와 학급에서 한 의미 있는 활동을 찾으려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제 기억에 한계가 있기도 하고, 일일이 세심하게 기억하기에 학급의 학생 수가 조금 많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보다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워낙 두드러지지 않게 조용히 지냈기에, 특별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생활기록부를 기록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 반 아이들의 특별하지도 않았지만, 크게 사고를 일으킨 아이도 없었고, 많이 아픈 아이도 없었으며, 학교 규칙이나 담임의 염려에서 크게 어긋난 아이도 없었기에, 우리 학급이 행복하게 올 한 해를 보냈고, 담임 노릇하기 편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봅니다. 모든 아이들은 함께 활달한 학급 분위기를 만들었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누렸으며 나이든 담임을 잘 따라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렇게 행복하면서도 뜻깊은 1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댄스대회와 합창대회에서 1등을 하고, 함께 원주로 문학기행을 다녀온 것은 쉬이 잊히지 않을 일입니다. 함께 김밥을 말아 먹던 소소한 행복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늘 아이들이 보여준 밝은 표정이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어 있습니다. 3월에 글월을 드릴 때 3학년 입시생이 아닌 아이들을 담임한 것이 정말 오랜만이라고 말씀을 드렸거니와, 자칫 타성에 빠질 수도 있었던 담임 역할이, 2반 아이들을 함께 보낸 시간으로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러한 모든 기억들을 오래 남기기 위해 ‘다들 어진 사람들’이라는 학급문집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의 글을 모두 모으고 편집하여, 곧 인쇄소로 넘길 예정입니다. 개학이 되면 아이들과 부모님 모두 같이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난 시간들은 흐뭇했지만, 앞으로 아이들이 겪게 될 시간은 그리 녹녹하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겨울 방학을 마치면, 얼마간 등교를 합니다만, 실제적으로 2학년은 거의 다 지나간 듯합니다. 그리고 고생스러울 3학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현재 성적이 다르고, 목표로 하는 대학이 다르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중압감은 다들 비슷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몇 번의 고비를 맞게 되겠습니다만, 고등학교 3학년은 아이들이 맞는 첫 번째로 맞는 고비가 될 것입니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학생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은 방학이어서 아이들은 좀 편하게 풀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부족했던 잠도 푹 자고 싶을 것이고, 짜인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편한 장소에서 편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하다 하더라도 곧 3학년이기에 너무 긴장의 마음가짐을 놓아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우려의 마음에서, 부모님들께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앞서 지금 생활기록부를 마무리하고 있다고 말씀드렸거니와, 아이들의 보이는 보이지 않는 장점을 찾고자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장점과 소질은 단순히 생활기록부의 문자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 앞으로 대학 진학이라든지, 조금 더 멀리 장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고, 관련 정보를 찾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이 일은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중요한 것이지만, 부모님들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3학년 담임을 하면서 몇 차례 경험해 본 바, 많은 학생들이 원서 마감에 임박하여,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도 모르고, 또 지원하려는 학과의 성격도 모르고 원서를 접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때에 급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지금 진학과 진로에 대한 관심과 부지런함이 필요하겠습니다.
이는 교실에서 늘 아이들에게 하였던 얘기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이 아니면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함께 보내는 성적표를 참고하시고, 현재 상태를 진단해 보시고, 아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하지만 제가 생활기록부를 쓰기 위해 고민한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을 많은 장점도, 대학 입시에서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기에, 함께 찾아보시고 아이들이 계발할 수 있도록 격려도 필요하겠습니다. 이번 겨울 방학은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한 소중한 시간입니다.
새해부터 조금 무거운 말씀을 드렸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이 성적이고 진학이니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 역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댁내 평안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한 해 동안 보내 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글월을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7년 새해에
2학년 2반 담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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