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시와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 , 정태춘

New-Mountain(새뫼) 2016. 11. 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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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92년 장마, 종로에서 - 정태춘 (1993)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 워 워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워 워 워 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후여 후여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후여 후여 후여 후여 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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