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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하루 학교를 지켜야 하는 순서인지라 교무실에 앉아 있었다.
책상위에서는 아이들의 글,
수행평가를 빙자해서 기어이 받아낸 글이다.
읽으며 채점을 했다.
글에도 글씨에서 억지로 썼다는 티가 푹푹 났다.
한참 그렇게 아이들의 글과 나의 노안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교감이 들어왔다.
"그래도 일년에 몇일은 나와봐아죠. 들렀습니다."
한 번 들러보러 왔다가 사람이 있으니 알을 체라도 하려 했나보다.
의례적인 말 몇 마디 나누고 문밖으로 나가려다
문득 돌아섰다.
"그런데 학교에 예산이 조금 있는데, 교사 동아리에 보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등산이나 그런 비슷한 것으로 취미로 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제가 등산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럼 다른 동아리라도?"
"제가 다른 사람들과 엮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잠시 사이.
"그렇죠. 워낙 자유인이시니까..."
다시 교무실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문득 내 말이 까칠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을 거다.
그래도 그게 사실이니 어쩔 것이랴.
동아리도 동호회도 없고 동창회도 나가지 않으며,
요즘 그 흔한 밴드조차 가입이 되어 있지 않다.
같이 어울리며 즐기는 일을 잘 하지 못하는 탓이다. .
정말 엮이는게 불편한 탓이다.
성격이 그러한 것을..
그렇게 내 자신을 규정지으며 다시금 애들 글과 씨름하는데
얼마전에 앞자리 김선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형님, 은퇴하면 뭐 하실 거에요? 취미라도 만들어 두셔야 하지 않나요?"
평소 보기에도 답답해 보였을라나
그때는
정말 자유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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