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시

이광정의 '아비의 원수를 갚은 어린 여자아이의 이야기(강상여자가)'

New-Mountain(새뫼) 2022. 7. 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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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上女子歌(강상여자가) ;  아비의 원수를 갚은 어린 여자아이의 이야기

 

李光庭(이광정, 1674~1756)

신영산 옮김

 

江上持瓢誰氏兒 강상지표수씨아   강가에서 바가지 든 두 아이 누구의 딸이기에

玉貌蹣跚兩相隨 옥모반산양상수   옥 같은 모습인데 비척이며 둘이 함께 떠나가더라.

 

自言幼少不知家 자언유소부지가   그 애들이 말했다지. “어려서부터 살던 집은 모르고

三歲零丁逐寒鴉 삼세영정축한아     삼 년이나 외롭게도 차가운 까마귀를 쫓았어요.

阿爺南州責逋奴 아야남주책포노     아버지는 도망간 노비를 잡는다고 남쪽 땅에 갔다가

歸舟正與商人俱 귀주정여상인구     돌아올 제 어떤 장사치와 배를 함께 탔답니다.

巨禍潛祟越中裝 거화잠수월중장     월나라 사람의 행장에서 큰 재앙이 나왔으니

寃魂夜泣吳天霜 원혼야읍오천상     아버지의 원혼은 오나라의 서리 되어 밤새도록 울었네요.

 

兒齡八九尠兄弟 아령팔구선형제     제 나이 여덟 아홉에 오라비와 남동생도 없었으니

四顧茫茫無所抵 사고망망무소저     사방으로 둘러봐야 막막하여 갈 곳이 없었어요.

父死尸沒向誰叩 부사시몰향수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신은 사라졌으니 뉘에게 물으며

讎强身弱難容手 수강신약난용수     원수는 강하고 제 몸이 약하니 손 쓰기도 어려웠죠.

秪與兒婢兩結束 지여아비양결속     다만 계집종 하나와 단둘이 손을 잡고

出家號呼竆山谷 출가호호궁산곡     집을 떠나 울부짖으며 막다른 산골에서 헤맸답니다.

變衣匿跡尋讎去 변의닉적심수거     변장하고 숨어가며 원수가 간 곳을 찾느라고

風行草宿靡處所 풍행초숙미처소     바람처럼 떠돌다가 풀섶에서 잠을 자니 거처가 없었지요.

懷中的皪雙金刀 회중적력쌍금도     가슴속에 품은 것은 시퍼런 은장도 한 쌍인데

頭上髼鬆兩蓬毛 두상봉송양봉모     머리는 쑥대처럼 더부룩하게 헝클어진 두 아이가

丹衷耿耿天日皎 단충경경천일교     붉은 마음 또렷하여 하늘의 해처럼 빛났으니

秋岸三紅河上蓼 추안삼홍하상료     가을 언덕 물가의 여귀꽃처럼 온통 붉기만 하였다오.

 

商人逐利無東西 상인축리무동서     그 장사치 이윤 따라 동서 없이 다니다가

昨夜舟泊銅江堤 작야주박동강제     어젯밤에 마침 배를 동작나루에 대었네요.

林烏啞啞霜月白 임오아아상월백     숲속의 까마귀는 까악 울고 서리 맞은 달빛은 하얀데

碧波碇沈囂語寂 벽파정심효어적     푸른 물에 닻이 잠겨 떠들썩한 소리도 잔잔해졌죠.

江妃嗚泣助煩寃 강비오읍조번원     강비가 흐느끼며 번뇌하는 원혼을 도와주는지

約束睡魔噤一村 약속수마금일촌     잠귀신에 묶였는지 온 마을이 쓸쓸하게 적막하데요.

金刀跳出神獨知 금도도출신독지     번득이는 칼을 빼어 덤볐으니 귀신만이 홀로 알고

一擲正中讎人脾 일척정중수인비     한 칼로 던졌더니 원수놈 가슴팍에 꽂혔지요.

斬胷茹肝復歸路 참흉여간부귀로     배를 갈라 간을 씹고 다시 나와 돌아오는데

曉霧瞳矓汀上樹 효무동룡정상수     새벽의 안개만이 강가의 나무에 희미하데요.”

 

天明客子爭奔走 천명객자쟁분주   하늘이 밝아오니 나그네들 분주함을 다투는데

死與尸者果誰某 사여시자과수모   죽인 자와 누구이고 죽은 자는 과연 누구인가.

是夜寄宿老婆女 시야기숙노파녀   그 밤에 두 아이가 묵었던 집 할미가

隔牕暗聞兩兒語 격창암문양아어   창틈으로 두 아이가 하던 말을 몰래 듣고

爲言終始僅如此 위언종시근여차   말 전하니, 처음과 마지막이 대개 이러하였다더라.

不知何許小娘子 부지하허소낭자   어느 댁 낭자인지 그건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네.

聞者相傳但涕淚 문자상전단체누   이 말을 듣는 이들 서로 전하며 다만 눈물 흘리노니

肎料稚顔辦大事 긍료치안판대사   어린 아이가 큰일을 해낼 줄을 어느 뉘라 생각했으리.

 

重男賤女世人情 중남천녀세인정   아들 귀하고 딸 천하게 여기는 게 세상의 인정인데

十子何如一女英 십자하여일녀영   열 아들이 영특하고 용맹한 딸 하나를 어찌 당하리.

君看千古復讎人 군간천고복수인   그대들은 보시게나. 천고의 복수했던 사람 중에

未有年齡如此倫 미유년령여차륜   나이가 이리 어린 사람은 전에 있지 않았다네.

正是吾東大義明 정시오동대의명   이제 곧 우리나라 동방에 대의가 밝았으니

賦與忠孝隨胎生 부여충효수태생   충신과 효자가 태어나서 대를 이어 갈 것이라.

寄語鄰邦莫浪窺 기어린방막랑규   이웃 나라에 말 붙이니, 우리 땅 함부로 넘보지 마라.

三韓女兒今如斯 삼한녀아금여사   삼한의 여자들 지금도 이와 같단다.

 

* 월나라 사람의 행장, 오나라 사람의 서리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고사를 끌어들여, 아버지가 장사치에게 죽음을 당한 일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

* 강비 ; 강에 산다는 전설 속의 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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