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시,부

성해응의 '나그네길(유객행)'

New-Mountain(새뫼) 2022. 5. 2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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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客行(유객행) ; 나그네 길

 

成海應(성해응, 1760~1839)

신영산 옮김

 

 

 

 

1.

有客從西來 유객종서래   서도 땅을 나그네로 지나가다

寄宿縣門側 기숙현문측   관가의 문 옆에서 머무르며 기숙했지.

室中有一女 실중유일녀   그 집에서 시중들던 한 여인

言辭似京洛 언사사경락   말씨를 들어보니 서울 사람인 듯하더라.

健隷忽來呼 건례홀래호   건장한 관노 하나 문득 와서 부르는데,

官家有使役 관가유사역   관가에서 시킬 일 있다 하고 오라 하네.

 

答云方乳兒 답운방유아   답하기를, “방금 아이에게 젖 물렸다오.

乳訖去當速 유흘거당속    젖을 마저 먹이고서 신속하게 가리다.”

仍自訴平生 잉자소평생   그리고는 자기 신세 하소연하는데

語言涕自落 語言涕自落   말을 하며 눈물을 저절로 떨구더라.

 

* 서도 :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지역.

 

2.

 

我本貴家女 아본귀가녀   “저는 본래 부귀한 집 딸이었다오.

祖先皆顯爵 조선개현작    선조들의 벼슬은 대대로 높았으니

出入椉朱軒 출입승주헌    출입할 땐 붉게 칠한 수레 탔고

僕從擁簇簇 복종옹족족    종들이 주렁주렁 따르면서 따라왔죠.

卿相皆我黨 경상개아당    정승 판서 모두가 우리 가문 당파였고

守伯皆我戚 수백개아척    수령 방백 모두가 우리의 친척이니

歲時受?獻 세시수회헌    명절마다 재물을 받았으니

錢帛日絲絡 전백일사락    돈이며 비단이며 나날이 들어왔다오.

 

閨門似朝廷 규문사조정    규중의 법도는 조정과 같았으니

嶄嶄遵禮法 참참준예법    거듭거듭 예법을 지키는 게 엄했다오.

自我髮未澡 자아발미조    스스로 내 머리 꾸미기 전 어릴 때부터

足不踰閫閾 족불유곤역    발길이 문지방을 넘어가지 않았네요.

擇對定華閥 택대정화벌    화려한 가문 정해 정혼 상대 택했기에

煥爛具服餙 환란구복희    화려한 예복에다 장신구를 장만했죠.

 

一朝遭傾覆 일조조경복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집안이 뒤집어지니

驚怖喪弱魄 경포상약백    놀라고도 두려워 넋이 그만 나갔다오.

父兄被誅戮 부형피주륙    부친과 오라버니 죽임을 당하였고

母妹蕩分析 모매탕분석    모친과 여동생은 흔들리며 흩어졌지요.

服毒輒嘔吐 복독첩구토    독약을 먹었지만 그냥 토해 나왔고

雉經被解釋 치경피해석    목을 매니 주변에서 기어이 풀어주네요.

王府問我名 왕부문아명    의금부에서 내 이름 물어보더니

外方充賤籍 외방충천적    변방의 관비로 충당시켜 버렸지요.

 

緹騎促登途 제기촉등도    붉은 옷의 나졸들이 재촉하여 길 오르니

迷不知南北 미불지남북    아득하여 남북조차 알지 못할 지경이었죠.

置我西塞去 치아서색거    저를 끌어다 서쪽 변방에 던져두고 가 버리니

孤身寄絶域 고신기절역    외로운 몸 먼 땅에 붙이게 되었네요.

苦飢誰我食 고기수아식    굶주림에 괴로워도 뉘라 제게 먹이겠고

卧病誰我藥 와병수아약    병으로 누웠어도 뉘라 제게 약 주리오.

呼我供厨汲 호아공주급    저를 불러 부엌에서 물 긷기를 하라 하니

雜廁婢隷屬 잡측비례속    계집 종들 사이에서 섞이게 되었지요.

調戱豈敢較 조희기감교    놀림을 당한다고 어찌 감히 따지리오.

事事輒委曲 사사첩위곡    일마다 번번이 굽실굽실 하였어요.

細務或齟齬 세무혹저어    하찮은 일이라도 혹여나 잘못하면

著處被嗔責 저처피진책    여기에서 저기에서 야단맞기 일쑤였다오.

針工復督我 침공부독아    바느질을 다시 하라 저에게 독촉하나

裁縫有程式 재봉유정식    마름질과 꿰매기도 법칙이 있으리니

不得少錯誤 부득소착오    조그만 잘못도 받아주질 않았었고

責償無紀極 책상무기극    꾸지람을 상으로 받기 끝이 없었죠.

最苦官長毒 최고관장독    가장 괴로운 건 사또의 표독함이니

那能安弱植 나능안약식    연약한 제가 어찌 편안할 수 있었으리오.

睨眴或微忤 예현혹미오    흘겨보고 노려보며 혹여나 조금이라도

揮霍恣鞭撻 휘곽자편달    거슬리면 곧바로 무섭게 매질하니

柔肌豈任受 유기기임수    부드러운 살갗이 어찌 견디리오.

號?氣欲絶 호포기욕절    부르짖다 기가 끊겨 절도하고 말았지요.

猛卒手更麤 맹졸수경추    사나운 나졸들은 손이 더욱 거칠어서

下杖愈不惜 하장유불석    몽둥이질 조금도 아끼지 않았으니

瘡瘢深沒膚 창반심몰부    상처는 깊어지고 살갗은 패어지며

裂如刀劒劃 열여도검획    드는 칼로 긋듯이 찢어지기도 하였다오.

往往悅我貌 왕왕열아모    이따금 제 외모를 탐을 내어

逼我要伴宿 핍아요반숙    핍박하여 하룻밤 자자고 요구하니

生旣被玷缺 생기피점결    살아 이미 망가지고 이지러진 몸이러니

那得辭穢辱 나득사예욕    어찌 능욕을 거절할 수 있었으리까.

 

父祖何罪惡 부조하죄악    부친과 조부께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

兒女莫知識 아녀막지식    아녀자인 제가 알지 못하는데

哀酸集千般 애산집천반    슬픔과 서러움이 수천 가지 모여드니

寃恨塡胸臆 원한전흉억    원한과 회한이 가슴에 미어지네요.

遠念阿妹輩 원념아매배    먼 곳으로 끌려간 누이들을 생각하니

得不罹此毒 득불리차독   이런 곤욕 역시나 당하지 않으리까.

 

 

3.

 

聽之尋譜系 청지심보계   이야기를 듣고나서 그 집 족보 찾아보니

門戶果燀爀 문호과천혁   그 가문은 과연 찬란하게 빛났었네.

其家據權要 기가거권요   그 집안은 권력과 높은 벼슬 차지하여

亦甞赤人族 역상적인족   또 일찍이 남의 가문을 죽이기도 했었는데

倐忽受殄滅 숙홀수진멸   갑자기 멸문의 상황을 만났으니

禍殃及稚弱 화앙급치약   재앙이 연약한 이들까지 이르렀구나.

 

愼勿毒諸人 신물독제인   남에게 악하게 하는 짓은 말아야 하니

反遭必十百 반조필십백   도리어 반드시 열배 백배 당한다네.

我使人下涕 아사인하체   내가 남의 눈에 눈물을 나게 하면

人使我見血 인사아현혈   남도 내 눈에 피가 나게 하느니

憑賴豈自解 빙뢰기자해   힘이 있다 어찌 쉽게 망하겠나 자만하면

反復同一轍 반부동일철   도리어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리라.

權柄有何樂 권병유하락   권세를 잡았다고 좋은 것이 무엇인가.

乃以一門易 내이일문역   이는 거꾸로 한 가문이 망치는 것이리라.

 

且歎孥戮慘 차탄노륙참   죽거나 종 되는 건 참으로 참담한데

恐非先聖則 공비선성칙   이런 법은 성인께서 만든 것이 아니리라.

誅讁及身止 주적급신지   죽이거나 귀양보냄은 그 몸에 그쳐야지

收司得無酷 수사득무혹   연좌를 시키는 게 모질지 아니한가.

關和剗此法 관화잔차법   이런 법을 없애 올바른 법 만든다면

邦國實受福 방국실수복   이 나라는 실로 복을 받게 될 것이리라.

沈勁爲忠門 심경위충문   심경은 충신의 가문이 되었기에

安世化名族 안세화명족   세상을 편안히 해 명문가가 되었으니

世類又奚累 세류우해루   타고난 가문에서 연루된 게 아니더라.

是特仁者惻 시특인자측   이 여인이  참으로 측은하게 보일 뿐이라.

 

* 심경(沈勁): 진(晉) 나라의 역신) 심충(沈充)의 아들이었으나,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성을 지키고 맞서 싸우다가, 결국 절의를 지키고 죽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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