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農夫語(기농부어) ; 농부의 말을 옮기다
金時習(김시습, 1435~1493)
신영산 옮김
去歲早旱晚霖劇 거세조한만림극 지난 해는 이른 가뭄에 늦게까지 장마가 극심하여
泥沒江滸深一尺 이몰강호심일척 강가에 묻힌 진흙 그 깊이가 한 자나 넘었지요.
沙石塡塞卒汚萊 사석전색졸오래 모래 돌이 메워져서 마침내 채소밭을 덮었으니
豐者游龍與陵舃 풍자유룡여릉석 여뀌와 질경이만 무성하게 너울대며 자랐다오.
婦兒啼飢號路傍 부아제기호로방 아내와 아이들이 배고픔에 길가에서 울부짖으니
路傍觀者爲歎息 노방관자위탄식 길가에서 바라보는 사람마다 긴 탄식을 하였지요.
私債官租日夜督 사채관조일야독 빚진 돈과 관아의 세금을 밤낮으로 독촉받는데
況我難逃白丁役 황아난도백정역 더구나 백성의 부역까지 피하기 어려웠네요.
一身丁役亂於麻 일신정역란어마 이 몸의 부역은 삼실보다 어지럽게 엉키어서
東侵西擾多煩酷 동침서요다번혹 동쪽과 서쪽에서 흔들었으니 번거롭고 혹독했지요.
歲收芋栗不足支 세수우률부족지 해마다 마를 캐고 밤 주워도 버티기에 부족하니
春田采芑盈阡陌 춘전채기영천맥 봄밭에는 씀바귀 캐는 사람 두둑마다 가득했지요.
今歲于耜苗始秀 금세우사묘시수 올해도 쟁기로 밭을 갈아 싹이 처음 돋았지만
陰霾且曀經一月 음매차에경일월 음산하게 흙비 오니 흐릿하기 한 달이 흘렀네요.
麥穗生糱稻根腐 맥수생얼도근부 보리 이삭 패자마자 누룩 되고, 벼 뿌리는 썩었으니
天步艱難民卼臲 천보간난민올얼 하늘이 정한 운수 어려우니 백성들이 위태로웠죠.
八月晚秔花正繁 팔월만갱화정번 팔월 되어 늦게나마 벼꽃이 겨우 피었지만
東北風吹秕不實 동북풍취비불실 동북에서 바람 부니 쭉정이로 열매 맺지 못하였고
橡蠹菜蝗瓜蔓枯 상두채황과만고 도토리는 좀을 먹고 채마밭엔 메뚜기요, 오이 넝쿨 말라가니
飢饉連年無可活 기근연년무가활 기근이 해마다 이어가니 살아갈 수 없었다오.
我有腴田數十畝 아유유전수십무 내게는 기름진 수십 이랑의 논밭이 있었으나
去年已爲豪強奪 거년이위호강탈 지난 해에 이미 강포한 이에게 빼앗겼고
亦有壯雇服耕耘 역유장고복경운 또 건장한 머슴 있어 삯을 주어 김을 매게 하였지만,
昔年作保充軍額 석년작보충군액 그 전 해에 군역으로 들어가서 군사로 끌려갔다오.
赤子在左叫紛紛 적자재좌규분분 벌거숭이 자식들은 옆에서 어지러이 떠들면서
交徧謫我如不聞 교편적아여불문 돌아가며 애비를 원망해도 못 들은 체 하였네요.
天門九重邃且深 천문구중수차심 임금 계신 대궐문은 멀고도 또 깊으니
欲往愬之○○○ 욕왕소지○○○ 그곳에 가 하소연 하려 해도 어찌 아뢰리오.
○○附翼叫帝閽 ○○부익규제혼 날개라도 몸에 붙여 날아가서 부르짖고 싶지마는
癙憂以痒心如焚 서우이양심여분 근심으로 병이 나니 마음은 타는 듯 아프구려.
○○○○○○○ ○○○○○○○
安得豳風七月圖 안득빈풍칠월도 어찌하면 빈풍 칠월편의 그림을 얻어다가
○○○子馳獻君 ○○○자치헌군 궁궐로 달려가서 임금님께 바칠 수 있으리오.
* ○ ; 낙자된 글자로, 앞뒤 문맥을 고려하여 풀이하였음.
* 빈풍 칠월편 ; ‘빈풍’은 주나라 주공(周公)이 섭정을 그만두고 어린 조카인 성왕(成王)을 등극시킨 뒤, 백성들의 생업에 대한 어려움을 알게 하기 위해 그린 그림. 칠월편에는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이나 잠업의 내용이 담겨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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