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봉전(李大鳳傳)
이대봉전(李大鳳傳) 상이라
대명(大明) 성화(成化) 연간(年間)에 효종(孝宗) 황제 즉위(卽位) 삼 년이라. 이때 기주땅 모란동에 한 명환(名宦)이 있으되, 성(姓)은 이(李)요, 명(名)은 익이라. 좌승상 영준의 장손(長孫)이요 이부상서(吏部尙書) 덕연의 아들이라.
세대명가지자손(世代名家之子孫)으로 일찍 청운(靑雲)에 올라 벼슬이 이부시랑에 처(處)하매, 명망이 조정에 진동(震動)하나, 다만 슬하(膝下)의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어 선영향화(仙塋香火)를 끊게 되어, 부귀(富貴)도 생각 없고 영귀(榮貴)함도 뜻이 없어 하늘을 울어 탄식하시매, 부인 양씨도 자식 없음을 자탄(自歎)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면서 상공(上公) 전(前)에 여쭈되,
“불효(不孝) 삼천(三千)에 무후(無後) 위대(偉大)라 하였으니, 상공의 무자(無子)함은 다 첩(妾)의 죄악이로소이다.”
하며 서로 슬퍼하더니, 일일은 외당(外堂)에 한 노승(老僧)이 흑포(黑袍) 장삼(長衫)에 구절(九折) 죽장(竹杖)을 짚고 팔각(八角) 포건(布巾)을 쓰고 들어와, 상공전의 합장(合掌) 배례(拜禮)하거늘, 시랑도 답례(答禮)하고 묻기를,
“존사(尊師)는 어느 절에 계시며 누지(陋地)에 오셨으니까?”
노승이 답하기를,
“소사(小師)는 천축국 금화산 백운암의 있삽더니, 절이 퇴락(頹落)하여 불상이 풍우(風雨)를 피(避)하지 못하기로 중수(重修)하고자 하여, 권선(勸善)을 가지고 사해(四海) 팔방(八方)을 두루 다니옵다가 상공(上公) 댁(宅)에 왔사오니, 시주(施主)하옵소서.”
하거늘 시랑(侍郞)이 이르기를,
“절을 중수할진대, 재산(財産)이 얼마나 하오면 중창(重創)하리까?”
노승이 답하기를,
“재물이 다소(多少)가 있사오리까? 상공 처분(處分)리로소이다.”
시랑이 이르기를,
“나는 죄악이 지중(至重)하여 연광(年光)이 반(半)이 되도록, 일점혈육이 없어 앞길을 인도(引導)하고 뒤를 이을 자식이 없사오니, 사후(死後)에 백골인들 뉘라서 거두오며, 선영향화를 끊게 되어 죽어 황천(黃泉)에 돌아간들, 선군(先君)을 어찌 대면하며 무슨 면목으로 부모를 대하리오. 선영의 죄인이요, 지하의 악귀(惡鬼)로다. 내 재물을 두어 뉘에게 다 전하리오. 불전(佛殿)에 시주하여 후생(後生)길이나 닦으리라.”
하고 권선(勸善)을 받들어 황금 오백 냥과 백미 삼백 석, 황촉(黃燭) 삼천 병을 시주하시니, 노승이 권선을 받아 가지고 돈수(敦壽) 사례(謝禮)하며 이르기를,
“소승이 멀리 와 적지 않은 재물을 얻어 가오니, 불상(佛像)을 안보(安保)할 지라.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로소이다. 상공은 무자할까 한(恨)치 마옵소서.”
하고 문득 간 데 없거늘, 시랑이 그제야 부처인 줄 알고 당(堂)에서 내려 공중을 향하여 사례하며 이르기를,
“원컨대 불상(佛像)은 자식 하나를 점지하옵소서.”
하며 무수히 사례하고, 부인 양씨와 더불어 차사(此事)를 설화(說話)하며 천행(天幸)으로 자식을 점지할까 바라더니, 과연 그달부터 태기(胎氣) 있어 십 삭(朔)을 당하매, 일일은 몸이 곤하여 침석(枕席)에 졸더니,
비몽간(非夢間)에 천상(天上)으로부터 봉황(鳳凰) 한 쌍이 내려오더니, 봉(鳳)은 부인 품으로 날아들고, 황(凰)은 장미동 장한림 집으로 가거늘, 깨달으니 집안에 향취(香臭)와 오운(五雲)이 영롱(玲瓏)하더니 혼미(昏迷) 중에 탄생(誕生)하니 활달한 기남자(奇男子)라. 시랑이 대희(大喜)하여 아이를 살펴보니 융준봉안(隆準鳳眼)이요, 봉(鳳)의 소리거늘, 부인 몽사를 생각하여 이름을 대봉(大鳳)이라 하다.
각설(却說) 이때 기주 장미동의 장화라 하는 사람이 있으되, 일찍 청운에 올라 벼슬이 한림학사(翰林學士)의 처하매, 명망이 조정의 진동하여 부귀 극진하나, 연장(年長) 사순(四旬)에 당하되 슬하에 자녀 없어, 부인 소씨(蘇氏)와 더불어 매일 슬퍼하시더니,
부인 소씨 우연히 태기 있어 십 삭이 당하매, 일일은 홀연(忽然) 몸이 곤핍(困乏)하여 침금(寢衾)을 의지하여 혼곤(昏困)하더니, 비몽간에 천상으로부터 봉황 한 쌍이 내려오더니, 봉은 모란동 이시랑의 집으로 가고, 황은 부인 품 안에 날아드니, 이르는 바 봉(鳳)이 나매 황(凰)이 나고, 장군이 나매 용마(龍馬)가 나는 도다. 향내 만실(滿室)하고 채운(彩雲)이 어리더니, 혼미 중에 탄생하니 이는 곧 애황(愛凰)이라.
한림(翰林)께 몽사를 설화하니, 한림이 대희하여, 이름을 애황이라 하시고 즉시 모란동 이시랑 집의 가서 보니, 이시랑 댁 부인도 또한 해태(解胎)하였거늘, 심독(心讀)히 자부(自負)하고, 시랑을 청(請)하여 담화(談話)하다가 한림이 묻기를,
“시랑은 어느 때에 해복(解腹)하시었는가?”
시랑이 답하기를,
“나는 작일(昨日) 사시(巳時)에 남자를 낳았거니와, 한림은 나와 죽마고우(竹馬故友)라. 함께 용문(龍文)에 올라 부귀 영총(榮寵)으로 사직(社稷)을 받들어 명망이 진동하나, 무자(無子)함을 포한(抱恨)하더니 천행(天幸)으로 자식을 낳았거니와, 한림은 지금까지 자녀가 없사오니 심히 민망(憫惘)하여이다.”
한림이 답하기를,
“나도 작일 사시에 한 여아(女兒)를 낳았사오니, 진실로 다행하온지라. 우리 피차(彼此) 정(情)이 자별(自別)한 중에 또한 기이한 일이로다.”
하고 한림이 자기 부인 몽사를 설화하시니, 시랑이 대희하여 즉시 내당(內堂)에 들어가 장한림의 부인 몽사를 양씨 부인에게 설화하시니, 부인이 또한 몽사를 말씀하거늘, 두 부인 몽사 피차(彼此) 없는 지라.
시랑이 외당(外堂)에 나와 한림을 대하여 담소(談笑) 자락(自樂)하여 이르기를,
“이는 반드시 상제(上帝)께옵서 인연(因緣)을 맺어 보내시도다. 연월일시(年月日時)가 일분(一分)도 틀림이 없사오니, 두 아이 연기(年紀) 장성(長成)하거든 봉황(鳳凰)으로 짝을 지어 원앙지락(鴛鴦之樂)을 이루어, 우리 피차 말년 재미를 보사이다.”
하고 종일토록 서로 즐겨 취포(醉飽)하시다가, 일모서산(日暮西山)하매 한림이 집으로 돌아와, 이시랑 부인 양씨 몽사를 설화하고 시랑의 아자(兒子) 대봉을 취(取)하여 정혼(定婚)한 말씀을 하시니, 부인도 못내 사랑하시더라.
이때 시랑이 내당에 들어가,
“장한림의 여아 애황을 취하여, 아자 대봉의 짝을 정하였사오니, 진실로 우리집의 다행이로소이다.”
하시니 부인 양씨 못내 사랑하시더라. 양가가 서로 봉황 장성하기를 기다려 행례(行禮)를 바라더라.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대봉의 나이 십삼 세에 이르매, 기골(氣骨)이 장대하고 늠름(凜凜)한 풍채(風采)와 활달한 거동(擧動)이 차시(此時)의 무쌍(無雙)이요, 영풍(英風) 호걸(豪傑)은 진세(塵世) 간(間) 기남자(奇男子)라. 시서(詩書) 백가서(百家書)를 무불통지(無不通知)하며 육도삼략(六韜三略)과 손오(孫吳)의 병서(兵書)를 잠심(潛心)하니, 총명(聰明) 지혜 관중(管仲)보다 더하는지라.
일일은 시랑이 대봉의 조달(早達)함을 근심하사 대책(大策)하기를,
“성현(聖賢)의 글도 무수하거늘, 네 어찌 태평성대에 귀신도 칭양(稱揚)치 못하는 병서를 힘쓰느냐?”
대봉이 주(奏)하기를,
“석일(昔日)에 황제 헌원씨(軒轅氏)는 만고(萬古) 영웅(英雄)이로되, 치우(蚩尤) 의 난(亂)을 만나시고, 제요(帝堯) 도당씨(陶唐氏)는 만고 성현(聖賢)이로되, 사흉(四凶)의 변(變)을 당하였사오니, 태평을 어찌 장구(長久)히 믿사오리까? 대장부 세상에 처(處)하올진대, 시서 백가서와 육도삼략를 심중(心中)에 통달하여 용문(龍文)에 올라, 요순(堯舜) 같은 임금을 섬기다가 국운(國運)이 불행하여 난세(亂世)를 당할진대, 요하(腰下)에 대장(大將) 절월(節鉞)을 띠고, 황금 인수(印綬)를 비껴 차고, 머리에 백금 투구를 쓰고, 몸에는 엄신갑(掩身甲)을 입고, 우수(右手)에 보검(寶劍)을 잡아 좌수(左手)에 홀기(笏記)를 들고, 용정(龍旌) 봉기(鳳旗) 백모(白旄) 황월(黃鉞)이며 장창(長槍) 검극(劍戟)을 나열하여, 대병(大兵)을 몰아 전장(戰場)에 나아가서 반적(叛賊)을 소멸(燒滅)하고 사해(四海)를 평정(平定)하여, 공(功)을 죽백(竹帛)에 올려 기린각(麒麟閣)에 제명(題名)하고, 나라의 충신이 되어 만종록(萬鍾祿)을 누릴진대, 선군(先君)에 덕택과 부모의 은덕을 알아 종신(終身) 부귀(富貴)를 할 것이거늘, 서책(書冊)만 상고(詳考)하여 유정(有情)한 세월 무정(無情)히 보내리까?”
하니 시랑이 대희하여 칭찬하기를,
“네 말이 족히 고인(古人)을 본받으리로다. 나 같은 인생은 조정(朝廷)에 몸이 들어 시위(尸位)를 좇을 뿐이로다.”
하시고 사랑하심을 칭양(稱揚)치 못할레라.
각설(却說) 이때 황제 유약(幼弱)하사 법령(法令)이 해리(解離)한 중에, 우승상(右丞相) 왕희 국권(國權)을 잡아 국사(國事)를 처결(處決)하니, 조정 백관(百官)이며 각도 방백(方伯) 수령(守令)이 다 왕희 당(黨)이 되매, 일국(一國) 권세(權勢)는 장중(掌中)에 매어 있고, 만인(萬人) 생사(生死)는 손끝에 달렸으니, 권세 지중(至重)함이 한국(韓國)의 왕맹(王猛)과 진국(晉國) 왕돈(王敦)보다 더하더라.
군자(君子)는 참소(讒訴)로써 멀리 하고, 소인(小人)은 아첨(阿諂)으로써 성당(成黨)하매, 국사 점점 산란(散亂)하게 되더라. 국사 이러하되 황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소인 왕희로서 천하(天下) 대사(大事)를 모두 다 처결(處決)하니, 슬프다. 대명국(大明國) 사직(社稷)이 조모(朝暮)에 위태한지라.
이때 시랑이 익히 국사 산란함을 보고 상소하기를,
“조정 사세(事勢)를 살피오니, 어찌 한심치 아니하오리까. 군자(君子)를 쓰실진대 소인은 스스로 멀어질 것이오니, 친군자(親君子) 원소인(遠小人)은 나라가 흥(興)할 근본이요, 원군자(遠君子) 친소인(親小人)는 나라가 망(亡)할 근본이오니, 이제 폐하는 궁궐에 깊이 처하시매 국사 산란함을 알지 못하시고, 승상 왕희는 국가에 간악(奸惡)한 소인이라. 폐하의 성덕을 가리옵고 아첨(阿諂)으로 폐하의 총명(聰明)을 가리었으되, 폐하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시니 애달파 하나이다. 당금(當今)에 조정이 거의 다 왕희와 더불어 모반(謀叛)하기 적영(敵營)하오니, 폐하는 살피사, 먼저 신(臣)을 베옵고 다음으로 왕희를 깊이 베어, 반적의 흉계(凶計)를 파(破)하소서. 진국(秦國)) 조고(趙高)와 송국(宋國) 진희(陳豨)는 소인으로 만종록(萬鍾祿)을 받아도 국은(國恩)을 알지 못하고 국사를 산란케 하였사오니, 자고로 소인에게 국록(國祿)이 부당(不當)하오이다.”
하였거늘, 이 날 황제 상소를 보신 후에 승상(丞相) 왕희를 돌아보시니, 병부상서(兵部尙書) 진택열이 황제께 여쭈되,
“이부시랑 이익이 일개 녹록지신(碌碌之臣)으로 조정을 비방(誹謗)하고 대신(大臣)을 모함하오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로소이다. 한국(漢國) 곽광(霍光)은 권세(權勢) 지중(至重)하였사오나 선제(先帝)에 충신이요, 진국(晉國) 왕준(王濬)은 강동 인물로서 지혜가 높았사오니, 복원(伏願) 폐하는 살피사 무망(誣罔)한 죄를 다스려, 시랑 이익을 베어 소인을 경계하옵소서.”
황제 말을 들으시고 옳이 여겨, 이익을 삭탈관직(削奪官職)하여 삼만 리 무인(無人) 절도(絶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라 하시고, 그 제족(諸族)은 면위(免位) 서인(庶人)하고 그 아들 대봉은 오천 리 백설도로 정배(定配)하라 하시다.
이때 이시랑 부자 배소(配所)로 가려 할 제, 어찌 아니 통분하랴. 승상부(丞相府)에 들어가 눈을 부릅뜨고 크게 소리하여 이르기를,
“국운이 불행하여 소인이 만조(滿朝)로다. 한실(漢室)이 미약하매 동탁(董卓)이 작난하고, 왕맹이 협정(協定)하매 충신이 죽는 도다. 승상 왕희는 한국(漢國) 역신(逆臣) 왕맹지손(王猛之孫)이라. 간악(奸惡)을 세전(世傳)하여 위로 황상(皇上)을 속이고 아래로 충신을 물리치고 밖으로 소인을 작당(作黨)하여, 국사를 산란케 하기로 내 직언(直言)으로써 직간(直諫)하였더니, 간괴(奸怪)한 소인의 참소(讒訴)를 만나, 수말(首末)이 절도에 가거니와, 내 아들 대봉은 아직 어린 아이 무슨 죄로 수 천리 백설도로 정배를 보내느뇨.”
하며 땅을 쳐 분연(奮然)하니 왕희 대노(大怒)하여 서안(書案)을 치며 고성(高聲)으로 이르기를,
“네 황명이 여차(如此)하거늘 무슨 잔말을 하느냐? 네 만일 잔말하다가는 죽기를 면치 못할 것이니, 빨리 적소(謫所)로 가라.”
하며 영거사(領去使)를 호령하니, 시랑이 어쩔 수 없어 적소로 가려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일가(一家)가 망극하여 곡성(哭聲)이 진동하니, 비금(飛禽) 주수(走獸)도 다 슬퍼한 듯, 일월(日月)이 무광(無光)이라. 사람이야 뉘 아니 슬퍼하리오.
이날 시랑 부자 적소로 발행할새, 부인의 손을 잡고 앙천(仰天) 통곡(慟哭)하는 말이,
“이 몸은 하늘이 미워하고 귀신이 작해(作害)하여 나라에 직간(直諫)하다가 소인 놈의 참소를 만나 사지(死地)에 가거니와, 우리 대봉은 무슨 죄뇨? 부인은 무슨 죄로 서인(庶人)되어 가군(家君)과 자식을 이별하고, 친척은 무슨 죄로 일조(一朝)에 서인이 되었구나.”
하고 방성대곡하니 그 부인의 정곡(情曲)은 일필(一筆)로 난기(難記)로다. 서로 붙들고 통곡하며,
“우리 대봉은 아비 죄로 말미암아 오천 리 백설도에 안치(安置)하니, 천지도 무심하고 귀신도 불명(不明)하다. 광대한 천지간(天地間)에 야속(野俗)하고 불측(不測)한 팔자 이익 같은 사람 또 있으랴. 대봉아 만 리 적소에 분거(分居)하니 다시 보기 바랄 소냐. 만 리 변방(邊方) 무인처(無人處)에 어린 네가 어찌 살며, 삼만 리 절도 중에 나인들 어찌 살소냐. 죽으면 즉시 혼백(魂魄)이나 동동 떠서 부자(父子) 상봉(相逢)하오리다.”
대봉이 눈물을 흘리면서 모친을 위로하되,
“모친 신세를 생각하면 천지가 아득하고 일월(日月)이 무광(無光)이라. 가련하고 원통함을 어찌 다 성언(成言)하오리까마는, 사지에 가시는 부친 정곡(情曲)만 같으리까? 우리 부자 적소로 떠나오니, 천행으로 살아오면 모친 얼굴 다시 보려니와, 죽사오면 어느 때에 다시 만나보리까? 역적 왕희, 소인 진택열을 죽이지 못하고 도리어 해를 입어 적소로 가거니와, 국가 사직이 조모(朝暮)에 있는지라. 천행으로 살아나면 칼을 잡아, 우리 원수(怨讐) 왕 진 두 놈을 사로잡아 전후 죄목(罪目)을 물은 후에, 배를 갈라 간을 내어 폐하께 주달(奏達)하고, 우리 부친 충혼당(忠魂堂)에 석전제(釋奠祭)를 지내리라.”
이렇듯 분연(奮然)하며 통곡하니 초목(草木) 금수(禽獸)도 다 눈물을 흘리는 듯하더라. 연연(戀戀)히 악수(握手) 상별(相別)할 제, 그 가련하고 슬픈 거동 차마 보지 못할레라.
이때 영거사신(領去使臣)이 길을 재촉하니 사공이 배를 대거늘, 시랑과 대봉이 부인을 애연(哀然)히 이별하고, 시랑 부자 배에 오르니 백설도는 절도로 가는 역로(驛路)라 하더라.
백운(白雲)은 흩어지고 순풍(順風)이 일어나며 배 빠르기 살 같은 지라. 이때 승상 왕희가 사공을 불러 중상(重賞)하고,
“시랑 부자를 결박(結縛)하여 풍랑(風浪)에 넣어라.”
약속하였더라. 시랑 부자야 이런 흉계(凶計)를 알 수 있느냐.
만경창파(萬頃蒼波) 깊은 물 풍랑(風浪)이 도도(滔滔)하고, 의의(依依) 월색(月色) 추야장(秋夜長)에 강심(江心)도 적막(寂寞)한데, 심(甚)히 사장(沙場) 놀던 백구(白鷗) 동남(東南)으로 날아가니 고향 소식 묻고 지고. 강수(江水)는 잔잔하고 월색은 삼경(三更)인데, 선중(船中)에 앉은 마음 고향 생각 적상(積想)되어 잠들 길이 망연(茫然)이라. 청천(靑天)에 뜬 기러기 촉(蜀) 백성 아울러서 손의 수심(愁心) 도와내어 객창(客窓) 한등(寒燈) 깊은 밤에 들이니, 저 원성(怨聲)이 강천(江天)에 낭자(狼藉)로다.
이러구러 여러 날 만에 한 고실(庫室) 당도하니, 사고무인(四顧無人) 적막한데 망망(茫茫)한 창해(蒼海)라. 어느 땅인 줄을 모를레라. 중류(中流)에 이르러 사공 십여 명이 달려들어 시랑 부자를 결박하여 해중(海中)에 던지려 하거늘, 시랑이 대노하여 사공을 꾸짖어 이르기를,
“내 황명(皇命)을 받아 배소(配所)로 가거늘, 너희 등이 무슨 연고로 이렇듯 핍박(逼迫)하느냐?”
사공 등이 답하기를,
“우리 곡절(曲折)은 너의 부자 알 바가 아니라.”
하고 시랑과 대봉을 창해 상에 던지려 하거늘, 시랑 이르기를,
“우리 부자 적소로 가기도 애매(曖昧)하거든 너희 등이 이러함도 반적(叛賊) 왕 진 두 놈에 소위(所爲)로다.”
하고 가로되,
“너희 등이 우리 부자를 해하고자 할진대 결박은 무슨 일인고. 죽기도 원통하거든 사지(死地)를 결박하면 혼백(魂魄)인들 어찌 용납하랴. 굴삼려(屈三閭) 오자서(伍子胥) 충혼(忠魂)을 어찌 찾아 가지랴?”
하시니, 그 중에 한 늙은 사공이 여러 사공을 달래어 이르기를,
“옛 말에 이르기를 국사(國事)에도 사정(私情)이요, 난중(亂中)에도 체면(體面)이 있다 하였으니, 시랑 부자 애매하심을 아는지라.”
하며 결박한 것을 끄르고,
“수중(水中)에 넣은들 몸에 날개가 없었으니,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하며 결박한 것을 끌러 시랑을 먼저 풍랑 중에 밀치니, 일월이 무광하고 강신(江神) 하백(河伯)이 다 슬퍼하고 초목(草木) 금수(禽獸)도 합루(合淚)하니, 하물며 사람이야 일러 무엇하랴마는, 무지(無知)한 선인(船人) 등은 금수(禽獸)만도 못한지라.
이때 대봉이 부친 물에 빠짐을 보니, 천지 아득하고 정신이 혼미(昏迷)하는 지라. 겨우 진정하여 사공을 크게 꾸짖어 이르기를,
“생(生)은 인야(人也)요 사(死)는 귀야(鬼也)라. 멱라수(汨羅水) 깊은 물은 굴삼려의 충혼이요, 삼강수(三江水) 냉조(冷潮)는 오자서의 정령(精靈)이라. 자고로 충신(忠信) 열사(烈士) 수중고혼(水中孤魂) 많은지라. 하물며 나 같은 잔명(殘命)이야 죽기를 아끼랴마는, 국중(國中)이 깊고 깊어 간신이 만조(滿朝)하여 국사를 천권(擅權)하니, 충신은 원찬(遠竄)하고 소인의 화시(花時)로다. 백옥(白玉) 무죄 우리 부자 창해 중에 고혼 되어, 굴삼려의 충혼 만나 오자서를 반겨 보고, 어여쁠사 우리 임금 만세(萬歲) 후에 충혼 모아 위엄 삼아, 나의 부친 백옥 무죄 대봉의 어린 혼백 신원(伸冤) 증인(證人) 삼으리라. 우리 부자 무죄함은 청천(靑天)도 알려니와 귀신들도 알리라. 대봉 부자 귀한 몸이 어복(魚服) 중에 장사하니 굴삼려와 같을지라. 대명천지(大明天地) 대봉의 명(命)이 하나가 있을지언정 네게 있으리오. 내 스스로 죽을지라도 네게다 살기를 빌 손가.”
대호(大呼) 일성(一聲)에 목에서 피를 토하여 해수(海水)를 보태더니,
“부친이 이미 수중고혼 되었으니 나도 또한 죽으리라.”
하고 만경창파(萬頃蒼波) 깊은 물에 풍랑이 요란한데, 십삼 세 어린 대봉이 수중고혼 가련하다. 하늘을 우러러 부친을 부르면서 풍덩실 뛰어드니, 이때에 사공들은 배를 돌려 황성에 올라가 사연을 왕희에게 주달하니, 왕희 대희하더라.
각설 이때 한림 장화 애황의 혼사를 이루지 못하고, 대봉의 부자 적소로 감을 보고 분기충천(憤氣衝天)하여 울기를 참지 못하더니, 일로조차 병이 되어 병석에 눕고 이기지 못하면 이미 세상에 유(有)하지 못할 줄을 알고, 좌수(左手)로 부인의 손을 잡고 우수(右手)로 애황의 손을 잡고, 체읍(涕泣) 낙루(落淚)하며 이르기를,
“인명(人命)이 재천(在天)하매 어길 길이 없어 환난지객(患難之客)이 되어도 와석(臥席) 종신(終身)하거니와, 시랑 부자는 수중고혼이 될 것이니 가련하고 원통하도다. 여아(女兒)에 일생이 더욱 가련하고 한심(寒心)한지라. 애황이 남자가 되었던들 황천(黃泉)에 돌아간 애비 원통한 분(憤)을 풀 것을, 네 몸이 아녀자라. 내 가슴에 맺힌 분한(憤恨) 어느 때에 씻을 소냐.”
하며 부인을 당부하여,
“여아를 생각하사 선영(先塋)을 봉행(奉行)하고, 매사를 선시(善施)하여 여아를 선도(善導)하여 욕급선영(辱及先塋) 말게 하오. 애황아, 눈을 어찌 감고 가랴.”
손을 잡고 낙루하며 인하여 별세(別世)하니, 또 부인 소씨(蘇氏) 정신이 아득하여 명재경각(命在頃刻)이라.
“애황아. 네 신세 박명(薄命)이 자심(滋甚)하다.”
하시며 인하여 별세하시니 불쌍하도다. 애황 소저(小姐)가 일일(一日) 내로 부모가 구몰(俱沒)하시니 일신(一身)이 무의(無依)로다. 일가(一家)가 망극하여 곡성(哭聲)이 진동하더니, 애황 소저가 망극하여 기절(氣節)하거늘, 비복(婢僕) 등이 구완하여 인사(禋祀)를 차려 초종례(初終禮)를 갖추어 선산(先山)에 안장(安葬)하니, 귀중(貴重) 여자 장부(丈夫)를 안 할레라.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소저의 연광(年光)이 이팔이라. 옥안(玉顔)운빈(雲鬢)과 설부(雪膚)화용(花容)이 금세(今世)에 쌍(雙)이 없는지라. 비록 여자로되, 면목(面目)이 웅장하여, 단산(丹山)의 봉(鳳)의 눈은 기미성(箕尾星) 돌아보고, 청수(淸秀)한 골격이며 성음(聲音)이 웅장하되, 산호(珊瑚) 채를 들어 옥반(玉盤)을 깨치는 듯하고, 지혜 활달하매 소저의 쌍(雙)이 없는지라. 총명한 그 자색(姿色)을 뉘가 아니 칭송하리. 이러므로 이름이 일국에 진동하리로다.
이때 우승상 왕희 한 아들을 두었으되 이름은 석연이라. 풍채 늠름하고 문필(文筆)이 과인(過人)하니 명망이 일국에 진동한지라. 승상이 각별 사랑하여 구혼(求婚)하되, 석연의 짝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더니, 애황의 덕색(德色)을 포문(飽聞)하고, 장한림의 육촌(六寸) 장준을 청하여 대접한 후에 가로되,
“그대의 재종(再從)이 일찍 기세(棄世)하매, 가중(家中) 범사(凡事)를 주장(主掌)할지라. 나를 위하여 매자(媒子)되어, 아자(兒子) 석연과 더불어 그대 종질녀(從姪女)와 혼사를 이루게 하라.”
하니 장준이 기뻐 허락하고 집에 돌아와, 그 처 진씨를 보내어 언어 수작(酬酌)하다가 혼사(婚事)하자는 사연을 전하니, 소저가 염용(斂容)하고 답하기를,
“숙모는 나를 위하여 감격한 말씀으로 개유(開諭)하옵시나, 부모님 생존시(生存時)에 모란동 이시랑 아들과 정혼(定婚)하였사오니, 차사(此事)를 행하지 못하겠나이다.”
하거늘 진씨 무류(無謬)히 돌아와 소저의 말을 장준에게 전하니, 장준이 친히 소저에게 가매, 소저가 영접하거늘, 장준이 소저에게 이르기를,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인륜(人倫)의 떳떳한 일이라. 슬프다. 인생이여. 인사(人事)가 번복(飜覆)하고, 조물(造物)이 시기하여 형님이 일찍 기세(棄世)하시매, 친척이 다만 너와 나뿐이로다. 내 너를 위하여 봉황의 짝을 구하더니, 우승상 왕희의 아들 석연은 문무(文武)를 겸전(兼全)하고 영풍호걸이 짐짓 네 짝이라. 너는 고집되게 말고 천정(天定)을 어기지 말지어다. 또 이시랑 부자는 만 리 적소로 갔으니 사생(死生)을 어찌 알리오. 사지(死地)에 간 사람을 생각하여 세월을 보낼진대, 홍안(紅顔)이 낙조(落照)되며, 무정세월약류파(無情歲月若流波)를 자탄(自歎)할지라. 홍안(紅顔)이 점쇠(漸衰)하고 백발이 난수(亂首)하면 무슨 영화(榮華) 보랴.”
하고 여차(如此) 등설(等說)로 만단(萬端) 개유(凱覦)하니, 소저가 답하기를,
“팔자 기박(奇薄)하여 부모를 여의고 일편(一片) 단신(單身)이 혈혈(孑孑) 무의(無依)라. 불가(不可)한 행실(行實)을 할지라도 옳은 일로써 인도함이 옳거늘, 하물며 왕희는 나와 더불어 원수이거늘, 소인(小人)을 아첨하여 고단(孤單)한 조카를 유인(誘引)하고자 하니 적이 미안하나이다. 일후(日後)부터는 투족(投足)을 마옵소서.”
하니 장준이 소저의 빙설 같은 절개(節槪)를 탄복하고 돌아와, 승상 보고 전후(前後) 수말(首末)을 하니 승상이 이르기를,
“아무쪼록 주혼(主婚)하라 하더라.”
장준이 한 꾀를 생각하고 왕희와 의논하니, 왕희 대희(大喜)하여 길일(吉日)을 받고 장준과 더불어 언약(言約)을 정하더라.
각설 이때 대봉 부자 해중(海中)에 빠졌더니, 서해(西海) 용왕(龍王)이 두 용자(龍子)를 불러 이르기를,
“대명(大明) 충신 이익과 만고 영웅 대봉이가 소인의 참소를 만나 적소로 가다가 수중에 죽게 되었으니, 급히 가 구완하라 하시니, 두 동자 일엽편주(一葉片舟)를 타고 서남으로 쫓아 가니라.
이때 시랑이 물결에 밀려 한 곳에 다다르니 밤이 이미 삼경이라. 혼미(昏迷) 중에 바라보니 동남 대해에서 한 동자(童子) 일엽편주를 타고 풍우(風雨) 같이 오더니, 시랑을 건저 주중(舟中)에 싣고 위로하거늘, 시랑이 정신을 진정하여 동자께 사례(謝禮)하니 동자 답하기를,
“소자는 서해 용왕의 명을 받아 상공을 구하오니 다행이로소이다.”
하며 순식간에 한 곳에 배를 대고 내리기를 청하거늘, 시랑이 좌우를 살펴보니 만경창파(萬頃蒼波) 넓은 물에 한 섬이 있는지라.
“예서 황성이 얼마나 하뇨?”
동자 답하기를,
“중원(中原)이 삼천 리로소이다.”
시랑이 배에 내리매, 동자 하직(下直)하고 살같이 가는지라. 섬에 들어가니 과목(果木)이 울밀(鬱密)한지라. 과실(果實)로 양식을 삼고, 죽은 고기를 주워 먹고, 해상(海上) 무인처(無人處)에 냉풍(冷風)은 소슬하되, 산과(山果) 목실(木實)에다 명(命)을 붙여 세월을 보내면서 처자(妻子)를 생각하여 울음으로 일을 삼더라.
이때 부인은 가군과 대봉을 생각하여, 하늘을 우러러 신세를 자탄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니, 참혹한 형상(形像)을 어찌 다 성언(成言)하리요.
이때 대봉이 수중에 빠져 인사(人事)를 잃고 풍랑에 밀쳐 떠나가니, 대봉의 귀한 몸이 명재경각(命在頃刻)이라. 남(南) 대해(大海)에서 난데없는 일엽편주 살같이 떠오더니 대봉을 깊이 건져 올리거늘, 이윽고 진정하여 동자를 살펴보니 벽수(璧水) 청의(靑衣)에 월패(月牌)를 차고, 좌수(左手)에 금광(金光) 옥절(玉節)을 쥐고, 우수(右手)에 계도난장(桂櫂蘭槳)을 흔들고 앉았거늘, 대봉이 일어나 동자께 사례하며 이르기를,
“동자는 뉘시기에 죽을 인명(人命)을 구하느뇨?”
동자 답하기를,
“서해 용궁 사옵더니, 왕명을 받자와 공자(公子)를 구하나이다.”
대봉이 치사(致謝)하여 이르기를,
“용왕에 덕택과 동자의 은덕은 백골난망이라. 어느 때에 만분지일(萬分之一)이나 갚사오리까?”
하며 묻기를,
“이곳 지명(地名)을 알지 못하오니, 동자는 가르치소서. 알아지이다.”
동자 답하기를,
“이 땅은 천축국(天竺國)이라.”
하며 내리기를 청하거늘, 대봉이 배에 내려 묻기를,
“어디로 가야 잔명(殘命)을 보전(保全)하리까?”
동자 답하기를,
“저 산은 금화산이요, 그 안에 절이 있으되, 절 이름은 백운암이라. 그 절을 찾아가면 구할 사람이 있사오니, 그리로 가소서.”
하고 배를 저어가거늘, 동자 가리키는 길로 금화산을 찾아가니, 백운(白雲)은 담담(潭潭) 명산이요, 물은 잔잔(潺潺) 별건곤(別乾坤)에 나무나무 피어난 꽃은 가지가지 춘경(春景)이라. 청계(靑溪)는 동구(洞口)에 흘러 극락(極樂) 세계 되어 있고, 층암(層巖) 절벽(絶壁)은 반공(半空)에 솟았는데, 청학(靑鶴) 백학(白鶴)은 쌍쌍이 왕래하고, 유의(有意)한 두견성(杜鵑聲)은 이내 수심(愁心) 자아낸다.
산수도 좋거니와 부모를 생각하니, 좋은 풍경 회포(懷抱)되어 눈물을 금하지 못 할레라. 구름을 따라 한 곳에 다다르니 표연(飄然)한 선경(仙境)이라. 은은한 경(磬)쇠 소리 풍편(風便)에 들리거늘, 완완(緩緩)히 들어가니 황홀한 단청(丹靑)화각(畫閣)이 구름 속에 보이거늘, 삼문(三門)에 당도하니 황금 대자(大字)로 뚜렷이 썼으되, 금화산 백운암이라 하였거늘, 석양(夕陽)의 바쁜 손이 주인을 찾더니, 한 노승(老僧)이 구 폭(幅) 가사(袈裟)에 팔각건(八角巾)을 쓰고 구절(九折) 죽장(竹杖)을 짚고 나오더니, 공자(公子)를 맞아 예필(禮畢) 후에,
“존객(尊客)이 누지(陋地)에 왕림(枉臨)하시거늘, 소승(小僧)의 강력(剛力)이 부족하여 멀리 나가 맞지 못하오니 무례함을 용서하소서.”
공자 배례(拜禮)하며 이르기를,
“궁도(窮途) 행인(行人)을 이다지 관대(寬待)하시니 도리어 불안(不安)하여이다.” 노승이 답례하고 이르기를,
“오늘날 이리 오시기는 명천(明天)이 지시(指示)하온 바이라.”
하고,
“동자는 소사(小師)와 인연이 있사오니 머물기를 허물치 마소서.”
하거늘, 공자 일어나 재배하고 답하기를,
“소자 같은 잔명을 사랑하오며 이같이 애휼(愛恤)하시니 감격하여이다.”
노승이 미소(微笑)하며 이르기를,
“공자 기주 땅 모란동 이시랑댁 공자 대봉이가 아닌가?”
공자 대경하여 이르기를,
“존사(尊師) 어찌 소자의 거주(居住) 성명을 알리오?”
노승(老僧) 이르기를,
“소사 공자댁에 왕래한 지 십여 년이라. 상공께옵서 황금 오백 냥과 백미 삼백 석, 황촉 삼천 병을 시주하시매, 절이 풍우에 퇴락(頹落)하여 전복지경(顚覆之景)이 되었더니, 불상을 안보(安保)하매 은덕을 어찌 잊으리오.”
공자 이르기를,
“존사의 말씀을 듣사오매 적은 것으로써 큰 인사(人事)를 받으니 감사하여이다.”
노승이 답하기를,
“공자는 연천(年淺)하매 전사(前事)를 알리오.”
하고 동자를 명하여 석반(夕飯)을 드리거늘, 받아보니 정결(淨潔)함이 세상 음식과 다른지라.
각설 이때에 왕석연이 길일(吉日)을 당하매 노복(奴僕)과 교마(轎馬)를 거느리고 장미동에 이르니 밤이 이미 삼경이라. 한림 댁에 들어가 소저를 겁탈하고자 하더니, 이때 소저가 등촉(燈燭)을 밝히 예기(禮記) 내칙(內則) 편을 보더니, 외당(外堂)에 예 없던 인마(人馬) 소리가 나거늘, 깊이 시비 난향을 불러 그 연고를 탐지(探知)하니, 난향이 급히 들어와 여쭈되,
“왕승상 집 노복 등이 교마를 거느리고 와 외당에 와 주저(躊躇)하더이다.”
소저가 대경실색(大驚失色)하고 이르기를,
“심야 삼경에 오기는 분명 혼사를 겁칙하고자 함이라. 일이 급박하니 장차 어찌 하리오.”
하며 수건으로 목을 매어 자결하고자 하거늘, 난향이 위로하며 이르기를,
“소저는 잠깐 진정하옵소서. 소저가 만일 게양(揭揚)하여 죽을진대 부모와 낭군의 원수를 뉘라서 갚사오리까? 소비(小婢) 소저의 예복(禮服)을 입고 앉았다가, 소저의 환(患)을 감당(堪當)하리니, 급히 남복(男服)을 환착(換着)하시고 단장(短墻)을 넘어 환을 피하소서.”
소저 이르기를,
“나는 그러하려니와, 너는 나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청춘을 보존하지 못하리로다.”
하며 즉시 남복을 갖추고 사당(社堂)에 하직하고, 후원(後園) 담을 넘어 동산에 올라서니 창만(漲滿)한 달빛 아래 언내(言內) 고설(苦說) 행(行)하리오. 서남을 바라보고 정처 없이 가는 신세, 청천(晴天)에 외기러기 짝을 찾아 소상강(瀟湘江)으로 행하는 듯 가련(可憐)하고 슬프도다. 장한림 댁 무남독녀(無男獨女) 이리 될 줄 뉘 알랴.
이때 난향이 소저를 애연(哀然)히 전별(餞別)하고, 저는 소저의 복색(複色)을 입고 침방(寢房)에 들어가 소저 모양으로 처연(悽然)히 앉았더니, 왕희 집 시비 소저가 침실에 들어와, 세쇄(細瑣)한 말로써 만단개유(萬端改諭)하며 교자(轎子)를 드려 이르기를,
“소저는 천정(天定)을 어기지 마옵소서.”
하며 오르기를 간청(懇請)하거늘 난향이 등촉(燈燭)를 밝히고 시비를 꾸짖어 이르기를,
“네 심야 삼경에 사대부댁 내정(內庭)에 도립(倒立)하여 뉘를 해하고자 하느냐? 심규(深閨)에 생장(生長)한 몸, 집을 버리고 어디로 가리오. 너희 등이 돌아가지 않을진대, 너의 목전(目前)에 죽어 원수(怨讐)를 지으리라.”
하고 수건으로 목을 조르니, 석연의 비복 등이 수건을 앗고 교자에 올리거늘 난향의 일편단심(一片丹心) 강약(强弱)이 부동(不動)이라. 교자에 실려 장안으로 행하니라. 장미동을 떠나 백화정 이십 리를 행하니 동방이 장차 밝았는지라. 노소(老少) 인민(人民)이 이르기를,
“장한림 댁 애황 소저 왕승상 댁 며느리 되어 신행(新行)하여 간다.”
하더라.
승상 댁에 다다라서 좌우를 살펴보니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고 배반(杯盤)이 낭자(狼藉)로다. 노소(老少) 부인이 난향을 칭찬하며 이르기를,
“어여쁘다. 애황 소저는 짐짓 왕공자의 짝이로다.”
모두 칭송할 제 난향이 연석(宴席)에 나아가니, 일가(一家) 대경하며 빈객(賓客)이 경동(驚動)하는지라. 왕희를 돌아보아 이르기를,
“소비(小婢)는 소저의 시비(侍婢) 난향이라. 외람히 소저의 이름으로 승상을 속였으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로소다. 승상은 부귀 천하에 으뜸이라. 혼사(婚事)를 할진대 매자(媒子)를 보내어 순리(順理)로 인연을 맺어 육례(六禮)를 갖춤이 옳거늘, 무도(無道)한 행실로써 사대부 댁 내정(內庭)에 심야 삼경(三更)에 도립(도立)하여, 남의 집 종을 데려다가 무엇 하려 하려는가. 우리 소저는 작야(昨夜) 오경(五更) 깊은 밤에 어디에 가 계신 지, 결단코 원혼(冤魂)이 되리로다.”
하며 통곡하니, 승상이 대경하여 위로하며 이르기를,
“소저는 빙설(氷雪) 같은 몸을 천한 난향에게 비하니, 절행(節行)을 가히 알지라.”
하고 장준을 청하여 소저 허실(虛實)를 탐지하니 과연 난향이라. 승상이 대노하여 죽이려 하니 좌중 빈객이 이르기를,
“난향은 진실로 충비(忠婢)요 견문발검(見蚊拔劍)이라. 용서하소서.”
하니 승상이 장준을 책망(責望)하고 난향을 돌려 보내니라.
이때 소저 애황이 집을 떠나 남방을 향하여 정처 없이 가더니, 여러 날 만에 여남 땅에 이른지라. 한 곳에 다다르니 산천이 수려(秀麗)하고 만장(萬丈) 절벽(絶壁)은 반공에 솟아있고 산영(山影)이 엄숙한데, 수목(樹木)이 울밀(鬱密)하고 백화(百花) 만발(滿發)한 중에 점점 들어가니, 경개(景槪) 절승(絶勝)하고 물색(物色)도 유감(有感)하다. 꽃가지에 앉은 새는 춘광(春光)을 자랑하고 황봉(黃蜂) 백접(白蝶) 왕나비는 향기 찾는 거동(擧動)이요, 비취(翡翠) 공작(孔雀)은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들고, 수양(水楊) 천만사(千萬絲)는 어귀에 늘어지고, 금의공자(金衣公子) 환우성(喚友聲)은 녹음(綠陰) 속에 처량(凄涼)하고 간수(澗水)는 잔잔하여 탄금성(彈琴聲)을 도와 낸다.
점점 들어가니 사무인적(巳無人跡)하고 석양(夕陽)은 이서(已西)하되, 숙조(宿鳥)는 투림(投林)할 제, 적마(績麻)는 슬피 울고 일락(日落) 함지(咸池) 황혼(黃昏) 되매 동영(東瀛)에 비친 월색(月色) 금수강산 길을 낸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갈 발이 어디매뇨. 수풀을 의지하여 은신(隱身)하고 앉았을 제, 야월(夜月) 공산(空山) 깊은 밤에 촉(蜀) 백성 슬피 울어 이내 간장 다 녹인다. 십 리 장강(長江) 벽파상(碧波上)에 쌍거쌍래 백구(白鷗)들은 짝 찾는 거동(擧動)이라. 슬프다. 애원성(哀怨聲)은 나의 수심 자아내고 강촌에 어적(漁笛) 소리 들리나니 수심이라.’
이러한 가운데 기갈(飢渴)이 자심(滋甚)한 중에 잠깐 앉아 졸더니,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일위(一位) 노인이 학발(鶴髮)을 흩날리고 유건(儒巾)을 쓰고 흑포(黑袍) 흑대(黑帶)에 청려장(靑藜杖)을 재촉하여 산상(山上)에서 내려와 말씀하되,
“애황아, 잠을 깨어 저 묘(墓)를 넘어 가면 한 집이 있으리라. 그 집은 장애황의 공부 터라. 어서 깊이 가거들면 너의 선생 거기 있다.”
바람은 소슬하여 잠을 깨니 소연(蕭然)한 꿈이로다. 노인 가리키던 묘를 넘어 수십 보(步)를 내려가니, 수간(數間) 초옥(草屋)이 보이거늘, 문전에 당도하니 한 여노인(女老人)이 나오면서 손을 잡고 반겨하며, 堂中(당중)에 들어가 좌(座)를 주어 앉히거늘, 애황이 일어나 재배하고 묻자오되,
“부인은 뉘신지 잔명 구제하시니 감사하옵니다.”
그 부인이 미소로 답하기를,
“나는 본디 정한 곳이 없거니와 천태산(天台山)에 유련(留連)하더니, 백운암 세존께서 이곳으로 지시하며 이르기를, ‘금야(今夜) 오경(五更) 분(分)에 장미동 장애황이 그 곳에 갈 것이니, 애휼하라.’ 하옵기로 기다린 제 오래로다.”
하며 여동(女童)을 재촉하여 석반을 드리거늘, 음식이 정결하고 먹으니 향기 만복(滿腹)한지라.
이는 마고선녀(麻姑仙女)라. 애황을 데리고 도학(道學)을 가르치니 총명(聰明)이 무쌍(無雙)이라. 선녀 더욱 사랑하여 상전벽해(桑田碧海) 수 놓기와 온갖 법수(法手)를 가르치며, 천문 지리와 둔갑(遁甲) 장산지술(掌散之術)이며 병서를 숙독하니, 삼년지간(三年之間)에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찰지리(下察地理)하며 중찰인사(中察人事)하고, 병법은 관중(管仲)이라도 당(當)하지 못할레라. 지혜 활달하여 심중에 두려운 것이 없는지라.
이러구러 애황의 연광이 십구 세라. 일일은 부인이 애황을 불러 이르기를,
“이제 네 나이 장성하고 또한 좋은 시절이 당하오니, 산중을 떠나 평생소원을 이루라. 원래 방년(芳年)에 기한(期限)이 가까웁다. 네 비록 여자이나 용문(龍門)에 올라 몸이 귀히 되어, 대장 절월(節鉞)을 띠고 황금 인수(印綬)는 요하(腰下)에 횡대(橫帶)하고, 백만 군병을 거느려 사해(四海)를 평정하고 이름을 기린각(麒麟閣)에 올려 명전(名傳) 천추(千秋)하라.”
하며 인하여 간 데 없거늘, 애황이 허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하고 그 고(古) 절 떠나 촌여(村閭)로 나아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 주인을 찾아 요기(療飢)를 청하더니, 이 집은 서주 최어사 댁이라. 어사는 일찍 기세(棄世)하고 다만 한 딸을 두었으되, 용모(容貌) 비범하여 임사(任姒)의 덕(德)과 이비(二妃)의 절행(節行)이며 태사(太姒)의 화순심(和順心)과 장강의색(莊姜擬色)을 품은지라. 부인 호씨(胡氏) 여아와 더불어 매일 봉황(鳳凰)의 짝을 얻어 여아 일생을 부탁고자 하더니, 이때 마침 애황이 산중에서 나올 때 이름을 고쳐 해운이라 하다.
호씨 해운을 보고 내심(內心)에 기뻐하여 외당(外堂)에 앉히고 묻기를,
“수재(秀才) 어디 있으며, 성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뇨?”
해운이 답하기를,
“소자 일찍 부모를 여의고 도로(道路)에 다니나이다.”
하니 부인 이르기를,
“내 집에 남자가 없는지라. 초당(草堂)을 거처하고 나를 위로함이 어떠하뇨?”
해운이 답하기를,
“의지(依持) 없는 사람을 애휼하시니 어찌 사양하리까.”
하고 그날부터 초당에 거처하매, 부인이 만 권 서책(書冊)을 내어주거늘, 상고(相考)하니 육도삼략(六韜三略)과 손오(孫吳)의 병서가 있는지라. 병서를 상고하며 세월을 보내더라.
이때 대봉은 본디 지혜 활달한 중에 생불(生佛)을 만났으니, 신통할 술법과 신묘(神妙)한 재조는 당시에 무쌍(無雙)이요, 힘은 오자서를 압두(壓頭)할레라.
각설 이때는 성화(成化) 십구 년 정해(丁亥) 춘삼월 십오일이라. 황제 하교(下敎) 이르기를,
“왕자(王者)는 막고니주문(莫高於周文)이요, 백자(伯者)는 막고어제환(莫高於齊桓)이라 하니, 현신(賢臣)이 많으면 천하를 아울러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하시고, 장차 과거(科擧)를 보이실새, 천하 선비가 모여 드는지라. 이때 해운이 과거 기별을 듣고 호씨에게 이르기를,
“황성(皇城)에서 태평과(太平科)를 주신다 하니, 한번 나가 관광(觀光)하고자 하나이다.”
하니, 부인이 허락하시고 지필(紙筆)과 금은 옥촉(玉燭)을 많이 주며 이르기를,
“내 신세 박명(薄命)하여 가군(家君)을 여의매 또한 자식이 없는지라. 다만 한 여식(女息)을 두었으되, 덕색(德色)은 없으나 족히 건즐(巾櫛)을 받들 만하니 공자 뜻이 어떠하뇨?”
공자 흔연히 허락하니 부인이 대희하여, 수이 돌아오기를 당부하시더라.
작일(昨日)에 발행(發行)하여 여러 날 만에 기주에 다다르니 옛일을 생각하여 눈물을 금치 못하고, 장미동을 들어가며 좌우를 살펴보니 예보던 좌우 청산(靑山) 어제 본 듯 반갑도다. 전일에 보던 녹죽창송(綠竹蒼松) 군자절(君子節)을 지켰구나.
살던 집을 들어가니 소연(蕭然) 한숨 절로 나니, 사면(四面)을 살펴보니 왕석연의 환을 피하여 간신히 넘던 담장, 풍우(風雨)에 퇴락(頹落)하여 반이나 무너졌다. 이때 난향이 홀로 집안을 지키더니, 어떠한 공자 내정으로 들어오거늘 난향이 대경하여 깊이 몸을 피하더니, 그 공자 바로 침방(寢房)에 들어와 난향의 손을 잡고 통곡하며 이르기를,
“난향아, 네가 나를 모르느냐?”
난향이 그제야 자세히 보니 예 보던 얼굴이 은은하고 성음(聲音)이 나타나매, 화용월태(花容月態) 고운 모양 우리 소저 분명하다. 소저의 목을 안고 실성(失性) 통곡하는 말이,
“우리 소저 육신(肉身)으로 와 계신가 영혼이 와 계신가. 풍운(風雲)에 쌓여 온가 반갑도다, 반갑도다. 더디도다, 더디도다. 소저 행차 더디도다. 어이 그리 더디던고. 소상(瀟湘)의 반죽(斑竹)이 되어 이비(二妃)를 위로하던가. 호지(胡地)에 지니다가 왕소군(王昭君)을 위로하던가. 해성월(垓城月)이 당도하여 우미인(虞美人)을 위로하던가. 은하(恩河) 오작교(烏鵲橋) 달려서 견우직녀(牽牛織女) 만나던가. 진시황(秦始皇) 구선(求仙)하고자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던가. 천태산(天台山) 마구 때려 상전벽해(桑田碧海) 징험(徵驗)하던가. 북해상(北海上) 소무(蘇武) 따라 높은 절개 본받던가. 수양산(首陽山) 백숙(伯叔) 따라 채기미(采其薇)를 하시던가. 채석강(采石江) 추야월(秋夜月)에 풍월(風月)실러 가셨던가. 상공 벼슬 마다하고 추동강 (秋桐江) 칠리탄(七里灘)에 양구(羊裘)를 떨치던가. 예양(豫讓)이 비수(匕首) 들고 교하(橋下)에 숨었던가. 장양(張良)이 철퇴 되어 박랑사중(博浪沙中) 다니던가. 진(秦)나라 사신되어 지형(地形)을 엿보던가. 위수(渭水)에 여상(呂尙)되어 야윈 고기 밥 주던가. 어이 그리 더디던고. 박명(薄命)한 난향이는 독입(獨入) 청총(靑塚) 본을 받고, 옥안(玉顔) 운빈(雲鬢) 우리 소저 여화위남(女化爲男) 하였으니, 천고영웅 엄한 위풍(威風) 그 뉘라서 알아보리. 우리 소저 전별(餞別)후에 주야 생각 미절(未絶)되어 여광여취(如狂如醉) 지내더니 명천(名川)이 도우시사 존중(尊重)하신 우리 소저 오늘날로 보게 하니 반갑기는 예사(例事)되고 슬프기 측량없네.”
둘이 서로 통곡하다가 정신을 진정하여 전후사(前後事)를 설화(說話)하며 연연(戀戀)히 낙루(落淚)하고, 소저 사당에 들어가 통곡 재배하고 물러나와 난향을 대하여 가로되,
“내 본심(本心)을 지켜 심규(深閨)에 늙을진대, 뉘라서 내 설원(雪冤)하리요. 지금 과거가 있으니 장중(場中)에 들어가 천행으로 용문(龍文)에 오를진대, 평생 한을 풀 것이니 너는 내 종적(蹤迹)을 누설하지 말고, 집을 지켜 날을 갈음하여 향화(香火)를 착실히 받들라.”
하며, 난향을 작별하고, 이날 장미동을 떠나 황성에 득달(得達)하니 이때는 하(夏) 사월 초팔일이라. 과일(科日)이 당하매, 황제 황국전(皇國殿)에 전좌(殿座)하시고 장중(場中)에 모든 선비 글제를 기다릴 제, 어악(御樂) 풍류(風流) 천예성(天藝星)에 앵무새가 춤을 춘다.
만조백관(滿朝百官) 시위(示威) 중에 대제학(大提學) 택출(擇出)하여 어제(御題)를 내리시니, 삼(三) 당상(堂上) 모셔 내어 용문(龍文)에 높이 거니 글제에 하였으되, ‘성화(成化) 춘과(春科) 택인재(擇人才)라.’ 하였거늘, 이때 해운이 글제를 살핀 후에 해제(解題)를 생각하여, 옥수(玉手)로 산호필(珊瑚筆)을 잡아 일폭(一幅) 화전(華箋)에 일필휘지(一筆揮之)하니 용사비등(龍蛇飛騰)한지라.
일천(一天)에 선장(先場)하매 상시관(上試官)이 글을 보고 천자 전(前)에 올려놓고 문불가점(文不加點) 좋을시고. 자자(字字)이 비점(批點)이요 귀귀(句句)이 관주(貫珠)로다. 천자 대찬(大讚)하여 이르기를,
“짐이 어진 재조를 보려 하였더니, 과연 얻었도다.”
하시고 봉내(封內)를 개탁(開坼)하시니, 여남 장미동 장해운이라 하였거늘, 상례관(相禮官)이 대하(臺下)에 나려 창방(唱榜)하거늘, 해운이 들어가 계하에 복지(伏地)하니, 폐하 친히 불러 해운의 손을 잡고 어주(御酒) 삼배(三拜) 권하신 후, 등을 어루만지시며 가로되,
“전일(前日) 한림학사(翰林學士) 장화는 짐의 주석신(柱石臣)이라. 이제 경이 그 아들이라 하니 어찌 기쁘지 아니 하리오.”
하시고 즉시 한림(翰林)을 제수(除授)하시니, 한림이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궐문에 나올 제, 머리에는 어사화(御賜花)요 몸에는 앵삼(鶯衫)이라. 청사(靑紗) 금포(錦袍)에 옥대(玉帶)를 띠고 금안(金鞍) 준마(駿馬)에 표연(飄然)히 높이 앉아 장안(長安) 대도상(大道上)에 완완(緩緩)히 나오는데, 금의화동(錦衣花童)은 쌍쌍이 전배(傳拜)하고, 청라(靑羅)일산(日傘) 권마성(勸馬聲)은 반공(半空)에 높이 떠서 성동(城洞)에 진동하니, 장안(長安)만호(萬戶) 동시성(同時聲)이라. 좌우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뉘가 아니 칭찬하랴.
옥안(玉顔) 선풍(仙風) 고운 얼굴 위풍이 늠름하니, 청산 미간(眉間)에 조화를 갈마있고 단산(丹山)의 봉(鳳)의 눈은 금세(今世)의 영웅이라. 삼일유가(三日遊街)한 연후에 폐하께 숙배(肅拜)하고, 기주 고향 돌아와서 사당(祠堂)에 배알(拜謁)하고 산소에 소분(掃墳)하니 일희일비(一喜一悲) 슬픈지라. 뉘라서 소저라 하리오. 홀로 난향은 일희일비로 즐겨하더라. 사당 분묘(墳墓)를 하직하고 난향을 불러 가정을 당부하고 여남으로 행(行)하니라.
이때 우승상 왕희 황제께 주(奏)하기를,
“전(前) 한림(翰林) 장화는 아들이 없삽거늘, 여남 장해운이 자칭(自稱) 장화의 아들이라 하여 한림이 되었으니, 복원(伏願) 폐하는 해운을 국문(鞫問)하여 기망(欺罔)한 죄를 경계하여 조정을 밝히소서.”
하거늘, 황제 대노하며 이르기를,
“부자지간(父子之間)은 인소난언(人所難言)이라 하였거늘, 경이 어찌 자상(仔詳)히 알아 해운을 해(害)하고자 하느냐.”
하시니, 왕희 한출첨배(汗出沾背)하더라.
각설 이때 장한림이 여남 최어사 댁에 이르러 부인 호씨를 뵈오니, 부인이 한림의 손을 잡고 못내 사랑하며 즐겨하는 말을 어찌 다 성언(成言)하리요. 인하여 여아(女兒) 혼사를 이루고자 하더니, 차시에 황제 한림을 총애(寵愛)하사 사자(使者)를 명하여 패초(牌招)하시거늘, 한림이 승명(承命)하고 급히 치행(治行)할 제, 호씨가 수이 보기를 당부하더라.
한림이 황성에 득달하여 탑전(榻前)에 숙배하니, 상이 가로되,
“경은 짐의 주석(柱石)으로 슬하(膝下)를 떠나지 말고, 짐의 불명(不明)함을 직간(直諫)하라.”
하시고, 벼슬을 승품(陞品)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郎) 겸 간의태부(諫議大夫)를 제수(除授)하시니 명망이 조정에 진동하더라.
각설 이때는 성화 이십이 년 시월 십구 일이라. 황제 어양궁에 전좌(殿座)하시고 천관(千官)을 모아 잔치를 배설하시고 국사를 의논하시더니, 뜻밖에 해남 절도사(節度使) 이서태 장계(狀啓)를 올리거늘 즉시 개탁(開坼)하니, 하였으되,
‘남(南) 선우(單于) 강성하여 역모(逆謀)에 뜻을 두고, 철기(鐵騎) 십만과 정병(精兵) 팔십만을 조발(調發)하고 장수 천여 원(員)을 거느려, 촉담 결인태로 선봉을 삼아 지경(地境)을 범하여 여남 칠십여 성(城)을 쳐 항복 받고 백성을 노략(擄掠)하니, 창곡(倉穀)이 진갈(盡渴)하고, 적병 소도(小盜) 지처(地處)에 백성 주검이 뫼 같사옵고, 여남 태수 정모를 죽이고 해남 지경에 침범하오니, 순망치한(脣亡齒寒)일까 하오니, 복원(伏願) 폐하는 군병을 총독(總督)하여 적병을 막으소서.’
하였거늘, 황제 견필(見畢)에 대경하사 방적(防敵)을 의논하시더니, 또 풍성 태수(太守) 설만추가 장계를 올리거늘, 즉시 개탁하니, 하였으되,
‘남 선우는 여남을 쳐 함몰하고 해남 지경을 범하여 남관을 쳐 항복받고 관중에 운거(雲車)하여 호군(呼軍)하고 황성으로 행군하매, 정병 철기 백여만이라. 소행(所行)에 무적(無敵)이오니, 복원 황상은 명장을 택출(擇出)하사 적병(敵兵) 대세(大勢)를 방적(防敵)하옵소서.’
하였거늘, 상이 견필(見畢)에 실색(失色)하사 좌우를 돌아보시니, 조정이 분분(紛紛)하고 장안(長安)이 요동하여 신민(臣民)이 황황(遑遑)한지라.
이때 좌승상(左丞相) 유원진과 병부상서 진택열이 조정을 충동하여 합주(合奏)할새, 황제 해운을 총애하사 사랑함을 시기하여, 제신(諸臣)이 합주하기를,
“충신(忠臣)은 국가(國家)의 근원(根源)이요, 난적(亂賊)은 국가에 근심이라. 강포(强暴)한 도적에 선봉장 촉담 결인태는 당시 명장(名將)이오니, 이 양장(兩將)을 뉘 능히 당하리오. 원컨대 폐하는 예부시랑 해운은 지략(智略)이 과인(過人)하고 문무를 겸전하였사오니, 짐짓 적장의 적수(敵手)인 듯하오니, 패초(牌招)하여 적병을 파하고 만민(萬民)의 실망지탄(失望之嘆)이 없게 하옵소서.”
하거늘 상이 가로되,
“해운의 영풍(靈風)과 지략을 짐이 알거니와, 만 리 전장(戰場)에 그 연소(年少)함을 근심하노라.”
하시니, 해운이 복지 주하기를,
“소신이 하방(下方) 천신(賤臣)으로 천은(天恩)을 입사와, 몸이 용문(龍門)에 올라 벼슬이 융중(隆中)하오매, 국은(國恩)이 망극한지라. 이때를 당하여 폐하의 홍은(鴻恩)을 만분지일(萬分之一)이나 갚고자 하오니, 복원 황상은 군병(軍兵)을 주옵시면, 한번 북 쳐 적병을 물리치고 난신적자(亂臣賊子)를 베고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나이다.”
상이 대희하사 즉시 해운으로 상장군(上將軍)을 삼아 대원수(大元帥)를 봉하시고, 황금 인수(印綬)와 대장 절월(節鉞)을 주시며, 군중에 만일 태만자(怠慢者) 있거든 당참(當斬)하라 하시고, 군병을 총독(總督)하실새, 정병 팔십만을 조발하여 군위(軍威)를 정제(整齊)할새, 원수(元帥) 칠성(七星) 투구에 용문(龍紋) 전포(戰袍)를 입고, 요하(腰下)에 황금 인수를 횡대(橫帶)하고, 대장 절월을 띠고, 우수(右手)에 참사검(斬蛇劍)을 짚고, 좌수(左手)에 홀기(笏記)를 들고, 천리준총(千里駿驄)을 비겨 타고, 군사를 호령하여 황성 밖의 십 리 사장(沙場)에 진(陳)을 치고, 군호(軍號)를 시험할새, 용정(龍旌) 봉기(鳳旗)와 기치창검(旗幟槍劍)은 일월을 희롱하고, 백모황월(白旄黃鉞)은 추상(秋霜) 같아 백 리를 연속(連屬)하며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와 동(東)에 청룡기(靑龍旗)와 서(西)에 백호기(白虎旗)를 응(應)하고 중앙 황기(黃旗)는 본진기(本陣旗)를 삼고, 각 방위를 정제하고 제장을 택정(擇定)할새, 한릉으로 선봉(先鋒)을 삼고, 황신으로 좌익장(左翼將)을 삼고, 조선으로 후군장(後軍將)을 삼고, 호신으로 남주작을 삼고, 한통으로 북현무를 삼고, 사마장군(司馬將軍) 한주요 표기장군(驃騎將軍) 마맹덕이라. 남주로 군사마(軍司馬)를 삼고, 원수 탑전(榻前)에 들어가 황제께 하직을 고하니, 상이 친히 원수를 따라 진문(陣門)에 친임(親任)하시다.
원수 군사장군 남주를 불러 진문(陣門)을 크게 열고, 황상을 모셔 장대(將臺)에 좌정하시고 진법(陣法)을 구경하실새, 원수 황상께 주하기를,
“북두(北斗)에 비록 칠성(七星)이 있사오나, 그 아래 이십팔숙(二十八宿)이 있어 절후(節候)를 짓사오니, 국가(國家) 조신(朝臣)도 또한 이와 같거늘, 소위(所謂) 조정 대신이 수신제가(修身齊家)만 알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알 신하 적사오니 애달프나이다. 병부상서 진택열은 문무를 겸전(兼全)하고 위인이 엄장(嚴壯)하오니, 가히 군행(軍行) 근고(勤苦)를 할 만하매, 복원 폐하는 소신에게 허락하소서.”
상이 가로되,
“짐이 덕이 없어 도적이 강성하여 원수를 부득이 만 리 전장에 보내거늘, 어찌 일개(一個) 신(臣)을 허락하지 아니하리오.”
하시고 즉시 허락하시며 환궁하시다. 원수 즉시 사통(私通)을 만들어 선봉장 한릉을 불러 진택열을 대령(待令)하라 하니, 한릉이 청령(聽令)하고 부중(府中)에 이르러 가 사통을 진택열에게 드리니, 병부상서 진택열은 괴심(怪心)이 높은 사람이라. 사통을 개탁하니, 하였으되,
‘한림 겸 예부시랑 대원병마(大元兵馬) 상장군 장해운은 병부상서 진택열 휘하(麾下)에 부치노라. 국운이 불행하여 외적(外敵)이 난을 지어 시절을 요란케 하매, 국운(國運)이 망극하여 외람(猥濫)히 상장(上將) 절월(節鉞)과 대원수(大元帥)에 인신(印信)을 받아 만 리 전장(戰場)에 가오니, 군(軍)에 신충(信忠)은 장부(丈夫)에 할 바이라. 그대를 군량관(軍糧官) 겸 총독장(總督將)을 정하니, 사통을 보던 즉시 대령하라. 만일 태만(怠慢)하면 군법으로 시행하리라.’
하였더라. 진택열이 사통을 보고 분기탱천(憤氣撑天)하여, 황제께 들어가 사연을 고하고 사통을 올려 분연(憤然)하니, 상이 묵언(默言) 양구(良久)에 이르기를,
“조정 제신(諸臣)이 해운의 위엄을 당할 자가 있느뇨. 알지 못할 게라. 그대 가서 모면(謀免)하라.”
하시니 제신(諸臣)이 뉘 아니 두려워 하리요.
진택열이 어쩔 수 없어 가솔(家率)을 하직하고, 즉시 의갑(衣甲)을 갖추고 한릉을 따라 진문에 이르러 납명(納名)하니, 원수 장대(將臺)에 높이 앉아 표기장군 마맹덕을 불러 오방(五方) 기치(旗幟)를 방위(方位)에 파열(擺列)하고 군위(軍威)를 배설(排設)하고, 후군장 조선을 명하여,
“진문을 크게 열고 진택열을 나입(拿入)하라.”
호령이 추상같거늘, 조선이 청령하고 진택열을 나입하여 장하(帳下)에 꿇린대, 원수 대노하여 이르기를,
“네 전일(前日)은 병권(兵權)을 잡고 교만(驕慢)이 심하였거니와, 이제 내 황명을 받아 대병(大兵)을 총독(總督)하여 군영(軍營)을 세우거늘 네 어찌 거만(倨慢)하뇨. 이제야 들어오니 네 군율(軍律)을 가소(可笑)하고 나를 능멸(凌蔑)하니, 너를 베어 군법에 복종케 하리라.”
하고 좌우 제장에 호령하여,
“진문 밖에 베어라. 만일 위령자(違令者)면 당참(當斬)하리라.”
하니 제장과 만군(滿軍) 중에 두려워 아니 할 자가 없더라. 진택열이 복지 주하기를,
“소장(小將)이 연광(年光) 오십을 당한 바이라. 노신(老臣)을 어디다 쓰오리까. 복원 원수는 용서하여 한 가지 소임(所任)을 맡기시면 진심으로 감당하겠사오니, 잔명(殘命)을 아끼소서.”
하며 애걸(哀乞)하고, 또 제장 등이 일시에 애걸하며 이르기를,
“복원 원수는 깊이 생각하옵소서. 도적을 아직 대적(對敵)하지 아니 하였사오니 용서하소서.”
하며 개개(箇箇)이 애걸하거늘, 원수 노(怒)를 참으시고 가로되,
“너를 베어 군율을 세울 것이로되, 제장에 간(諫)하므로 용서하거니와, 네 만일 이후에 범죄(犯罪)하면 죄를 아울러 용서치 못하리라.”
하고 군영(軍營)에 그저 거두지 못하느니, 절곤節棍) 십도(十度)에 방출(放黜)하고 다시 입래(入來)하여 군량관을 삼고, 설원으로 총독장을 삼아 대군을 총독하여 행군할새,
원수 대군을 거느려 궁내(宮內)로 들어가 황제께 하직을 고하니, 상이 친히 조정 백관을 거느리고 십 리 밖에 전송하시며, 원수의 손을 잡고 친히 잔을 들어 삼배(三盃)를 권하시고,
“만 리 전장에 대공을 이루어 무사히 돌아와 짐의 근심을 덜게 하라.”
하고 연연(戀戀)히 전별하시며 군위(軍威)를 살펴보니, 진세(陣勢)가 웅장하고 장수와 군사 출입(出入) 진퇴(進退)하는 법이, 석일(昔日) 한신(韓信)도 당하지 못할레라.
백모황월(白旄黃鉞) 용정(龍旌)봉기(鳳旗)와 장창검극(長槍劍戟)은 일월을 가리우고, 금고(金鼓) 함성(喊聲)은 천지진동하며 목탁(木鐸) 나팔(喇叭)은 강산이 상응(相應)하고, 대원수는 의갑(衣甲)을 갖추오고, 우수(右手)에 칠척(七尺) 천상검(天象劍)을 쥐고, 좌수(左手)에 홀기(笏記)를 들어, 제장을 호령하여 천리준총(千里駿驄)에 표연히 앉아 행군을 재촉하여,
여러 날 만에 양무에 다다라 군사를 호궤(犒饋)하고, 즉시 발행하여 능무를 지나 해하에 들어 군사를 쉬고, 익일(翌日)에 행군하여 하남 지경(地境)에 이르러 적세(敵勢)를 탐지하니, 체탐(體探)이 고(告)하되,
“적병이 하남을 진탕(震蕩)하고, 여남관에 운거(雲居)하더니 성주로 갔나이다.”
하거늘 제장을 불러 군사를 재촉하여,
“성주로 행군하되, 삼일 내로 득달(得達)케 하라.”
제장이 청령하고 주야로 행군하여 삼일 만에 득달하여 적세를 탐지하니,
이때 선우 성중에 들어 군사를 쉬며 원수를 기다리더니, 원수 지경(地境)에 이르매 격서(檄書)를 명진(明陣)에 보내어 접전(接戰)하기를 재촉하거늘, 원수 격서를 보고 선봉장 한릉을 불러 외쳐 이르기를,
“반적(叛賊)은 들으라. 네 천위(天威)를 거슬러 감히 황지(皇旨)에 항거하고자 하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라. 금일은 일모(日暮) 서산(西山)하였으니, 명일로 너희를 파하리라.”
하고 원수 백사장(白沙場)에 영채(營寨)를 세우고, 총독장 설원을 불러
“이경(二更)에 밥을 지어 삼경(三更) 초(初)에 군사를 먹이라 하고, 사경(四更) 초에 내 영을 기다리라.”
이때 선우 명진을 보고, 제장을 모아 군호(軍號)를 정제(整齊)하고 성문을 굳게 닫고 밤을 지내더라. 이때 원수 장대(將臺)에 들어가 성주 지도(地圖)를 살핀 후에 사경이 당하매, 원수 친히 장대에 내려와 제장을 모와 군호를 단속할 제, 선봉장 한릉을 불러,
“너는 갑군(甲軍) 오천을 거느려 북편으로 십 리를 가, 금산 소로(小路)에 매복하였다가 적병이 그리로 가거든 이리이리 하라.”
하고 또 좌익장 황신을 불러,
“너는 오천 철기(鐵騎)를 거느려, 북편 십 리 대로를 막아 이러이러 하라.”
하고 또 우익장 장판을 불러,
“너는 오천 궁뇌수를 거느려 동문 십 리에 산이 있으니, 산곡(山谷)에 매복하였다가 도적이 몰리거든 일제히 쏘라.”
하고 또 사마장군 한주를 불러,
“너는 정병 오천을 거느려 동문 좌편에 매복하였다가 이러이러 하라.”
또 표기장군 마맹덕을 불러,
“너는 북뇌군 오천을 거느려 서문 남편에 매복하였다가, 북소리 나거든 즉시 서문을 취하라.”
하고 또 총독장 설원을 불러,
“너는 오천 정병을 거느려 서문 북편에 매복하였다가, 마맹덕을 접응(接應)하라.” 하고 후군장 조선을 불러,
“너는 본진(本陣)을 지키라.”
하고,
“다 각기 분발(奮發)하고 남은 장수는 내 영을 기다리라.”
하고 미명(未明)에 군사를 조반(朝飯) 먹여 날이 밝으매 갑주(甲冑)를 갖추고, 우수에 참사검(斬蛇劍)을 쥐고 좌수에 철퇴를 들고, 비신상마(飛身上馬) 하여 진문을 크게 열고 진전(陣前)에 나서며, 좌우를 호령하여 남주작 북현무를 응하고, 장사(長蛇) 일자진(一字陣)을 쳐 두미(頭尾)를 상합(相合)하게 하고, 고성 대호(大號) 이르기를,
“반적(叛賊) 오랑캐야 전시(戰時)를 거슬러 시절을 요란케 하니, 황제 대노하사 나로 하여금 반적을 소멸하고 사해를 평정하라 하시기로, 내 황명을 받아 왔거니와 내 칼이 전장에 처음이라. 네 머리를 베어 내에 피로 내 칼을 씻으리라.”
하고 호통을 천둥 같이 지르니, 강산이 무어지는 듯 천지에 진동하거늘, 이때 선우가 선봉장 촉담을 불러 대적하라 하니, 촉담이 의갑(衣甲)을 갖추고 성문을 열고 나와 응성(應聲)하거늘, 원수 말을 채쳐 촉담과 더불어 합전(合戰)할새, 양장의 고함소리가 천지진동하고 말굽은 분분(紛紛)하여 피차(彼此)를 모를레라.
이때 후군장 조선이 장대에 들어가 북을 치니, 서문 좌우에 고각(鼓角) 함성이 대진(大震)하며, 양장(兩將)이 서문을 깨치고 일만 군을 몰아 엄살(掩殺)하고 원수는 주작 현무군을 몰아 엄살하니, 선우가 촉담 결인태 제장을 모아 죽기로써 막거늘, 촉담은 당시 명장이라. 원수를 맞아 십여 합에 불결(不結) 승부(勝負)라.
원수 좌우를 호령하며 동충서돌(東衝西突)하니 주작(朱雀) 호신이 삼만 군을 몰아 원수 좌편을 접응하고, 현무(玄武) 한통은 삼만 정병을 몰아 원수 우편을 접응하니, 제 아무리 명장인들 원수 용맹 당할 소냐.
이때 선우 서편을 바라보니 함성이 대진(大震)하며 두 장수 짓쳐 들어오거늘, 이는 표기대장 마맹덕 총독장 설원이라. 선우 약간 장수를 거느려 양장을 막은들 제 어이 당하리오. 남에서는 대원수 날랜 용맹 좌우에 몰아치고 서에서는 양장이 몰아치니 군사 죽음이 뫼 같고 피 흘러 성(成) 천 리라. 성세(城勢) 점점 위태하다.
원수 승승(乘勝)하여 동으로 가는 듯 서장(西將)을 베고, 남으로 가는 듯 북장을 베고, 서로 번듯 동장을 치고, 북에 번듯 남장을 짓치고, 좌우충돌(左右衝突) 중장을 베어 들고, 촉담의 앞에 짓쳐 달려들며,
“울지 못하는 닭이요, 짖지 못하는 오랑캐야. 빨리 나와 항복하라.”
호통지성(號筒之聲)은 뇌성(雷聲) 벽력(霹靂)이 진동하고, 적진 중에 달려들어 좌충우돌(左衝右突) 횡행(橫行)하니, 사람은 천신(天神) 같고 닫는 말은 비룡(飛龍) 같다. 뉘 능히 당적(當敵)하랴.
설인태 원수를 대적하니, 반 합(合)이 못되어 호통 일성(一聲)에 결인태를 베어 들고, 총독 표기군이 합세하니 승기(勝氣) 더욱 등등(騰騰)하고, 네 장수 고함소리 강산이 상응하고, 원수에 엄한 위풍 단산(丹山) 맹호장(猛虎將)을 치는 듯, 적진 선봉 촉담은 원수 앞을 방적(防敵)한들, 제 어이 당적하랴. 선우의 팔십만 병 항오(行伍)를 못 차린다.
선우 장대(將臺)에 들어가 북을 울리며 기를 둘러, 군사로 원수를 에우거늘, 원수 사장(四將)을 호령하여 촉담의 좌우를 치라 하니, 제 어찌 능히 사장을 능당(能當)하리. 원수는 후군에 달려들어 필마(匹馬) 단검(短劍)으로 군사를 짓쳐 횡행하니 가련하다. 선우 장졸 팔공산 두른 초목(草木) 구시월 만난 듯이 원수의 칠척 참사검(斬蛇劍) 일광 좇아 번듯하며, 호적(胡賊)이 쓰러지고 추풍낙엽(秋風落葉) 불 만난 듯 군사 죽어 산이 되고 피는 흘러 내가 되니, 원수가 입은 전포(戰袍) 피가 묻어 유색(有色)하고 비룡 같이 닫는 말굽 피가 어려 목단(牧丹)이라.
후군을 다 짓치고 중군에 달려드니, 촉담이 사장을 마자 싸우다가 원수 중군에 듦을 보고 사장을 버리고 중군에 들어와 원수로 더불어 자웅(雌雄)을 결단(決斷)하자 하고, 촉담이 철궁(鐵弓)에 봉뇌살을 먹여 원수에 흉중(胸中)을 쏘거늘, 원수 오는 살을 철퇴로 막으면서 봉(鳳)의 눈을 부릅뜨고 꾸짖어 이르기를,
“개 같은 적장 놈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네 만일 더딜진대 사정없는 내 칼이 네 목에 빛나리라.”
이때 선우 결인태 죽음을 보고 원수를 당하지 못할 줄 알고 도망하고자 하되, 서남에는 사장이 막아 치고, 원수는 진중(陣中)에 횡행하매 갈 바를 모르더니, 동북이 비었거늘, 선우 선봉군을 수습하여 북문을 열고 달아나며, 걸윤 촉마로 하여금 뒤를 막고, 촉담은 원수를 당적하되 당치 못할 줄 알고 장졸을 거느려 동문을 열고 닫는지라.
이때 원수 대전(對戰) 팔십여 합에 선우와 촉담을 잡지 못하매, 표기 총독 현무 삼장(三將)은 선우를 쫓아 엄살하라 하고, 군사마 남주를 데리고 바로 촉담 뒤를 따르더니 촉담이 역진(力盡)하여 한 곳에 다다르니, 문득 한 떼 군마 내닫거늘 이는 사마장군 한주라. 쌍봉(雙鳳) 투구에 녹운갑(綠雲甲)을 입고, 좌수에 방패를 들고 우수에 장창을 들고 내달아 대질(大叱)하기를,
“무지한 도적은 어디로 가려 하느냐. 목숨을 아끼거든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이때 촉담이 대노하여 한주로 더불어 접전할새, 수 합이 못되어 한주 거짓 패하여 닫거늘, 촉담이 한주를 쫓아가더니, 문득 산파(山坡)에서 뇌고(雷鼓) 함성이 천지진동하며 한 장수 나오거늘, 이난 우익장 장판이라. 봉천(奉天) 투구에 백운(白雲)갑(甲)을 입고 좌수에 홀기를 들고 우수에 장팔사모창(丈八蛇矛槍)을 들고 마상(馬上)에 높이 앉아, 궁뇌수를 재촉하여 궁시(弓矢)를 제발(諸發)하니 살이 비오 듯 하거늘, 촉담이 경황(驚惶)하던 차에 한주 병이 합세하고, 양장은 앞을 막아 항복을 재촉할 제, 뒤에서 함성이 대진하며 진퇴 충천한 중에, 일원(一員) 대장이 오거늘 이는 곧 장원수라. 대호(大號) 이르기를,
“적장은 닫지 말고 말에서 내려 항복하여 죽기를 면하라.”
하며 풍우 같이 달려오니 그 가운데 들었으니, 제 아무리 명장인들 견딜 소냐. 군사를 절상(折傷)하고 원수를 피하더니, 시석(矢石)이 분분하여 갈 바를 모르던 차에, 천둥 같은 소리 끝에 칠척검(七尺劍) 번듯하며 촉담의 머리 검광을 좇아 내려지니, 원수 칼끝에 꿰어 들고 적군을 호령하니, 일시에 항복하거늘, 적장 십여 명과 군사 천여 명을 생금(生擒)하고 군기(軍旗)를 탈취하여 본진에 돌아오니, 후군장 조선이 진문을 크게 열고 나와 원수를 마자 장대에 들어가 사례하니, 원수 이르기를,
“이 다 황상의 덕이라.”
하시더라.
이때 선우 북문으로 도망하여 한 곳에 이르러 군사를 점고(點考)하더니, 문득 뇌고(擂鼓) 나자성(儺者聲)이 나며, 한 장수 황금 투구에 녹포(綠袍) 운갑(雲甲)을 입고 오천 갑군을 거느려 엄살하니, 이는 선봉장 한릉이라. 천상검(天象劍)을 높이 고성으로 이르기를,
“네 어디로 가느냐. 빨리 나와 항복하라.”
뇌성같이 호령하고, 또 문득 북편으로 함성이 천지진동하며 용봉 투구에 흑운갑 雲甲)을 입고, 우수에 천강검(天降劍) 들고 좌수에 철퇴를 쥐고 오천 철기를 몰아 성화(盛火) 같이 들어오는데, 문득 뒤에서 고각(鼓角) 함성이 진동하거늘, 선우 바라보니 사마대장이 대군을 거느려 물밀 듯 들어오니,
선우 황겁하여 어찌 할 줄 모르더니, 촉마 걸윤 등 십여 명이 뒤를 막고 선우는 일군(一軍)을 거느려 동으로 향하여 달아나거늘, 이때 오장이 합세하여 선우의 후군을 짓쳐 함몰하고, 군량(軍糧) 기각(旗脚)을 다 취하고, 장수 칠 원(員)과 군졸 천여 명을 생금하여 낱낱이 결박하여, 오장이 군사를 재촉하여 본진으로 들어와 원수 휘하에 받치니, 원수 대희하사 대하에 내려 제장을 위로하며 선봉을 불러 장졸을 점고하니, 한 명도 상한 자가 없거늘, 만군중(萬軍衆)이 원수를 송덕(頌德)하더라.
원수 후군장을 불러 기치(旗幟)를 파열(擺列)하여 군위(軍威)를 배설하고 원수 장대에 높이 앉아 이르기를,
“적장 수십 명을 나입(拿入)하라.”
좌우 제장이 청령하고 적장을 나입하거늘, 원수 대노하며 이르기를,
“네 왕이 외람히 강포(强暴)를 믿어 천위(天位)를 범하였으니, 네 왕은 이제 꼭 잡으려니와 너희 등을 다 죽일 것이로되, 인명(人命)을 생각하여 특위(特爲) 방송(放送)하노라.”
하시고 절곤(節棍) 삼십 도(度)씩 맹장(猛杖)하여 방출(放黜)하시며 이르기를,
“다시는 범람(汎濫)한 마음을 먹지 말고 귀가(歸家) 근농(勤農)하라.”
하시고 또 군사를 일제히 나입하여 호언(好言)으로써 개유(開諭)하시고 방출하라 하시니, 적진 장졸이 원수를 송덕(頌德)하며 호천고지(呼天叩地)하여 상호(相互) 만세(萬歲)를 부르며,
“원수는 천천만만세(千千萬萬歲) 유전(留傳)하옵소서.”
하며 가더라.
이때 원수 성중에 들어가 대연(大宴)을 배설하여, 만군중을 위로하고 백성은 진무(賑撫)하니, 도내(道內) 인민이 즐겨 취포(醉飽)하여 만세를 부르는데, 군사들도 즐겨 취포하여 원수를 송덕하더라.
칠일 만에 행군할새 위의(威儀)도 장할시고. 승전고(勝戰鼓) 행군고(行軍鼓)는 원근(遠近)에 진동하고, 용봉(龍鳳) 기치(旗幟) 검극(劍戟)이며 백모황월(白旄黃鉞) 서리 같고, 십장(十將) 홍모(紅毛) 사명기(司命旗)는 그 가운데 세워 가고, 초초(楚楚) 명장(名將) 행진할 제, 의갑(衣甲)이 선명하여 일광(日光)을 희롱하고 행군 취타(吹打) 쟁(錚) 북소리 충심(忠心)을 도와낸다.
대원병마 상장군은 맹기(猛氣) 영풍(英風) 높은 재조 천리마(千里馬) 상(上)에 비껴 앉아 위진(爲(陳) 사해(四海) 떨치도다.
선우를 잡으려고 그 뒤를 따르더라.
이때 선우 목숨을 도망하여 남해에 다다라 패군(敗軍)을 점고하니, 시석(矢石)에 상한 장졸 불과 삼만이라.
‘선우의 백만 병이 명진에서 다 죽이고, 명장 백여 원(員)과 수족(手足) 같은 촉담 결인태를 죽였으니 어찌 아니 분하리오.’
하고,
‘다시 기병하여 천하 명장을 얻어 명진을 쳐 파하고, 상장군 장해운을 사로잡아 간을 내고 남은 고기 포(脯)를 떠서, 죽은 장졸을 위로하여 수륙제(水陸齊)를 지내리라.’
하고 이를 갈고 본국으로 들어가더라.
차시 원수 대군을 거느려 남해(南海)를 다다라 적세를 탐지하니, 본국으로 들어갔는지라. 원수 제장을 모와 의논하기를,
“이제 선우 본국으로 들어갔으나 그저 두고 회군(回軍)하면 일후(日後)에 반드시 후환이 있을지라.”
하니 제장이 여출일구(如出一口)이거늘,
“선척(船隻)을 준비하여 교지국(交趾國)에 들어가 선우를 사로잡고 남적(南賊)을 항복받고, 남만(南蠻) 오국(吳國)을 동벌(東伐)하여 천위(天威)를 베풀어 갱기(更起)할 마음이 없게 하리라.”
하고, 차의(此意)를 황제께 장계(狀啓)하고 남해에 와 머물러 선척을 준비하더라.
각설 황제 원수를 만 리 전장에 보내고 소식을 몰라, 침식이 불평하시던 차(次)에 원수가 장계를 올리거늘, 즉시 개탁하시니, 하였으되,
‘원수 겸 상장군 도총독 장해운 신은 글월로써 돈수백배(敦壽百拜)하옵니다. 선우를 쳐 적군을 파하옵더니, 촉담 결인태를 베옵고 장수 백여 명을 베어 들고 선우를 쳤삽더니 도망하여 제 나라로 들어 갔삽기로, 뒤를 따라 선우를 잡고 남만(南蠻) 오국(吳國)을 아울러 천위를 떨쳐, 감히 요동치 못하게 하고 차차 회군(回軍)하오리니, 복원 폐하는 근심치 마옵소서.’
하였거늘, 상이 대찬(大讚) 불이(不二)하시고 원수 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더라.
각설 이때 북(北) 흉노(匈奴) 강성하여 역모(逆謀)에 뜻을 두고, 중원을 탈취하고자 하여 자주 엿보더니, 이때 마침 남 선우 기병(起兵)하여 중원에 범하였단 소식을 듣고 흉노 대희하여 가로되,
“시재(時在) 시재(時在)로다. 급격물실(急擊勿失)하리라.”
하고 명장을 간택하여 선봉을 삼고, 장수 천여 원과 군사 일백삼십만 병을 조발하여 행군할새, 호왕(胡王)이 의기양양(意氣揚揚)하여 가로되,
“내 한번 북 쳐 유약(柔弱)한 명제(明帝)를 항복받고 쇠잔(衰殘)한 선우를 잡아 지광(地廣)을 보태리라.”
하며 제가 친히 중군이 되어 주야로 행군하니, 그 세 웅장함을 일구(一口)로 난설(難說)이라. 기치(旗幟) 창검(槍劍)은 가을 서리 같고 금고(金鼓) 함성은 천지를 흔드는 듯 장수 의갑은 날빛을 희롱하니, 뉘 능히 당하리오. 소행(所行)에 무적이라.
여러 날 만에 중원지경에 이르러, 거병공지(擧兵攻之) 하니 촉처(觸處)에 주검이 묘 같고 항복하지 아니한 자가 없더라. 연경 육십여 주를 항복 받고 정군 칠십여 성을 항복 받고 의기등등(意氣騰騰)하여 백성을 노략하니, 창곡(倉穀)이 진갈(盡渴)하고 적연(積燃)이 탕진(蕩盡)이라. 정남관에 웅거(雄據)하여 군사를 호군(犒軍)하고 장졸을 쉬니라.
이때 황제 해운의 장계를 보고 근심을 덜었더니 뜻밖에 정남절도사 장문(狀文)을 올렸으되,
‘북 흉노 강성하여 정병 천 기(騎) 일백삼십 만을 조발하여 지경(地境)을 범하여, 연경 육십여 성을 앗고 정남 칠십여 성을 항복받아 남관에 웅거하였사오나, 그 세(勢) 웅장함을 능히 당하지 못하여 황황(遑遑)히 장계하오니, 복원 폐하는 경국병(京國兵)을 조발하여 도적을 막으소서.’
하였거늘, 황제 견필(見畢)에 대경실색(大驚失色)하사, 즉시 공부상서(工部尙書) 곽태효로 원수를 삼아 군병 삼십만을 조발하여 북으로 행군하니라. 이때 흉노 소행에 무적이라. 목탁 묵특으로 좌우 선봉을 삼고 통달로 후군장을 삼아 하북으로 행군하여 삼십여 성을 쳐 얻으니 뉘 능히 대적하리오.
각설 이때는 기축(己丑) 시월 망간(望間)이라. 국사(國事) 분분(紛紛)하매 크게 근심하사 조정이 진동하고 백성이 요동(搖動)하매 일로 국사를 의논하시더니, 문득 하북 절도사 이동식이 장계를 올렸거늘, 개탁하니, 하였으되,
‘북 흉노 일백삼십만 군을 조발하여 지경을 범하여, 연경 육십여 주와 정남 칠십여 성을 항복받고 또 하북을 침범하여 삼십여 성을 앗았으니, 세(勢) 부당(不當) 역불급(力不及)하여 미구(未久)에 황성(皇城) 지경(地境)을 범할 것이오니, 급히 방적(防敵)하옵소서.’
하였거늘 상이 견필에 대경하사 조정이 분분하여, 유성장(留城將) 유진장(留陣將)을 모으고, 각도(各道)에 행관(行關)하여 군사를 총독하더라.
이때 곽태효 상군에 득달(得達)하여 군사를 쉬더니, 흉노 군을 거느려 상군에 득달하니, 원수 곽태효 격서를 전하거늘, 흉노 통달(通達)을 명하여 한번 북 쳐 원수를 사로잡고 성중(城中)에 들어가 충돌하니, 황진(皇陣) 장졸이 일시에 항복하거늘, 흉노 상군을 얻고, 익일(翌日)에 건주를 쳐 얻고, 또 익일에 황주를 쳐 들어가니, 절도사 이동식이 군을 거느려 대적하더니 당하지 못하여 패주(敗走)하거늘, 하북을 얻고 옥문관(玉門關)을 취하여 쉬고, 바로 동정 북문을 깨쳐 기주로 들어가, 자칭(自稱) 천자(天子)라 하고 노략하니, 백성이 난(亂)을 만나 산지사방(散之四方)하더라.
이때 이시랑 부인이 도망하여 한 곳에 다다라 장미동 장한림 댁 시비 난향을 만나, 서로 의지하여 여러 날 만에 천축(天竺) 땅에 다다르니, 길가에 한 여승이 부인과 난향을 인도하여 가거늘, 부인과 난향이 노승께 사례하며 이르기를,
“난세를 당하여 가군(家君)을 잃고 갈 바를 몰라 죽게 된 인명을 구제하옵신 은덕 갚기를 바라리오.”
하고 무수히 사례하고 여승을 따라 봉명암에 들어가 삭발(削髮) 위승(僞僧)하여 부인과 난향이 시승(施僧) 상좌(上佐)가 되어 부인의 승명(僧名)은 망자라 하고, 난향의 승명은 애원이라. 망자는 시랑과 대봉을 생각하고, 애원은 소저를 생각하여 주야 불전(佛前)에 축원하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더라.
각설 이때 대봉이 금화산 백운암에 있어 노승과 함께 각색(各色) 술법(術法)과 육도삼략이며 천문도(天文圖)을 익혀 달통(達通)하고 신묘한 병서(兵書)을 잠심(潛心)하니 지모(智謀) 장략(將略)이 당세(當世)에 무쌍이라. 웅재대략(雄才大略)이 산중에서 세월을 보내더니, 일일은 화산 도사 공자(公子)에게 이르기를,
“공자 급히 세상에 나아가라. 원래 방연의 기한이 가까우니 급히 가려니와 간밤에 천기(天氣)을 보니 각성(角星) 방위(方位)가 두서(頭序)를 정치 못하고, 북방(北方) 호성(胡星)이 중원(中原)에 범하였으니 시절이 대란(大亂)한지라. 급히 출세(出世)하여 중원에 득달하여, 황상을 도와 대공을 이루고 인하여 부모를 만나보고, 인연을 찾아 기약(期約)을 이루고, 그대 심중에 맺힌 한을 풀 것이니, 지체 말고 가라. 연연(戀戀)하거니와 장부(丈夫)의 좋은 때를 이르리오.”
하며 재촉하거늘 공자 묻기를,
“황성이 얼마나 하나이까?”
도사 이르기를,
“중원이 예서 일만 팔천육백이라. 농서는 일천칠백이오니 농서로 급히 가오면, 중원을 자연 득달하오리다.”
하고 바랑에 여러 실과(實果)를 주며 이르기를,
“행역(行役)에 몸이 곤하거든 요기(療飢)하소서.”
하며 손을 잡고 못내 슬퍼하며 후(後) 기약을 당부하고, 연연(戀戀) 전별(餞別)하니, 공자 행장(行裝)을 차려 발행하니, 서로 놓는 정은 비할 데 없더라. 이날 산문(山門)을 하직하고 농서를 바라고 초행(初行) 노숙(露宿)하여 주야(晝夜) 배도(倍道)하더라.
각설 이때 흉노 대병을 몰아 황성을 짓쳐 들어가니, 금고(金鼓) 함성은 천지진동(天地震動)하고 기치 검극은 일월을 희롱하고 고성 대호(大呼)하는 말이,
“명제(明帝)는 옥새(玉璽)를 바삐 드려, 잔명(殘命)을 보전하고 어여쁜 인생을 부질없이 상하게 말라. 네 만일 더딜진대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하고 물밀듯 들어오니, 감이 당적할 자가 없는지라. 황제 황황급급하여 유성장(留城將)을 조발하여 막으려 하니, 반합이 못하되 패하거늘, 또 병부시랑(兵部侍郎) 진여를 명하여 막으려 하니 이 역시 호전주퇴(壺顚酒頹)일레라.
조정에 있는 신하 보처자(保妻子)만 힘을 쓰니 충신은 전혀 없고, 근(近) 소인(小人)만 하던 조정 뉘라서 사직을 받들리오.
성세(城勢) 가장 급한지라. 여간(如干) 군사를 거느려 남성으로 도망하여 금릉으로 닫더니, 이 날 흉노 성중(城中)에 들어가 종묘사직(宗廟社稷)에 불을 놓고, 흉노 전상(殿上)에 높이 앉아 호령이 추상같고, 통달이 군(軍)을 몰아 천자 뒤를 쫓아 금릉으로 가니, 슬프다. 대명(大明) 사직(社稷)을 말년(末年) 치국(治國)으로 일조(一朝)에 돈견(豚犬)같은 흉노에게 사직(社稷)을 잃었으니 어찌 아니 분할 소냐. 뉘라서 강적(强敵)을 소멸하고 중원(中原) 사직을 회복하라.
이때 황제 금릉으로 피하더니, 호병이 뒤를 쫓아 들어와 여간 군사를 엄살하니 뉘 능히 막으리오. 인민을 살해하며 황제를 찾아 횡행하니, 사면에 있는 것이 모두다 호적(胡賊)이라. 이날 황제 삼경에 도망하여 양성으로 가시더라. 따르는 자가 불과 백 명이라. 한심하다. 대명 천자 가엾이 되었으니, 명천(明天)도 무심하고 강산 신령도 헛것이네.
양성에 들어가 밤을 지낼새, 양성태수 장원이 군사 삼천 병을 거느려 시위(侍衛)하거늘, 황제 대희하사, 양성태수 장원으로 선봉을 삼고 상이 친히 중군이 되고자 하시더니, 이날 밤 미명(未明)에 문득 군마 요란하거늘 호적이 오는가 하여 대경하여 보니, 해남절도사 황연이 정병 삼만을 거느려 성 밖에 왔거늘 상이 대희하여 황연으로 중군을 정하시고, 적세를 탐지하니, 보(報)하되,
“호적이 지경(地境)에 오더이다.”
하거늘, 일군(一軍)이 대경하여 천자를 모시고 양성을 버리고, 능주로 향하여 성하에 이르니, 능주 자사(刺史) 일지군(一枝軍)을 거느려 성 밖에 나와 천자를 모셔, 성중에 들어가 관사에 모시고 성문을 굳게 닫고 철통같이 지키더니, 이때 도적이 양성에 달려들어 천자를 찾으니 성중이 고요하고 인민이 없는지라. 성중에 들어가 탐지하니 능주로 갔다 하거늘, 묵특이 삼천 철기를 거느려 능주로 쫓아 바로 성하(城下)에 이르러 고성으로 이르기를,
“명제는 부질없이 시절을 요란케 말고, 항서(降書)를 쓰고 옥쇄를 드려 목숨을 보존하고 백성을 안돈(安惇)케 하라. 우리 대왕은 하늘께 명을 받아 사해를 평정하고 억조창생(億兆蒼生) 덕을 닦아 만승(萬乘) 천자 되었으니, 천고 없는 영웅 우리 왕상(王上) 뿐이로다. 지체 말고 항복하라.”
이렇듯이 의기양양하거늘. 천자 분부하기를,
“적장에 적수 없으니, 성문을 굳게 지켜 도적이 성에 들지 못하게 하라.”
하시더니, 문득 사면으로 진퇴(進退) 충천(衝天)하며 흉노군이 들어오더니, 성을 에워싸고 싸움을 재촉하되, 접전할 장수 없는지라. 사면을 에웠으니 벗어날 길 망연(茫然)하다.
흉노 제장에게 분부하되,
“능주성을 에워싸고 화약(火藥) 염초(焰焇)를 준비하여 팔문(八門)에 장(藏)이고 성 주위 일척(一尺) 오촌(五寸)의 도랑을 파고, 화약 염초를 묻고, 불을 놓아 성지(城址)를 파하고 명제를 잡으라.”
하더라. 천자며 모든 군민이 이 말을 듣고 황황망극하여, 곡성(哭聲)이 청천에 사무치고, 천자는 식음을 전폐하시고 자결하고자 하시거늘, 시위 제장이 위로하여 겨우 보존하시나 사세(事勢) 만분(萬分) 위태한지라.
우승상 왕희 간(諫)하기를,
“천운이 불행하고 폐하 덕이 적사와 도적이 자주 강성하매, 종묘사직을 받들기 어렵사오니, 복원 폐하는 널리 생각하여 항서(降書)를 쓰고 옥새를 전하여 존명(尊名)을 보전하고 억조창생을 건지소서.”
하고 또 병부시랑 진여 합주(合奏)하거늘, 상이 아무리 생각하시되,
‘원수 해운은 수만 리 남 선우를 가고 사세 위급하니, 짐에 덕이 없어 하늘이 망하게 하심이라.’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이 날 왕희를 불러 항서를 쓰라 하시고, 옥새를 목에 걸고 좌수에 항서를 들고 우수로 가슴을 두드리며, 황후 태자를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이 몸은 하늘에 득죄(得罪)하여 사지에 들어가거니와, 황후 태자는 생각하여 귀체(貴體)를 보전하소서.”
하며 서로 목을 안고 통곡하시니 천지 어찌 무심하랴.
각설 이때 대봉이 여러 날 만에 능서에 이르니 일모(日暮) 서산(西山)하고 흑운(黑雲)은 원처(遠處)에 가득하여 지척(咫尺)을 분별치 못하고 노곤(路困)이 심한지라. 바위에 의지하여 날 새기를 기다리더니, 삼경이 지나매 운무(雲霧) 산진(山陣)하고 월출(月出) 동영(東瀛)하며 천지 명랑하거늘 무심이 앉았더니, 한 여인이 앞으로 들어와 보이거늘 살펴보니, 녹의홍상(綠衣紅裳)은 월색을 희롱하고 설부화용(雪膚花容)은 백옥이 비친 듯 천연한 태도와 황홀한 자색(姿色)이 사람의 정신을 산란케 하는지라.
대봉이 봉(鳳)의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기를,
“네 어이한 계집이기에 심야 삼경에 남자를 찾아 왔느냐?”
하니 답하기를,
“공자의 행차 적막(寂寞)하시기로 위로하고자 왔나이다.”
하거늘 대봉이 분명 귀신인 줄을 짐작하고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벽력같이 지르니 문득 간 데 없는지라. 이윽고 표연한 선비가 청사(靑紗) 금포(錦袍)에 흑대(黑帶)을 띠고 들어오는데 살펴보니, 천연한 얼굴은 양무(陽武) 진평(陳平)과 한국(漢國) 등통(鄧通)에 지나는지라. 귀신인 줄 알고 크게 꾸짖어 이르기를,
“네 어이한 요귀기에 대장부 좌전(座前)에 감히 들어오느냐.”
하니 무슨 소리가 나며 간 데 없더니, 이윽고 천지 회명(晦冥)하고 뇌성벽력이 천지진동하고 풍우(風雨) 대작(大作)하며 절목발옥(折木拔屋)하며 양사주석(揚沙走石)하더니, 한 대장이 앞에 섰거늘 살펴보니, 월각(月脚) 투구에 용인갑(龍鱗甲)을 입고 장창 대검을 들고, 우뢰같은 소리를 천둥같이 지르며 바람을 좇아 횡행(橫行)터니 해(害)하고자 하거늘, 대봉이 정신을 진정하여 안색(顔色)을 불변(不變)하고 단정히 앉아 호령하기를,
“사불범정(邪不犯正)이거늘, 네 어이한 흉귀(凶鬼)관대, 요망(妖妄)한 행실로써 장부에 절개(節槪)를 굽히고자 하느냐?”
하니, 그 장수 답하기를,
“소장은 한장(漢將) 이릉(李陵)이옵더니, 당년(當年)에 천자께 자원(自願)하고 군사 오천 명을 거느려 전장에 나아가, 흉노에 해를 보아 속절없이 황양지객(黃壤之客)이 되었기로 평생 적취지한(積聚之恨)이 심간(心間)에 가득하여 해소할 곳이 없삽더니, 마침 공자을 만나매 내 설원(雪冤) 지취(志趣)라. 공자는 소장의 갑주(甲冑)를 가져다 흉노를 베어 대공을 이루고, 소장의 수천 년 원혼(冤魂)을 위로하시기를 바라노라.”
하고 월각 투구와 용인갑을 드려 이르기를,
“이 갑주를 간수하여 급히 발행하소서.”
하고 인하여 간 곳이 없거늘, 즉시 발행하여 삼일 만에 평사에 이르니 사고무인(四顧無人) 적막한데 벽력같은 소리가 나거늘 자세히 살펴보니, 강변에 난데없는 오추마(烏騅馬) 내달아 네 굽을 허위며 번개같이 뛰놀다가 공자를 보고 반기는 듯하거늘, 행장을 벗어 길가에 놓고 평사(平沙)에 나아가 경설(輕說)로 이르기를,
“오추마야. 네가 대봉을 아느냐. 알거든 피하지 말라.”
하며 달려들어 목을 안으니 오추마 대봉을 보고 고개를 숙여 네 굽을 허위며 반기는 듯하거늘, 대봉이 오추마 목을 안고 강변에 이르니 황금 굴레와 은안장이 놓였거늘, 대봉이 반겨 굴레를 씌우고 안장을 갖추어 행장을 수습하여 오추마 상(上)에 번듯 올라 천기(天氣)를 살펴보니, 북방 이성(二星)이 황성에 비추어 있고 천자의 자미성(紫微星)은 도성을 떠나 능주에 잠겼거늘, 대봉이 탄식하며 말에게 경설로 이르기를,
“명천(明天)은 대봉을 내시고 용왕은 너를 내시니, 이는 천자의 급한 때를 구하게 하시니라. 지금 도적이 황성에 들었으니 천자에 위급함이 경각에 있는지라. 이때를 버리면 대명천지에 대봉이 쓸 곳이 전혀 없고, 비룡(飛龍) 조화 너의 용맹을 세상에 내실 제는 사직을 위함이라. 실시(失時)하여 무용(無用)되면 쓸 곳이 어디 매냐. 대봉이 먹은 뜻을 널로 하여 얻게 되니 어이 아니 반가우랴. 항적(項籍)이 타던 용총 (龍驄) 오강(烏江)에 들었다가, 대명에 대봉 나매 나를 도와 나왔구나.”
이렇듯이 즐겨 하며 황성으로 올라가니 사람은 천신 같고 말은 정령 비룡이라. 이날 칠백 리 상군을 지나 이튿날 일천삼백 리 하서를 지나니, 황성이 장차 가까워 지니라.
여러 날 만에 화룡도에 다다르니 밤이 이미 삼경이라. 천지 아득하며 풍우 대작(大作)하여 지척을 분별치 못하여 주저주저하더니, 길가에 빈집이 있거늘 그 집에 들어가 잠깐 쉬었더니, 문득 천병만마(千兵萬馬) 나오더니 그 집을 에워 진(陣)을 치거늘, 자상(仔詳)히 살펴보니 진법은 팔진도(八陣圖)라. 그 중에 일원 대장이 낯빛은 무른 대추빛 같고, 눈은 천창(天槍)에 덮이는 듯하고, 황금 투구에 녹포(綠袍) 운갑(雲甲)을 입고, 청룡도(靑龍刀)를 빗겨 들고, 적토마(赤兔馬)를 빨리 몰아 봉의 눈을 부릅뜨고, 삼각수(三脚獸)를 거느리고 그 집으로 들어오시거늘, 대봉이 정신을 수습하여 팔괘(八卦)를 베풀어 놓고 단정히 앉았더니, 그 장수 옆에 와서 대호(大呼)하기를,
“대봉아 네 난세(亂世)를 평정하고 대공을 이룰진대, 지혜와 도략을 쓸 것이거늘 한갓 담대(膽大)함으로써 남의 집에 주인을 알지 못하고 완만(緩慢)히 앉아 있느냐?”
대봉이 일어나 복지 사례하며 이르기를,
“장군의 존호(尊號)는 뉘신 줄로 아나잇가? 소자는 천하여 빈 집에 주인을 알지 못하옵고 객의(客意)를 일렀사오니, 복원 장군은 용서하옵고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하니 그 장군이 이르기를,
“나는 한(漢) 수정(壽亭) 관운장(關雲長)이러니 삼국시절에 조조(曹操) 손권(孫權)을 잡아 우리 현주(賢主)의 은덕을 갚자 하더니, 천운이 불행하여 천하를 평정치 못하고 여몽(呂蒙)의 흉계에 속절없이 죽었으니, 원통한 청룡도는 쓸 곳이 전혀 없고 슬프다. 적토마는 불복(不服) 한(恨) 중(重)하였으며, 천추(千秋)에 지친 혼이 이 집에 의지하여 옛 지경(地境)을 지키더니, 오늘날 너를 보니 당시 영웅이라. 내 쓰던 청룡도를 주느니 능주로 급히 가서, 사직을 안보하고 흉노의 피로 써서 청룡도를 씻어다가 영웅의 원혼을 위로하라.”
하고 주거늘 받아들고 사례하니, 문득 간 데 없더라.
대봉이 급한 마음 일각이 여삼추(如三秋)라. 월각 투구 용인갑에 청룡도 빗겨 들고 만리준총(萬里駿驄) 빗겨 타고 풍우같이 올라갈 제, 말에게 경계(儆戒)하되,
“오추야 네 알리라. 천자에 급하심과 대장부 급한 마음 네 어이 모를 소냐. 천지가 감응(感應)하사 너와 나를 내신 바라. 능주에 득달하여 대봉 용총(龍驄) 날랜 용맹 청룡도 날랜 칼로 도적을 물리치고 사직 충신 되거든, 명전(名傳) 천추 빛난 이름 기린각(麒麟閣) 제일층(第一層)에 제명(題名)할 제, 내 이름 각(刻)한 후에 오추마 네 행적은 나를 따라 빛나리라. 지체 말고 가자스라.”
오추마 이윽히 듣더니 만 리 능주를 달려갈 제, 오추마 날랜 용맹 샛별 같은 두 눈에는 풍운 조화 어려 있고 둥굴한 네 굽에는 강산 정기 갈마 있도다. 대운산을 넘어 양주를 지나 운주역에 말을 먹여 서천강을 건너 양무주를 지나서 봉황대를 다다르니 일모 서산 거의로다.
여산 능주를 당도하여 산상(山上)에 높이 올라 적세를 살펴보니, 중원 인물은 보이지 않고, 십 리 사장(沙場)에 호병이 가득하여, 승기(勝氣)가 등등(騰騰)하여 살기(殺氣) 가득하고 함성이 대진(大震)하더니, 호장 묵특이 북문을 개(開)치고 철기를 몰아 성중에 달려들어 엄살하며 함성하되,
“명제야 항복하라.”
하는 소리가 강산이 무너지는 듯하거늘, 이때 천자 도적의 세(勢)를 당치 못하여 성세(城勢) 가장 급한지라. 어찌할 수 없어 옥쇄를 목에 걸고 항서를 손에 들고 항복하려 나오더라.
이대봉전 권지하라
각설 이때에 대봉이 산상(山上)에서 그 거동을 보고 분기충천하여, 월각 투구에 용인갑을 입고 청룡도를 높이 들고, 비룡(飛龍) 마상(馬上)에 번듯 올라 봉의 눈을 부릅뜨고 천둥 같은 소리를 지르며 워치기를,
“반적(叛賊) 묵특은 빨리 나와 내 날랜 칼을 받으라.”
하는 소리에 적진 장졸이 넋을 잃어 항오(行伍)를 분별치 못하더라. 묵특이 이 말을 듣고 분기충천하여 대호(大呼)하기를,
“네 이름 없는 적장수야. 천위(天威)를 모르고 큰 말을 하느냐.”
하며 서로 싸워 일합(一合)이 못되어 대봉의 청룡도 날랜 칼이 중천(中天)에 번듯하며, 묵특의 머리 검광(劍光) 좇아 마하(馬下)에 떨어지거늘, 대봉이 대호하며 묵특의 머리를 칼끝에 꿰어 들고 적진 중에 횡행하며 좌충우돌하다가 본진으로 돌아오더라.
이때에 천자 세궁(勢窮) 역진(力盡)하여, 옥새를 목에 걸고 항서를 손에 들고 용포(龍袍)를 벗고 미복(微服)으로 나오더니, 난데없는 일원 대장이 묵특의 목을 베어들고 나는 듯이 본진으로 들어오더니, 말에서 내려 황상 전에 호천(呼天) 통곡하며 복지 주하기를,
“소장(小將)은 기주 땅 모란동 거하던 전시랑 이익의 아들 대봉이옵더니, 불행하여 폐하께 득죄(得罪)하여 원방(遠方)에 내치시매, 중로(中路) 강상(江上)에서 사공 놈의 해(害)를 입어, 부자 물에 빠져 애비는 해중(海中)에 죽삽고, 소신은 천행으로 살아나서 천축국 금화산 백운암 부처 중을 만나 칠 년을 의지하옵더니, 약간 지략을 배워 세월을 보내옵더니, 이때를 당하여 폐하를 도와 사직을 안보하옵고, 간신을 물리치고, 소신의 애비 모해(謀害)하던 소인을 잡아 평생 원수를 갚고, 조정을 밝혀 사해를 평정하고자 왔사오니, 복원 폐하는 과도히 슬퍼마옵소서.”
하거늘, 상이 대봉의 손을 잡고,
“짐이 불명하여 소인에 말로써 충의(忠義) 대신을 원찬(遠竄)하고, 소인을 가까이 하여 국가 분분(紛紛)하되, 사직을 받들 신하 없어 태평과(太平科)를 보이더니, 마침 장해운을 얻어 짐에 뜻을 이루더니, 국운이 불행하고 짐에 덕이 없어 각처 도적이 강성하매, 남(南) 선우(單于) 반(叛)하여 백만 대병을 거느려 변방에 범하여 백성을 노략하기로, 해운으로 상장(上將)을 삼아 군병을 거느려 수만 리 남선(南單)을 보냈더니 승전하고, 또 선우를 쫓아 교지국(交阯國)을 갔으니, 조정에 명장이 없고 지모(智謀) 재사(才士) 없어 근심하더니, 또 북 흉노 강성하여 강병을 거느려 치매, 능히 당할 자가 없어 도적에게 사직을 앗기고, 장안을 버리고 금릉으로 피하였더니, 적병이 금릉을 엄살하기로 양성으로 피하였더니, 또 양성을 범하매 견지지 못하고 이곳으로 피하였더니, 각처 제후 중에 해남 절도사 일지군(一枝軍)을 거느려 오고 양성 태수 삼천군을 거느려 능주로 오더니, 자사 일군(一軍)을 거느려 와 합세하여 성중에 들어와 성문을 굳게 닫고 군사로 수성(守城)하더니, 흉노 대군을 몰아 성중에 들어와 종묘에 불을 놓고, 자칭 천자라 하고 백관을 호령하며, 대군을 보내어 능주성을 에워싸고 화약 염초를 준비하여 성지를 파하고자 하니, 그 세를 당치 못하고 어여쁜 인생이 가련하기 항서를 쓰고 옥새를 전수(傳授)하여 억조창생을 건질까 하여 나오더니, 명천(明天)이 도와 그대를 대명(大明)에 내옵시매, 이같이 급한 때를 당하여 짐의 쇠진(衰盡)한 명(命)을 구원하니 천지 다시 명랑(明朗)이라.”
하시며, 손을 잡고 들어가 장대(將臺)에 앉히고 가로되,
“장군이 짐을 도와 천하를 평정 후에 사정(私情)이 많을지라.”
하시고 무류(無流)하심을 마지아니하시니, 대봉이 복지 주하기를,
“금자(今者) 사세(事勢) 위급하오니 폐하는 진정하옵소서. 소장이 비록 재조 없사오나 힘을 다하여 폐하를 도와 평정하고, 사직을 안보 후에 소장에 원한을 풀고자 하오니 복원 황상은 옥체(玉體)를 안보하여 소장의 장략(將略)을 보옵소서.”
하니 상이 못내 기뻐하시고 중군(中軍)에 분부하여 칠성단(七星壇)을 높이 무어 방위(方位)를 정제(整齊)하고, 천자 대봉에 손을 잡고 대상(臺上)에 올라 하늘께 제사하고 대봉을 봉작(封爵)하실새, 대명국 대원수 겸 충의대장 병마도총독 겸 충의행원후 상장군에 봉하시고, 황금 인수(印綬)와 대장 절월(節鉞)이며 봉작 첩지(牒紙)를 동봉하여 전수(傳受)하시고 이르기를,
“짐의 불명을 허물치 말고 충성을 다하여 사해를 평정 후에, 천하를 반분(半分)하리라.”
하시거늘 원수 천은을 축사(祝辭)하여 고두(叩頭) 사례하고, 장대에 나와 제장 군졸을 점고하니 피병(疲兵) 장졸이 불과 삼백이라.
원수 중군장(中軍長) 장원을 불러 분부하되,
“진중에 장수 없고 군사 잔약(孱弱)하니 너희는 방위(防衛)를 정제(整齊)하고 항오(行伍)를 잃지 말라. 흉노에 억만 대병이 구산(丘山)같이 쌓였으나, 내 능히 당적(當敵)하리니 장졸을 요동치 말라.”
하시고 진법(陳法)을 시험할새 동방청기(東方靑旗) 칠면(七面)에는 각항저방신미기(角亢氐房心尾箕)을 응하고, 남방적기(南方赤旗) 칠면에는 두우여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을 응하고, 서방백기(西方白旗) 칠면에는 규루위묘필자삼(奎婁胃昴畢觜參)을 응하고, 북방흑기(北方黑旗) 칠면에는 정귀유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을 응하고, 중앙에는 황신기(黃神旗)를 세워 오방(五方) 기치(旗幟)를 방위에 나열(羅列)하니, 이는 제갈무후(諸葛武侯) 팔진(八陣)이라. 진세(陣勢)를 살펴보니 귀신도 칭양(稱揚)치 못할레라.
이때 흉노 장대에 높이 앉아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며 항복을 재촉하더니, 문득 우레 같은 소리가 천둥같이 들리거늘 살펴보니, 일원 대장이 월각 투구를 쓰고 용인갑을 입고, 우수에 청룡도를 들고 봉의 눈을 부릅뜨고, 좌수에 채를 들어 오추마를 비껴 타고 들어오니, 위엄이 상설(霜雪)같고 소리가 웅장하여 강산이 무너지는 듯하고, 단산(丹山) 맹호(猛虎) 장(杖)을 치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달려들어 호통 일성에 선봉장 묵특을 베어 들고 선봉을 짓쳐 성중(城中)에 들거늘, 흉노 대경하여 제장을 모아 의논하기를,
“그 장수 용맹을 보니 범상한 장수 아니라. 사람은 천신 같고 말은 보니 오추마요, 칼을 보니 청룡도라. 분명한 명장이라. 경적(輕敵)하지 못하리라.”
하고 팔십만 병을 일시 나열하여, 내외 음양진(陰陽陣)을 치고, 목탁으로 선봉을 정하고, 통달로 우선봉을 삼고, 달수로 좌선봉을 삼고, 돌통으로 후군장을 삼고, 맹통으로 군사마를 삼아, 군위를 정제하고 진문(陣門)에 기를 세우고, 흉노 친히 중군이 되어 싸움을 돋우더라.
이때 대원수 진세를 베풀고 적진 형세를 살피더니, 흉노 특탁으로 장안을 지키고 제가 자칭 중군이 되어 장대에 높이 앉아 싸움을 돋우거늘, 원수 응성(應城) 출마(出馬)하여 진전(陣前)에 나서며 고성 대질(大叱)하기를,
“개 같은 오랑캐야. 네 천위를 범하여 시절을 요란케 하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요, 황제를 진욕(眞慾)하고 자칭 천자라 하니, 일천지하(一天之下)에 어디 천자 둘이 있으리오. 내 하늘께 명을 받아 너 같은 반적을 소멸할 것이거늘, 네 만일 두렵거든 빨리 나와 항복하고, 그렇지 아니 하거든 빨리 나와 대적하라.”
흉노 통달을 불러 대전하라 하니, 통달이 내달아 웨여 이르기를,
“어린 아이 대봉아, 네 천시(天時)를 모르는 도다. 불행하여 우리 선봉이 죽었거니와 네 청춘이 아깝도다.”
하며 달려들거늘, 원수 분노하여 적장을 취할새, 반합(半合)이 못되어 고함 소리 진동하머 청룡도 번듯하며 통달의 머리를 베어들고 좌충우돌하니, 군사 주검이 묘 같더라. 칼끝에 꿰어 적진에 던져 이르기를,
“반적 흉노야. 네 어이 살기를 바랄소냐. 빨리 나와 죽기를 대령하라.”
호령 소리 천둥같이 지르며 선봉을 짓치거늘, 흉노 대경하여 돌통으로 대적하라 하고, 맹통 동철 동기 등 팔장(八將)을 명하여 접응(接應)하라 하니, 이때 원수 선봉을 짓치다가 바라보니 적장 돌통이 팔장을 거느려 나오며 웨어 이르기를,
“네 무슨 용맹이 넉넉하뇨. 만일 부족하거든 항복하라.”
하거늘 원수 대노하여 필마(匹馬) 단창(短槍)으로 달려들어 접전할 제, 천자 군사를 거느려 싸움을 구경하시고, 양진(兩陣) 군사 대전(對戰)하는 구경이 처음이라.
서로 다투어 보더니, 명진(明陣) 대원수 호장 구인(九人)을 맞아 싸우는데, 월각 투구 용인갑은 일광을 희롱하고, 엄장(嚴壯)한 청룡도는 동천(東天)에 번듯하며 백호(白虎)를 베고, 서천(西天)에 번듯하며 청룡(靑龍)을 베고, 남에 번듯 현무(玄武)를 베고, 북에 번듯 주작(朱雀)을 베고, 청룡도 날랜 검광(劍光) 수정후(壽亭侯)가 쓸 제 형주성에 빛나더니, 차래(此來) 대봉 수(授)하여 갱파(更破) 청룡도라. 원수에 날랜 영풍(英風) 상설(霜雪) 같은 청룡도를 우수에 비껴들고 오추마 높이 타고 군중(軍中)에 닫는 양은, 동해 청룡이 구름 속에 구멍을 내는 듯, 사정없는 청룡도 중천에 번듯, 호적이 쓰러지니 번개같이 날랜 칼은 능주성에 빛이 난다.
이십여 합에 이르러, 중군(中軍)으로 가는 듯 선봉장 돌통을 베어 들고 팔장을 당적하니, 팔장이 능히 당하지 못할 줄 알고 본진으로 닫고자 하더니, 원수 고성으로 이르기를,
“무지(無知)한 적장은 닫지 말라. 내 너희를 아끼고자 하여 오장(五將)을 먼저 베었더니 종시 항복하지 아니하니 분하도다.”
하며 달려드니 노선 동기 등 사장이 맞아 싸우더니, 청룡도 번듯하며 노선의 머리를 베어 본진에 던지고, 좌편으로 가는 듯 동기 등 삼장을 베어 본진에 던지고, 선봉진에 달려들어 군사를 무찌르니, 구시월 나뭇잎이 상풍(霜楓)을 만나 떨어지듯 유혈(流血)이 성천(成川)이라.
흉노 대경하여 맹통 동철로 대적하라 하니, 두 장수 잇달아 접전할 제, 검광은 일공을 희롱하고 말굽은 분분하여, 삼장의 고함 소리 군졸이 넋을 잃고 항오를 분별치 못하더니, 원수 말 석(席)을 채쳐 공중에 솟더니, 청룡도 번듯하며 양장에 머리 검광에 싸여 떨어지니, 원수 승기 등등하여 동서로 충돌하며,
“적장은 얼마나 남았거든 깊이 나와 대수對酬하라.”
웨는 소리 진동하니, 또 흉노 제장을 호령하여 진세를 더욱 굳게 하고, 봉선 봉조 맹주 영인 등 팔장을 급히 불러,
“정병(精兵) 삼십만과 철기(鐵騎) 십오만을 거느려 군사로 합세(合勢)하여 명진 대원수를 잡아 내 분(憤)을 풀게 하라.”
팔장이 청령(聽令)하고 군사를 파열(擺列)하여 사방으로 둘러쳐 들어오며 명진(明陣)을 겁칙하고자 하거늘, 원수 이때 본진에 돌아가 잠깐 쉬더니 적병이 물밀듯 들어오거늘, 원수 대노하여 이르기를,
“내 결단코 흉노를 사로잡아 황상에 분을 씻으리라.”
하고 노기(怒氣) 등천(登天)하여 월각 투구 용인갑을 다스리고, 봉의 눈을 부릅뜨고, 청룡도를 빗겨들고 오추마 상(上) 번듯 올라 진문 밖에 나서니, 적장이 웨는 말이
“명제야. 네 항복함이 옳거든 조그마한 아이 대봉을 얻어 우리 대세를 모르고 범람(汎濫)히 침범(侵犯)하냐. 우리 진중 무명색(無名色)한 장수 십여 명을 죽이고 승전을 자랑하니 가히 우습도다.”
하며,
“명진 상장군 대봉아. 빨리 나와 대적하라. 만일 겁나거든 말에서 내려 항복하여 죽기를 면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빨리 나와 죽기를 재촉하라.”
하며 물밀듯 들어오거늘, 이 날 원수 분기탱천(憤氣撑天)하여 필마 단창으로 말 석을 채쳐 적진에 달려들어, 팔장으로 더불어 대전하여 상진상퇴(相進相退) 오십여 합에 불결(不結) 승부(勝負)레라.
원수 노기(怒氣) 등등하여 호통을 천둥같이 지르고, 청룡도 높이 들어 전면(前面)을 무찌르니, 팔장이 일시에 달려들거늘, 원수 적진에 돌출(突出)하여 청룡도 번듯하더니,
봉선 맹주 양장의 머리 마하(馬下)에 내려지거늘, 또 뒤로 가는 듯 앞으로 번듯 검광이 일어나며 적장에 머리 칼빛 좇아 떨어지고, 좌편에 번듯 우편에 나며 검광이 어려 봉주를 베고 앞으로 번듯 뒤로 나며 영인을 베어 들고, 중진에 번듯 동으로 나며 문영 문수 양장을 베고, 적진 장졸을 쌓인 풀 뿌리듯 짓쳐 횡행하니,
초(楚)나라 항(項) 장군이 팔천 제자 거느리고 도강(渡江)에서 건너 와서 함곡관(函谷關)을 부수는 듯, 상산(常山)땅 조자룡(趙子龍)이 장판교(張判橋) 대교(大橋) 중(中)에 삼국 청병(請兵) 짓치는 듯, 흉노의 백만 대병 항오를 분별치 못하거늘, 청룡도 날랜 검광 중천에 어려 있고 오추마 닫는 앞에 대적할 자 뉘 있으랴.
뇌성 같은 호통 소리 청천에 상응하며 좌충우돌 횡행하니, 적군이 황겁하여 검광조차 싫어지니, 비하건대 청천에 어린 흑운(黑雲) 바람결에 몰리는 듯하더라.
중군에 달려드니 흉노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장안으로 도망하거늘 뒤를 쫓아 충살(衝殺)하니 흉노의 백만 병이 호전주퇴(壺顚酒頹) 되었구나. 오추마 닫는 곳에 적진 장졸의 머리 검광 좇아 떨어지니, 이르건대 구월 강산 두른 초목 상풍(霜風) 불어 낙엽진 듯 적시(積屍) 여산(如山) 가련하다. 흐르나니 유혈(流血)이라. 유혈이 성천하니 무릉도원 홍유수(紅流水)라. 강포(强暴)한 저 흉적(凶賊)은 강포도 쓸데없고 백만 대병 무용(無用)이라. 단초(斷礎)롭다. 원수 행장(行狀) 필마(匹馬) 단창(短槍) 못 당하고 포악한 저 도적이 의기양양 강성(强盛)터니, 명천이 도우시사 대명(大明) 회복(回復) 반갑도다. 군민의 노래로다.
이때 호장 특탁이 도성을 지키더니 흉노의 급한 성세(成勢)를 보고 군병을 총독(總督)하여 장졸을 합세하여 백사장에 진을 치고, 원수를 대적하려 하니 진개(塵芥) 강병은 호적(胡狄)일레라.
이때 원수 적군을 물리치고 본진에 돌아오니, 천자 대하(臺下)에 내려 원수에 손을 잡고 즐기며 못내 사랑하시고, 제장 군졸이 백배 사례하며 무수히 즐기고 송덕하거늘, 원수 이르기를,
“도적이 멀리 아니 갔으니, 적진에 가 군장(軍裝) 기계(器械)를 거두어 본진 병기(兵器)와 합하라.”
하시고 중군을 불러
“너는 제군 장졸을 총독하여 황상을 모시고 후군이 되어 내 뒤를 따르라. 내 필마 단검(短劍)으로 적진에 들어가, 장졸을 함몰하고 흉노를 사로잡아 황상의 분하심을 풀리라.”
하고 말을 채쳐 흉노를 쫓아 도성(都城)에 이르니, 도적이 십 리 평사(平沙)에 진을 치고 군호(軍號)를 엄숙하게 하거늘, 자세히 살펴보니 남은 군사 팔십여 만이라. 원수 승세(勝勢)하여 대호(大呼)하기를,
“반적 흉노야. 네 종시 항복하지 아니하고, 나와 더불어 자웅(雌雄)을 결단하고자 하니 분하도다.”
하고 청룡도를 높이 들고 용총마(龍驄馬) 상(上)에 번듯 올라, 우레 같이 호통하며 달려드니, 이때 적진 중에서 삼십육장이 합세하고 군사를 정제하여 원수를 에워싸고 좌우로 치거늘, 원수 대노하여 용맹을 떨쳐 청룡도 드는 칼로 적장 십여 원을 베고 진중에 달려들어 군사를 무찌르니, 적장이 달려들어 좌우로 에우거늘, 청룡도 번듯하며 적장 팔 원을 베어들고 교전 팔십여 합에 적장 삼십여 원을 베고, 또 중군에 달려드니, 한 장수 나와 맞거늘 일(一) 고성(高聲) 높은 소리 검광이 빗나더니 적장을 베어들고 사방을 충돌하니 사방에 원수 놓일레라.
오추마 함성 소리 검광 좇아 일어나고 원수에 호령 소리 중천에 진동하니, 제 아무리 강병인들 뉘 능히 당할 소냐. 장졸에 주검이 구산(丘山) 같이 싸여 있고 십 리 사장(沙場)에 피 흘러 모래를 물들이고, 남은 피는 말굽을 적시는데, 용인갑에 물든피는 소상강 대수풀에 세우(細雨) 맺혀 떨어진 듯 점점이 맺혔구나.
이때 흉노 성세 가장 급한지라. 약간 남은 장졸을 거느리고 사잇길로 도망하여 북으로 향하여 달아나더라. 가련하다. 흉노의 일백삼십만 병이 살아가는 자가 불과 삼천에 지나지 못할레라. 일검(一劍)으로 증당백만사(曾當百萬死)를 오늘날도 보리로다.
원수 적병을 파하고 군장 기계를 거두어 성에 들어가 천자를 모셔 환궁하고 백성을 안돈(安頓)하니, 성외 성내 백성들이 원수를 송덕하며 즐기더라.
이때 원수 제장을 모아 원문(轅門)에 호궤(犒饋)하고 탑전(榻前)에 들어가 수유(受由)하고, 기주에 내려가 살던 집을 찾아보니 고루거각(高樓巨閣)이 빈 터만 남았구나. 옛일을 생각하고 부모를 생각하니 소연(蕭然) 한심 절로 난다. 마상(馬上)에 내려 앉아 방성대곡 우는 말이,
“우리 부친 나라에 직간하다가 소인에 참소 만나 만 리 적소로 가는 길에 부자 동행 되었으니, 무도한 선인 놈의 해를 입어 천 리 해상 깊은 물에 부자 함께 빠졌더니, 대봉은 천행으로 용왕에 덕을 입어 살아나서, 천지 신령이 도우시사 대원수 상장이 되어 호적(胡狄)을 파하고 살던 집을 찾아오니 빈 터만 남았구나. 상전벽해(桑田碧海) 한다는 말이 날로 두고 이름이라. 가련하다. 우리 모친 집을 지켜 계시더니, 흉적에 난을 만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느 날에 만나 보리까.”
가슴을 두드리며 앙천(仰天) 통곡하고 황성으로 올라가 황제께 숙배(肅拜)하니 상이 대찬(大讚) 불이(不二)하시고, 궐내에 대연을 배설하여 원수 공을 못내 치사(致謝)하실새, 원수 고(告)하기를,
“차중(此中)에 승상 왕희 없나이까?”
하니 이때 왕희 자지기죄(自知其罪)하여 대하에 내려 복지 청죄(請罪)하거늘, 원수 대노하여 청룡도로 겨누면서,
“너는 나와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라. 당장에 죽일 것이로되, 흉노를 잡아 사해를 평정한 후에 죽일 것이니, 아직 용서하노라.”
하고 전옥(典獄)에 가두라 하고 상께 고하기를,
“흉노 비록 패하여 갔사오나 후환을 알지 못하니, 소장이 필마 단창으로 호국에 들어가 흉노를 잡아 후환이 없게 하오리다.”
하니 상이 대찬(大讚)하며 이르기를,
“원수는 곧 짐의 수족(手足)이라. 만일 가서 더디오면, 내 어찌 침식이 편하리오.”
하시니 원수 답하기를,
“수이 돌아와 폐하를 모실 것이니 과도히 근심치 마옵소서.”
하고 백관을 호령하여 황상을 편히 시위(侍衛)하라 당부하고 필마단창으로 만 리 호국을 가려 하니, 천자며 조정 백관이 노정(路程)에 나와 전송하며 만 리 중지(重地)에 무사히 돌아옴을 천만당부하시니 원수 사은(謝恩) 하직하고 발행하여 흉노를 쫓아 가니라.
각설 장원수 선척(船隻)을 준비하여 여러 날 만에 군사를 거느려 교지국(交阯國)에 들어 가니라. 이때 선우 본국에 들어와, 남만(南蠻) 오국(吳國)에 청병(請兵) 패문(牌文)을 보내고 군사를 다시 정제하더니, 뜻밖에 명국 대원수 대병 팔십만을 거느려 들어오거늘, 선우 군을 거느려 막다가 당하지 못하매 항서(降書)와 예단(禮單)을 갖추어 성밖에 나와 항복하거늘 원수 대질(大叱)하기를,
“네 죄상을 논지(論旨)하면 죽여 마땅하나, 일은 항자(降者)는 불사(不死)라 하기로 십분 용서하노니, 차후(此後)는 범람(汎濫)한 뜻을 두지 말고 천자를 섬기라.”
항서와 예단을 받고, 선우 성중에 들어가 우양(牛羊)을 잡아 군사를 호궤(犒饋)하고, 중군에 분부하여 장졸을 편히 쉬라 하시고, 원수도 갑주(甲冑)를 벗고 수일 유련(留連)하신 후에, 일일은 원수 선우를 불러,
“내 이제 남만을 쳐 멸(滅)할 것이니, 그대는 나의 격서(檄書)를 남만 오국에 전하라.”
하시니 선우 청령하고, 즉시 장수 이 원(員)을 불러 오국에 보내니라.
이때 남만 오국이 선우에 패문을 보고, 유의(有意) 미결(未決)하던 차에 명국 대원수 교지국에 들어와 선우에 항복받고 격서를 보내거늘, 개탁하니 하였으되,
‘천(天) 조정(朝廷) 한림 겸 예부시랑 대원수 병마도총독 상장군은 황명을 받아 반적 선우를 항복받고 남만을 행하니, 만일 항복하여 천명을 순종치 아니하면 즉시 팔십만 대병을 거느려 거병공지(擧兵攻之) 할 것이니 즉시 답보(答報)하라.“
하였거늘 오국왕이 견필(見畢)에 선우를 원망하고, 각각 진공(珍貢) 예단(禮單)을 갖추고 항서를 써 사신을 교지국으로 보내어 항복하거늘, 원수 군위(軍威)를 배설하고 군사를 나열하여 내외(內外) 음양진(陰陽陣)을 치고 의갑(衣甲)을 선명하게 하고, 제장은 오방 기치 아래 각각 말을 타고 창검을 높이 들어 나는 듯이 세우고, 진문을 크게 열고 오국 사신을 입례(立禮)하여 전후사(前後事)를 문목(問目)하고 항서와 예단을 받으며 후대하여 보내니, 오국 사신이 돌아가 그 위엄을 각각 저의 왕께 주달하고 항복함을 다행으로 알더라.
이때 장원수 사오 삭(朔) 만에 교지국을 떠나 행군하여 여러 날 만에 남해에 이르러, 평사에 진을 치고 근읍 수령을 불러 우양을 잡아 군사를 호궤하라 하시니, 거행(擧行)이 서리 같더라. 이때 원수는 만 리 밖에 가 공을 세웠으되, 황성 소식을 어찌 알리오.
천자 대란(大亂) 만난 줄은 모르고, 선우와 남만 오국 항복 받은 승전 첩서(捷書)를 장문(狀文)하고 쉬더니, 일일은 생각하니,
‘이제 내 대공(大功)을 이루고 돌아간들 무슨 즐김이 있으리오. 부모 구몰(俱沒)하시고, 또 시부모와 낭군이 죽었으니 속절없이 유정(有情)한 세월을 무정(無情)히 보내리로다. 내 이제 올라가 원수(怨讎) 왕희와 군량관 진택열을 죽여 원수를 갚고, 벼슬을 갈고 심규(深閨)에 들어 후생(後生)에 부모와 낭군을 만나보리라.’
하고 생각하니,
‘낭군이 분명 수중 고혼(孤魂)이 되었도다.’
하고,
‘내 이곳에서 시부와 낭군에 혼백을 위로하리라.’
하고 생각하니 소연(蕭然) 한심 절로 난다.
‘위로 황상이 나를 여잔 줄 모르시고 제장 군졸도 모르거든, 무슨 비계(祕計)로써 남이 알지 못하게 가군(家君)의 혼백을 위로하리오.’
하고 심독(甚篤)히 생각하더니, 한 꾀를 생각하고 중군에 분부하기를,
“내 간밤에 한 꿈을 얻어 전생사(前生事)를 알았노라. 내 몸이 전생에 여자로서 낭군을 정한 바, 그 부모 나라에 직간(直諫)하다가 소인의 참소(讒訴)을 만나 적소(謫所)로 가다가 해상에 풍파를 만나 부자가 다 이 물에 빠져 죽었는지라. 내 성취(成娶)도 못하고 심규(深閨)에 늙어 죽었더니, 간밤에 꿈을 꾸더니, 그 낭군이 와서 ‘전생에 미혼지정(未婚之情)을 원수는 수고롭게 생각하지 말고, 여복으로 수륙제(水陸齊)를 지내어 생전(生前) 사후(死後) 맺힌 원혼을 풀어 달라.’ 하니 내 어찌 무심하리요. 수륙제를 지내어 비단 그 혼백뿐 아니라, 모든 충혼(忠魂)이 많으매 내 친히 여복(女服)을 입고 영위(靈位)를 배설(排設)하여 전생 설움을 풀리라.”
하니 제장 군졸이 다 신기하게 여겨 원수를 칭찬하고, 즉시 태수를 불러 제물을 제비(祭備)하라 하여, 강가에 나아가 십 리 사장에 백포장(白布帳) 둘러치고 영위를 배설할 제, 좌편에는 시랑(侍郞) 영위를 배설하고 우편에는 낭군 영위라. 두 영위를 배설하니, 모든 제장이 다 전고(前古)에 처음 보는 제사라 하고,
“우리 원수는 전세사(前世事)를 아시고, 전생(前生) 시부(媤父)와 전생 낭군을 생각하시니, 만고(萬古) 처음이라. 원수의 신기한 재조를 뉘 능히 알리오.”
하며 일군(一軍)이 다 두려하더라.
차시 원수 제전(祭典)을 갖추어 진설(陳設)할새, 어동육서(魚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 좌포우혜(左脯右醯) 방위 차려 진설하고, 지방(紙榜)으로 혼백을 삼고, 친히 축관(祝官)이 되어 제석(祭席)에 나아갈새, 제장을 분발(奮發)하여 오방 기치를 선명하게 하고, 좌우익장과 선봉 후군장을 불러,
“사방 장막 삼십 보 내에는 제장 군졸을 들지 못하게 하라.”
하고 구갑주(具甲胄) 벗어 놓고 여복을 차려, 소의(素衣) 소복(素服)으로 낭자(娘子)하고, 축문을 손에 들고 시랑 영위에 들어가 분향(焚香) 재배(再拜)하고 애곡(哀哭) 후에 궤좌(跪坐) 독축(讀祝)할새,
‘유세차(維歲次) 기축(己丑) 삼월 무진(戊辰) 삭(朔) 십오일 신사(辛巳)에, 효부(孝婦) 애황은 제전(祭典)을 갖추어 해상 고혼을 위로하오니 흠향(歆饗)하옵소서. 현고(顯考) 예부시랑 이모는 일월불거(日月不居) 소심외기(小心畏忌) 애모불녕(哀慕不寧) 불타기신(不惰其身) 근이(謹以) 청작서수(淸酌庶羞) 애천상사(哀薦祥事) 상향(尙響).’
하고 물러나와, 낭군 영위에 들어가 분향 재배하고 궤좌 독축할새,
‘유세차 기축 삼월 무진 삭 십오일 신사에 실인(失人) 장씨는 제전을 갖추어 낭군에 해상 고혼을 위로하오니 흠향하옵소서. 근이 청작서수 애천상사 상향.’
하고 축문을 읽은 후에 원수 자연(自然) 비창(悲愴)하여 옥수(玉手)로 가슴을 두드리며 방성 통곡하며 이르기를,
“인생이 여사직임(女事職任)이요 생즉양야(生則養爺)라. 음양(陰陽)이 달라 유현(幽顯)이 도수(徒手)이므로 왕불왕(往不往) 거불거(去不去)를 능히 알지 못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정곡(情曲)을 생각하니 정신이 비월(飛越)이라. 옛일을 사모하니 어찌 통분치 아니하리오. 부유(浮遊)같은 이 세상에 평초(萍草)같은 인생이라. 인생 부귀(富貴)는 일시의 변화라. 전후사를 생각하니 부귀도 뜻이 없고, 영귀(榮貴)함도 귀하지 않고, 삼생(三生) 가약(佳約) 중한 맹세 조물(造物)이 시기하고 귀신이 작해(作害)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 못 이루고, 천연(天然)이 끊어지고 유언(遺言)이 허사(虛事)되니 한심하다. 애황이는 종사(從祀) 무후(無後) 슬프도다. 봉황대상에 봉황유(鳳凰臺上鳳凰遊)러니, 봉거대공 강자류(鳳去臺空江自流)라. 천상에 놀던 봉황 금세(今世)에 내려와 봉(鳳)은 날고 황(凰)은 처져, 일신 부귀 극중(極重)한들 무슨 재미있다 하리. 창해에 돋는 달은 무한정(無限情)이 아닐런가. 명정(明淨) 월색(月色)은 삼경에 촛불 되어 안전(眼前) 수심(愁心) 즉발卽發)되고, 안전(眼前)에 보이는 게 모두다 수심(愁心)이라. 우리 황상 치국(治國) 조정(朝廷) 사직(社稷) 충신(忠臣) 뉘 길인고. 조정에 모든 백관 직신(直臣)은 원찬(遠竄)하고, 소인의 조정 되어 국사(國事) 가장 위태하더니, 천시(天時) 불행하매 남만(南蠻)을 평정(平定)하고 황상전(皇上殿)에 들어간들 일희일비(一喜一悲)뿐일지라. 폐하 전에 주달하고 우승상 왕희를 잡아내어 전후(前後) 수죄(受罪)한 연후(然後), 칠척검(七尺劍) 드는 칼로 왕희 놈에 간을 내어 씹은 후에, 육신(肉身)은 포육(脯肉) 떠서 충혼당에 배설하고, 석전제(釋奠祭)를 지낸 후에, 가련한 이내 신세 전후사를 황상전에 주달하고, 옛 의복을 갖춘 후에 부귀 영총(榮寵) 다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여년(餘年)을 보낼 적에, 일심으로 정성들여 생전(生前) 사후(死後)에 맺힌 원한을 후생(後生)에나 다시 만나 평생(平生) 동락(同樂)하오리라. 일심(一心) 정염(情炎) 하려거든 후생지(後生地)를 닦으리라.”
이렇듯이 통곡하니 좌우 제장과 만 군중이 낙루하며 하는 말이,
“우리 원수 장한 위풍, 부인으로 환착(換着)하니, 연연(戀戀)한 거동과 애연(哀然)한 모양이 진실로 요조숙녀(窈窕淑女)라.”
애원(哀怨)한 곡성(哭聲) 청천도 흐느끼고 강신(江神) 하백(河伯)도 슬퍼하며 초목금수도 다 슬퍼하는 듯하더라.
이때 원수 제를 파하고 장대(將臺)에 들어가 중군에 분부하여, 군졸을 호군(犒軍)하라 하며 제물을 많이 싸서 해중에 넣고 행군을 재촉하여 발행할새, 이때 원수 하수(河水)에 수륙제를 지낸단 소식이 낭자(狼藉)하여 근읍 백성들이 다투어 귀경하더니, 또 봉명암 중들이 구경 차(次)로 사오 명이 작반(作伴)하여 제사하는 구경을 하더니, 애원이 원수의 거동과 목성을 들으니, 자연 비창(悲愴)하고 망자도 또한 비창하여 자연 통곡하니, 슬픈 애원성(哀怨聲)이 강천(江川)에 낭자하거늘, 원수 들으시고 중군장을 불러 이르기를,
“저 어떠한 사람이 우는지 자상(仔詳)히 알아 드려라. 곡성이 장차 오래인 지라.” 하시니 중군장이 청령하고, 즉시 나아가 사실(事實)하니, 이는 봉명암 여승 등이라.
묻기를,
“너희는 무슨 소회(所懷)로 와서 군중(軍中)이 요란케 하고 우느냐?”
승(僧) 등(等)이 답하기를,
“소승 등은 본디 중이 아니라, 소승은 기주 장마동에 사옵더니, 금번 난중(亂中)에 피란(避亂)하여 중로(中路)에서 기주 모란동 이시랑댁 부인을 만나 서로 의지하여, 광대한 천지에 의탁(依託)이 무로(無路)하여, 성명을 갈고 부인 승명은 망자라 하고 소비 승명은 애원이라 하옵고, 전 한림학사 장모댁 시비 난향이로소이다.
중군장이 들어와 사연을 자상히 고하니, 원수 버선발로 장대에 뛰어 내려 진문을 열고 망자 애원을 들라 하니, 진중이 요란하며 들어오니, 과연 난향이 삭발하고 흑포(黑袍) 장삼(長衫)에 송낙을 쓰고 칠포(漆布) 바랑을 얽매고, 스승을 모시고 들어오거늘, 원수 난향에 손을 잡고 방성대곡하시니, 난향도 기절 통곡하고 망자도 낙루하고 일군이 또한 슬퍼하더라.
부인과 난향을 위로하여 장대에 들어가 예필(禮畢) 좌정 후에, 대강 말을 설화(說話)하고 즉시 분부하여 교자(轎子)를 갖추어 부인과 난향을 태우고, 즉시 행군하여 수삭 만에 형주에 다다라, 군사 오십 기를 명하여,
“부인과 난향을 기주 장미동으로 모셔두고 오라.”
하시며 난향을 불러 이르기를,
“수이 만나 볼 것이니 부인을 착실히 모시라.”
하시고 연연(戀戀)이 보내시니 제장이 묻기를,
“그게 다 뉘라 하시닛가?”
원수 이르기를,
“애원은 우리집 시비요, 그 부인은 이시랑 집 부인이라. 금번 난중에 피화(避禍)하여 산중에 들어가 중을 만나 삭발(削髮) 위승(僞僧)하였다. 그 집과 내 집은 세대(世代) 유전(留傳) 지친(至親)이라. 어찌 모시기를 배면(背面) 하리오.”
하시니 제장 군졸이 다 원수가 기주 사내인 줄 알고 문벌(門閥)을 짐작하니 무슨 의심이 있으리오.
차차 발행(發行)하여 황성으로 행군(行軍)하더라.
각설 이때 황제 두 원수 소식이 돈절(頓絕)하여 주야 침식이 불안하시더니, 일일은 장원수 장계를 올리거늘, 개탁하시니 승전 첩서며 선우에 항서와 오국왕의 항서를 동봉하고 받은 예단(禮單) 금백(金帛)을 드리거늘, 천자 대찬하기를,
“원수 한번 가매 적병을 파하고 선우를 사로잡고, 또 남만 오국을 항복받아 승전하고 온다 하였으니, 원수에 공을 어찌 다 말하리오.”
하시고 수이 돌아옴을 기다리며, 또 이원수 호국(胡國)에 들어간 후로 소식 없음을 더욱 근심하시더라.
이때 이원수 흉노를 쫓아 서릉 땅에 득달하니, 흉노 원수 옴을 보고 배를 타고 서릉도로 들어가거늘, 원수도 배를 타고 바로 쫓아 서릉에 들어가 일성 호통에 청룡도를 높이 들어 흉노 목을 치니 머리 마하(馬下)에 내려지거늘, 적군을 호령하니 일제히 항복하거늘, 원수 적군을 나입(拿入) 수죄(受罪)하고, 장수는 결곤(決棍) 삼십 도에 방출(放黜)하니, 적진 제장이 원수에 인후(仁厚)한 덕택을 송덕하며 물러가거늘, 이 날 원수 즉시 발행하여 황성으로 행할새,
대강(大江) 중류(中流)에 다다르니 대풍이 일어나며 벽파(碧波)가 드높고 풍랑이 도도하여 원수에 탄 배 바람을 따라 정처 없이 가더니, 수일 만에 한 곳에 당도하니 조그마한 섬이거늘, 자세히 살펴보니 괴이한 물건이 있는데, 온몸에 털이 나서 전신을 덮었으니 귀신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라. 무엇인 줄 알지 못할레라. 원수 배에 내려 언덕에 오르니 그것이 점점 가까이 와 곁에 앉으며 말을 하는데 성음(聲音)을 들으니 사람이라. 원수에게 묻기를,
“상공은 무슨 일로 험지(險地)에 오시니까?”
원수 답하기를,
“나는 중원(中原)에 살며 흉노에 난을 만나 도적을 쫓아 서릉도에 와, 잡고 돌아가는 길에 강상(江上)에서 풍랑을 만나 이곳에 왔거니와, 노인은 본디 이곳에 계시니까?”
그 노인이 원수에 음성을 듣고, 백수(白首)에 눈물이 비 오듯 하며 이르기를,
“나도 본디 중원사람으로 우연히 이곳에 들어와 적연(寂然) 고생 하옵더니, 이곳은 무인지경(無人之境)이라. 사고무인(四顧無人) 적막(寂寞)한데 비금(飛禽) 주수(走獸)도 없는지라. 고국 음성을 들으니 어찌 반갑지 아니 하리요. 일희일비로소이다.”
하며 통곡하거늘, 원수 또한 비창하여 낙루하며 답하기를,
“중원에 사옵시면, 어느 땅에 살았으며 성명은 뉘라 하시니까?”
노인이 답하기를,
“나는 기주 땅 모란동에 살던 이익이러니, 나라에 직간하다가 소인에 참소를 만나 만 리 적소(謫所)에 부자 동행하다가, 대해(大海) 중에서 사공 놈에 해를 보와 우리 부자 물에 빠졌더니, 천행으로 나는 용왕에 구함을 힘입어 살아나서 이곳에 와 산과(山果) 목실(木實)을 주워 먹고, 죽은 고기를 건져 먹으며, 장차 팔 년을 있나이다.”
하거늘 원수 다시 묻기를,
“일자(一子)를 두었다 하시니 이름이 무엇이니까?”
“자식 이름은 대봉이라. 십삼 세에 이별하였으니 금년에 이십일 세로소이다.”
대봉이 그제야 부친인 줄 정녕히 알고 복지 통곡하며 이르기를,
“과연 소자가 대봉이옵니다. 부친은 자식을 모르시나이까?”
시랑이 또한 대봉이란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며 달려들어 대봉에 목을 안고 뒹굴며 통곡하여 이르기를,
“대봉아 네가 죽어 영혼이야 살아 육신이냐? 이게 꿈이냐 생시냐? 꿈이거든 깨지 말고 혼이라도 함께 가자.”
이렇듯이 서로 붙들고 통곡하다가 부친을 위로하고 자상히 살펴보니, 부친에 얼굴이 터럭 속에 은은하고 애원한 인정(人情)이 성음에 나타나니, 이 아니 천륜(天倫)인가. 원수도 수중에 빠져 용왕에 구함을 입어 살아나서 백운암 들어가 공부하고 도사에 지위(知委)대로 하여 중원에 들어가 흉노군을 파하고 벼슬한 말을 이르고,
“흉노를 쫓아 서릉에 들어가 흉노를 잡고 가는 길에 명천이 도우시사, 우리 부자 상봉하니 천우신조(天佑神助)로소이다.”
하며 부자 서로 전후사를 설화(說話)하고 시랑과 원수, 부인 사생(死生)을 몰라 자탄(自歎)하고 장소저 출가(出嫁) 여부(與否)를 몰라 탄식하더라.
이때 이원수 부친을 위로하여 모시고 배를 재촉하여 중원으로 행하더니, 문득 강상에서 청의(靑衣) 동자(童子) 한 쌍이 일엽편주(一葉片舟)를 저어오더니, 시랑과 원수께 읍(揖)하거늘 자상히 살펴보니, 한 아이는 시랑을 구하던 동자요 하나는 공자를 구하던 동자라.
전일을 설화하며 은혜를 못내 치사하여 무수히 사례하니, 두 동자 배사(拜辭)하고 가로되,
“소동(小童) 등이 우리 대왕에 명을 받자와 장군을 모시려 왔사오니, 복원 장군은 수고를 생각하지 마옵시고 함께 가시기를 바라오니 깊이 생각하옵소서.”
원수 답하기를,
“용왕에 덕택과 동자 은혜 백골난망이라. 우리 부자 죽을 목숨이 용왕에 넓으신 덕을 입어 살았거늘 어찌 수고라 하시리오.”
하고 부친을 모시고 그 배에 올라 한 곳을 당도하니 일월이 조림(照臨)하고 천지 명랑하여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천공지활(天空地闊)한데 화각(畫閣) 단청(丹靑)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즐비한데, 황금 대자(大字)로 서해용궁이라 뚜렷이 써 붙였거늘, 궐문(闕門)에 당하니 용왕이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용포(龍袍)를 입고 마주 나와 맞을새, 수궁(水宮) 백관(百官) 백만인갑(百萬鱗甲)이며 청상홍상(靑裳紅裳) 시녀(侍女) 등이 옹위(擁衛)하고 나와, 시랑과 원수를 마자 옥탑(玉榻)에 모시고 예필(禮畢) 후에 용왕이 이르기를,
“과인(寡人)이 앉아 장군을 청하였으니 허물을 용서하소서.”
원수 이르기를,
“소장의 부자 잔명(殘命)이 대왕에 은덕을 입사와 보존하오니, 은혜 백골난망리라. 만분지일이나 어찌 갚기를 바라던 차에, 이다지 관대하시니 도리어 감사하여이다.”
용왕이 답하기를,
“과인(寡人)이 밝지 못하여 덕이 적사와 남해왕이 강병(强兵)을 거느리고 지경(地境)을 범하여 싸우니, 원컨대 장군은 한번 수고를 아끼지 마옵고 용맹을 떨쳐, 세궁역진(勢窮力盡)한 과인을 생각하실까 바라나이다.”
원수 답하기를,
“진세(塵世) 인생이 비록 용력(勇力)이 있다한들, 어찌 무궁(無窮) 조화 가진 남해 용왕을 당하리오만은, 힘을 다하여 대왕에 은덕을 만분지일이나 갚사오리다.”
용왕이 대희하여 즉시 원수로 대사마 대장군을 봉하여 대장 절월(節鉞)을 주거늘, 원수 즉시 월각(月脚) 투구에 용인갑(龍麟甲)을 입고 오추마(烏騅馬)를 빗겨 타고 청룡도를 높이 들고, 수궁 정병 팔십만을 거느려 전장에 나아갈새, 고각(鼓角) 함성은 천지진동하고 기치(旗幟) 창검(槍劍)은 일월을 희롱하더라.
서해 군사를 거나리고 남해 지경에 다다르니, 남왕이 이미 진을 쳤거늘 격서를 전하니 싸움을 청하거늘, 남진을 살펴보니 군사 진을 쳤거늘 원수는 어관진(魚貫陳) 쳐 승부를 결단할새, 용왕이 쌍룡(雙龍) 투구에 운문갑(雲紋甲)을 입고 천상검(天象劍)을 들고 교룡마(蛟龍馬)를 타고 진문에 나서며 웨어 이르기를,
“대명(大明) 대봉아. 네 무슨 재조를 믿고 감히 내 대병에 항거하고자 하느냐?”
하며 풍운을 부려 원수를 에워싸거늘, 원수 육경(六卿) 육갑(六甲)을 베풀어 남해진(南海陣)을 헤쳐 금쇄진(金鎖陣)을 파하고, 어관진을 들어 한번 북 쳐 남해 용왕의 군사를 물리치고, 우레 같은 소리를 천둥같이 지르고 월각투구 용인갑은 조화 속에 비쳐 있고 청룡도 오추마는 운무 중에 산란하니, 남해왕이 견디지 못하여 진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거늘, 원수 항서를 받아가지고 승전고를 울리며 서해로 돌아오니, 용왕이 마주나와 원수를 치사하며 원수 공을 사례하여 칭송을 마지아니하고 또 시랑도 못내 즐겨하시더라.
이튿날 용왕이 태평연(太平宴)을 배설하고 사자를 명하여 선관(仙官) 선녀(仙女)를 청하니, 선관 선녀와 모든 충신 열사(烈士) 일시에 들어와 동서에 분좌(分座)하고, 용왕 주석(主席)으로 좌정 후에 원수의 공을 자랑하거늘, 원수 또한 일어나 예필 후에 용왕께 답하기를,
“소장은 세상 사람으로 존석(尊席)에 참예(參預)하니 감격하거니와, 감히 묻잡노니 존석의 모든 선생의 존호(尊號)를 알아지이다.”
용왕이 이르기를,
“동편에 모든 선생은 안기생(安期生) 적송자(赤松子) 왕자진(王子晉) 굴원(屈原)이요, 서편에 모든 선녀는 항아(嫦娥) 직녀(織女) 서왕모(西王母) 농옥(弄玉)이요, 만고충신 오자서(伍子胥) 모든 충신이요, 저편에 앉은 손님 이태백(李太白) 여동빈(呂洞賓) 장건(張騫)이요, 이편에 앉은 손님 마고(麻姑)선녀 낙포선녀(洛浦仙女) 아황(蛾黃) 여영(女英) 모였도다.”
백옥병(白玉甁)을 기울여 술을 부어 서로 권하며 풍류(風流)를 배설할새, 왕자진의 봉피리며, 성련자(成蓮子)의 거문고와 적(笛)타고 취용적(吹龍笛)과 능파사(凌波詞) 보허사(步虛詞)와 우의곡(羽衣曲) 채련곡(採蓮曲)을 섞어 들어 노래하니 풍류도 장할시고.
오자서는 칼춤을 추며 국사 의논하고, 이태백은 술에 반취하여 접위관(接慰官)을 모로 쓰고 좌중에 꿇어 앉아 자칭 주중선(酒中仙)이라 하니, 좌중이 대소(大笑)하더라. 아황 여영은 남풍시(南風詩)를 희롱하니, 소상강(瀟湘江) 저문 날에 백학(白鶴)이 우짖는 듯 무산에 잔나비는 춘풍에 우는 듯하더라.
잔치를 파하고 각각 돌아갈새, 백로(白鷺) 탄 여동빈과 고래 탄 이적선(李謫仙) 사자 탄 갈선옹(葛仙翁), 적송자 구름 타고 청학(靑鶴) 탄 장려(張侶)는 비상천(飛上天)하는구나. 모든 선관 선녀 다 각기 원수에게 정(情)을 표할 제, 적송자는 옷을 주고 안기생은 대추를 주며 이르기를,
“이 과실이 비록 작으나 먹으면 낙치(落齒)가 부생(不生)하느니 가져 가소서.”
하고 왕자진은 단저(單箸)를 주고, 굴원은 책을 주고, 용녀(龍女)는 연적(硯滴)을 주고, 오자서는 병서를 주고, 농옥은 옥패(玉珮)를 주고, 이태백은 술을 주며,
“이 병이 비록 작으나 일일 삼백 배(杯)를 먹어도 마르지 아니하리라.”
하고, 항아는 계화(桂花) 일지(一枝)를 주고. 직녀는 수건 한 채를 주고, 아황 여영은 반죽(斑竹) 한 가지를 주고, 다 각각 작별하고 원수도 또한 나아가기를 청하니, 용왕이 만류하치 못하여 전송할새, 황금 오백 냥을 주거늘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아니하니, 야광주(夜光珠) 두 개를 주거늘 받아 행장(行裝)에 간수하고,
부친을 모시고 용궁을 떠나 궐문에 나오니 용왕이 백관을 거느려 노정에 나와 연연(戀戀)이 전별하니 그 정이 비할 데 없더라. 차차 발행하여 황성으로 올라오더라.
각설 이때 장원수 군사를 재촉하여 수삭 만에 황성에 득달하니, 상이 친히 백관을 거느려 노정에 영접(迎接)하니 원수 말에서 나려 복지하니, 황제 원수에 손을 잡고,
“원정(遠征)에 대공을 세우고 무사히 돌아오니 다행하도다.”
하시며 또 제장 군졸을 위로하시고 궐내로 들어갈 제 위의(威儀)도 장할시고. 원수는 의갑을 굳게 하고, 봉의 눈을 반만 뜨고, 칠척(七尺) 참사검(斬蛇劍) 비껴 들고, 제장은 차례로 시위하고, 기치창검 삼천병마 전후(前後)에 작렬(炸裂)하고 십장 홍모(十丈紅毛) 사명기(司命旗)는 한가운데 세우고, 승전고(勝戰鼓)와 행군고(行軍鼓)는 원근에 진동하니, 성외 성내 백성들이 다투어 구경하며 친척 찾아 부르면서 나오니 진개(眞個) 장관일레라.
궐문에 들어갈 제 군사를 유진(留陣)하고 궐내에 들어가니, 황제 원수를 위로하여 태평연을 배설하고 정서문에 황제 친히 좌정하시고 만군중(萬軍中)을 위로하며 이르기를,
“너희 등이 만 리 원정에 원수와 동고(同苦)하였으니, 짐이 어찌 무심하리오.”
하시며 주육(酒肉)을 많이 상사(償賜)하시며 어악(御樂)을 갖추어 태평곡(太平曲)을 부르며 원수를 송덕(頌德)하며 삼일을 연락(宴樂)하시더니
이때 이원수 부친을 모시고 여러 날 만에 성하(城下)에 이른지라. 만조백관과 일군(一群)이 놀래어 바라보니, 월각 투구에 용인갑을 입고 오추마 상 높이 앉아 청룡도를 빗겨 들고 표연히 들어오니, 위엄이 엄숙하고 거동이 웅장한지라. 필마 단창으로 오추마 날랜 걸음 순식간에 도성에 이르거늘, 황제와 백관이 대경 대희하여 일시에 영접하니, 연석(宴席)이 분주(奔走)하고 제장 군졸이 두려워하더라.
상이 친히 나아가시니, 이원수 마하에 나려 복지 청죄(聽罪) 이르기를,
“신이 범람(汎濫)히 무인(無人) 절도(絶島)에 죽게 된 애비를 봉명(奉命)없이 데리고 왔사오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로소이다.”
상이 원수의 손을 잡으시고 위로하며 이르기를,
“원수는 진정하라. 짐에 불명을 과도히 싫어 말고 그 부친을 함께 모셔 짐의 무류(無謬)함을 덜라.”
하시니, 이때 이시랑이 들어와 복지 통곡하며 이르기를,
“소신이 충심이 부족하여 황상을 지리(至理) 모셔 환난상고(患難相顧)를 못하오니, 어찌 신자(信者) 도리라 하오며 무슨 면목으로 황상을 대면하오리까.”
상이 시랑의 손을 잡으시고 위로하시며 연석(宴席)에 들어가, 상이 전교(傳敎)하사 두 원수를 찬성(贊成)하시고, 문무 제장을 봉작(封爵)하실새, 시랑으로 우승상을 봉하시고 가로되,
“한국(漢國)에 소무(蘇武)는 북해(北海) 상(上)에 절개를 지키더니, 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한무제(漢武帝)를 보았으니, 이제 승상도 그와 같도다.”
하시고,
“짐이 밝지 못하여 충신을 원찬(遠竄)하고 국변(國變)을 만나 사직(社稷)이 위태하게 되었더니, 원수를 만나 사직을 안보하고 호적(胡狄)을 파하고 짐을 환궁(還宮)하고, 또 호국에 들어가 흉노를 잡아 평정하고 짐에 근심을 없게 하니, 만고에 이런 충신은 드물지라.”
하시며 또 두 원수를 봉작하실새, 대봉으로 병부상서 겸 대사마 대장군을 삼아 초왕(楚王)을 봉하시고, 장원수로 예부상서 겸 연국공 연왕(燕王)을 봉하여 두 원수와 승상은 청향궁에 아직 거처하게 하시고, 출전 제장을 각각 봉작을 하사 원망이 없게 하고 군사들도 다 각기 첩지(牒紙)를 내리시고, 연호(宴犒) 잡벽(自辟)을 물침(勿侵)하시니, 승상과 두 왕이 천은(天恩)을 숙사(肅謝)하고 천양궁에서 물러나와 제장 군졸을 불러 귀가하라 하실새, 성은을 축사하며 원수에 공덕을 일컫고 상호 만세를 부르고 각기 돌아간 후에, 상이 대연을 배설하고 만조백관을 모아 종일 즐긴 후에,
황제 가로되,
“짐이 두 공주를 두었으되, 하나는 화양공주니 연(年)이 십팔 세요, 또 하나는 화평공주니 연이 십육 세라. 부마(駙馬)를 정하고자 하여 주야 근심하더니, 이때를 당하여 두 왕(王)의 사정(事情)을 보니 미혼전(未婚前)이라. 화양공주로 초왕의 비(妃)를 정하고, 화평공주로 연왕의 비를 정하여 짐의 뜻을 이루고자 하니, 경등 소위(所謂)가 어떠하뇨?”
조정이 다 즐거워하고, 승상과 초왕은 천은(天恩)을 사례하여 이르기를,
“소신이 무슨 공덕으로 봉작(封爵) 왕명(王名)도 지중(至重)하옵거늘, 겸하여 공주 부마를 택정(擇定)하시니 황공 감사하여이다.”
하며 성은을 못내 사례하고 연왕은 복지 주하기를,
“신은 물러가와 황상께 아뢸 사정이 있사오니, 아직 용서하옵소서.”
하고 처소로 물러나와 생각하니 분기(憤氣) 창천(漲天)하여 울기를 참지 못하고 칼을 빼어 서안(書案)을 처 문밖에 내치고 전후사를 생각하니,
‘조정 대신이 일반 풍열(風烈)이요, 내 또한 벼슬이 과도하매 몸에 불가(不可)하여, 벼슬을 갈고 고향에 돌아가 심규(深閨)를 지켜 향화(香火)를 받들고, 원수 왕희를 죽여 분을 풀고자 하였더니, 천만 의외에 공주 부마를 의논하시니 내 사정 절박하다. 내 생각하건대 승상과 초왕이 시부와 가군인 줄을 대강 짐작은 있었더니, 금일로 볼진대 정녕(丁寧)한 줄 알았으되, 왕희 진택열을 내 칼로 죽인 후에 사정을 아뢸까 하였더니 내 아니고도 죽일 임자 있도다.’
하고, 즉시 상소를 지어 탑전(榻前)에 올리니, 그 상소에 하였으되,
“한림 겸 예부상서 연국공 연왕은 근(近) 돈수백배(敦壽百拜)하옵고 일장(一場) 글월로써 상언(上言) 우(又) 폐하전(陛下前) 하나이다. 신이 본디 원한이 깊사와 예화(禮化) 외람(猥濫)하여, 위로 황상을 속이고 아래로 백관을 속여 천은이 망극하여 한림에 처하옵더니, 뜻밖에 외적이 강성하여 조정 물망(物望)으로 외람히 상장군 절월(節鉞)과 대원수 인신(印信)을 받자와, 전장에 나아가 반적을 잡고 백성을 진무(鎭撫)하여 돌아옵기는, 황상에 넓으신 덕택을 입거니와, 신첩(臣妾)의 본정(本正)을 일찍 주달(奏達)하여 벼슬을 갈고 고향에 돌아가 심규를 지켜 세상 마치는 날까지 향화를 받들고자 하되, 우승상 왕희를 죽여 원수를 갚고자 함은, 이시랑 부자가 죽은 원수와 신첩의 부모 구몰함을 한탄하였삽더니, 금일로 볼진대 명천(明天)이 도우시사 승상 부자 살아왔사오니, 신첩의 평생 소원을 풀까 하오니, 복원 황상은 신첩에 사정을 살피사, 초왕 대봉과 신첩으로 하여금 평생 소원을 풀고 무궁지락(無窮之樂)을 이루게 하심을 천만 복축(伏祝)하오니다.”
하였거늘, 상이 견필(見畢)에 대경 대찬(大讚)하여 이르기를,
“만고에 드물도다. 새 중에 봉황새요 여중(女中)에 호걸(豪傑)이로다. 여자 몸이 되어 남복을 환착(換着)하고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조석(朝夕)으로 짐을 섬기다가, 남만을 소멸하고 대공을 이루고 돌아오매, 그 공으로 봉작을 아끼지 아니하였더니, 금일 상소를 보니 충효를 겸전(兼全)하였도다.”
하시고 즉시 초왕 대봉을 입시(入侍)하여 연왕의 상소를 보라 하시니, 승상과 초왕이 견필에 대경 대희하여 이르기를,
“전 한림 장화와 정(情)에 비밀(秘密)하옵더니, 피차 자녀를 낳으매 장성하거든 성례하자 하였더니, 죄(罪) 중(重)하여 황명을 받자와 사기(事機) 지체(遲滯)하오매, 그간 사생(死生)을 알지 못하온 중에 어찌 또 이같이 장성함을 아오리까. 금일로 볼진대, 이 모두 황상의 넓으신 덕택인가 하나이다.”
상이 가로되,
“초왕의 이름은 대봉이요, 연왕에 이름은 애황이라 하니, 이는 반드시 옥제(玉帝) 짐의 사직을 받들게 하사 봉황을 주심이라.”
하시고 예관(禮官)을 명하여 연왕의 첩지와 예부상서 첩지는 거두고, 다른 벼슬은 윤허(允許)하시고, 상이 친히 신녀(臣女)를 명하여 매파를 삼고, 태사관(太史官)으로 택일(擇日)하여 어전(御殿)에서 주혼(主婚)하사, 대봉 애황의 혼사를 이루실새 위의(威儀)도 찬란하다. 침(寢) 행궁(行宮)을 수리하고, 구름 같은 차일(遮日)은 반공에 높이 치고, 궁내에 교배석(交拜席)을 배설하고, 삼천 궁녀 시위하고 만조백관 어거(馭車)하니 이러한 위엄은 천고에 처음이로다.
초왕이 교배석에 나오는데, 몸에는 청룡 일월 황룡포(黃龍袍)를 입고, 봉(鳳)의 학대(鶴帶)요, 머리에는 금관(金冠)을 쓰고 요하(腰下)에는 원수 인신과 상장군 절월이며 병마대원수 인신을 차고 교배석에 나오시니, 또 신부가 나오는데, 칠보(七寶) 단장(丹粧)에 명월패(明月牌)를 차고, 머리에는 금화관(錦花冠)을 쓰고 요(腰)상(上)에 대원수 인신과 병마 상장군 절월을 띠고, 채의(彩衣) 궁녀는 좌우로 모셨으니, 남해 관음(觀音)이 해중에 돋는 듯 뚜렷한 일윤명월(一輪明月)이 부상(扶桑)에 돋는 듯, 월태화용(月態花容)이 사람의 정신에 비치는지라.
신랑신부 치연(治宴)할새 황금호(黃金壺)를 들어 상음(相飮)하니 비취(翡翠) 공작(孔雀)이 연리지에 길들인 듯하고, 원앙이 녹수(綠樹)를 만난 형상이로다.
다 대례(大禮)를 마친 후에 일모(日暮)하매 제위(諸位) 대신이 다 각기 처소로 돌아가고 신랑신부는 동방(洞房)으로 들어갈새, 수백 궁녀로 밤이 맞도록 시위(侍衛)하고, 동방화촉(洞房華燭) 첫날밤에 신랑신부 평생 한을 풀더니, 사랑스럽고 즐겁고 신기함을 어찌 다 성언하리요.
원앙 비취지락(翡翠之樂)을 이루고, 밤을 지내매 초왕이 즉시 조복(朝服)을 갖추고 궐내에 들어가 황제께 숙배하니, 상이 즐겨하시고 가로되,
“짐이 경의 소회를 풀어 주었으니, 경도 짐에 바라는 바를 저버리지 말라.”
하시고,
“석일(昔日) 요녀(堯女) 순처(舜妻)도 그 형제 하나를 섬겼으니, 이제 짐도 그와 같이 하리라.”
하시고 초왕으로 부마를 정하시니, 초왕이 사양하치 못하고 물러나와 부친께 연유를 고하니 승상이 황은을 못내 사례하시고, 또 장부인이 시부께 예배(禮拜)하니, 승상이 일희일비하사 전사(前事)를 설화(說話)하실새, 장부인이 고하기를, 전일 하수(河水)에서 수제륙(水陸祭) 지내던 말이며, 시모(媤母)님을 모셔다가 장미동 시비 난향과 함께 계시게 한 사연을 아뢰기를, 승상이 대경대희 이르기를,
“이러한 일은 고금에 없는지라.”
하시고 즉시 초왕을 불러 사연을 말씀하시니, 초왕이 부인께 사례하고 즉일(卽日)로 금등(金燈) 옥교(玉轎)를 갖추어 침향궁 노비를 재촉하며 탑전에 들어가 차의(此意)를 주달(奏達)하고, 초왕 내외 기주 장미동으로 발행하여 수일 만에 득달하여 사당(祠堂)에 배알(拜謁)하고 모친을 모셔 서로 기루던 말이며 권권(拳拳)하는 정(情)을 어찌 다 성언(成言)하며, 장부인이 못내 슬퍼함을 어찌 기록하리오. 장한림댁 사당을 모시고 가정(家庭)을 거느려 황성에 올라와 승상께 뵈올새, 부인이 승상을 살펴보니 터럭이 어수선하여 알아보기 어렵도다. 승상은,
“부인이 머리를 깎았으니 알아보기 어렵도다.”
하며 피차 일희일비하는 양은 일구(一口)로 난설(難說)이라.
이때 황제 이 사연을 들으시고 승상으로 초국 태상왕을 봉하시고, 그 부인으로 정렬왕비를 봉하사, 보화(寶貨)를 많이 상사(償賜)하시니 성은을 감사하여 고두사례하고 물러나오니, 각기 처소를 정하시되 태상왕과 정열왕비는 숭례궁에 거처하라 하시고, 초왕과 충렬왕후는 침향궁에 거처하되, 신녀(臣女) 백 명으로 시위하라 하시고, 만종록(萬鍾祿)을 주시고, 부친 태상왕은 또 친국문후를 봉하사 만종록을 맡겨 하시니 초왕 부자 부귀 천하에 으뜸일레라.
이때 우승상 왕희를 초왕이 호국에 갈 때에 전옥(典獄)에 수금(囚擒)하였더니, 그간 일이 번거(飜擧)하매 수죄(受罪)치 못하였는지라. 초왕과 태상왕이 정서문에 전좌(殿座)하시고 왕희를 잡아내어 전후 죄목을 물은 후에 사공 십여 명을 잡아들여 낱낱이 수죄하고, 장안(長安) 대도(大道) 상에 웨어 이르기를,
“소인 왕희는 충신을 모해하여 적소로 보낼진대, 황명으로 가는 몸을 사공 놈과 동모(同謀)하여, 금은을 많이 주고 만경창파 깊은 물에 부자 한 데 결박하여 수중에 넣으라니, 무지한 필부(匹夫)들이 금은만 생각하고 인의(仁義)를 몰랐으니 살기를 바랄 소냐. 천명(天命)이 완전키로, 초왕 부자 살아나서 만종록을 받았거니와, 무지한 선인(船人) 놈의 용납하지 못할 죄를 조조(條條)히 생각하며 시각을 지체하라.”
자객(刺客)을 호령하여 장안 대도(大道) 상에 처참(處斬)하고, 왕희를 계하에 다시 꿇리고 초왕이 청룡도를 들어 왕희 목을 겨누며,
“원수 왕희 놈을 대칼에 베일 것이로되, 우리 부자 천행으로 살아나서 국은이 망극한지라. 황상에 넓으신 성덕을 생각하여 너도 우리 부자와 같이 원찬(遠竄)하니 황상의 은덕을 죽은 귀신이라도 잊지 말라.”
하시고 차의(此意)를 황제께 고하니, 상이 초왕의 인선(仁善)함을 칭찬하시더라. 왕희 부자를 절도(絶島)로 위리안치(圍籬安置)하고, 또 장원수 출전시(出戰時)에 병부상서 진택열로 군량관을 삼았더니, 자지기죄(自知其罪)하고 병석에 눕고 일어나지 아니하거늘, 군졸을 호령하여 진택열을 나입(拿入)하여 수죄(受罪)하며 이르기를,
“네 전일에 병부상서에 처하여 우승상 왕희 놈과 동류(同類)되여 국사를 산란케 하고, 충신을 원찬하고 소인의 화시(花時)가 되어 이간(離間)으로써 황상에 성덕을 가리고, 포악으로써 충신을 모함하여 죽이고, 난세를 당하매 사직을 안보치 못하니, 네 전일 충심 다 어디로 갔는가?”
하니 진택열이 답하기를,
“소신은 전일 지은 죄가 적지 아니하오나, 장원수를 모시고 만 리 원정에 근고(勤苦)한 정곡(情曲)이 있사오니, 복원 초왕은 용서하소서.”
초왕이 대질(大叱)하기를,
“너희 진가 놈을 조정에 두지 못하리라.”
하시며 이르기를,
“전일 환난지시(患難之時)에 네 사촌 병부시랑 진여 놈도 황상을 재촉하여, 흉노에게 항서를 올리라 하였으니, 차역(此亦) 반적지류(叛賊之類)라.”
하시고,
“너희를 일병(一竝) 처참할 것이로되, 황상의 넓으신 성덕을 생각하여 원악지(遠惡地) 정배(定配)하니 빨리 돌아가 적소(謫所)로 가라.”
하시며 진여를 나입하여 진택열과 일체(一體)로 정배하니, 조정 백관이며 인민이 다 초왕의 성덕을 칭송 아니하는 이 없더라.
이때 상이,
“초왕의 정사(政事)를 보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하시고 두 공주로서 부마를 정할새, 일관(日官)으로 택일하니 춘삼월 망일(望日)이라. 궁내에 대연을 배설하고 초왕으로 더불어 성례(聖禮)하신다 하니, 왕후 못내 즐거워 하시더라.
길일(吉日)이 당하매 초왕은 금포(錦袍) 옥대(玉帶)에 용문포(龍門浦)를 두르고 금관(金冠) 조복(朝服)으로 교배석에 나아가고, 두 공주는 녹의홍상(綠衣紅裳)에 채복(綵服) 단장(丹粧)에 명월(明月) 옥패(玉珮)를 차고 삼천궁녀 옹위하여 나오는 거동은, 북두칠성의 좌우 보필(輔弼)이 갈라 섰는 듯 금의(錦衣) 화복(花複)은 일광을 희롱하고, 두 공주 화용월태는 원근에 쏘이는구나.
황금호를 들어 대례를 마친 후에 일락(日落) 함지(咸池) 황혼(黃昏)되고, 숙조(宿鳥)는 투림시(投林時)에 동방화촉에 원앙 비취지락을 이루었으니, 이도 역시 천정(天定)인가 하노라.
이때 황제 초왕을 입시(入侍)하사 가로되,
“경이 이제는 짐에 부마요 또한 초왕이 된 지 오래라. 어찌 남의 나라 임금이 되어 장구(長久)히 짐에 슬하를 떠나지 아니하리오.”
하시고,
“즉시 치행(治行) 차려 초국(楚國)에 들어가 민정(民情)을 살펴 만세(萬世) 유전(遺傳)하라.”
하시고, 즉일(卽日)에 두 공주를 치행할새, 화양공주로 숙열왕비를 봉하시고, 화평공주로 정안왕비를 봉하사, 금백 채단을 많이 상사하시고, 황제와 황후 못내 연연하시며 십 리 밖에 나와 전송하시며,
“춘추(春秋)로 조회(朝會)하라.”
하시니, 초왕과 태상왕이 고두 사은하고 초국으로 행할새, 기주에 내려가 양가(兩家) 선산(先山)에 소분(掃墳)하고 떠날새, 충렬왕후 초왕께 고하기를,
“전일 신첩(臣妾)이 여남 최어사 집 부인에게 피화(被禍)하였나이다.”
삼 년을 애휼(愛恤)하시며 사랑하시던 정곡(情曲)과 소저로 더불어 의논하시던 말씀을 낱낱이 고하니, 초왕이 듣고 못내 사랑하며 최어사 댁으로 선문(先文) 놓고 부인과 함께로 들어가니 황황분주한 중에 못내 반겨하시더라.
전후사를 설화(說話)하고, 초왕이 최소저와 더불어 길일(吉日)을 가려 성례하니 이도 또한 천정(天定)이라. 원앙지락(鴛鴦之樂)을 이룬 후에, 수일을 유(留)하여 그 선산에 소분 하직하고, 어사댁 가정을 수습하여 여러 날 만에 초국에 득달하니, 조정 백관이며 제장 군졸이 노정에 나와 영접하여, 궁중에 들어가 각기 처소를 정하고, 최씨 태상왕과 태상왕비께 뵈오되, 못내 사랑하시고 두 공주께 뵈오니 또한 사랑하시더라.
초왕이 전좌(殿座)하시고 군신 조회(朝會)를 받은 후에 국사를 의논하실새, 도총장(都總將)을 불러 이르기를,
“군병이 얼마나 하는가?”
주하기를,
“대갑(大甲)이 삼십 만이요, 정병이 사십 만이요, 철기가 삼십 만이요, 궁뇌 군이 이십 만이오니, 합하오면 일백이십 만이라 하나이다.”
또 묻기를,
“군량과 염초(鹽草)는 어떠하뇨?”
“백미는 팔백만 석이요 백염(白鹽)이 오백만 석이요 마초(馬草)는 적여(積如) 구산(九山)이로소이다.”
또 묻기를,
“초국(楚國) 지형(地形)이 얼마나 하뇨?”
“하남이 삼십여 성이요, 하북이 삼십여 성이요, 하서가 오십여 성이요, 강동이 사십여 성이오니, 합하오면 일백오십여 성이로소이다.”
“장수는 얼마나 있느뇨?”
“지혜 유여(有餘)하고 용맹(勇猛) 과인(寡人)자가 백여 인이옵고, 그 남은 자가 수백 인이로소이다.”
“성명을 올리라.”
즉시 명록(名錄)을 드리거늘, 보니, 종형 종수 한선 백기 오인 등 십여 원이요, 이정 곽회 정순 장달 왕주 등 이십여 원이요, 그 남은 장수 백여 원이라. 다 각기 군사를 거느려 조련(調練)을 연습하라 하시고 군호(軍號)를 엄숙(嚴肅)하게 하니, 두려워 아니할 이 없더라.
치민(治民) 치정(治政)을 덕화(德化)로써 하니, 일국이 무사하여 방곡(坊曲)에 백성은 격양가(擊壤歌)을 부르며 상호(相互) 만세(萬世)를 부르고 연년(年年) 풍년 들어 우순풍조(雨順風調)하니 시사(視事)로 부국강병지권(富國强兵之權)을 가졌으며 국내가 태평하여 만민이 칭송(稱訟)하더라.
이때 충렬왕후 전하께 주하기를,
“난향의 공이 적지 아니하오니 대왕은 깊이 생각하옵소서.”
하시니 왕이 깨닫고 후궁을 사마 충렬왕비와 거처 함께 하게 하시니, 사처(四妻) 일첩(一妾)이 거처 하시니, 충렬왕비는 아직 설태(設胎) 없고, 두 공주 각각 이남(二男)씩 낳으시고, 최부인도 일남을 낳은지라. 충렬왕후 설태 없음을 초왕이 한탄하시고 태상 태후도 민망하시더라.
각설 이때는 대명 성화 임진(壬辰) 춘 정월 망(望)이라. 천자 제신을 모와 즐기시고 태평을 생각하니, 초왕 부부에 큰 공이 여천(如天)여해(如海)라 하시며, 종일 진취(盡醉)하시더니, 문득 정남절도사 정비 상소를 올리거늘, 개탁하니 하였으되,
‘남(南) 선우(單于) 또한 분을 이기지 못하여 남만(南蠻) 오국(吳國)을 합세(合勢)하여 장수 백여 원과 정병 철기 오백 만을 조발하여 지경(地境)을 범하여, 백성을 무수히 죽이고 물밀듯 들어오니, 복원 폐하는 급히 방적(防敵)하소서.’
하였거늘 견필(見畢)에 대경하여 제신을 돌아보시니, 제신이 합주(合奏)하기를,
“사세(事勢) 위급하오니 급히 초왕 대봉을 패초(牌招)하소서.”
상이 즉시 패초하실새, 또한 하북 절도사 최선이 장문(狀文)을 드리거늘, 개탁하시니, 하였으되,
‘북(北) 흉노(匈奴) 죽은 후로 그 자식 삼형제가 군사를 조련하여 주야 연습하고 토번(土蕃) 가달과 흉노 묵특으로 동심(同心) 동모(同謀)하여 장수 천여 원과 군사 팔십 만이라 하오니 그 수를 알지 못하나이다.’
하였거늘, 상이 견필(見畢)에 대경실색하여 이르기를,
“이 일을 어찌 하리오. 남북 적병이 다시 갱기(更起)하니, 전일은 장해운을 썼거니와 이제는 심규에 들었으니, 한 편은 대봉을 보내려니와, 또 한 편은 뉘로 하여금 막으리오. 짐의 덕이 없어 도적이 자주 갱기하니, 초왕 대봉이 성공하고 돌아오면 금번(今番)은 천위(天位)를 대봉에게 전하리라.”
하시며 낙루하시니, 제신이 간(諫)하기를,
“용루(龍淚) 낙지(落地)하오면 고한(苦寒) 삼 년이라 하오니, 과도히 슬퍼 마옵소서. 즉시 초왕만 패초하시면 그 초왕후는 본디 충효지재(忠孝之才)라. 앉아 있지 아니하오리다.”
상이 즉시 패초하시니, 초왕이 전교(傳敎)를 보고 대경하여 일국이 진동하며 국사를 태상왕계 미루고, 용포를 벗고 월각 투구에 용인갑을 다스리고, 청룡도를 빗겨 들고 오추마를 채질하여 즉일 황성에 득달하여 계하에 복지하니, 상이 초왕의 손을 잡고 국사 위태함을 말씀하시니, 초왕이 주하기를,
“제 비록 남북 강병이 억만이나 조금도 근심치 마옵소서.”
하고 즉시 사자를 명하여 충렬왕후께 사연을 통고하니, 왕후 사연을 보고 대경하여 화복(華服)을 벗고, 전일 입던 갑주를 갖추어 참사검(斬蛇劍)을 들고, 천리 준총(駿驄)을 타고 태상 태후와 두 공주며 최부인 후궁에 다 하직하고, 준총을 채질하여 황성에 득달하니, 황제와 초왕이 성외에 나와 맞거늘, 말에 내려 복지 주하기를,
“초왕 부부 정성이 부족하여 자주 외적이 강성하는가 하옵니다.”
상이 그 충성을 못내 칭찬하시고, 방적을 의논하시니 왕후 주하기를,
“황상에 덕택이 유독 초왕 부부께 미쳤사오니, 불행하여 전장에 나가 죽사온들 어찌 무심하오리까. 복원 황상은 근심치 마옵소서.”
하고 군병을 조발할새, 왕후로 대원수 대사마 대장군 겸 병마도총독 상장군을 봉하시고, 인검과 절월을 주시며,
“군중에 만일 태만자(怠慢者) 있거든 직참(直斬)하라.”
하시고, 초왕으로 대원수 겸 상장군을 봉하시고 군병을 조발할새, 장원수는 황성군을 조발하고, 이원수는 초국군을 조발할새, 두 원수 각각 군병 팔십만씩 거느려 행군할새, 대봉은 북흉노를 치러 가고, 애황은 남선우를 치러 가니라.
이때 애황이 잉태(孕胎)한지 칠 삭(朔)이라. 각각 말을 타고 대봉이 애황의 손을 잡고 이르기를,
“원수 잉태한 제 칠 삭이라. 복중(腹中)에 남겨진 혈육을 보전하기를 어찌 바라리오. 부디 몸을 안보(安保)하여 무사히 돌아와 다시 상면(相面)함을 천만 바라노라.”
하며 연연한 정을 이기지 못하더라. 또 애황이 이르기를,
“원수는 첩을 생각하지 마시고 대군을 거느려 한번 북 쳐 도적을 파하고, 수이 돌아와 황상에 근심을 덜고 태상 태후의 근심을 덜게 하소서.”
마상(馬上)에서 서로 분수상별(分袖相別) 하고 대봉은 북으로 행하고, 애황은 남으로 행하여 행군하니라.
각설 이때 남 선우 대병을 거느려 진남관에 웅거하여 황성 대진(對陣)을 기다리더니 장원수 수십 일 만에 진남에 득달하니, 진남관 수문장이 고하기를,
“적병이 엄장(嚴壯)하니 원수는 경적(輕敵)지 마옵소서.”
하거늘, 원수 진남관 오 리에 진을 치고 격서를 보내어 싸움을 돋우더라. 선우 선봉장 골통을 명하여 원수를 대적하라 하니, 골통이 청령하고 접응할새, 원수 전일 출전 제장을 거느려 갔으매 그대로 군호를 삼고 응성(應城) 출마(出馬) 나갈 제, 백금 투구에 흑운포를 입고 칠척 참사검을 높이 들고 천리 준총 빗겨 타고, 적진에 달려들며 남주작 북현무와 청룡 백호를 호령하여, 적진 후군을 엄살하고, 원수는 선봉장 골통을 맞아 싸워 반합이 못되어, 원수의 칼이 공중에 빗나며 골통에 머리를 베어들고 좌충우돌하니, 전일에 쓰던 용맹이 오늘날 시험하니 용력(勇力)이 배승(倍勝)이라.
대전(對戰) 삼십여 합에 팔십만 대병을 몰아치고 선우 또한 당하지 못할 줄 알고 군사를 거느려 닫고자 하거늘, 적군을 무른 풀치는 듯하니, 군사 주검이 묘 같고 피 흘러 내가 되니 뉘 아니 겁(怯)하리오. 적진 장졸이 원수에 용맹을 보고 물결 헤치는 듯하더라. 선우 죽기로써 닫더니, 원수 일(一) 고성(高聲)에 검광이 번듯하더니, 선우 번신(翻身) 낙마(落馬)하거늘, 선우 목을 함(函)에 봉(封)하여 남만 오국에 보내고, 남은 적진 장졸은 제장을 호령하여 씨 없이 다 죽이고 백성을 진무(鎭撫)하더라.
이때 오국왕이 선우의 목을 보고, 금백 채단을 수레에 실고 항서를 올리며 죽기로써 사죄하거늘, 원수 오국왕을 나입(拿入)하여 수죄하고 항서와 예단을 밧고,
“이 뒤에 만일 반심(叛心)을 두면, 네 오국 인종(人種)을 없앨 것이니, 물러가 동지(冬至) 조공(朝貢)을 지체 말라.”
하니 개개(箇箇)이 애걸(哀乞)하고 허물을 선우에게 돌아 보내고, 고두사례하며 돌아가더라.
원수 군사를 수습하여 관상에 군사를 호군하고 예단을 실고 차차 발행하여 황성으로 올라오더니, 하양에 들어 원수 몸이 곤핍하여 영채(營寨)를 세우고 쉬던 차에, 원수 복통이 심하더니 혼미(昏迷) 중에 탄생하니 활달한 기남자(奇男子)라. 삼일 조리(調理)하고 말을 못 타매 수레를 타고 행군하더라.
각설 이때에 대봉이 행군 팔십일 만의 북지(北地)에 득달하나, 흉노 대병이 태산을 등져 진을 쳤거늘, 원수 백 리 평사에 진을 치고, 필마 단검으로 호진(胡陣)에 달려들어 우레 같은 소리를 천둥 같이 지르며, 동에 번듯 서(西將)을 베고, 남에 번듯 북장을 베고, 서로 가는 듯 동장을 베고, 동으로 가는 듯 서장을 베고, 선진(先陣)에 번듯 중장을 베고, 좌충우돌 횡행하니 군사와 장수 넋을 잃어 분주할 제, 서로 밟혀 죽는 자가 태반(太半)이 넘고 오추마 닫는 앞에 청룡도 번듯하며 순식간에 무찌르고, 이름 없는 장수 팔십여 원을 베고, 초국 대병을 몰아 엄살하니, 원수에 용맹은 천신 같고 닫는 말은 비룡이라.
흉노에 백만 대병이 일시에 흩어지니 흉노 제(諸) 당치 못하여 군사를 거느려 닫고자 하더니, 좌우 복병이 벌리듯 하여 갈 곳이 없는지라. 황황급급하던 차에 일성 호통에 청룡도 번듯하며 흉노에 머리를 베어들고 적군을 호령하니, 망풍귀순(望風歸順)하여 일시에 항복하는지라.
장수는 절곤 삼십 도에 이마 위에다 패군장(敗軍將)이라 새겨 방출(放黜)하고, 군사는 낱낱이 곤장(棍杖) 삼십 도씩 맹장(猛杖)하여 물리치니, 원수에 은덕을 축수하며 살아 돌아감을 사례하더라.
원수 흉노에 목을 토번 가달국으로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가 천시(天時)를 모르고 천위(天位)를 범하였으니, 만일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같이 죽여 천하를 평정할 것이니 빨리 회보(回報)하라.”
격서와 동봉하여 보내거늘, 토번 가달이 원수에 용맹을 포문(飽聞)하고 황겁하여 일시에 항복하고, 항서와 예단을 갖추고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거늘, 진공(珍貢) 예단을 수레에 실고 항서를 받으며 사신을 나입하여 수죄 후에,
“만일 다시 범죄하면 토번 가달 인종을 멸할 것이니, 연년(年年) 조공을 동지 사신으로 바치라. 만일 태만하면 죄를 면치 못하리라.”
하고 방출하니 청령하고 돌아가더라.
창곡을 흩어 백성을 구휼하고 돌아오더니, 원수 마음이 심란하여 군사를 호궤하고 제장을 불러 이르기를,
“군사를 거느려 오라.”
하고,
“나는 급히 가 왕후의 존망(存亡)을 알리라.”
하며 말을 재촉하여 주야배도(晝夜倍道)하여 황성으로 행하더라. 팔십 일에 갔던 길을 사오일에 득달하여 황상께 뵈온대, 상이 대경대희하사,
“원수 독행(獨行)이 무슨 연고(緣故)뇨?”
대봉이 복지 주하여 전후 사정을 주달하고, 즉시 발행하여 남으로 행하더니 수일 만에 남주 땅에 이르니, 장원수 군을 거느려 회군하거늘 진전(陣前)에 나아가 두 원수 서로 공을 치사(致謝)하고 못내 반기며, 아기를 살펴보니 영웅준걸지상(英雄俊傑之相)이라.
초왕과 장원수 대희하며 행군을 재촉하여 황성에 득달하니, 또한 초국 병마도 당도하거늘 합세하여 진을 치고, 두 원수 함께 들어갈새, 상이 만조백관을 거느려 영접하며 원수와 제장 군졸을 위로하고 두 원수 궐내에 들어가니, 황후 두 원수에 손을 잡고 칭찬을 마지 아니 하시며, 황제와 황후며 만조백관이 왕후 해복(解腹)함을 보고 더욱 칭찬 이르기를,
“자(自) 만고(萬古) 이후로 이런 충성은 없는지라. 두 원수 한번 가매 흉적을 파하고 돌아와 짐에 근심과 사해를 태평케 하니 두 원수에 공덕은 여천여해라.”
하시고, 왕후 군중에서 낳은 아이 이름을 출전이라 하시고, 금은을 많이 상사하시고 태평연을 배설하여 초왕 내외 공덕을 일컫고 만세를 부르며, 제장은 벼슬을 도두고 군사는 상급을 많이 하시니 하나도 원망이 없고 천은을 축사하며 각기 귀가하더라.
이때 초왕과 장원수 천자전에 하직하고 군사를 거느려 초국에 득달하니, 태상왕과 왕비들이 노정에 나와 왕을 돌아보며 왕후를 치사(致謝)하여 아기를 받들고 그 충성과 공덕이며 용맹을 일국이 칭송하더라. 궐내에 대연을 배설하고 수일을 즐긴 후에 제장 군졸을 각각 귀가하라 하니 성은을 축수하고 돌아가더라.
초왕에 덕과 왕후의 덕화(德化) 사해에 덮였으니 천하가 태평하고 성자(聖子)성손(聖孫)은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만세(萬世) 유전(遺傳)할새, 왕후 삼남 이녀를 낳으니, 모두 풍채 영웅이 그 부모를 닮았는지라.
차자(次子) 형제를 황제께 주달하고, 장씨로 사성(賜姓)하여 장씨 향화(香火)를 받들게 하고, 황성에 여환(戾還)하여 공후(公侯) 장록(長祿)으로 만종록(萬鍾祿)을 먹고 대대로 장록(長祿)이 떠나지 아니하더라.
천자도 태평성대로 만세 무궁하시고 초왕도 계계승승하여 만세 유전하니, 괄세없이 지낼 것이 사람 밖에 없을지라. 사람이라 생기거든 군의(君義) 신충(臣忠) 본을 받아 명전천추(名傳千秋) 할지어다. 천천만만세지 무궁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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