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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전' 전문 현대어풀이

New-Mountain(새뫼) 2018. 1. 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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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전(金園傳) 권지단

(파리 동양어학교본)

 

 

대명(大明) 성화(成化) 연간(年間)에 운남 서촉 땅에 일위(一位) 명인(名人)이 있으되, 성은 김이요 명은 규라. 자는 운수라.

대대(代代) 공후거족(公侯巨族)이요, 벼슬이 좌승상(左丞相)의 이르니, 명망이 일국(一國)의 으뜸이요, 세상의 아니 가진 것이 없으되, 다만 슬하의 남녀(男女) 간에 일개(一個) 골육(骨肉)이 없으니, 매일 슬퍼 금은 채단(綵緞)을 많이 흩어 명산 대찰(大刹)과 일월성신(日月星辰)께 주야 축원(祝願)하더니, 이때 삼월 망간(望間)이라. 승상이 부인 유씨와 더불어 망월루의 올라 사방을 구경하더니, 홀연 승상이 술이 반취하매 위연(喟然) 장탄(長歎)하며 이르기를,

내 나이 사십에 벼슬 승상이요 부귀 극진하되, 슬하(膝下)의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으니 우리 죽으면 조선(祖先) 향화(香火)를 뉘게 전하리오.”

하고 슬퍼함을 마지아니하거늘, 부인이 피석(避席) 사죄(謝罪)하기를,

첩의 죄악(罪惡)이 지중(至重)하여 승상의 치념(置念)하심이 깊사오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로소이다.

승상이 위로하고 내당(內堂)으로 돌아올새, 일락서산(日落西山)하고 월출동령(月出東嶺)하니 부인이 침소에서 잠을 이르지 못하고 추연(惆然)장탄(長歎)이러니, 홀연 침석(寢席)에 의지하여 잠간 졸더니 한 꿈을 얻으니, 공중에서 선녀가 일개(一個) 옥동자를 데리고 내려와 부인께 절하며 이르기를,

() 등이 영소보전(靈霄寶殿 시녀이오니, 항아(姮娥)의 명()을 받자와, 선동(仙童)을 부인께 의탁(依託)하고자 하여 왔사오니, ()히 길러 후사(後嗣)를 전하소서.”

하고 동자(童子)를 부인께 안기고 간 데 없거늘, 부인이 선녀를 보내고 동자(童子)를 보니, 동자는 아니고 큰 별이 치마에 담겼거늘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즉시 승상을 깨워 몽사(夢事)를 이르니, 승상이 청파(聽罷)에 대희하여 이르기를,

창천(蒼天)이 감동하사 우리의 무후(無後)함을 불쌍히 여기사 귀자(貴子)를 점지하시도다.”

하고 즐겨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잉태(孕胎)하여 십 삭()이 차매, 생남(生男)하기를 주야 바라고 집안을 정쇄(淨刷)히 하고 해복(解腹)하기를 기다리더니,

이때 갑자(甲子) 춘 정월 갑자일이라. 홀연 오색 채운(彩雲)이 집안을 두르며 기이한 향내 진동하더니, 문득 선녀 한 쌍이 공중에서 내려와 부인 곁에 앉으며 이르기를,

부인은 잠깐 기운을 진정하소서.”

하고 향탕(香湯)을 대령하라 하니, 자시(子時)를 당하여 부인이 혼연(渾然)하며 해복을 하는지라. 선녀 양인(兩人)이 가로되,

이 아기 모양이 이러하오나, 하늘이 정하신 일이니 조금도 다른 염려는 마시고 귀히 길러 천정(天定)을 어기지 마소서. 시각이 늦어 가오니 정회(情懷)를 다 못 펴고 가오니 마음을 허소(虛疏)히 마소서.”

하고 하직하고 가거늘, 부인이 선녀를 보내고 아이를 돌아보니, 아이는 없고 허무맹랑(虛無孟浪)한 것이 있으되, 모양이 둥글어 겉은 검고 속은 빛이 어룽어룽한 것이 눈도 코도 없고, 마치 수박 모양 같은지라.

심하(心下)에 어이없고 놀라워 시비로 하여금 승상을 청하니, 승상이 부인 해복함을 듣고 희색이 만면하여 전지도지(顚之倒之)하여 들어와, 부인을 위로하며 아이를 바삐 살펴보니, 아이는 없고 괴이한 것이 곁에 놓였는지라. 크게 놀라 흉격(胸膈)이 막혀 이윽히 말을 못하다가 부인에게 이르기를,

해복한 아이는 어디 있느뇨?”

부인이 총망(悤忙) 중 참괴(慙愧)하여 무섭고 무색(無色)하여 대답할 말이 없는지라. 승상이 어이없어 생각하되,

고금(古今)에 문견(聞見)치 못한 이런 변이 또 어디 있으리오.’

()하여 외당(外堂)의 나와 탄식만 하더라.

 

이러구러 칠일이 지나매, 노복(奴僕)과 인리(鄰里) 사람들이 승상 댁 해복함을 다 즐겨하더니, 차차 소문이 들리매 노복과 사람들이 다 놀라는지라. 그 중 늙은 사람이 이르되,

옛적에도 이런 일이 있어, 그 속에서 대망(大蟒)이 나와 사람을 무수히 살해하고 작난이 비경(非輕)하여, 나라에서 발군(發軍)하여 겨우 잡아 죽이고, 그것을 낳은 사람은 흉악한 죄인이라 하여, 천지를 보지 못하는 데 가두었다가 굶겨 죽였다 하더니, 그 말을 들으니 여기도 그런 일이 있던가 보다. 그렇거니와 세상일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김승상 성덕(成德)으로 이런 변을 당하니, 갈충보국(竭忠報國)하고 인민을 편케 하고, 비례지사(非禮之事)를 행치 아니하며, 겸하여 부인 덕택(德澤)이 상하에 덮였는데 심덕(心德)을 입지 못하니 불쌍타.”

하고 제인(諸人)이 다 추연(惆然)하더라.

이런 말이 자주 들리니, 승상이 부인과 심하에 민망하여 침식(寢食)이 불안하더니, 일일은 승상이 심사(心事)가 쇄락(灑落)하여 정신을 깨달아, 내당의 들어가 부인을 향하여 위로하기를,

우리 자초(自初)로 남에게 적악(積惡)한 일 없는지라. 아무리 생각하여도 저것이 우리 골육(骨肉)이니, 남은 다 흉물(凶物)이라 하여도 해복 시 선녀의 말이 있을뿐더러, 무심한 것일 양이면 선녀가 어찌 와서 해복까지 시켰으리오. 필경 무슨 이상한 일이 있을 듯하니, 아무리 흉악하나 집에 두고 나중을 보사이다.”

하고 석반(夕飯)이 나와 먹더니, 그것이 밥상 곁에 먹는 소리를 듣고, 이불 속에서 데굴데굴 굴러 나와 승상 곁에 놓이거늘, 크게 놀라 이윽히 보다가 홀연 생각하되,

이것이 귀 눈이 없건마는 밥 먹는 소리를 듣고 나와 놓이니, 필연 밥을 먹고자 함이라.’

아무거나 밥을 주어 보라 하니, 부인도 괴이하여 밥을 가져 곁에 놓으니, 그것이 한편 옆이 들먹들먹하더니, 한 모가 붕긋하며 마치 주걱 모양 같은 부리를 내밀어 밥을 완연(完然)히 먹거늘, 승상이 하 괴이하여 부인을 돌아보아 이르기를,

이것이 입이 없는가 하였더니, 밥을 능히 먹으니 사람일 양이면 난 지 십여 일 만에 어찌 한 그릇 밥을 다 먹으리오. 아무거나 밥을 더 주어 보라 하니, 부인이 웃고 밥을 또 가져다 놓으니, 그것이 괴이하여 주는 대로 먹으매 승상과 부인이 더욱 괴이 여기더라.

 

그것이 밥 먹는 대노 점점 자라 큰 동이만 하였는지라. 승상이 부인을 청하여 보고 크게 의혹하여 가로되,

이후는 밥을 끊지 말고 조석(朝夕)으로 먹이라.”

하고 매양 이것저것 하지 말고 이름을 지어 원()이라 하라 하다. 밥 먹기를 장()히 하매, 점점 자라 큰 방안에 가득하니 더욱 흉하고 괴이함을 측량치 못하여 이르기를,

원이 더 자라면 방을 뚫을까 싶으니 넓은 집으로 옮기자.”

하고 노복을 명하여 이르되,

이것을 여럿이 운전(運轉)하여 후원 월영각에 가져다 두라.”

하니 비복이 겨우 옮겨 월영각에 두고 조석을 공급하더니, 수년지내(數年之內)에 한 섬 밥을 능히 먹으니, 원이 점점 자라 방이 터지게 되는지라. 승상 부부와 비복들이 그 연고를 알지 못하여 답() 분분(紛紛)하여, 주야 근심으로 지내더니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어느덧 십여 년이 되었는지라.

 

이때 순무(巡撫)년 칠월 망간(望間)이라. 마침 황상(皇上) 탄일(誕日)이라.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이 부요(富饒)하여 처처(處處)에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니, 천자가 전교(傳敎)하사 내외전(內外殿)에 건풍연(建豊宴)을 배설(排設)하시고, 열후(列侯) 종실(宗室)과 만조백관(滿朝百官)을 통명전에 모으시고, 육궁(六宮) 비빈(妃嬪)과 삼천 궁녀와 만조 대신 부인네는 내전에 조회(朝會)하여, 궐중 내외(內外) 종일 연락(宴樂)하니 향기로운 음식과 좋은 풍악(風樂)이 전각(殿閣)에 진동하며, 삼천 궁녀는 오색 채의(彩衣)를 입고 가무(歌舞) 연락하니, 광채 영롱(玲瓏)하며 난봉(鸞鳳) 공작(孔雀)들은 쌍쌍이 계하(階下)에서 춤을 추니, 세상 승경(勝景)이 비할 대 없는지라.

내외 회중(會中)이 대취(大醉) 낙락(樂樂)하되, 오직 승상 부부는 집을 생각하고 심상(心傷)하여 반점(半點) 희색(喜色)이 없는지라. 종일 잔치하다가 일락서산하매 각기 귀가(歸家)하니 승상 부부도 시비를 거느려 집으로 돌아 오니라.

 

차설 이때 김원의 나이 십 세라. 안 마음에 생각하되,

내 무슨 죄악으로 십 세가 되도록 허물을 벗지 못하고, 어느 시절에 세상을 구경하리오.’

차탄(嗟歎)함을 마지아니하더니, 이윽고 방문이 절로 열리며 홍포(紅袍) 입은 선관(仙官)이 들어와 옥채(玉釵)로 원을 세 번 치며 이르기를,

남두성(南斗星). 네 죄악이 다 진()하였으매 옥제(玉帝) 나를 보내사, 너 쓰고 있는 보를 벗기고 오라 하시매 내 이 곳에 와 벗기고 가나니, 이 보를 가져가고 싶으나 두고 가는 일은, 너의 부모가 이런 줄 자세히 모를 것이니, 이 보를 두었다가 이 말씀을 고하라. 이후 육십 년 후면 자연 다시 만나리라. 할 말이 무궁하나 천의(天意)를 구설(口說)치 못하느니 백세(百歲) 무양(無恙)하라.”

하고 홀연 간 데 없거늘, 원이 보를 벗고 보니, 방중(房中)의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천서(天書) 세 권이 놓였는지라.

심하(心下)에 끌러 보니 심사(心事)가 헌출하여, 청천(靑天)의 올라 사해(四海)를 굽어보는 듯, 소견(所見)이 절로 열려 백만(百萬) 사의(事意) 모를 일이 없는지라. 어찌 보속에 있던 때 같으리오. 만심(滿心) 환희(歡喜)하여 생각하되,

내 십 년을 흉악한 형상을 뵈었으니, 세상의 없는 불효자로다. 무슨 행실로 부모의 은혜를 만분지일(萬分之一)이나 갚으리오.’

하고 수회(愁懷) 만단(萬端)하여 생각하되,

이제 궐중(闕中)의 들어가사 잔치하시니, 노복(奴僕)을 불러 먼저 알게 하리라.’

인하여 시비(侍婢)를 부르니, 시비 등이 월영각에서 사람의 소리가 남을 듣고, 서로 돌아보아 아무도 먼저 대답하는 이 없는지라. 너무 고보(姑保)하여 노복 열 아문이 한데 모여 가보니, 의젓한 소년이 완연(完然)히 앉아 이르되,

야야(爺爺) 집에 돌아와 계시냐?”

하거늘 시비 등이 막지기고(莫知其故)하여 아무 말도 대답지 못하더니, 이때 승상이 부인과 함께 집의 돌아온즉, 내실(內室)이 공허(空虛)하였거늘 가뜩 염려하는 차에 의혹이 만단(萬端)하여 가중(家中) 내외인을 다 찾으니, 비복 중 일 인이 먼저 와 고하되,

월영각의 난데없는 선동(仙童)이 노복 등을 부르시나, 차마 혼자 가지 못하여 모두 보온 즉, 방중의 가득한 것은 없고, 일위 소년 선동이 앉아서, ‘야야가 환택(還宅)하여 계시냐?’ 묻사오니, 그 연고를 알지 못할 소이다.”

승상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그 시비를 데리고 월영각의 가보니, 한 소년이 승상을 보고 계하(啓下)의 내려와 엎드려 가로되,

소자가 십 년을 부모 걱정 시키던 불초자(不肖子) 원이로소이다.”

승상이 우연히 형상을 보고 급히 부인을 청하여 좌정하고, 소년을 불러 청상(廳上)에 앉히고 묻기를,

이 일이 하 괴이하니 진위(眞僞)를 자세히 이르라.”

하니 소년이 아뢰되,

오늘 묘시에 홍포 입은 선관이 내려와 이르되, ‘남두성이 상제께 득죄(得罪)하여 십 년 허물을 쓰고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하였더니 죄악이 다 진하였다.’ 하고 허물을 벗겨 방중(房中)에 두고 이르되, ‘이 허물을 가져갈 것이로되, 네 부모께 뵈어 적실(適實)한 자취를 알게 하라.’ 하고 갔사오니, 소자가 보를 벗고 보온 즉 허물이 곁에 놓였고, 책 세 권이 놓였사오니 십 년 불효를 어찌 다 아뢰리잇고?”

승상이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허물이 방중의 놓였고, 천서 세 권이 분명이 놓였거늘, 심하에 대경 대희하여 소년의 손을 잡고 만심(滿心) 환희(歡喜)하여 이르기를,

네 십 년을 보 속에 들었으니 무슨 지음(知音)한 일이 있을 것이니, 자세히 일러 우리 의혹을 덜게 하라.”

원이 고두(叩頭) 재배(再拜)하여 이르기를,

소자가 보 속에서 십 년 고행하오니, 아무런 줄 몰랐사오니 불승(不勝)황 송(惶悚)이로소이다.”

승상 부부가 그제야 원을 안고 등을 어루만져 가로되,

네 어이하여 십 년 근고(勤苦)를 이토록 하였느냐?”

하고 못내 기뻐하더라. 내외상하(內外上下)며 인리(鄰里) 지친(至親)이 뉘 아니 기뻐하리오.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원의 나이 십오 세를 당하매, 영민(英敏) 영오(英悟)하여 한 말을 들으면 백 일을 통하며, 시서(詩書) 백가(百家)를 무불통지(無不通知)하고 겸하여 풍채(風采) 무인(無人)하며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을 겸하였고, 활쏘기와 말 달리기와 창 쓰기를 좋아하며, 언효(言孝) 공검(恭儉)하여 천지조화(天地造化)와 제세안민(濟世安民)할 재조를 두었으니, 만고영웅(萬古英雄)이요 일세(一世) 기남자(奇男子)이라.

승상이 처음에 걱정으로 지내던 일과 지금 영화를 생각하니 천만(千萬) 몽매(夢寐) 밖이라. 그러하나 원이 너무 숙성(熟成)함을 염려하여 매일 경계하여 이르기를,

우리 늙게야 너를 얻으매, 장중보옥(掌中寶玉) 같이 여기느니, 부디 몸을 조심하여 부모의 염려를 없게 하라.”

원이 꿇어 여쭈오되,

남자가 세상의 나매, 어려서는 글을 배우고 자라서는 무예를 익히고, 태평한 시절에는 백성을 어질게 다스리고, 난세(亂世)를 당하면 칼을 짚고 천리(千里) 용총(龍驄)을 타고 천병만마(千兵萬馬) 중에 나아가, 흉적(凶賊)을 소멸하고 도탄(塗炭)의 든 백성을 건져내고 임금의 위태함을 돕고 어지러운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 장부의 쾌()한 일이니, 어찌 서책(書冊)만 대하여 세월을 무심히 보내리잇가?”

승상이 이 말을 들으매 흉중(胸中)이 헌출하여 다시 이를 말이 없더라. 차후(此後)는 원이 심심한 때면 천서(天書)를 잠심(潛心)하니 천지조화에 기기묘묘(奇奇妙妙)함이 세상의 없는지라. 세 권 책을 다 읽으니 만고를 모를 것이 없더라.

일일은 심사가 울울(鬱鬱)하여 창검(槍劍) 궁시(弓矢)를 가지고 용천 철마산에 가 노는지라. 그 산 주위가 백여 리요, 높기가 하늘에 닿은 듯하고 수목이 참천(參天)하여 이름 모르는 짐승이 무수(無數)하고 모진 귀신이 많은 곳이라.

원이 매일 심심한 때면 그 산의 들어가 활쏘기와 창 쓰기며 진법(陣法)과 검술을 익히더니, 일일은 산 중에 대풍이 진작(振作)하며 비사주석(飛沙走石)하고 천 길이나 된 나무 무수히 부러지니, 그 소리 벽력(霹靂) 같으니, 원이 크게 놀라 창검을 들고 큰 나무를 의지하여 섰더니, 이윽고 한 흉악한 짐승이 내려오거늘, 자세히 보니 그 키 십 장()이 넘고 몸이 큰 집채만 하고 머리 아홉이요 빛은 오색이 영롱한 중, 채의(彩衣) 입은 미인 셋을 등에 얹었으니 그 미인들이 누수(淚水)를 징으로 흘려 홍상(紅裳)을 적시니, 그 애원(哀怨)함을 차마 보지 못할러라.

원이 그 거동을 보고 대노하여 크게 꾸짖어 이르기를,

이 몹쓸 짐승이 네 어디 가 흉악(凶惡)을 부려, 남의 집 귀녀(貴女)를 도적하여 오느냐? 내 연일(連日) 이 산에 와 놀더니 오늘 너를 만나니, 내 재조를 다하여 너를 죽이고 아까운 인생을 구하리라.”

언파(言罷)에 칼을 들어 그 짐승의 대가리를 힘껏 치되, 그 짐승이 조금도 요동치 아니하고 칼이 머리의 박히고 빠지지 아니하니, 심하(心下)에 놀라고 의혹(疑惑)하여 창을 들고 물러서니 그 짐승이 말하여 가로되,

나는 산중의 있는 억만 년이나 된 아귀(餓鬼)라 하는 짐승이라. 천궁(天宮)을 임의(任意)로 출입하고, 사해(四海)용왕(龍王)을 임의로 부리며, 육정육갑(六正六甲)과 오방장군(五方神將)과 이십팔수(二十八宿)를 임의로 호령(號令)하매, 옥황상제도 나를 휘어잡지 못하고 만승천자(萬乘天子)도 나를 당하지 못하여 공주 삼 형제를 앗아 오거든, 너만 조그만 아이로서 당돌히 죽을 줄 모르고 방자히 구느냐? 네 칼이 내 머리의 박혔으니, 또 무슨 병기(兵器)가 있거든 무수히 박으라. 나중에 내 입을 벌리면 네 일신(一身)이 내 숨결에 섞이어 복중(腹中)의 절로 들리라. 어린 아이 하 당돌하니 나의 재조를 구경하라.”

언필(言畢)에 입 하나를 벌리니 위턱이 하늘에 닿은 듯하고, 아래턱은 땅에 닿았고, 또 한 입을 벌리니 번개 같은 불길이 들락날락하고, 또 한 입을 벌리니 천병만마(千兵萬馬)가 진세(陣勢)를 벌리고, 또 한 입을 벌리니 퍼런 물결이 산곡(山谷)에 창일(漲溢)하고, 또 한 입을 버리니 호표(虎豹) 시랑(豺狼)의 무리 무수히 나오고, 또 한 입을 벌리니 운무(雲霧)가 천지 자욱하고, 또 한 입을 벌리니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진동하고, 또 한 입을 벌리니 헌화(獻花)가 낭자(狼藉)하더니, 시석(矢石)이 비 오듯 하고, 마지막 입을 벌리니 대풍이 일어나며 집채 같은 바위 날리니, 원이 차경(此景)을 보매 심중에 냉소(冷笑)하나 다시 하수(下手)할 길 없는지라.

몸을 곤두쳐 높은 봉의 올라 동정을 보려 하더니, 그 짐승이 외쳐 이르기를,

네 옥제(玉帝)가 부리시던 남두성(南斗星)으로 인간의 적거(謫居)하여 방자히 재조를 비양(飛揚)하니, 내 돌아가 머리를 조리하고 천상에 올라가 옥제께 아뢰고, 너를 잡아 죽이리라.”

하고, 서쪽으로 가거늘 원이 심중(心中)에 괴이하여 이르기를,

이 종적을 보리라.’

하고 점점 따라 가더니, 수백여 리를 가서 한 곳에 다다르니, 사면이 삼리(森籬)이나 한 바위 있고 팔구 간()이나 하는 구멍이 있는데, 그 짐승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거늘, 원이 구멍 가에 가보니 심처(深處)를 알지 못할러라.

이윽히 배회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승상께 뵈오니, 일력(日力)이 황혼이 되었더라. 승상이 묻기를,

금일은 어찌 저물게야 돌아오뇨?”

원이 답하기를,

산에 가 연일 노옵더니, 불의에 흉악한 짐승을 만나오니 크기와 모양을 일로 측량치 못할뿐더러, 머리가 아홉이요 아홉 입으로 온갖 조화를 다하고 공주 삼 형제를 도적하여 가옵거늘, 소자가 칼로 짐승의 머리를 치온 즉, 칼이 박히고 빠지지 아니하매, 몸을 은신하여 보온 즉 서쪽으로 가옵기 따라가 보오니, 수백여 리를 가서 바위 구멍으로 들어 가오매 종적(蹤迹)을 모르고 왔나이다.”

승상이 대경하여 이르기를,

아귀라 하는 짐승이 유명하여 천하 사람이 다 두려하더니, 황상이 이런 변을 보시는가 싶으니, 신자(臣子)의 마음이 어찌 편안하리오. 네 목숨이 돌아옴은 천행(天幸)이로다. 네 아무리 용맹한들 그 짐승이야 어찌 당하리오.”

원이 재배하여 주하기를,

복원(伏願) 야야는 근심치 마소서. 소자의 재조를 잠깐 보옵소서.”

언미필(言未畢)에 대()에 내려서며 풍백(風伯)을 부르니, 문득 운무(雲霧) 자욱하여 공중에서 신병(神兵) 맹장(猛將)이 무수히 내려와, 검극(劍戟)이 서리 같고 살기(殺氣) 충천하더니, 이윽고 천지 명랑(明朗)하며 원이 채운을 타고 공중의 앉아, 몸이 변하여 혹 바람도 되며 혹 구름도 되어 변화가 무궁하거늘, 승상이 대경하여 칭찬하기를,

네 재조를 보니 이렇듯 비범한 줄은 알지 못하였거니와 차후에는 조심하라.”

하고, 부인을 돌아보아 이르기를,

우리 저 아이를 데리고 경성(京城) 근처에 있기 미안하고, 또한 벼슬이 원하는 바가 아니니 퇴사(退仕)하고 본향(本鄕)에 돌아가 세월을 보내는 만 같지 못하다.”

하고 즉시 상소(上疏)하여 고향에 돌아와, 산수(山水)를 신칙(申飭)하며 농사를 다스리고 가사(家事)를 수습(收拾)하니, 세상에 시름없는 한민(閑民)이 되었으니 월하(月下)에 고기 낚아 세월을 보내니 국사(國事)가 망연(茫然)하더라.

이러구러 수년이 지난 지라.

 

이적에 천자가 조신(朝臣)을 모아 치민지사(治民之事)를 의논하시며 고금(古今)치란(治亂)을 문답하시더니, 홀연 천지 아득하며 음운(陰雲)이 사면의 자욱하더니, 남쪽에서 뇌성(雷聲) 같은 소리 나며, 신장이 십오 척()이나 하는 몸이 뜰에 가득하고 머리 아홉이요 빛은 오색이 영롱한 것이, 정전(正殿)에 내려서며 외치기를,

나는 태항산 보신동의 있는 구두(九頭) 장군 아귀이러니, 들으니 황녀(皇女) 셋이 있다 하니, 날을 빌리어 시녀를 삼으리니, 수이 내어주면 모르거니와 불연(不然) 즉 대화(大禍)가 미칠 것이니 바삐 내어 바치라. 만일 지완(遲緩)하면 통명전(通明殿)을 함몰(陷沒)하리라.”

하는 소리 천지진동하니, 황상과 만조백관이 정신이 산란(散亂)하여 어찌할 줄 모르더니, 좌장군 서성태 급히 입직군(入直軍)을 조발(調發)하여 갑옷 입고 비도(飛刀)를 들고 내달아 고성(高聲)으로 대질(大叱)하기를,

이 몹쓸 흉악한 놈아. 어찌 이런 변을 짓느냐?”

하고 칼을 들어 아귀를 치니, 아귀 몸을 기울여 칼을 피하고 입을 벌리어 숨을 들이 쉬니, 서성태 날리어 아귀 입으로 들어가는지라. 상이 둘의 싸움을 보시다가 대경하사 이르기를,

짐이 여러 번 전장(戰場)을 지내었으되 이런 일은 보도 듯도 못하였으니, 제신 중의 뉘 이 짐승을 잡아 짐의 한()을 씻으리오.”

언필(言畢)에 정서장군 한세충이 출반주(出班奏)하며 이르기를,

소장이 비록 재조가 없사오나, 저것을 베어 황상께 바치리이다.”

하고 황금 투구에 엄신갑(掩身甲)을 입고, 팔 척 장창(長槍)을 들고 청룡마(靑龍馬)를 놓아 내달아 외치기를,

흉적은 목을 늘여 내 칼을 받으라.”

아귀 이윽히 보다가 대소(大笑)하며 이르기를,

아까는 내 숨을 들이 쉬니, 모기 같은 것도 삼켰으니, 지금은 숨을 내쉴 것이니, 네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보라.”

언미필(言未畢)에 입을 벌리며 숨을 내부니, 세풍(細風) 일며 황상과 만조백관이 숨결에 오 리나 밀려가는지라. 아귀 그제야 궁중(宮中)이 공허함을 보고, 공주 삼 형제를 등에 얹고 달아 나니라.

이때 황상이 제신과 함께 정신을 겨우 차려 환궁하시니, 황후 낭랑(娘娘)과 각궁(各宮) 비빈(妃嬪)이 다 기절하였는지라. 겨우 정신을 정()하여 살피니, 공주 삼형제 다 없는지라. 창황(?怳) 대경하여 황상께 이 연고(緣故)를 아뢰니, 상이 대경하사 제신에게 하교(下敎)하시되,

이런 해연(駭然)한 변이 천고에 없으니, 경등(卿等)의 소견이 어떠하뇨?”

하시고 천안(天安)의 용루(龍淚)를 내리우시니, 제신이 감히 우러러 보지 못할러라. 우승상 이우영이 탑전(榻前)의 주하기를,

전임 좌승상 김규는 제신 중 지모가 넉넉하오니 패초(牌招)하사 문의하심이 마땅하올까 하나이다.”

상이 깨달으사 조서(詔書)를 내려 김규를 패초하시다.

 

차시 승상이 가사를 다스리며 원을 데리고 평안이 지내더니, 천만 의외에 사관(辭官)이 조서를 가지고 왔거늘, 승상이 향촉(香燭)을 배설하고 조서를 받자와 본즉, 하였으되,

전임 좌승상에게 부치나니 그 사이 고향의 무사한가. 짐은 불행하여 공주를 잃고 종적을 모르니 통해(痛駭)함을 어찌 측량하리오. 경으로 하여금 옛 벼슬을 환수(還授)하나니, 바삐 올라와 고명(高明)한 소견으로 짐의 아득함을 깨닫게 하라.”

하였더라. 승상이 견파(見罷)에 사관을 후대하고 국변(國變)을 물으니, 아귀 작난하던 일과 삼 공주 잃은 말을 대강 고하니, 승상이 불승(不勝) 통해하여 못내 슬퍼하며 사관을 보내고, 내당에 들어와 조서 사연을 부인께 전하고 행장(行裝)을 차릴 새, 원을 당부하여 원로(遠路)에 종차(從次) 무사히 환경(還京)함을 이르고, 길을 떠나 경성에 다다라 사은숙배(謝恩肅拜)하니, 상이 인견(引見)하사 이르기를,

경이 고향에 돌아감은 짐의 불명(不明)한 탓이로다. 국변이 불행하여 삼 공주를 일시의 실리(失離)하였으니, 짐의 이 원()을 어찌하리오. 경의 소견으로 이 일을 도모하면 평생의 원()을 풀리로다.

승상이 부복 주하기를,

소신에 자식이 있는데, 창법 검술이며 사방(四方) 치빙(馳騁)이 일세(一世)의 무쌍(無雙)하여 매일 종적이 없이 다니기에, 연고를 묻자오니 철마산에 가 무예를 익히다가, 일일은 그 산에서 아귀라 하는 짐승을 보았노라.’ 하기에 믿지 아니하였더니, 과연 허언(虛言)이 아닌가 싶으오니, 자식을 인견(引見)하오서 하문(下問)하심이 마땅하올까 하나이다.”

상이 원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으시고 가로되,

원이 성취(成娶)를 하였느냐?”

승상이 답하기를,

아직 성관(成冠)치 못하였고, 길이 머오니 미처 득달(得達)치 못하였나이다.”

상이 가로되,

황성에 올라오는 날 즉시 성관하여 입직(入直)하라.”

하시니 승상이 퇴조(退朝)하여 옛집에 돌아와 원이 오기를 기다리더니, 이때 원이 부인과 노복을 거느려 황성 옛집에 돌아오니, 승상이 반기고 무사히 환경함을 기뻐하더라. 이에 원을 성관할새 인리 친척이 다 모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승상이 즉시 원을 데리고 궐내에 사은(謝恩)하니, 상이 원을 보시니 신장이 구 척이요, 곰의 등에 이리 허리요, 잔나비 팔이라. 용모가 헌앙(軒昂)하고 심중에 천지조화를 품었으니 짐짓 영웅호걸이요 세상 기남자라. 상이 한 번 보시고 정신이 황홀하사 승상에게 이르기를,

경이 저런 영자(英子)를 두었으니 경의 덕이요, 짐의 복이로다.”

하시고 원의 손을 잡고 물으시되,

네 아귀를 보았다 하니 자초지종을 자세히 고하라.”

원이 고하기를,

신이 철마산에 가 무예를 연습하더니, 일일은 대풍이 일어나는 중 여차여차한 짐승이 여차 삼인을 등의 얹고 가거늘, 황망히 칼로 치나 하수할 수 없사와 피신하여 보니, 아홉 입으로 온갖 조화를 부리더니 서쪽으로 향하거늘, 따라가오니 넓은 바위와 그 가운데 팔구 간이나 하는 구멍 있더니 그리로 들어가니, 그 심천(深淺)을 알지 못하여 집으로 돌아왔더니, 국가의 이런 변고가 있을 즉 어찌 뜻하였으릿가.”

주파(奏罷)에 상이 대경 격분(激奮)하사,

장하다. 차언(此言)이여. 짐은 입직(入直) 장졸(將卒) 오천여 인으로도 당치 못하여, 장수 하나를 죽이고 만조 제신을 죽일 번하였더니, 너는 단독(單獨) 일신(一身)이 물리치니 고금에 없는 장수로다. 너를 두었으니 어찌 천하 사()를 걱정하며 공주 찾기를 근심하리오. 네 힘을 다하여 공주를 찾아 천륜(天倫)을 온전케 하라.”

원이 복지(伏地) 주하기를,

신이 비록 재조가 없사오나 지혈(地穴)에 들어가 아귀를 죽이고, 삼 공주를 평안이 뫼시리이다.”

상이 대희(大喜)하사 만조백관을 통명전에 모으시고, 김원을 배()하사 천하 병마도총독을 내리시니 승상 부자가 불감(不敢) 사사(謝辭)하는지라. 상이 불윤(不允)하시고 평소장군 강문추로 부원수를 삼아 이르기를,

군사 오만을 거느려 원수의 지휘를 그릇하지 말라.”

하시다.

이튿날 원수가 장대(將臺)에 높이 앉아 하령(下令)하기를,

제장 군졸이 만일 영()을 태만(怠慢)히 하는 자가 있으면 베리라.”

하니 제장 군졸이 원수의 영을 듣고 아니 두려워하는 이 없더라. 즉일 행군 출사(出師)할새 천자가 시신(侍臣)을 거느려 전송하시며, 수이 성공하여 무사히 돌아옴을 당부하시고 행진을 살펴보시니, 방포일성(放砲一聲)에 대대(隊隊)로 인마가 제제(濟濟)히 나아가니, 검극(劍戟)이 일색(日色)을 가리우고 정기(正旗)가 표일(飄逸)한지라. 상이 칭찬하기를,

원수의 행군을 보니 옛날 초패왕(楚霸王)이라도 미치지 못하리로다.”

하시고 환궁하시니라.

 

원수가 행군한 지 이십여 일 만에 철마산에 이르러, 지혈(地穴)을 에워싸 결진(結陣)하고 강문추를 불러 하령(下令)하되, 우양(牛羊)을 많이 잡아 제물을 정()히 장만하여 제문(祭文) 지어 제()를 할새, 제문에 가로되,

모년 모월 모일에 대명 대사마 대장군 병마도총독 대원수 김원은, 백배(百拜) 돈수(敦壽)하고 천지신령(天地神靈)과 명산대천(名山大川)과 후토부인(后土婦人)께 아뢰나니, 국운이 불행하여 삼 공주를 아귀라 하는 짐승에게 잃사와, 천자가 주야 침식이 불안하사 나로 하여금 아귀를 잡아, 천하의 부끄러움을 설()하고 천륜을 온전케 하라 하시고 전전불매(輾轉不寐)하시매, 이 산이 명국(明國) 땅이요, 지어(至於) 신령도 명국(明國) 신령이라. 국운을 위하여 어찌 돕지 않으리오. 복원 신령 후토는 크게 도와 성공케 하시고, 인명이 상하지 말게 하소서. 상향(尙饗).’

읽기를 다하고 제를 파한 후, 장정군(長征軍) 오백을 내어 갈()과 칡을 베어 큰 둥우리를 만들고, 네 귀에 줄을 달아 놓고, 인하여 대연(大宴)을 배설하여 제장 군졸로 종일 잔치하고, 부장 강문추를 불러 당부하여 이르기를,

내 지혈에 들어간 후는 장졸이 그대 장중(掌中) 있는 것이니, 그대 친히 구멍 가에 서고 줄을 찾아 늘이되, 만일 들어가다가 무슨 연고가 있으면 방울소리로 통할 것이니, 급급히 올리라. 만일 내 영을 어긴 자가 있으면 반드시 처참하리라.”

원수가 둥우리의 안고 강문추에게 당부하기를,

만일 영대로 아니하면 국체(國體) 그릇될 것이니, 한편 방울소리 들리거든 차차 드리우고, 네 줄 방울이 다 소리가 나거든 급히 낚아가 올리라. 가르침을 잊지 말라.”

당부하고, 지혈을 향하여 수일을 들어가더니, 한 곳에 다다르니 천지(天地) 명랑(明朗)하고 일월(日月)이 조요(照耀)하니, 남편 구석에 돌문이 잠기었고, 문 위의 현판(懸板)에 쓰였으되, ‘대명 대사마 대원수 김원이 이 문을 열리라.’ 하였더라.

원이 대경 대희하여 돌문을 열치니 열리지 아니하고 석함(石函)이 놓였는데, 그 위에 황금 대자(大字)로 쓰였으되, ‘대명국 김원이 개탁(開坼)하라.’ 하였더라. 원수가 대희하여 석함(石函)을 열어 보니, 자금(自今) 일월 용봉(龍鳳) 투구와 황사자 보신갑과 오 척 보검(寶劍)과 천서(天書) 세 권이 있거늘,

첫 권은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찰지리(下察地理)하는지라. 보는 족족 시험하여 보니 한 가지 어긴 바가 없고, 제이 권은 천하(天下) 인명지다소(人命之多少)를 지척(咫尺)의 사람 헤듯이 자세하고, 셋째 권은 적진을 멀리 바라보면 적진 동정을 낱낱이 탐지하여 고하는듯이 자세하고, 적장지수한(敵將之壽限)과 기치(旗幟) 병기(兵器)와 군향(軍餉) 다소(多少)를 알며, 남의 모략을 익히 본 듯이 알고, 그 책 삼권을 안상(案上)에 펴 놓고 앉았으면, 적장의 모략(謀略)이 삼군(三軍)에 지나도 감히 앞에 와 용납하지 못하고, 적진 군사의 무리 천병만마(千兵萬馬)라도 지암(地巖)이 같이 안 슬프게 뵈고,

그 책 가운데 부채가 끼었는데, 형용(形容)이 큰 손바닥에 지나지 못하고, 무게는 백지 삼 절()에 지나지 못하니, 이름은 홍미선(紅尾扇)이요, 저 산호(珊瑚)채는 왼쪽으로 돌려 오른쪽을 치면 초패왕(楚霸王)이라도 동()한 듯이 땅에 붙고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른 부채 자미선(紫尾扇)으로는, 태산을 부쳐도 티끌같이 날리고 사방을 갈라치면 운무가 자욱하고, 사해 용왕과 오방신장(五方神將)이 무수히 내려와 청령(聽令)하고 전장(戰場)을 당하면, 부채를 높이 들어 적진을 향하여 한번 부치면, 만경창파(萬頃蒼波)라도 일시에 나누어지니 어찌 중보(重寶)가 아니리오.

원수가 견파(見罷)에 대희하여, 즉시 산호채를 좌수(左手)에 쥐고 왼쪽으로 돌려 오른쪽을 치니, 두 동자(童子)가 일시에 땅에서 나와 수족(手足)을 놀리지 못하고 거의 죽게 되거늘, 원수가 그 신통함을 십분(十分) 다행(多幸)하여 두 동자에게 이르기를,

나는 대명국 대사마 도원수 김원이러니, 황명을 받자와 이곳에 들어와 아귀를 잡아 죽이고, 삼위 공주를 모셔가려하되, 지혈이 험하여 동서(東西)를 불분(不分)하니 심중에 괴이함이 무궁하더니, 만행(萬幸)으로 선동(仙童)을 만나 일월 같은 보배를 얻으니 족히 근심을 잊을지라. 선동은 이 두 가지를 내게 허()하면, 모진 아귀를 잡고 공주를 평안이 모셔와 불충을 면할 것이요, 만일 허락지 아니면 대사(大事)가 그릇될 것이니, 십분 생각하라.”

두 동자가 고두(叩頭)하며 답하기를,

소동 등이 이 보배를 가지고 선생을 기다린 지 오래오니, 복원(伏願) 선생은 소동 등을 풀어 주소서.”

원수가 양동(兩童)의 말을 들으매, 대희하여 즉시 우수(右手)의 채를 들어 오른쪽으로 둘러 왼쪽을 치니, 두 동자가 즉시 떨어져 재배하며 이르기를,

선생은 중지(重地)에 평안히 다녀가소서. 후일 다시 보사이다.”

언필에 두어 걸음 나가더니, 인하여 간 데 없는지라. 원수가 선동이 도운 줄 알고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하고, 갑주와 여러 가지 보배를 가지고 사면을 바라보아 심사가 울울하여 방황하더니, 황연(晃然)히 깨달아 천서를 열어보니, 기서(其書)에 이르기를,

심신이 삭막(索寞)한 때 이 글을 보면, 심사가 헌출하고 변신하기를 임의로 하리니 갈충보국(竭忠報國)하라.’

하였거늘, 그 책을 다 읽으니, 세상의 모를 것이 없고 온갖 일이 마음대로 틀리는 것이 없는지라.

책을 덮고 한편을 보니 큰 뫼가 있으되, 수목(樹木)이 참천(參天)하고 백화(百花)가 만발하니, 난봉(鸞鳳) 공작(孔雀)과 앵무(鸚鵡) 두견(杜鵑)이 쌍쌍이 왕래하여, 속객(俗客)을 반기는 듯 객의 수심(愁心)을 돕는 듯한지라. 생각하되,

저 안이 경개(景槪) 절승(絶勝)한가 싶으니 깊이 들어가며 구경하고, 아귀의 종적을 살피리라.’

하고 전전촌촌(全全村村)이 들어가더니, 서편의 사람 왕래한 자취 있거늘 반가이 여겨 점점 들어가니 완연한 큰 길이 있으되, 좌우에 기화이초(奇花異草)를 줄줄이 덮였고, 그 안에 큰 궁전이 있으니 금광(金光)이 찬란하고 가까이 나아가 보니, 이층(二層) 삼문(三門)이 있는데, 현판에 황금 대자로 쓰이되, ‘천하제일강산 구두(九頭) 장군 대아문(大衙門)이라 하였거늘, 헤아리니,

이곳이 필연 아귀 굴혈(窟穴)이로다.’

하고 몸을 돌이켜 한편 동산 수목 사이에 은신하여 좌우동정을 살피더니, 이윽고 한 녹의홍상(綠衣紅裳)한 여자가 무슨 그릇을 옆에 끼고 나오거늘, 자세히 보니 철마산에서 보던 여자 같은지라. 심중에 의혹하여 몸을 감추어 그 여자의 뒤를 따라 가보니, 그 여자가 동편 시냇가에서 그릇을 내려놓고 한숨 지우고 앉으며 하늘께 빌어 가로되,

명천(明天)과 일월성신(日月星辰)이 하림(下臨)하사 극진히 살피소서. 생전의 부모를 다시 보게 하옵소서.”

하고 피 묻은 수건을 빨거늘 원수가 생각하되,

철마산에서 아귀에게 잡혀오던 공주인가 싶으니 진위(眞僞)를 물으리라.’

하여 몸을 나직이 하여 냇가에 나아가 예배(禮拜)하고 가로되,

행인이 목이 마르니 한 그릇 물을 빌리실까 하노라.”

그 여자가 이윽히 보다가 이르기를,

그대 복색을 보니 중국 사람인가 싶으니, 무슨 연고로 이런 험처(險處)에 들어와 계시니잇고?”

원수가 답하기를,

과연 중국 사람으로서 과거 보러 가다가 길을 그릇 들어 왔사오니, 나를 중국 사람인 줄 어찌 아시니잇고.”

여자가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려 이르기를,

비인(妃人)은 대명 황제 여자이러니, 팔자가 기박(奇薄)하여 흉악한 아귀에게 잡히어 들어와 이런 흉한 욕을 받으니, 벌써 죽고자 하나 완명(頑命)이 천행으로 살았다가, 부모를 다시 뵈옵고 그날 죽어도 한이 없을까 하나이다.”

인하여 슬퍼함을 마지아니하거늘 그제야 공주인 줄 알고 복지 주하기를,

신은 대명국 도원수 김원이옵더니, 황명을 받자와 아귀를 잡아 죽이고, 공주 삼위를 모시려 이곳에 이르렀사오니, 저놈의 행동거지를 자세히 살피오서 대사를 성공케 하소서.”

공주가 이 말을 듣고 차경차희(且驚且喜)하여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다가, 양구(良久)에 답하기를,

진실로 이 같을진대 천일(天日)을 다시 보려니와, 장군의 재조가 어떠한지 모르거니와 저놈의 조화가 무궁하니 어찌 제어(制御)하리오.

원수가 이르기를,

아무거나 변신을 할 것이니 놀라지 마시고, 소장의 변신한 것을 은밀하게 가져다가 그놈의 진위를 살피게 수건에 싸 들여가소서.”

하고 즉시 몸을 흔들어 변하여 작은 주먹만한 수박이 되거늘, 행여 수문(守門) 장졸(將卒)이 알까 두려워 넌지시 수건에 싸 옆에 끼고 대아문에 다다르니, 수문장이 군사를 불러 분부하되,

대장군 분부에 아무 시녀라도 중문 출입에 몸을 뒤져보라 하여 계시니, ()대로 출입을 자세히 살피라.”

하니 문졸(門卒)이 일시에 청령(聽令)하고 달려들어 몸을 뒤지려 하거늘, 공주가 그릇을 땅에 놓고 홍상(紅裳)을 떨쳐 가로되,

빨리 하라. 나온 시녀가 무슨 것이 몸에 있으리라 하느냐?”

수문장이 아무 것도 없음을 보고 들어가라 하거늘, 공주가 그제야 그릇을 옆에 끼고 안으로 들어가 아귀 자는 협실(夾室)의 놓거늘, 원수가 그제야 본형(本形)을 내여 문틈으로 열어보니, 아귀 손에 비수를 들고 머리를 동이고 신음하는 소리 우레 같고, 아홉 입으로 숨 쉬는 바람이 방문을 개폐(開廢)하니, 철마산에서 보던 것보다 웅장함이 더하더라.

이놈이 비록 흉악하나 비인(非人) 비수(非獸) 비귀(非鬼). 신낭(腎囊)이 없어 음양을 모르는지라. 상하 여인을 도적하여 시녀를 삼아 좌우와 거처에 위풍(威風)만 뵈려 하고, 여자를 도적하여 두고 부리니, 여인이 삼천여 명이요, 나졸이 수십만이라. 위엄이 제후국(諸侯國)에서 더하더라.

좌우 궁전을 돌아보니 서편 마구(馬廏)에 준마(駿馬) 천여 필()이 매였고, 동편 곳집에 금은보화가 무수히 쌓였으니, 천하의 이름 없는 은근한 치국지긔(治國之氣). 원수가 심중에 헤아리되,

이놈을 세상의 머물러 두면 천하의 큰 근심이 되리라.’

백계(百計)로 생각하다가 홀연 깨달아 공주께 주하기를,

독한 술을 많이 빚어 좋은 안주를 장만하여야 계교(計較)를 베풀리이다.”

삼 공주가 여러 여자를 데리고 약속을 정한 후에 십여 일이 지나매 원수가 여러 여자를 청하여 여차여차하게 계교를 갖추고 기다리다.

 

이때 아귀가 칼에 상한 대가리가 적이 나으니 모든 시녀를 불러 이르기를,

내 병이 잠깐 나으니 사오일 후 세상에 나가 남두성을 잡아 죽여, 내 분함을 풀리라. 너희는 나를 위하여 마음을 위로하라.”

여자 등이 차언(此言)을 듣고 대희하여, 각각 호주(好酒) 성찬(盛饌)을 가지고 권하여 이르기를,

대왕의 상처가 나으시면 첩 등의 복인가 하나이다. 수이 차도(差度)를 얻사오면 남두성 잡기야 무슨 근심하리오. 주찬(酒饌)을 대령하였사오니 진식(進食)하셔 첩 등의 우러르는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아귀 차언을 듣고 가져오라 하거늘, 여러 여자가 일시에 한 그릇씩 드리니 아홉 입으로 권하는 대로 먹으니 그 수를 알지 못할러라. 술이 반취(半醉)하매 여러 여자가 거짓 위로하기를,

장군은 잠깐 잠을 들어 아픔을 잊으소서.”

아귀 하는 말을 듣고 잠을 들려 하거늘, 말자(末子) 공주가 곁에 앉아 이르기를,

보검(寶劍)을 놓고 잠을 들으소서. 취중(醉中)에 보검을 한 번 두루치면 잔명(殘命)이 무죄(無罪)히 상할까 하나이다.

아귀 이르기를,

장수가 잠을 드나 칼을 어찌 손에서 놓으리마는, 혹 실수함이 있을까 하노니 그 말이 괴이치 아니하니 받아 머리맡에 세워 두라.”

하고 주거늘, 공주가 놓고 잠들기를 기다리더니 잠을 깊이 들거늘, 비수(匕首)를 가지고 협실로 나와 원수에게 잠듦을 이르고 함께 후원의 이르러 큰 기둥을 가리켜 이르기를,

원수의 칼로 저 기둥을 쳐 보소서.”

원수가 즉시 비수를 들어 기둥을 치니, 반은 부러지는지라. 공주가 대경하여 이르기를,

만일 그 칼로 하수(下手)한다면 성사(成事)도 못하고, 대화(大禍)가 미칠 것이라.”

아귀 쓰던 비수로 기둥을 치니 썩은 풀 부러지는 듯하는지라. 심중에 대열(大悅)하여 공주와 함께 아귀 자는 방에 이르러 문을 가만히 열고 들어가 공주에게 이르기를,

매운재를 준비하였다가 아귀 구두(九頭)를 다 베어 내려지거든, 즉시 재로 온몸에 뿌리소서.”

약속을 정하고 비수를 메고,

아귀야.”

대호(大呼)하여 부르니 아귀 잠을 미처 깨지 못하여 기지개 할 제, 자세히 보니 온몸에 비늘이 돋쳤는지라. 저놈이 잠 깨지 못함을 보고 칼을 들어 구두를 치니 아귀의 구두가 일시에 떨어지니, 여러 여자가 일시의 재를 끼얹으니 아귀인들 제 어찌하리오. 머리 없는 등신(等神)이 일어나며 대들보를 받으니 들보가 부러지는지라. 한 식경(食頃)이나 작난하다가 거꾸러지거늘, 공주 등이 아귀 죽음을 보고 치하(致賀) 분분(紛紛)하더라.

 

시위(侍衛) 제장 소아귀(小餓鬼)들이 장수 죽음을 알고, 병기(倂記)를 갖추고 군사를 거느려 원을 찾거늘, 원수가 그제야 장중(帳中) 두목 소아귀를 보니, 신장이 구 척이요 머리의 쌍봉 자금(紫金) 투구를 쓰고 몸에 엄신갑(掩身甲)을 입고 팔 척 장창을 들었으니 풍채 늠름한지라. 아귀는 요술로 죽였거니와 이놈은 대적하기 어려우니, 즉시 자금(紫金) 용봉(龍鳳) 투구를 쓰고 황금 대자 보신갑(保身甲)을 입고 비수를 들고 마구의 있는 으뜸 준마를 타고, 나는 듯이 내달아 대진(對陣)하니, 소아귀 양구히 보다가 외치기를,

너는 하인(下人)이기에 무슨 원수로 나의 대장을 죽였느냐? 빨리 목을 늘여 나의 창을 받으라. 이제 너를 죽여 우리 대장의 원수를 갚으리라.”

원수가 고성으로 이르기를,

나는 대명 대사마 대장군 천하 병마도충독 대원수 김원이러니, 이제 황칙(皇勅)을 받자와, 아귀를 죽이고 삼 공주를 뫼서 오라 하시니, 내 네 장수를 죽였거든 너희만한 것이야 초개(草芥)나 다를 소냐.”

언필의 나는 듯이 달려드니 소아귀 대적하여 오십여 합을 싸우되, 불분(不分) 승부라. 원수가 정신을 가다듬어 또 오십여 합을 싸우더니, 원수가 칼을 안장(鞍裝)에의 걸고 산호채를 좌수(左手)에 들어 왼쪽으로 돌려 오른쪽으로 치니, 아귀 무리 땅에 붙고 떨어지지 아니하거늘, 아귀 놀라 말에서 내리려 하더니 발이 안장에 붙고 아니 떨어지는지라.

원수가 칼을 들어 그 아귀를 다 죽이니, 소아귀 또 달려들거늘 기세를 타 좌충우돌(左衝右突)하니 추풍의 낙엽 같더라. 말을 돌려 나오려 하니 문 지키는 장수가 또 대적하거늘, 그런 것들은 칼을 한번 휘두르매 썩은 풀 부러지듯 하니, 주검이 뫼 같고 피 흘러 내가 되었더라.

원수가 심신을 정()히 하고 공주를 뫼시고 두루 살펴보니, 사면 고() 집에 즐비한 보배와 여색(女色)이 무수하거늘, 끌어 내여 놓고 누각을 보니 삼사층 별당이 샅샅이 있고, 보패(寶貝)가 얽히어 산호 기둥이며 청석(靑石) 마루와 유리(琉璃)벽 이며 호박(琥珀) 주초(柱礎)에 백옥대(白玉臺)를 세워 용린(龍鱗) 기와에 수정렴(水晶簾)을 달았으며, 서기(瑞氣) 반공의 어리고 사치 장려(壯麗)함을 다 기록하지 못할러라.

공주와 모든 여자들이 원수께 사례하며 이르기를,

팔재 기박하여 부모와 이별하고 아귀에게 잡혀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될러니, 원수의 양춘(陽春) 혜택(惠澤)으로 다시 천일지하(天日之下)에 부모를 상봉케 되오니,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란 말은 유속헐후(猶屬歇后)하여이다.”

원수가 치사(致謝)하며 이르기를,

공주의 넓으신 덕으로 아귀를 죽이고, 이런 흉처(凶處)를 무사히 면케 되오니 황은(皇恩)을 저버리지 아니로소이다.”

하고 그 동천(洞天)을 다 불 지르고, 공주와 모든 여자들을 데리고 둥우리의 나아가 가로되,

삼위 공주는 둥우리에 오르소서. 황상의 기다리심이 일각(一刻)이 삼추(三秋) 같사오니 모름지기 수이 오르시고 둥우리를 내려 보내시면, 모든 여자들을 내어 보내고 신은 나중 올라 가리이다.”

공주가 가로되,

원수가 큰 공을 세워 잔명(殘命)을 보전(保全)하였으니, 먼저 올라가시면 우리는 종차(從次) 올라 가리이다.”

원수가 돈수(敦壽)하며 이르기를,

신은 신자(臣子)이라. ()이 무엇이기에 어찌 감히 먼저 올라가리잇고? 낭랑(娘娘)은 바삐 오르소서.”

공주가 이르기를,

“‘먼저 오르소서.’ 하는 뜻은 뒷근심이 있을까 함이오니, 그러면 장군과 함께 가사이다.”

원수가 대경 불청(不聽)하니, 어쩔 수 없어 모든 여자를 분배하여 가지고 방울을 일시에 흔드니, 지혈 지킨 군사가 방울소리를 듣고 일시에 줄을 당기어 지혈 밖으로 올리매, 공주를 막차(幕次)에 안돈(安頓)하게 하고 다시 둥우리를 내리올새,

부장 강문추가 마음에 헤아리되,

이제 김원이 지혈의 들어가 대공(大功)을 이루고 공주를 뫼셔 내었으니, 경사(京師)에 돌아가면 일등공신이 될 것이요, 나는 표()하여 아뢸 공이 없으니, 차라리 김원을 지혈에서 나오지 못하여 죽게 하고, 저의 공()을 앗음만 같지 못하다.’

하고 심복의 군사를 불러 여차여차 하라 약속을 한 후, 둥우리를 내리우다가 군사가 그 줄을 놓아 버리거늘, 강문추가 놀라는 체하며 공주께 주하기를,

큰 변이 났나이다. 지혈에 둥우리를 조심하여 내리옵더니, 그 속에서 찬바람이 일어나며 사슬을 잡아당기니, 군사가 견디지 못하여 놓아 버렸나이다.”

하거늘 공주와 모든 여자들이 제() 놀라며 간담(肝膽)이 떨어지는지라. 대경 통곡하다가 말자 공주가 첫 공주께 고하기를,

일이 여차하니 빨리 급급히 경사에 올라가 황상께 이 연유를 고하여, 다시 둥우리를 준비하여 김원수를 구하여냄이 옳을까 하나이다.”

양 공주가 답하기를,

김원이 그때까지 살아 있을 줄을 어찌 알리요.”

눈물을 흘리며 금덩의 올라 모든 여자를 거느려 황성으로 행하니, 정문추가 군사를 분부하여 흙과 돌을 수운(輸運)하여 지혈을 메우니라.

 

이때 원수가 삼 공주를 먼저 보내고, 다시 둥우리 내리기를 기다리더니 둥우리 떨어지며 이윽고 흙과 돌이 무수히 내리거늘 원수가 대경하며 이르기를,

이는 반드시 내 공을 꺼려 날을 해하려 하는 자가 있도다.”

하고 앙천(仰天) 통곡하며 이르기를,

명국 대원수 김원이 황명을 받들어, 지혈의 들어와 아귀를 소멸하고 공주와 수다(數多) 여자를 구하여 낸 연후의 나중의 나가려 하였더니, 천만 의외에 변을 만나 다시 성상과 부모를 뵈옵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게 되오니 창천은 살피소서.”

하며 통곡하니 수운(愁雲)이 적막하고 두견은 슬피 울어, 불여귀(不如歸) 하는 소리가 사람의 간장을 녹이더라.

 

차설 공주의 일행이 여러 날 만에 황성에 득달(得達)하니, 성내 백성과 혹 여자 잃은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사방에서 모여드니, 성중이 분분하여 반기며 우는 소리가 많더라. 삼 공주가 바로 대궐의 들어가매, ()과 후()가 공주의 손을 잡고 반기며 우시니, 옥루(玉淚) 쌍행(雙行)하며 육궁 비빈과 삼천궁녀들이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서로 붙들고 통곡하니, 도리어 상사(喪事)하는 집 같더라.

상과 휘 마음을 진정하사, 공주에게 지난 고생을 물으시니, 공주가 눈물을 거두고 당초 아귀에게 잡혀 갈 제 산에서 소년 만나던 일이며, 지혈에 들어가 시녀로 부리이던 일이며, 냇가에서 피 묻은 수건 빨다가 김원수 만나던 일과 홍미선(紅尾扇) 부치던 일이며, 둥우리 타고 올라온 후 군사가 사슬을 놓아 김원이 나오지 못한 연유를 다 아뢰니,

상이 대경하사 차탄하시며 즉시 강문추와 정량을 명초(命招)하여 빨리 지혈에 나아가 김원을 구하여 내라 하시니, 이인(二人)이 성지(聖旨)를 받자와 지혈에 나아가 본즉 지혈이 벌써 메웠고 종적을 알 길이 없는지라.

도로 돌아와 이 사연을 아뢰니, 상이 더욱 놀라시며 참혹(慘酷)히 여기사, 문무백관을 모아 의논하시니, 우승상 송방이 주하기를,

신이 생각하오니, 김원의 공을 꺼려 해()하고자 하는 자가 있어 지혈을 메운가 싶으오니, 정문추와 사슬 놓은 군사를 국문(鞫問)하시면, 진위를 아올까 하나이다.”

상이 옳이 여기사 친국(親鞫)을 배설(排設)하시고, 정문추와 군사를 엄형(嚴刑)으로 물으시니 천위(天威) 뇌정(雷霆) 같은지라. 어찌 감히 기망(欺妄)하리오. 불하일장(不下一杖)에 자초지종을 낱낱이 승복(承服)하니 정문추가 또한 어쩔 수 없어 지만(遲晩)하니, 상이 통해(痛駭)하사 정문추와 군사 등을 다 처참하시고,

승상 김규를 입시(入侍)하라 하사, 위로하여 이르기를,

경의 아들이 나라를 위하여 사지(死地)에 들어가 공주를 구하였거늘, 짐이 불명하여 원수를 보지 못하고 그 종적을 모르니, 경을 봄이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승상이 간장 녹는 듯하나, 군신자책(君臣自責)에 사색(辭色)을 나타내지 못하여 복지 주하기를,

신이 대대로 국은을 입사와 갚을 바를 만일이라도 어찌 못하였더니, 이제 천한 자식이 황명으로 국사(國事)에 죽사오니 도리어 영행(榮幸)하온지라. 성교 여차하오시니 황공하옴을 이기지 못하올소이다.”

상이 재삼 위로하시고 내전에 들어가 이 사연을 전하시니, 황후와 삼 공주가 정문추를 만만통한(滿滿痛恨)하며 원수를 차탄하다가, 말자 공주가 복지 주하기를,

신첩(臣妾)의 형제는 김원이 아니면 다시 천안(天顔)을 뵈옵지 못할 것이어늘, 첩 등은 살아 돌아오고 김원의 사생을 모르오니, 어찌 심규(深閨)에 안연(晏然)하여 은혜 갚기를 생각하지 아니하면, 이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하는 불의무도지인(不義無道之人)이라. 신첩이 지혈에서 나올 제 김원과 언어를 상통(相通)하고 내외(內外)를 불분(不分)하고, 심중에 삼종지의(三從之義)를 맺었나니, 듣자오니 김원의 부모가 다른 자녀 없고 혈혈무의(孑孑無依)하다 하오니, 첩 등이 원컨대 김원의 부모를 고식지례(姑媳之禮)를 차려 봉양하여, 하나는 여자의 절개를 온전히 하고, 둘째는 저의 은혜를 표하고 지내옵다가, 원이 살아 돌아오면 천행이요 불연(不然) 즉 또한 첩의 팔자이오니, 복원 황야(皇爺)는 윤종(允從)하심을 바라나이다.”

상이 청파에 그 청고(淸高)한 절개와 정대(正大)한 의리에 감동하사, 즉시 김규를 패초(牌招)하여 이 사연을 하교하시고, 공주를 명하여 구고지례(舅姑)之禮)를 행하라 하시니, 불승(不勝) 감격하여 천은을 숙사(肅謝)하고 공주와 함께 본부(本府)에 돌아와 별당에 처소를 정하니, 공주가 원수의 사생을 모르는 고로 금패(錦貝)를 끄르고 순색(純色) 의복으로 승상 부부에게 효성을 극진히 하니, 승상 부부가 공주의 성효(誠孝)를 감동하여 슬픈 마음을 적이 잊었더라.

 

차설 원수가 슬픈 마음을 진정하여 전정(前定)을 헤아리니 이미 일이 글렀는지라. 산천을 구경하며 거처 없이 가더니 한 높은 나무에 한 소년이 달려 있거늘, 놀라 그 맨 것을 끌러 놓고 자세히 보니 금혜(金鞋) 천관(天冠)에 청사(靑絲) 도복(道服)을 입었으니, 골격이 비범하여 신선의 종류가 아니면 도인의 무리라. 십분 의아하여 그 연고를 무르니 소년이 일어나 절하고 답하기를,

소생은 동해 용자(龍子)로 삼신산(三神山)에 금강초(金剛草)를 캐어 가지고 돌아오더니, 이 동중(洞中)에 있는 아귀 강포(强暴)하여, 용궁의 들어가 크게 작난하며 생()의 누이를 앗으려 하거늘, 부왕이 서(西) () () 삼해 용왕을 청하여 크게 쳐 파하니, 제 패하여 돌아가다가 이외에 생()이 용자인 줄 알고 나무에 매어단 지 여러 날이 되었더니, 선생의 구하심을 천만 의외에 입었사오니 그 은혜는 백골난망이라. 불감(不敢)하오나 높으신 성명을 들어지이다.”

원수가 답례하며 이르기를,

나는 대명국 도원수 김원이러니, 황명을 받자와 이곳의 들어와 아귀를 소멸하고 공주를 모셔 보낸 후 미처 나가려 하였더니, 천만 이외에 사슬이 끊어지고 지혈이 메이기로 나가지 못하여 산천을 구경하다가 그대를 만나니, 이 또한 일시 연분(緣分)이로다.”

소년이 다시 절하고 사례하기를,

일이 이러하면 비단 재생지은(再生之恩)이라. 원수까지 갚았사오니 불승(不勝) 감격하오며, 이제 인간(人間)으로 나가려 하오면, 잠깐 수궁에 내려가심이 좋을까 하나이다.”

원수가 웃으며 이르기를,

이곳은 굴이라도 천지일월(天地日月)이 세상과 같으니, 혹 나갈 길이 있으려니와 수부(水府)는 유현(幽顯)의 길이 다르니 진세(塵世) 사람이 행할 곳이 아니라. 그대 청하는 일은 감격하나 가히 행치 못하리로다.”

용자가 대소(大笑)하며 이르기를,

어찌 유()의 변화와 수궁 재미를 듣지 못하신 고요? 생을 따라가시면 자연 인간으로 나가실 것이니 일분(一分)도 의려(疑慮)치 마소서.”

원수가 그렇게 여겨 용자를 따라 백여 리를 행하니, 이곳은 동양(東洋) 대해(大海). 용자가 원수를 청하여 등의 엎드리라 하거늘, 원수가 용자의 등의 오르니 용자가 몸을 번드쳐 물결을 헤치며 순식간의 용궁에 다다르니, 일월이 명랑하고 기화이초(奇花異草)와 주궁패궐((珠宮貝闕)은 운소(雲霄)에 표묘(縹緲)하여 천상(天上) 삼광(三光)과 인간(人間) 오복(五福)을 응하였으니, 호중(湖中) 천지(天地)요 수국(水國) 용궁(龍宮)이라.

용자가 먼저 들어가 왕께 뵈옵고, 아귀에게 잡혔던 일과 원수를 만나 구하던 일이며 원수와 함께 들어온 연유를 고하니, 왕이 대경하여 이르기를,

그런 줄 알았으면 내 친히 기병(起兵)하여 너를 아니 구하였으랴. 그러나 은인이 왔다 하니 바삐 청하라.”

용자가 승명(承命)하여 원수를 청하거늘, 원수가 용자를 따라 금락전에 들어가니 용왕이 올려 예필(禮畢) 좌정(坐定) 후 사례하고 이르기를,

몹쓸 아귀를 소멸하고 돈아(豚兒)의 성명(姓名)을 구하시니, 은혜 감사하고 천고에 유전(留傳)하리로소이다.”

원수가 답하기를,

이는 수궁의 복이요 왕의 성덕이라. 어찌 소장의 공이리오.”

원수의 손사(遜辭)함을 더욱 애중(愛重)하여 대연을 배설하여 즐길새, 풍악은 반공의 솟았고 배반(杯盤)이 낭자(狼藉)하여 술이 두어 순배(巡杯) 지나매, 왕이 원수의 지낸 일과 용자를 구하여 돌아온 수말(首末)을 다 전해 듣고 이르되,

장군 곧 아니면 살아 돌아오기 어렵고 수궁 화근을 덜지 못하리니, 이 은혜는 태산이 가벼웁고 하해(河海) 얕은지라. 과인의 여식(女息)으로써 이성지합(二姓之合)을 맺어 은혜를 갚으며 의()를 맺고자 하나니 맑은 의논이 어떠하뇨?”

원수가 이 말을 듣고 대경하여 돈수(敦壽)하여 이르기를,

소생은 인간의 천한 몸이요 공주는 용궁의 귀인이시니, 성의(誠意)를 봉행(奉行)치 못하리소이다.”

좌중(座中)이 격동(激動)하여 이르기를,

혼인은 이성지합이요 백행지원(百行之源)이거늘, 장군이 동방화촉(洞房華燭)을 굳이 사양하니 도리어 장군을 위하여 취()하지 아니하노라.”

원수가 좌중 공론(公論)과 왕의 관대함을 인()하여 허락하니, 왕이 대희하여 길일(吉日)을 택하여 납폐(納幣) 친영지례(親迎之禮)를 행할새, 원수가 길복(吉卜)을 갖추어 전안(奠雁)을 맞고, 교배(交拜)를 당하여 잠깐 눈을 들어 용녀(龍女)를 살펴보니 선풍옥골(仙風玉骨)과 설부화용(雪膚花容)이 일지(一枝) 홍란(紅蘭)이 벽파(碧波)에 뽑히어 나며,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이 동편에 오름 같아 짐짓 요조숙녀(窈窕淑女)요 절대가인이라.

날이 저물매 촉()을 밝히고 침소에 나아갈새, 옥안화용이 촉하(燭下)에 더욱 찬란(燦爛) 쇄락(灑落)하니 원수가 견권(繾綣)하여 기쁜 마음을 깨닫지 못하여, 밤이 깊으매 촉을 물리고 금침에 나아가니 원앙이 녹수(綠樹)를 띄었으며 비취(翡翠)가 연리지(連理枝)에 깃들임 같더라.

 

광음(光陰)이 훌훌하여 여러 춘추(春秋)가 지나매, 원수가 사친지회(思親之懷)를 금치 못하여 용녀를 대하여 가로되,

생이 인간 천인(賤人)으로 부왕의 덕을 입어 귀주(貴主)와 동락(同樂)하매 영귀(榮貴)함이 지극하나, 다만 부모의 슬하를 떠난 지 여러 해에 사생(死生) 존몰(存沒)을 모르오니, 이는 윤기(倫紀)에 폐인(廢人)이라. 옥주(玉主)는 재삼 생각하여 수이 돌아감을 얻으면 삼가 풀을 맺어 은혜를 잊지 아니리이다.”

용녀가 염슬(斂膝)하며 이르기를,

()이 이미 군자의 건즐(巾櫛)을 받든 지 오래이되, 구고(舅姑)께 현알(見謁)치 못하였으니, 이 또한 자식의 도리 아니라. 마땅히 부왕(父王)께 여쭙고 군자의 뒤를 좇으리이다.”

하고 이튿날 원수와 함께 금란전에 들어가 전후사연을 고하고, 근친(覲親)할 뜻을 아뢰니, 왕이 그 성효를 감동하여 쾌히 허락하고 잔치를 배설하여 전송하기를 임하였는지라.

용녀가 원수에게 이르기를,

부왕이 반드시 금주(金珠) 보패(寶貝)를 주실 것이니, 다 받지 말고 옥상(玉相)에 놓인 연적(硯滴)을 달라 하소서.”

원수가 그 말을 좇아 용왕께 청하여 이르기를,

금주 보패는 별로 쓸 대 없사오니, 다만 옥상의 놓인 연적을 주시면 족히 떠나는 정회(情懷)를 표하시고 쓸 곳이 긴할까 하나이다.”

왕이 대경하여 이르기를,

현서(賢壻)는 어찌 이 보배를 아느뇨? 진실로 어렵도다. 그러나 현서의 옛 은혜와 떠나는 정의를 표하느니, 부디 허소(虛疏)히 굴지 말고 단단히 싸매 지니라.”

하고 그 연적을 주거늘 원수가 받고 사례하니, 왕이 이르기를,

이는 용녀가 아는 바이니 원로(遠路)의 평안이 행하라.”

원수가 인하여 하직하고 용녀를 데리고 순식(瞬息)에 파도를 지나 육지에 내리니 황성이 만 리라. 연적을 불러 준마 두 필을 얻어 하나씩 타고, 남복(男服)을 구하여 용녀를 입히고 중원을 향하니 산천이 안저(眼底)에 번복(飜覆)하더라.

날이 저물매 점사(店舍)에 들어 연적을 불러 석반(夕飯)을 준비하여 먹으니, 점주(店主)놈이 이 신기함을 보고 큰 보배인 줄 알아 욕심이 계관(係關)하여 불측(不測)한 의사가 맹동(萌動)하는지라. 반야(半夜)에 칼을 들어 원수 잠들기를 고대(苦待)하여, 부지불각(不知不覺)의 침소에 들어와 원수를 찔러 죽이고 용녀를 해하려 하니, 벌써 간 데 없는지라. 원수의 신체(身體)를 치우고 연적을 가져 천만행락(千萬行樂)하더니, 마침 청명(晴明)을 당하여 제 조상의 분묘의 올라 연적을 놓고 주찬(酒饌)을 구하여 제()를 할 새,

 

이때 공주는 원수의 신위(神位)를 배설하고 향화를 받들더니, 일일은 방중(房中)에서 난데없는 고양이 소리가 나거늘 찾아보니, 그 고양이 빛이 금색이요 모양이 기이하니 사랑하여 밥 먹여 기르더니, 또한 청명을 당하여 공주가 제()를 파하고 고양이를 찾으니, 그 고양이가 간 데 없는지라.

이 고양이가 도망하여 점주 제 지내는 곳에 가 연적을 물어다가 공주의 앞에 놓으니, 그 연적이 광채 찬란하고 모양이 기이하니 심상치 아닌 보배인가 하여, 공주가 그 연적을 가지고 대내(大內)에 들어가니 상이 보시고 신통 기이하여 제신(諸臣)에게 반포(頒布)하여 물으니, 간의태부 송왕이 주하기를,

각읍(各邑)에 행관(行關)하여 찾사오면 연적 잃은 사람을 알리니, 차차 근본을 알리이다.”

상이 옳이 여기사 각읍에 행관하니, 점주가 이 소문을 듣고 반겨 보배 잃은 사연을 아뢰니, 사관(辭官)이 그놈의 성명을 묻고 보배 잃은 사연을 물으니 그 놈이 대강 속여 아뢰는지라. 사관 이르기를,

천자께서 이 보배 이름과 조화를 아는가 하시니 마땅히 올라가 자세히 아룀이 옳다.”

하여 함께 황성의 이르러 상께 주하니, 그 놈을 잡아 드려 국문하되, 아뢰기를, 그 이름은 연적이고, 천만 조화하는 연유를 아뢰니, 상이 대희하여 내전의 들어가 연적을 불러 조화를 보니, 그 속에서 선녀 하나가 나오거늘 상이 황홀 경아(驚訝)하여 이 근본을 물으니, 선녀가 답하기를,

첩은 동해 용왕의 여자이러니, 대명 도원수 김원이 아귀를 소멸하고 용자를 구제하여 돌아올새, 용왕이 사위를 삼아 인간으로 보내실 제, 첩과 함께 오더니 형주에 이르러 반야(半夜)에 점주에게 원수가 해를 보옵고, 첩 등을 탈취하였사오나 첩은 여러 가지로 변신하여 지금 조화 중의 있삽고, 원수의 신체는 계양산에 묻혔사오나 연명(延命)이 멀었사오니, 신체를 찾으면 봉래산 구류선의 병수(甁水)와 삼신산 금강초가 있사오니, 그 점주 놈을 죄주어 신체를 찾아 이 약을 시험하면, 원수가 환생하기는 어렵지 아니하오니 그대로 바삐 시험하소서.”

상이 듣고 대희하여 외전(外殿)의 나와 제신들을 모으고, 점주를 엄형한 후 결박하여 사관을 압령(押領)하여 계양산에 가 원수의 신체를 찾아내니, 신체 썩은 일이 없고 여상(如常)한지라. 금강초를 얻고 병수를 입에 드리우니 원수가 일어나 앉으며 가로되,

어찌 구천 리 길의 이곳에 있는고?”

사관이 전후 수말을 다하니 원수가 그제야 생각하고, 사관과 연적을 사례하고 대연을 배설하여 즐기고, 승상을 모셔 황성의 이르니 천자가 백관을 거느려 맞으니, 상이 원수의 손을 잡고 반기며 치하하실새, 부인과 공주가 기별을 듣고 여취여광(如醉如狂)하고 신불부체(身不附體)하여 지향 없는 사람 같더라.

공주가 부인께 고하여 원수를 경성에 가 뵈옴을 청하니, 부인이 그 바쁜 마음을 헤아려 허락하니, 공주가 소복을 벗고 채의(彩衣)를 입고 위의(威儀)를 갖추어 갈새 시녀를 당부하여 금고양이를 잘 먹여 기르라 하고 경성으로 가니라.

 

이때 상이 승상 김규를 배()하여 초공(楚公)을 봉()하시고, 김원으로 부마(駙馬) ()하는 뜻을 반포하사, 예부(禮部)에 택일하여 김원으로 좌승상 겸 동백후 부마도위(駙馬都尉)를 봉하시고, 그 모친 유씨는 충렬 부인에 봉하시다. 원수가 집의 돌아와 모친께 뵈오니 부인이 또한 비회(悲懷)를 금치 못하더라.

이때 금고양이 원수 오심을 듣고 몸을 변하여 미인이 되어 승상 부부께 뵈오니, 어찌할 줄을 몰라 황황히 답배(答拜)하니. 원수가 살펴보니 이 곧 용녀이라. 대경하여 묻기를,

부인을 형주에서 이별한 후에 어찌 이곳의 계시니잇가?”

용녀가 이르기를,

그때 환란(患亂)을 지낸 후에 몸이 변하여 공주 슬하에 의지하였더니, 원수가 생환(生還)하시매 이제야 본형(本形)으로 뵈나이다.”

승상 이르기를,

이러한 신기로운 재조로 어찌 그 환()을 구하지 못하였느뇨?”

용녀가 이르기를,

도시 한번 겪을 천수(天壽)이니 어찌 도망하오리잇가?”

승상 이르기를,

우리 원아(園兒)의 생환함은 다 그대의 공이니, 다른 수다한 말이야 어찌 다하리오.”

하고 인하여 대연을 배설하여 즐기더라. 이윽고 일락서산하매 원수가 용녀로 더불어 침소에 나아가니 금슬지락(琴瑟之樂)을 가히 알러라.

 

각설(却說) 예부에서 길일을 택하여 동백후와 공주 친영(親迎)하시고, 용녀에 전후사(前後事)를 주달(奏達)하니, 상이 경희(慶喜)하사 용녀로 정숙공주를 봉하시고, 원수와 양() 공주가 환택(還宅)하여 승상 부부께 뵈온 후, 삼인이 별당의 처하여 화촉지하(華燭之下)에 옛날 일을 서로 말씀하며 즐기더라.

인하여 촉을 물리고 밤을 지낸 후, 천자께 뵈오니, 상과 황후가 사랑하심이 측량없더라. 일일은 상이 전교(傳敎)하사, 점주 놈을 처참하라 하시고, 김원으로 연왕(燕王)을 봉하시니, 원이 굳이 사양하야 돈수(敦壽) 출혈(出血)하니. 좌승상 왕준이 아뢰되,

김원수가 이미 왕작을 사양하오니, 형주는 지방이 넓고 물색(物色)이 화려하며 황성이 가까우니 형주후(荊州侯)를 봉하여지이다.”

상이 그 말을 좇으사 형주후를 봉하시다. 원수가 승상 양위(兩位)를 뫼시고 형주 도임하니, 수토(守土)도 아름답고 민심이 순후(淳厚)하야 공사(公事)가 번거(飜擧)치 아니한지라. 두 부인으로 더불어 승상 양위를 태평으로 누리니 이른바 선지(仙地) 일월(日月)이오 옥촉(玉燭) 건곤(乾坤)이러라.

 

오호라. 흥진비래(興盡悲來)는 천지의 순환한 바이라. 초공이 홀연 병이 들어 침석에 누우니, 후왕(候王)과 두 공주가 주야 식음을 폐하고 시탕(侍湯)을 정성으로 하더니, 초공이 목욕하고 상()에 누어 부인과 자부(子婦) 등을 불러 유언(遺言)하기를,

세상의 빌기 어려운 것은 명이라. 생전에 자식을 못 볼까 원()이러니, 천행으로 죽은 자식을 다시 만나 영화 부귀로 열락(悅樂)하니 어찌 즐겁지 아니리오. 너무 슬퍼 말라.”

하고 엄염(奄冉) 기세(棄世)하시니 일개(一個) 애통하더라. 충렬부인이 또한 기운이 불평(不平)하여 자부 등의 손을 잡고 인하여 별세하니, 형주후와 두 부인이 애통 망극하더라. 천자가 환시(宦侍)로 조문(弔問)하사 치제(致祭)하시고, 초공 양위를 왕례(王禮)로 장()하시니 형주후가 천은을 못내 축수(祝手)하더라. 선산의 안장한 후 애통함이 비길 데 없더라. 세월이 여류하여 삼년을 지내니, ()와 양 공주가 애척(哀戚)함을 마지아니하더라.

정숙공주는 삼자 일녀를 두고 정숙공주는 이자 일녀를 두었으니, 다 선풍도골이요 진세(塵世)간 영웅이라. 빛난 영화가 원근에 진동하더라.

형주휘 일일은 여러 자녀를 모아 대연을 배설하고 즐길새, 오시(午時)가 되어 문득 공중에서 오색 채운(彩雲)이 집을 두르며 선악(仙樂)이 표묘(縹緲)한지라. ()와 용녀 자녀 등을 불러 앞에 앉히고 이르기를,

우리 인간 인연이 금일(今日) 뿐이라. 너희를 떠나니 타일(他日)에 만날 날이 잇을 것이니, 백세 무양(無羊)하라.”

하고 또 공주를 청하여 이르기를,

우리 먼저 가오니 후일에 다시 만날 때 있사올 것이니 비감(悲感)치 마시고, 자녀를 거느려 평안히 지내옵소서.”

하고 표연히 일어나 향운(香雲)의 어리어 간 데 없는지라. 자녀와 노복 등이 황황하더니 채운이 걷히며 일기 청명(晴明)하거늘,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곡읍(哭泣) 배례(拜禮)하니 연적이 또한 간 데 없는지라. 천자와 황후가 이 기별을 듣고 석사(昔事)를 생각하니 비회를 금하기 어려운지라. 예관(禮官)을 보내어 대제(大祭) 조문하시다.

삼년을 마치매 공주가 홀연 염세(厭世)하시니, 궁중이 소요(逍遙)하여 천자께 주하니, 상과 후가 비감함을 측량치 못하여 예관을 보내어 삼위 합장(合葬)하고 치제(致祭)하시니, 일로 볼지니 뉘 아니 신기히 여기리오.

삼년을 지낸 후 장자 해룡으로 형주후를 습봉(襲封)하시고, 남은 아들을 다 봉작하시니 문호(門戶)가 혁혁한지라. 해룡의 인덕이 무궁 장원(長遠)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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