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국문소설,판소리

'운영전' 전문

New-Mountain(새뫼) 2016. 8. 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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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雲英傳)


1


수성궁(壽聖宮)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옛집으로 장안의 서쪽 즉 인왕산(仁王山) 아래 자리 잡고 있었는데, 수려한 산천이 감싸고 있었는데, 마치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형상이었다.

사직(社稷)은 인왕산 남쪽으로 가까이 있고 경복궁(景福宮)은 동쪽에 위치를 정하였으며, 인왕산 줄기가 굽이져 내려오다 수성궁에 이르러 높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비록 험준하지는 않았으나 올라가 내려다보면 사통오달로 툭 터인 거리에 상점들과 성에 가득찬 집들은 바둑판이나 별들처럼 벌여 있어 역력히 가리킬 수 있고, 완연함은 베틀의 날줄이 나누어 갈라진 듯하였다. 동쪽을 바라보면 궁궐이 멀리 아득한데, 복도가 공중으로 비껴있고, 구름과 안개는 비취빛으로 쌓여 아침저녁으로 모습을 드러내니 진실로 절승의 경지였다.

당대의 술꾼들과 활꾼들, 노래하는 기녀들, 피리 부는 아이들, 시인 묵객들은 봄날 꽃이 피거나 가을날 단풍이 들면, 그 위에서 놀지 않는 날이 없었고, 풍월을 읊고 풍악을 즐기느라 돌아가는 것도 종종 잊곤 하였다.

 

 


2


류영(柳泳)은 청파(靑坡)에 살던 선비였다. 수성궁의 경개를 실컷 듣고서, 한 번이라도 놀러가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지만, 의상이 남루하고 용모도 못 미쳐, 다른 유객들의 비웃음을 살 것을 염려하여 주저한 지가 오래였다.

만력신축(萬曆辛丑:1601) 춘삼월 열엿새 탁주 한 병을 사기는 했으나, 몸종도 없고 또한 함께 갈 벗도 없다. 몸소 술병을 차고 홀로 궁문으로 들어가는데, 구경 온 자들이 서로 돌아보고 손가락질하면서 웃지 않는 이가 없다. 류생은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이내 후원으로 들어간다.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보니, 전란을 갓 겪은 후라, 장안의 궁궐과 성안의 화려했던 집들은 모두 공허할 뿐이다. 부서진 담과 깨어진 기와, 묻힌 우물, 흙덩이가 된 섬돌도 찾아볼 수 없고, 풀과 나무만이 우거져 있으며, 오직 동문 두어 칸만이 홀로 우뚝 남아 있을 뿐이다.

류생은 못과 돌만 남아있는 깊고 그윽한 서쪽 정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온갖 풀이 우거져서 그림자가 밝은 못에 떨어져 있고, 사람의 발길이 이르지 않았던 땅 위에 가득히 떨어져 있는 꽃잎은 미풍이 일 때마다 향기가 코를 찌른다.

류생은 홀로 바위 위에 앉아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시구를 읊는다.

 

我上朝元春半老 아침에 일어나보니 봄은 거의 지나갔고

滿地落花無人掃 지천으로 널린 낙화는 쓰는 이가 없네.

 

류생은 문득 차고 있던 술병을 풀어 다 마시고는 취하여 바윗가에 돌을 베고 눕는다. 잠시 후 술이 깨어 머리를 들어 살펴보니 유객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다만 동산에는 달이 떠 있고, 연기는 버들가지를 포근히 감싸고, 바람은 꽃잎을 어루만지고 있을 뿐이다.

이때 한 줄기 부드러운 말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류영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 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한 소년이 절세의 미인과 마주 앉아 있다.

그들은 류영이 오는 것을 보고 흔연히 일어나서 맞이한다.

 


 

3


류영은 소년과 인사하고 묻는다.

수재(秀才)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낮이 아니라 밤에 찾으셨습니까?”

소년은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옛 사람이 말한 경개약구(傾蓋若舊)란 말은 바야흐로 우리를 두고 한 말이지요.”

세 사람은 솔발처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미인이 나지막하게 아이를 부르니, 계집종 두 명이 숲에서 나온다. 미인이 그 아이에게 말한다.

오늘 저녁은 우연히 고인(故人)을 만나고, 또 기약하지 아니한 반가운 손님을 만났구나. 오늘 밤은 쓸쓸히 보낼 수 없으니, 너는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아울러 붓과 벼루도 가지고 오너라.”

두 차환들은 명을 받고 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는데, 빠르기가 새가 나는 듯하다. 차환이 가져온 유리 술병과 유리잔, 자하주(紫霞酒)와 진기한 안주는 모두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다. 술이 삼 순배에 이르자, 미인이 술을 권하며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重重深處別故人 깊고 깊은 궁 안에서 고운님을 여의나니

天緣未盡見無因 하늘의 인연 미진하여 볼 길 전혀 없네.

幾番傷春繁花時 꽃피는 봄날이면 몇 번이나 울었던가.

爲雲爲雨夢非眞 밤마다 상봉은 꿈이었지 현실이 아니어라.

消盡往事成塵後 지난 일이 허물어져 티끌이 되었어도

空使今人淚滿巾 지금 부질없이 눈물로 수건을 적시게 하는구나.

 

노래가 마치고 한숨 쉬며 흐느껴 우는데 구슬 같은 눈물이 얼굴을 덮는다.

류생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 절하며,

내 비록 금수지장(錦繡之腸)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학업을 닦아 조금 글을 압니다. 이제 그 가사를 들으니 격조가 맑고 뛰어나나, 시상이 슬프니 매우 괴이합니다. 오늘밤은 마침 달빛이 낮과 같고 청풍이 솔솔 불어와, 이 좋은 밤을 즐길 만하거늘, 서로 마주 대하여 슬피 우는 건 어인 일이오? 술잔을 더함에 따라 서로 정이 깊어졌어도 성명을 서로 알지 못하고, 회포도 펴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소.”

하니, 류영은 먼저 자기의 성명을 말하고 강요한다.

 

 

 

4


이에 소년은 대답한다.

성명을 말하지 아니함은 어떠한 뜻이 있어서 그러한 것인데, 당신이 구태여 알고자 한다면 알려드리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 일이지는, 사정을 말로 하자면 장황합니다.”

그리고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한참 있다가 다시 입을 연다.

나의 성은 김()이라 하며, 나이 십 세에 이미 시문에 숙달하여 학당(學堂)에서 이름이 유명하였고, 십사 세의 진사(進士)에 제이과에 올라, 그 때부터 모두 김 진사라 부릅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기상이 호협하여 호탕한 마음을 능히 억누르지 못하였고, 또한 여인 때문에 부모의 유체를 받들고서 마침내 불효의 자식이 되어 천지간의 한 죄인이 되었으니, 이름을 억지로 알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 여인의 이름은 운영(雲英)이요, 저 두 여인의 이름은 하나는 녹주(緣珠), 하나는 송옥(宋玉)이라 하는데, 다 옛날 안평대군의 궁인이었습니다.”

류생이 말한다.

“'말을 하다가 다하지 아니하면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하옵니다. 안평대군의 성시의 일이며 진사가 상심하는 까닭을 자상히 들을 수 있겠소?”

진사는 운영을 돌아보면서 말한다.

성상(星霜)이 여러 번 바뀌고 일월이 오래 되었으니, 그대는 그때의 일을 능히 기억하고 있소?”

운영이 답한다.

가슴 속 깊은 원한을 어느 날인들 잊으리까? 제가 이야기할 것이오니, 낭군님이 옆에 있다가 빠지는 것이 있거든 덧붙여 주옵소서.”

 

 


5


이어 말하기를

장헌대왕(莊憲大王 : 세종대왕)의 팔 대군 중 셋째 왕자인 안평 대군이 가장 영특하였지요. 그래서 주상이 매우 사랑하시고, 무수한 전민(田民)과 재화를 내리시니, 여러 대군 중에서 가장 나았사옵니다. 그리고 나이 십삼 세에 사궁(私宮)에 나와서 거처하셨는데, 그 곳이 수성궁(壽城宮)이랍니다.

대군은 학업에 힘써 임하시고, 밤에는 독서하고 낮에는 시를 읊으시고 또 글씨를 쓰면서, 한 시각도 허송치 아니하셨습니다. 당시 문인재사들이 모두 수성궁 문 안에 모여서, 그 장단(長短)을 비교하였고, 혹 새벽닭이 울어도 그치지 않고 강론을 하셨습니다. 대군의 필법(筆法)은 더욱 능하여져 일국에 이름이 났지요.

문종대왕이 아직 세자(世子)로 계실 적에 늘 집현전 여러 학사와 같이 안평대군의 필법을 논평하시기를,

우리 아우가 만일 중국에 났더라면 비록 왕희지(王羲之)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찌 조맹부(趙孟頫)에 뒤지리오.”

하면서, 칭찬하시기를 마지않았지요.

하루는 대군이 저희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천하의 모든 재사(才士)는 반드시 안정한 곳에 나아가서 갈고 닦은 후에야 이루어지는 법이니라. 도성 문밖은 산천이 고요하고, 인가에서 좀 떨어졌을 것이니, 거기에서 업을 닦으면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그 위에다 여남은 칸의 정사(精舍)를 짓고, 당명을 비해당(匪懈堂)이라 하였으며, 또한 그 옆에다 단을 구축하고 맹시단(盟詩壇)이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이름을 통해 의()를 생각한 뜻이었지요.

그 후에 당대의 문장(文章)과 거필(巨筆)들이 그곳에 다 모이니, 문장에는 성삼문(成三問)이 으뜸이었고, 필법에는 최흥효(崔興孝)가 으뜸이었습니다. 비록 그러하오나 다 대군의 재주에는 미치지 못하였지요.

하루는 대군이 술이 반취하여 여러 시녀를 불러 말하기를,

하늘이 재주를 내리심에 있어서, 남자에게는 풍부하게 하고 여자에게는 적게 하였으랴? 지금 세상에 문장으로 자처하는 사람이 많지마는, 능히 다 상대할 수 없고, 아직 특출한 사람이 없으니 너희들도 또한 힘써서 공부하여라.”

하고는 대군께서는 궁녀 중에서 나이가 어리고 얼굴이 아름다운 열 명을 골라서 가르치셨습니다. 먼저 <언해소학(諺解小學)>을 가르친 후에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 <시경(詩經)>, <통사(通史>등을 차례로 가르치고, 또 이백(李白), 두보(杜甫), 당음(唐音)의 시 수백 수를 뽑아 힘써 가르치니 오 년이 지나지 않아 과연 모두 대성하였지요.

또 대군께서는 집에 들면 저희들에게 안전에서 시를 짓게 하여, 시의 우열을 정하여 가작자(佳作者)에게는 상을 주어 권장하였습니다. 이에 탁월한 기상이 대군에게는 미치지 못하나, 음률에 청아함과 필법의 완숙함은 당나라 시인의 울타리를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되었습니다.

시녀 열 사람의 이름은 소옥(小玉), 부용(芙蓉), 비경(飛瓊), 부취(翡翠), 옥녀(玉女), 금련(金蓮), 은섬(銀蟾), 자란(紫鸞), 보련(寶蓮), 운영(雲英)인데, 그 중 운영은 바로 저입니다. 대군은 열 명의 시녀를 심히 사랑하고 불쌍하게 여겼으나, 항상 궁문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과의 말도 절대로 금하였습니다. 문사들과 주배전(酒杯戰)을 할 때가 많지 않았지만, 간혹 있더라도 시녀들은 가까이 있지 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바깥사람들이 알까 하여 언제나 엄한 명을 내렸습니다.

시녀가 궁문 밖을 나가면, 그 죄는 죽음이 마땅하고, 궁문 밖 사람이 궁인의 이름만 알아도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6


하루는 대군이 저희를 불러 이르기를,

오늘은 문사 아무개와 주배(酒杯)를 나누었는데, 그 때에 상스러운 파란 연기가 궁중의 나무로부터 일어나 궁성을 싸고 산봉우리로 스르르 날아갔다. 내가 먼저 오언 일절을 짓고 손님들에게 짓게 했으나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즉 그것을 시제로 하여 너희들은 사의(私誼)대로 또는 연령대로 글을 지어 올려라.”

먼저 소옥이 시를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綠煙細如織 푸른 연기 가늘기가 깁 같으니

隨風伴入門 바람을 따라 비스듬히 문으로 들어왔도다.

依微深復淺 흐릿하게 깊었다가 다시 엷어지니

不覺近黃昏 깨닫지 못게라, 황혼이 가까이 왔도다.

 

부용이 다음으로 올렸습니다.

飛空遙臺雨 공중에 날아 요대의 비가 되고,

落地復爲雲 땅에 떨어져 다시 구름이 되었도다.

近夕山光暗 저녁이 가까워 오매, 산빛이 어둑어둑하고

幽思向楚君 그윽한 생각이 초나라 임금을 생각하였도다.

 

비취의 시는,

覆花蜂失勢 꽃에 덮이니 벌이 갈 길을 잃었고,

籠竹鳥迷巢 대통 속의 새들은 아직도 깃에 들지 못하였구나.

黃昏成細雨 황혼 때에 가는 비가 되어

窓外聽蕭蕭 창밖으로 들리는 소리 소소하도다.

 

비경의 시는,

小杏難成眼 작은 은행으로 눈을 맺기 어렵고,

孤篁獨保靑 외로운 대피리는 홀로 푸른빛을 보전하였구나.

輕陰暫見重 가볍고 침침함을 잠깐 다시 보려니,

日暮又昏暝 날이 저물고 또한 어둡도다.

옥녀의 시는,

蔽日輕紈細 해를 가리는 얇은 깁은 가늘고

橫山翠帶長 산에 비끼어 길이 푸름을 띠었도다.

微風吹漸散 가는 바람이 불어 잠깐 그쳤으나,

猶濕小池塘 오히려 작은 연꽃이 젖었도다.

 

금련의 시는,

山下寒烟積 산 아래 쌓인 찬 연기가

橫飛宮樹邊 비끼어 궁중 나무 가에 날았도다.

風吹自不定 바람이 불매 스스로 정하지 못하였으니,

斜日滿蒼天 비낀 날이 창천에 가득하였도다.

은섬의 시는,

山谷繁陰起 산골에는 이따금 그늘을 지우고

池臺緣影流 연못가에는 푸른 그림자 흘렀도다.

飛歸無處覓 날아가매 찾을 곳이 없음이여,

荷葉露珠留 연잎에 이슬 맺힌 구슬이 머물었도다.

자란의 시는,

早向洞門暗 일찍이 동문으로 향하여 어두웠더니

橫連高樹低 비끼어 높은 나무 밑에 연하였도다.

須臾忽飛去 잠깐 사이에 홀연히 날아가니,

西岳與前溪 서편 멧부리오 앞의 시내로다.

 

제 시는,

望遠靑烟細 멀리 바라보매 푸른 연기가 가늘고

佳人罷織紈 아름다운 사람은 깁 짜기를 마쳤도다.

臨風獨惆悵 바람을 대하여 홀로 설워하니,

飛去落巫山 날아가 무산에 떨어졌도다.

 

보련의 시는,

短壑春陰裡 작은 구렁이 봄 그늘 속이요,

長安水氣中 장안 물 기운 가운데로다.

能令人世上 능히 사람의 세상으로 하여금

忽作翠珠宮 홀연히 푸른 구슬 집을 지었도다.

 

대군은 한 번 보더니 놀라는 빛이 얼굴에 가득하여,

당나라 시에 비하여도 첫째 둘째가 될 것이라. 근보(謹甫)[성삼문] 이하는 채찍을 잡지 못하리라.”

하고, 재삼 읊으면서 우열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한참 읽으시다가,

부용의 시에 그대를 꿈꾼다는 것은 대단히 잘 되었고, 비취의 시는 전에 비하면 아취(雅趣)가 있고, 소옥의 시는 표일(飄逸)하여 끝줄에는 은근한 취미가 있다. 먼저 이 두 글을 제일로 정한다.”

하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처음에는 우열을 말하지 않았으나 재삼 해석하여 보니, 자란의 시는 심원한 곳이 있으나 무의식하게 사람으로 하여금 차탄하고 춤추게 한다. 그리고 그 나마지 글도 아름답게 되었으나, 홀로 운영의 시는 초창(惆悵)하고 누구를 상사하는 듯이 표현하여 있다. 그리워하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 일을 마땅히 힐문할 것이로되, 그의 재조를 보아 그대로 내버려둔다."

이 말을 들고 저는 즉시 뜰에 내려 엎드려 울면서 고했습니다.

시를 지을 때에 우연히 나온 것이오, 결코 다른 뜻은 없습니다. 지금 주군의 의혹을 받으니, 첩은 만 번 죽어도 오히려 애석할 게 없습니다.”

대군은 저를 불러 올려 자리에 앉으라 한 후에,

시는 성정으로 나와 억지로 숨기지는 못하는 것이다. 너는 다시 말하지 말라.”

하고, 채단 열 필을 열 명에게 나누워 주었습니다.

대군은 제게 마음 있는 풍정을 조금도 나타내지 않으셨으나, 궁녀들은 모두 대군이 제게 마음을 두신 모양이라고 풍설이 자자해졌습니다.

 



7


저희 열 명은 모두 물러나 동방(洞房)에 있었습니다. 대군이 어전에서 나와서 동방의 촛불을 돋우고 칠보서안(七寶書案)에 당률(唐律) 한 권을 놓고, 옛 사람들의 궁중시를 평했습니다. 저는 홀로 병풍에 기대여 초연히 인형처럼 입을 담은 채로 있었습니다.

소옥은 이 모양을 보고 제게 말하기를,

아까 낮에 부연(賦烟)의 시로 주군이 의심하셨지. 정령 그것이 불만이어 지금 잠잠히 있지만, 주군의 생각은 비단 이불의 환락에 뜻이 있는 듯 해, 일부러 몰래 기뻐하여 말하지 아니 하는가? 그대 마음에 품은 것을 모르겠구나.“

저는 옷깃을 여미고,

너는 내가 아닌데 어찌 내 마음을 알겠는가? 나는 지금 시 한 수를 얻으려고 기발한 글귀를 찾으려다 얻지 못하여 생각을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은섬은 곧 말을 이어,

뜻이 향하는 곳에 마음은 없구나. 그러니 주위 사람들의 말이란 바람이 지나가듯 할 뿐이다. 그대가 말하지 않으니 알기 어렵구나. 내 장차 시험하리다.”

그리하여 창외포도(窓外葡萄)라는 제목으로 칠언 사구를 짓도록 재촉하였습니다.

저는 곧 여러 사람들의 시기와 의심을 풀리게 하려고 시를 한 수 지었습니다.

 

蜿蜒藤草似龍行 구불구불 넝쿨은 용이 기어가는 것 같고

翠葉成陰忽有情 푸른 잎 그늘을 이루니 모든 게 유정하구나.

署日嚴威能徹照 더운 날에도 위엄은 훤히 비치고

晴天寒影反虛明 맑은 하늘엔 찬 그림자가 도리어 밝아라.

抽絲攀檻如留意 덩굴이 뻗어 난간을 감음은 뜻을 머물러 둠이오

結果垂珠欲效誠 열매를 맺어 구슬을 드리움은 정성을 본받고자 함이라.

若待他時應變化 만약 다른 날을 기다려 변화를 부린다면

會乘雨雲上三淸 응당 비구름 타고 삼청궁에 오르리라.

 

소옥이 시를 보고 일어나 절을 올렸습니다.

참으로 천하의 기재로다. 풍격이 높지 아니함은 옛 가락과 비슷하지만 갑자기 지은 것이 이와 같으니, 이는 시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복종함은 칠십 제자가 공자님께 복종함과 같다.”

자란이 말했습니다.

말이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찌 그리 허여함이 지나친가? 다만 문자가 완곡하고 비등하는 태도가 있다면 그렇긴 하구나.”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정확한 평이오.” 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시로 해명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심은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8


이튿날 문밖에서 요란한 수레소리가 들리더니 문지기가 달려와 알렸습니다.

많은 손님들이 오십니다.”

대군은 동각을 청소하게 하고 들어와 맞으니 모두 문인 재사들이었습니다. 자리를 정하고 대군은 저희들이 지은 부연시를 내보이니 모두들 크게 놀랐습니다.

뜻밖에도 오늘 성하던 당 시절의 시를 보니, 우리들은 비견할 바가 못 됩니다. 이처럼 훌륭한 글을 어디서 얻었습니까?”

대군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무엇이 그런가요? 하인이 우연히 길에서 주워와 어떤 사람 작품인지 알 수 없으나, 여염집 재사의 손에서 나온 듯하오.”

여러 사람의 의심이 풀리지 않았는데, 조금 후에 성삼문이 일렀습니다.

재주는 다른 시대에서 빌린 것이 아닙니다. 고려조에서 지금까지 육백여 년간 시로 우리나라에 이름을 떨친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혹은 침탁(沉濁)하여 불라(不雅)하고, 혹은 경청(輕淸)하고 부조(浮藻)하여 모두 음률에 맞지 않고 그 성정을 잃어버려, 제가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시를 보니 풍격이 청진(淸眞)하고 사의(思意)가 초월하여, 조금도 속세의 태도가 없으니, 이는 반드시 깊은 궁 안의 사람이 속인과 서로 만나지 아니하고, 다만 고인의 시를 읽고 주야로 음송하여 스스로 그 정서를 체득한 것입니다. 그 뜻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바람을 쐬며 홀로 슬퍼한다는 구절에는 님을 그리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외로운 황죽은 홀로 푸른빛을 가졌다는 구절에는 정절을 지키려는 뜻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 저절로 안정하지 못한다는 구절에는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윽한 그리움이 초나라 임금을 향한다는 구절에는 대군을 향하는 정성이 있습니다. ‘연잎에는 구슬 같은 이슬이 머문다서악과 앞 시내라고 한 구절은 천상이 신선이 아니면 이 같은 형용을 얻지 못합니다. 격조에는 고하가 있지마는 훌륭한 솜씨와 기상은 크게 보면 모두 같습니다. 궁중에서 반드시 열 선인(仙人)을 두고 양성한 것이니 숨기지 말고 한 번 보여 주시지요.”

대군은 내심으로 탄복하면서도 겉으로는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근보(謹甫 : 성삼문의 자)가 시감이 있다고 하는가? 내 궁 안에 어찌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이오? 의혹함이 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 저희 열 명은 창틈으로 몰래 엿들었는데,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9


이날 밤에 자란이 지성으로 제게 물었습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혼인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애인이 누군지는 알지 못하나, 네 안색이 날로 수척해 가므로 안타까이 여겨 내 지성으로 묻나니, 조금도 숨기지 말고 이야기하라.”

저는 일어나 사례하며 말했습니다.

궁인이 하도 많아 누가 엿들을까 두려워 말을 못하겠거니와, 네가 지극한 우정으로 묻는데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지난 가을 국화꽃이 피기 시작하고 단풍잎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대군께서 홀로 서당에 앉아, 시녀들에게 먹을 갈고 비단을 펼치게 하고는 칠언 사운 10수를 베껴 쓰시고 있었지. 이 때 동자가 들어와 고하기를, ‘나이 어린 선비가 김진사라 자칭하면서 대군을 뵈옵겠다 하옵니다.’ 하니, 대군께서 기뻐하시면서, ‘김진사가 왔구나.’ 하시고는 맞아들이게 한즉, 선비는 베옷을 입고 가죽띠를 맸는데, 얼굴과 거동은 신선 세계의 사람과 같더구나.”

 

대군은 한 번 보고 마음을 기울여 곧 자리를 옮겨 마주 앉았습니다.

진사가 절을 하고 아뢰었습니다.

외람되게 많은 사랑을 입고 존명을 욕되게 하고, 이제야 인사를 올리게 되오니 황송하기 말할 수 없사옵니다.”

대군은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명성을 사모하다가 집에서 갓을 마주하고 앉으니, 빛이 방안 가득하니 이는 나에게 백 명의 벗들을 주심입니다.”

진사가 처음 들어올 때에 이미 저희와 상면을 하였으나, 대군은 진사가 나이가 어리고 착하므로 저희로 하여금 피하도록 하지도 아니 하였지요.

대군이 진사님을 보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가을 경치가 매우 좋으니, 원컨대 시 한 수를 지어 이 집으로 하여금 광채가 나도록 하여 주오.”

진사가 자리를 피하고 사양하며 말했다.

허황한 이름이 사실을 가렸군요. 시의 격률을 소인이 어찌 감히 알겠습니까?”

하지만 대군은 금련에게는 노래 부르기를, 부용에겐 탄금을, 보련에겐 피리 불기를, 비경에겐 술잔 심부름을, 제게는 벼루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때 제 나이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낭군을 한 번 보고는 정신이 어지럽고 생각이 아득했습니다. 낭군도 저를 돌아보고는 미소를 머금고 자주자주 눈길을 주었다.

이 때 대군이 진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를 기다리며 정성을 다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옥구슬 같은 시구 한 번 짓기를 아껴서, 내 집으로 하여금 안색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가?”

진사는 곧 붓을 잡고 오언 사운 한 수를 써 내려 갔습니다.

 

旅鴈向南去 기러기 남쪽을 향해 가니

宮中秋色深 궁 안에 가을빛이 깊구나.

水寒荷折玉 물이 차가워 연꽃은 구슬 되어 꺾이고,

霜重菊垂金 서리가 무거우니 국화는 금빛으로 드리우네.

綺席紅顔女 비단 자리엔 홍안의 미녀

瑤絃白雪音 옥 같은 거문고 줄엔 백운 같은 음일세.

流霞一斗酒 노을이 흐르니 한 말 술이로다.

先醉意難禁 먼저 취하니 몸 가누기 어려워라.

 

대군이 재삼 읊으시며 놀라워했습니다.

진실로 천하의 기재로다. 어찌 서로 만나기가 늦었던고.”

저희 시녀 십 인도 서로 얼굴을 돌리며 경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시녀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이는 반드시 신선 왕자이 학을 타고 진세에 오신 것이니, 어찌 이와 같은 사람이 있으리오." 라고 하였지요.

대군은 잔을 들면서 물었습니다.

옛날 시인의 누구를 종장(宗匠)이라 하느뇨?”

진사가 답했습니다.

소인의 소견으로 말씀드리면, 이백(李白)은 천상의 신선으로 오래도록 옥황상제의 향안 앞에 있다가, 현포(玄圃)에 와서 노닐며 옥액(玉液)을 다 마시고 취흥을 이기지 못하여, 온갖 나무와 기화(奇花)를 꺾어 비바람을 따라 인간 세상에 떨어진 기상입니다. 노왕(老王)에 이르러서는 해상의 신선으로 일월의 출몰, 창파의 동요, 고래의 분출, 도서의 창망함, 풀과 숲의 울창함, 갈대꽃과 마름의 잎, 물새의 노래, 교룡의 눈물 등을 모두 가슴에 품었으니, 이것은 시의 조화입니다. 맹호연(孟浩然)은 음향이 가장 높으니 이는 사광(師曠)에게서 배웠습니다. 이의산(李義山)은 신선술을 배워 일찍이 시마(詩魔)를 부렸으며 일생동안 지은 것이 귀신의 말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나머지 분들도 제각기 특색이 있으니 어찌 다 진술하리오.”

날마다 문사들과 시를 논하면, 두보(杜甫)를 제일로 꼽는 이가 많은데 이것은 어떤 점을 말하는가?”

그렇습니다. 속유(俗儒)들이 숭상하는 바를 말씀드리면, 회와 구운 고기가 사람들 입을 즐겁게 함과 같습니다. 두보의 시는 참으로 회와 구운 고기입니다.”

백체(百體)를 구비하였고 비와 흥이 극히 정밀한데, 어찌 두보를 경박하다 하는고?”

소자가 어찌 그를 경박하다 하리오. 그 장점을 논하면 한무제가 미앙궁(未央宮)에 앉아 오랑캐가 중원을 침공하는 것에 분노하여 장수들에게 쳐 없애기를 명령하면, 백만 군사들이 수천 리에 뻗친 것 같고, 그 단점을 말한다면 상여(相如)에게 장양부(長楊賦)를 짓게 하고, 사마천(馬遷)에게 봉선문(封禪文)을 초한 것과 같으며, 신선산(神山)을 구한 것으로는 동방삭(東方朔)에게 좌우에서 모시게 하고 서왕모(西王母)에게 천도(天桃)를 바치게 함과 같습니다. 이러므로 두보의 문장은 백체(百體)를 구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백(李白)과 비교함에 이르러서는 하늘과 땅이 가지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과 바다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왕유와 맹호연과 비교함에 이르러서는 두보가 수레를 몰아 앞서 가면 왕유와 맹호연이 채찍을 잡고 길을 다투는 것과 같습니다.”

그대의 말을 들으니 가슴 속이 황홀하여 장풍을 타고 태청(太淸)궁에 오르는 것 같네. 다만 두 시가 천하의 고귀한 문장이라 비록 악부에는 적합하지 않지마는, 어찌 왕유나 맹호연과 길을 다투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여기서 그만두고 원컨대 자네는 시 한 편을 지어 이 집을 광채를 배가시켜 주오.”

진사는 즉시 칠언 사운을 지었습니다. 그 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烟散金塘露氣凉 연파금당(烟波金塘)에 이슬 기운이 차고

碧天如水夜何長 푸른 하늘은 물결 같은데 밤은 어이 긴고.

微風有意吹垂箔 가는 바람은 뜻이 있어 부러 발을 걷으니

白月多情入小堂 흰 달은 다정히 작은 집으로 드는구나.

夜畔隱開松反影 밤둔덕의 그늘은 소나무 그림자가 비추어짐이로다.

盃中波好菊留香 술잔 가운데에서 기울어지니 국화의 향기를 돋으도다.

院公雖小頗能飮 완공은 연소하다 하지만 자못 능히 마시고

莫怪瓮間醉後狂 괴상함은 없으나 마시고 취한 후에는 미치도다.

 

대군께서는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가까이 하고 진사님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진사는 금세의 재사가 아니로다. 내가 그 고하를 논할 바 아니로다. 도한 문장 필법에 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극히 신묘하도다. 하늘이 그대를 동방에 나게 하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로다.”

진사님이 붓을 들어 글씨를 쓸 때에 먹물이 그릇되어 제 손가락에 떨어졌습니다. 마치 파리 날개가 그려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여 씻으려고도 아니 하였지요. 좌우의 궁인들은 모두 미소 지으며 이를 등용문에 비했습니다.

어언 밤중에 이르러 시간을 재촉하니, 대군께서도 졸음이 오는지 하품을 하셨습니다.

나는 취했다. 그대는 물러나 쉬라. ‘명조유의포금래(明朝有意抱琴來)’란 구절을 잊지 말게.”

이튿날 아침에 대군은 두 편의 시를 재삼 읊조리면서 감탄했습니다.

성삼문과 자웅을 겨를 만하지만, 진사의 시는 오히려 청아한 맛이 있는 점에서는 지나치도다.”

 

그때부터 나는 능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맛은 떨어지고 마음이 괴로워서 허리띠를 푸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는데, 자란은 느끼지 못하였는가?”

자란은,

그래 내 잊었었군. 이제 너의 말을 들으니 정신의 맑아짐이 마치 술이 깬 것과 같구나.”라고 하더이다.

 

 

 

 

10

그 후에도 대군은 자주 진사와 접촉하였으나, 저희들에게 서로 보지 못하게 한 까닭으로 매양 문틈으로 엿보았을 뿐입니다.

하루는 설도전(薛濤牋)에다 오언 사운 한 수를 썼습니다.

 

布衣革帶士 베옷 입고 가죽띠 띤 선비가

玉貌如神仙 옥 같은 얼굴이 신선 같도다.

每向簾間望 매양 발 사이로 여어보나,

何無月下緣 어찌하여 달 아래 인연이 없는고.

洗顔淚作水 낯을 씻어도 눈물로 물을 지었고,

彈琴恨無絃 거문고를 타면 줄이 울음을 한하도다.

無限胸中怨 한없는 흉중의 쌓인 원을,

擡頭獨訴天 머리를 들어 홀로 하늘께 사뢰리라.

그리고 이 시에다 금전 한 꾸러미와 속옷 일습을 동봉하여 진사에게 전하려 가슴을 태웠으나, 그 기회가 없어 그대로 지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달밤에 대군이 문객들을 청하여 연석에서 진사의 시재를 칭찬하며 진사의 시 두 수를 문객들에게 내어 보였습니다. 모두 경이의 눈으로 시를 전하며 구경하고 칭찬을 아니 하는 자가 없었지요. 진사를 한번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대군은 그 자리에서 대군이 사람을 보내어 진사를 불렀습니다. 얼마 후, 진사가 도착하여 당에 올랐는데, 그 모양이 의외로 무슨 근심이 있는지 용모가 초췌하여 풍채가 없고 옛날의 기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군이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진사는 근심하는 마음이 없을 터인데, 굴원(屈原)처럼 못가를 거닐며 시를 읊느라고 초췌해졌는가?”

이 말에 문객들 모두가 크게 웃었지요.

진사가 일어나 사례했습니다.

한미한 유생이 외람되게 대군의 은총을 받아, 복이 지나치고 화가 당도하였는지 질병이 온몸을 얽어매어, 요 며칠 식음을 전폐하고 기거를 남에게 의지하였습니다. 이제 후한 부르심을 받고 몸을 이끌고 와서 뵈옵니다.”

좌중은 모두 무릎을 가다듬고 이 말을 공경하였습니다. 진사는 이들 중에 가장 연소하였기에 가장 말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진사의 앉은 편에 제가 있었는데, 내외가 다만 벽 한 겹을 두고 있을 뿐이었지요.

어느 덧 밤도 야심하고 문객들은 모두 취하였습니다. 저는 벽에 구멍을 내고 엿보고 있었는데, 진사도 또한 그 뜻을 알고 구석을 향하여 앉았습니다. 이때 저는 밀서를 벽 틈으로 던졌는데 진사는 얼른 받아 넣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1


진사는 편지를 열어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정은 지난날보다 배나 더하여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곧 제게 답서를 전하려 하였으나 청조(靑鳥)가 없어 홀로 가슴만 태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사는 우연히 한 무녀(巫女)가 동문밖에 사는데, 영험하기로 이름이 높아 자주 수성궁에 출입하면서, 대군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녀를 시켜 답서를 전할 수 있을까 하여 진사가 무녀의 집을 심방하였습니다.

무녀는 나이가 삼십에 가까웠으나 자색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과부가 되어 춘정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음을 자처했습니다. 그런데 진사가 심방하매, 자기가 친히 나가서 성심으로 술안주를 갖추어서 진사의 호기심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진사는 술잔을 들기는 들었으나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오늘은 바쁜 일이 있으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이튿날도 무녀를 심방하였으나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진사는 한 말도 아니 하고 다만 내일 다시 오겠노라고만 말할 뿐이었습니다.

무녀는 보고 볼수록 진사의 늠름한 풍채에 정염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진사가 매일 연일 와도 한 말도 아니하는 것은, 아직 연소하기에 부끄러워하는 까닭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신이 먼저 뜻을 말하고 만류하여 밤이 되거든 강제라도 동침하도록 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아침부터 목욕소제하고 화장을 더욱 심하게 하고 화려한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구슬자리에 꽃방석을 펴고 시비를 시켜 일부러 문밖에서 마중하였습니다.

진사는 그 날도 무녀의 집을 심방하였으나, 얼굴을 화장한 것이든지 집안을 황홀이 꾸민 것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이 다만 심중으로 괴상하다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무녀가 말하기를,

오늘밤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이 기쁜 밤이외다. 옥인(玉人)을 맞아 첩은 하늘이라도 오르고자 생각합니다.”

진사는 무녀에게 뜻이 없기에 무어라고 말을 하여야 좋을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또 순박한 성정이라 그 모습을 즐기지도 아니 하였습니다.

이에 무녀가 노여워했습니다.

과부의 집에 젊은 사내가 왕래하는데, 어찌하여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가?”

만약 그대가 신통함이 있을진대, 내가 이처럼 심방하는 일을 알겠지요?”

진사의 침착한 어조에 음탕한 무녀도 무의식으로 자리를 고쳐 앉아, 신단(神壇)으로 가서 신에게 배례하고 방울을 흔들며 무엇이라고 한참 눈을 감고 엎드렸습니다. 그러고 몸을 일으켜 진사에게 말하기를,

낭군은 정말 가련합니다. 사리에 닿지 않는 방법으로 이루기 어려운 계획을 이루려하니,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삼년이 미치지 못하여 황천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진사가 이 말을 듣고 읍배(泣拜)하면서,

신무(神巫)가 말하지 않아도 나 또한 그것을 압니다. 그러나 마음 가운데에 원한이 맺혀 백약도 해소하지 못합니다. 만약 신무를 인연하여 다행히 편지를 전하여 주시면 죽어도 영광이겠습니다.”

무녀가 답하기를,

비천한 무녀의 몸인 까닭에, 신사(神祀)를 인연할지라도 간혹 출입하고 부르시는 명이 없으면 대군의 궁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낭군을 위하여 한번 가 보지요.”

그러자 진사는 품속에서 한 장의 서신을 꺼냈습니다.

삼가 잘못 전하여 화의 기틀을 만들진 마십시오.”

무녀도 연소한 진사를 가련히 여겨, 자진하여 편지를 가지고 수성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궁중의 여러 사람들은 무녀를 괴상히 생각하여 주목하였지만, 무녀는 궁중에서도 신의 영험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무사할 수 있었어요.

무녀는 틈을 봐서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저를 후원으로 데리고 나와서 진사의 서한을 전하였습니다. 저는 방으로 돌아와서 이것을 뜯어보았지요.

 

한번 꿈 같이 본 후에,

마음은 붕 뜨고 넋이 나가 정을 진정할 수 없었습니다.

날마다 궁성을 향하여 몇 번이나 간장을 살랐습니다.

의외에 벽 틈으로 옥 같은 글을 받은 후에

잊을 수 없는 옥 같은 소리 펴 보기도 전에 먼저 목이 막혔고,

번뇌하며 읽어 아직 반도 못 읽고 눈물이 글자를 적셨습니다.

잠을 자도 능히 이루지 못하고 먹어도 넘어가지 않아

병은 골수의 맺혀 백약이 듣지 않습니다.

황천에서나 만날 수 있다면 다만 이것을 원할 뿐입니다.

하늘이 어여삐 여기시고 귀신은 도우시면

천행으로 생전의 한번 만나 이 원한을 풀게 되면

즉석에서 몸을 가루를 만들고 뼈를 갈아

그것을 천지신명께 제사지내겠습니다.

붓을 들고 종이를 대하니

목이 메임은 무엇을 말하랴 함일까요?

준비가 없이 삼가 적습니다.

 

이렇게 쓰고 다시 시 한 수를 적었습니다.

 

樓閣重重掩夕扉 누각은 깊고 깊어 이 중중한데 저녁에 문이 닫혔는데

樹陰雲影摠依微 나무 그늘과 구름 그림자는 하나처럼 희미하구나.

落花流水隨溝去 꽃은 떨어지고 물은 흘러 구렁에서 을러 나오고

幼燕含泥趁檻歸 어린 제비는 흙을 물고 난간 위로 돌아가는구나.

倚枕未成蝴蝶夢 베개를 의지하여 호접몽을 이루지 못하니,

回眸空望魚鴈稀 창을 열고 남천을 바라보니 기러기가 드물구나.

玉容在眼何無語 옥 같은 얼굴은 눈에 있는데 어찌하여 말이 없느뇨.

草綠鶯啼淚濕衣 풀은 푸르고 꾀꼬리는 울고 눈물은 옷깃을 적시도다.

 

저는 이것을 보니 소리는 끊어지고 기운은 막히어 입속으로도 한탄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병풍 뒤에 몸을 감추고 오직 사람이 알까하여 겁만 날 뿐이었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세월 가는 줄도 알 수 없었습니다. 천치 같았고 때로는 미친 사람 같았습니다. 이러했으니 대군의 의혹함이나 타인들의 소문이 괴이함도 무리라고는 하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자란도 제 자세한 말을 듣고 들을수록 비통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동정의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시는 성정에서 나와 속일 수 없는 일이다.”



12


하루는 대군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비취를 부르셨습니다.

너희 열 사람이 한 방에 있으면 학업에 방해가 되니, 다섯 명은 서궁(西宮)에 두기로 하겠다.”

그래서 저와 자란, 은섬, 옥녀, 비취는 그 날로 서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옥녀가 말하기를,

그윽한 꽃과 가는 풀, 흐르는 물과 꽃다운 나무가 있어, 가히 산속의 야장(野庄)과 같아서 참으로 독서하는 집이로다.”

제가 이에 답했습니다.

우리가 사인(舍人)도 아니며 비구니도 아닌데, 이 깊은 궁에 갇혀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소위 장신궁(長信宮)이라 하는 것이야.”

이 말을 듣고 좌우의 모든 사람들이 차탄함을 마지않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글월을 지어 진사에게 보내려고 지성으로 무녀가 오기를 빌었으나 무녀는 오지 아니 하였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진사가 무녀에게 뜻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무녀가 앙심을 품은 까닭으로 오지 아니한 것이었겠지요.

어느 날 저녁에 자란이 비밀히 제게 말하기를,

궁중의 사람들은 매년 중추절이면 탕춘대(蕩春臺) 아래 물에서 완사(浣紗)를 행하여 주연을 베푸는데, 금년에는 아마 소격서동(昭格署洞)에다 베푸는 모양이야. 그런즉 그 핑계를 대고 무녀를 찾는 것이 상책이지.”

저는 이 말에 동의하여 중추절을 기다렸는데 일각이 여삼추였습니다. 비취는 모든 비밀을 알고도 모르는 듯이 야살스럽게 제게 말했습니다.

운영은 처음 궁에 왔을 때에는, 안색이 배꽃 같아서 분을 아니 발라도 천연미가 사람을 황홀케 하여, 궁인은 모다 운영을 괵국부인(虢國夫人)이라고 불렀는데, 얼굴빛이 옛날보다 못하고 점차로 처음 같지 아니하니 이게 무슨 까닭인가?”

날 때부터 허약한대다, 더욱 더위에 몸이 파리하여지는 병이 있었는데, 오동잎이 떨어지고 서늘한 가을이 돌아오면 조금 낫겠지.”

 

이에 비취는 시 한 수를 지어 저를 희롱하였는데, 시상이 절묘하였습니다. 저는 그 재주를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그 희롱을 부끄러웠습니다.

 

荏苒數月 그럭저럭 두어 달이 지나가고

節屬淸秋 어언 절기는 가을이 되었구나.

凄風夕起 서늘한 바람은 저녁에 일어나는데

細菊吐黃 가는 국화꽃은 노란 빛을 토하는구나.

草虫歛聲 온갖 벌레가 추위에 신음하고

皓月流光 흰 달은 빛을 흘리는구나.

妾知西宮之 운영은 서궁 사람들과 가깝지만

人已不可隱 겉으로는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구나.

 

이렇게 사실을 알렸습니다. 저는 다만 남궁의 사람들만 모르도록 하여 달라 부탁했지요.

곧 기러기 떼는 남쪽으로 날아가고, 풀잎에는 구슬 같은 이슬이 맺히면, 맑은 시냇물에 빨래를 해왔는데, 정히 그 때를 당하였습니다. 여러 궁녀들과 날짜를 정하려 했으나 의론이 분분하여 완사(浣紗)할 장소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남궁 사람들은 청계백석(淸溪白石)이 탕춘대(蕩春臺) 아래보다 나은 곳은 없다고 하고, 서궁 사람들은 소격서동의 천셕(泉石)이 문밖보다 못하지 않은데, 하필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데서 찾는가라고 했습니다. 결국 남궁 사람들이 고집을 피우고 허락지 아니하여 장소를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날 밤 자란이 말했다.

남궁의 오 인 가운데 소옥이 주론인데, 내가 기이한 계교로써 그 뜻을 돌릴 수 있다.”

앞에서 등으로 인도하여 남궁에 이르자, 금련이 반가이 맞이하였습니다.

한 번 남궁과 서궁으로 갈라지니, 소원하기가 진나라와 초나라 같았는데, 뜻밖에 오늘 저녁 옥체가 왕림하시니 후의에 깊이 감사한다.”

소옥이 나서서 말하기를,

사례할 게 뭐 있나? 이들은 세객(說客)이야.”

자란이 옷깃을 여미고 정색하며,

남의 마음을 내가 헤아리나니, 어째서 너는 세객이라 하는가?”

서궁 사람들은 소격서동으로 가고자 하는데 내가 혼자서 고집을 세웠다. 그러므로 네가 밤중에 찾아왔으니, 세객이라 함도 또한 적절하지 않은가?”

서궁 오 인 중, 나 홀로 성내로 가고자 한다.”

홀로 성내를 생각하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

자란이 답하기를,

내가 듣기로는 소격서동은 천성에 제사하던 곳으로 동명을 삼청동이라 한다. 우리들 열 사람은 반드시 삼청동(三淸洞)의 선녀로 황정경(黃庭經)을 잘못 읽어 인간 세상에 귀양 온 거야. 이미 인간 세상에 있다면 산인들, 들인들, 농가인들, 바닷가인들 어느 곳인들 불가하겠는가? 그런데 심궁에 굳게 갇혀 있어 새장안의 새와 같고, 꾀꼬리 노래 소리에도 탄식하고 봄날 푸른 버들을 보고도 한숨짓는다. 제비는 쌍쌍이 날고, 깃든 새들은 마주 보며 졸고, 풀에도 합환초가 있고 나무에도 연리지가 있는 데, 이렇게 무지한 초목과 미물인 새들도 음양을 받아 즐거움을 나누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들 열 명은 유독 무슨 죄가 있기에, 적막한 깊은 궁궐에서 길이 일신을 가두고 봄날의 꽃구경과 가을날의 달놀이할 적에도 등불을 벗하여 넋을 소진하며, 허망하게 청춘의 나이를 포기하고 공연히 땅 속의 한을 남겼으니, 타고난 목숨의 기박함이 어찌 이다지 심한가? 인생이 한 번 늙어지면 다시 젊어질 수 없는 것을 네가 다시 생각해 보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이제 맑은 시내에 목욕하고 몸을 깨끗이 하여, 태을(太乙)사에 들어가 머리를 조아려 백 번 절하고 손 모아 축원하여 하늘의 도움을 빌어 이 같은 처지를 면하고자 함이지, 어찌 다른 뜻이 있으리오. 우리 궁녀들은 인정이 동기와 같았는데, 이 한 가지 일로 인하여 부당하게 의심하는 입장에서 남을 의심하다니? 내가 터무니없이 믿지 못할 말을 하였구나.”

그러자 소옥이 일어나 사례하며,

내가 밝은 이치가 어두워, 너에게 미치자면 멀었구나. 처음에 성 안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성 안에는 본디 무뢰한 협객의 무리가 많아 뜻밖에 강포한 욕을 당할까 염려하여 그 점을 의심하였는데, 너는 나로 하여금 멀리 아니하고 다시 소통하게 하였구나. 지금 이후로는 비록 대낮에 하늘에 오른대도 내가 따르고, 강을 의지하고서 바다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또한 따를 것이다. 이른바 다른 이들을 따라 일을 이루어도 성공에 이르기는 매한가지라 했다.”

부용이 말하기를,

무릇 일이란 마음을 결정해야 하는데, 먼저 정해지지 않은 것을 말하여 두 사람이 다투니 일이 순조롭지 않겠구나. 한 집안의 일을 대군도 모르게 우리 부녀들끼리 몰래 의논하니 마음이 불충함이라. 낮에 다투던 일을 밤이 반도 안 가서 굴복하는 사람은 남이 불신한다. 또한 맑은 못과 옥 같은 시내가 없는 곳이 없는데, 반드시 성사(城祠)로 가려하니 옳지 않은 듯하다. 비해당(匪懈堂) 앞은 물이 맑고 바위가 희어 매년 여기서 빨래를 하였는데, 이제 장소를 바꾸고자 함도 옳지 않다. 한 번 거동에 이 다섯 가지를 잃으니 나는 그 명에 따르지 않겠다.”

보련이 말하기를

말이란 문신하는 도구와 같아서, 삼가고 삼가지 않는 데 따라 경사와 재앙이 따른다. 이러므로 군자는 이를 삼가 입지키기를 병()과 같이하였다. ()나라 때에 장상여(張相如)는 종일 말하지 않아도 일을 이루지 못함이 없었고, 색부(嗇夫)는 척척 예리한 말로 죄었다 풀었다 하니, ()에서는 그를 꾸짖었다. 내가 보건대 자란의 말은 숨기고서 다 말하지 않았고, 소옥의 말은 억지로 따르겠다는 것이고, 부용의 말은 힘써 말을 꾸미니 모두 나의 뜻에는 맞지 않는다. 이번 행사에 나는 참여하지 않겠다.”

금련이 말하기를,

오늘밤 의론은 끝내 결론을 못 냈으니, 나는 또한 화목하게 될까 점을 쳐 보리라.”

그리고 곧 주역을 펴고 점을 쳐서 괘를 얻어 이를 풀었습니다.

내일 운영은 반드시 대장부를 만나리라. 운영의 용모와 행동거지는 인간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대군이 마음을 기울인 지가 이미 오래다. 운영이 죽음으로써 항거하는 것은 다른 연고가 아니라, 차마 부인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어서이다. 대군의 권위 있는 명령이 엄할지라도, 운영의 몸을 손상할까 하여 감히 가까이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적막한 곳을 버리고 저 번화한 곳에 가고자 하는데, 유협한 소년들이 그 미색을 보면 반드시 정신을 잃고 미치고자 하는 자가 있으리라. 비록 서로 가까이하지 않더라도 손가락질하고 눈길을 보낼 것이니 이 또한 욕된 일이다. 지난 날 대군은 궁녀가 대문을 나가 바깥사람들이 그 이름을 안다면 그 죄는 죽음에 해당한다.’라고 명령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번 행차에 나는 참여하지 않겠노라.”

자란은 일이 성사되지 못함을 알고 무안하고 섭섭하여 곧 떠나가고자 했습니다.

비경이 울면서 비단허리띠를 잡고 억지로 만류하고, 앵무잔에다 유하주를 따르고 권하여 좌우에서 모두 마셨습니다.

금련이 염려하여,

오늘 저녁 모임은 힘써 조용히 해야 하는데, 비경의 울음소리에 나는 참으로 괴롭다.”

비경이 답하여,

처음 남궁에 있을 적에 운영과 사귐이 심히 은밀하여 사생과 영욕을 함께 하고자 했는데, 이제 거처를 달리할지라도 어찌 차마 잊겠는가? 전날 대군 앞에서 문안을 할 때, 당 앞에서 운영을 보니 가는 허리는 더 가늘어졌고 얼굴빛이 초췌하고 목소리는 가는 실낱같아 입에서 나오지 못할 듯했다. 일어나 절을 올릴 즈음에는 힘이 없어 땅에 엎어져 내가 부축하여 일으키고 좋은 말로 위로했었다. 그 때 운영은 불행히 병이 있어 조석으로 죽을 듯하다. 나의 미미한 목숨이야 죽어 아까울 게 없지만 아홉 명의 문장과 재화가 일취월장하니, 다른 날 아름다운 시구를 모아 일세에 떨칠 터인데, 내가 볼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슬픔을 금할 수 없구나.’라고 했다. 그 말이 자못 처절하여 내가 눈물 떨구던 일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병이란 게 실로 그리움 때문이었다. , 자란은 운영의 벗이로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을 천단 위에 두고자 함도 또한 어려운 일이다. 오늘의 계획을 만약 이루지 못할 것 같으면 지하에 죽어서라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요, 원한은 남궁에 돌아올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서경에, ‘선한 일을 하면 하늘이 백 가지 상스러운 일을 내리시고, 선하지 않을 일을 하면 하늘이 백 가지 재앙을 내리신다.’고 했는데 지 이 논의가 착한 일인가. 착하지 않은 일인가?”

소옥이 말하기를,

나는 이미 허락했고 세 사람의 뜻도 이미 따르기로 했으니 어찌 중도에 폐기하겠는가? 설혹 일이 누설되어 운영이 홀로 죄를 당하더라도, 어찌 다른 사람에게 미치겠는가? 나는 다시 말하지 않고 마땅히 운영을 위하여 죽으리다.”

자란은,

따르는 자 반이오, 따르지 않는 자 반이니 일은 글렀다.”

일어났다가 다시 앉으며 다시 그들의 뜻을 탐색하니, 혹 따르고자 해도 두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지요.

다시 자란이 말하기를,

천하의 일에는 정도(正道)와 권도(權道)가 있다. 권도도 사리에 맞으면 이 또한 정도이다. 어찌 변통하는 권도를 쓰지 않고, 앞의 말을 굳게 지키려하는가?”

하자 이번에는 좌우에서 일시에 따랐습니다.

또 지란은,

내가 변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 충성을 도모하다 보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비경이 말하기를,

엣날 소진(蘇秦)은 여섯 나라를 합종(合從)케 했는데, 이제 자란은 다섯 사람을 따르게 했으니 가히 변사라 할 수 있다.”

그러자 자란은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 인()을 찼는데, 지금 나에게는 무슨 물건을 줄 것인가?”

이에 금련은,

합종한 것은 여섯 나라의 이익이나, 지금 우리가 따른다 하여 우리 오 인에게 이익될 것이 무엇인가?”

하여 그들은 서로 대하며 크게 웃었습니다.

자란이 다시,

남궁 사람들은 모두 착하여 운영으로 하여 절박한 목숨을 다시 잇게 했으니, 어찌 사례하지 않으리오.”

하고 일어나 재배하니, 소옥도 일어나 절을 했습니다.

자란이 또 이르기를,

오늘 일은 오 인이 따르기로 했다.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는 땅이 있으며 촛불이 밝히고 귀신이 임하였으니 내일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는가?”

하고 일어나 절하고 가니, 오 인은 모두 중문 밖까지 나와 배송하습니다.

자란이 제게 돌아오기에 저는 벽을 잡고 일어나 재배를 올려 사례했습니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살린 이는 낭자로다. 죽기 전에 맹세코 이 은혜를 갚으리다.”

그리고는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소옥과 남궁의 네 사람이 들어와 문안하고 물러나 중당에 모였습니다.

소옥이 이르기를,

하늘이 맑고 물이 차니, 가히 빨래할 시절이로다. 오늘은 소격서동에다 장막을 치는 게 좋겠지요?”

그러자 여덟 명은 모두 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13


저는 물러나 서궁으로 돌아온 뒤, 백라삼(白羅衫)의 한 가닥에 마음속 간절한 애원을 적어 그것을 몸에 품고, 자란과 두 사람이 모든 사람 중에서 일부러 뒤쳐져 있다 채찍을 잡은 동복(童僕)에게 말했습니다.

동문 밖에 영험한 무녀가 있다 하니 거기서 병을 진찰하고, 곧 여러 사람 있는 곳으로 갈 터이다.”

동복은 그 말을 따랐습니다. 저는 급히 무녀에게 가 공순한 말로 애걸했지요.

오늘 여기 온 것은 본디 김진사를 한 번 만나고자 합입니다. 급히 통지해 주시면 종신토록 그 은혜는 갚겠습니다.”

무녀도 그 청을 들어 사람을 진사에게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진사는 죽을 듯 살 듯 달려왔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보매 가슴이 막히어 한 말도 못하고, 다만 서로 붙들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진사에게 편지를 건넸습니다.

첩은 오늘밤 돌아올 터이오니, 낭군님은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하고, 말 한마디를 남기고 말을 타고 갔습니다.

진사가 편지를 열어 보니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지난 번 무산신녀가 전해준 편지에는 낭랑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편지에 가득하였는데 편안하신지요?

글을 받들어 재삼 읽자니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어 마음을 안정할 수 없었습니다. 곧 답서를 보내고자 하였으나 이미 믿을 만한 인편이 없는데다, 또한 일이 누설될까 두려웠고, 옷깃을 당겨 바라보았지만 날아가고자 해도 날개가 없으니 애가 끊어지고 넋을 불사릅니다. 다만 죽을 날을 기다리며 죽기 전에 이 편지에 의지하여 평생의 회포를 다 토하오니, 엎드려 비옵건대 낭군께서는 나를 기억해 주소서.

첩의 고향은 남방입니다. 부모님은 자식 중 특히 첩을 사랑하시어 나가 놀아도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맡겨 두었나이다. 숲속 시냇물 가, 매화, 대나무, , 유자나무의 그늘 아래 날마다 놀기를 일삼았습니다. 이끼 낀 바위에서 물고기 낚는 무리와 소풀을 뜯기고 피리 부는 아이들이 아침저녁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밖에 산과 들의 풍경과 농촌의 흥취는 다 적기 어렵습니다.

부모님은 처음에는 삼강행실(三綱行實)과 칠언당시(七言唐詩)를 가르쳤지요. 그러다 나이 십삼 세에 주군이 부르시매 부모를 이별하고 형제를 떠나 궁중의 사람이 되었답니다. 그 후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날마다 흐트러진 머리에 땟국이 흐르는 얼굴을 하고 남루한 의상을 입자, 보는 이들마다 더럽다고 하여 땅의 엎드려 운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 궁인은 저를 보고 한 떨기 연꽃이 절로 뜨락에 피었구나.’라고 했습니다. 또 부인이 따뜻한 마음을 주시고 다른 시녀들처럼 예사로이 대우하지 않으셔서 궁중의 사람들도 골육같이 친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학문을 배워 자못 의리를 알고, 음률을 해득하였으므로 궁인들이 경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지요..

서궁에 온 후에는 금서(琴書)에 전념하여 조예가 더욱 깊었습니다. 손님들이 지은 시는 하나도 눈에 걸리는 게 없는 듯 재주가 능통하였지만, 남자로 태어나지 못해 이름을 당세의 빛내지 못하고, 홍안박명(紅顔薄命)의 몸이 되어 한 번 깊은 궁에 갇히고는 끝내 말라죽을 운명이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인생이 한번 죽은 후에 누가 다시 이것을 알리오? 이러므로 한이 마음에 맺히고 원한이 가슴에 차오릅니다.

매양 수를 놓다가도 그만두고, 등불을 붙여 비단을 짜다가도, 북틀을 던지고 휘장을 찢어버리며 옥비녀를 꺾어버립니다. 잠시 주흥을 얻으면 일상에서 벗어나 정원을 산보하다가 계단 아래 꽃을 뜯어버리고, 뜨락의 풀을 손으로 꺾어 버립니다. 마치 미친 사람과 같습니다. 이것은 정을 스스로 억제치 못한 까닭이외다.

그러다 지난 해 가을밤에 헌 번 낭군에 옥같은 얼굴을 벽 사이로 보고, 천상의 선인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지 않았나 하고 의심하였습니다. 첩의 모습은 아홉 궁녀의 가장 아래에 있었는데도, 전생의 인연이 있었는지 어찌하여 붓 아래 일점이 마침내 가슴속에 원한을 맺는 빌미가 될 줄 알았으리요.

발 틈 사이로 바라보고는 부부의 인연을 맺을까 헤아렸으며, 꿈속 같이 만나보고는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이어갈까 하였습니다. 한 번도 이불 속에서의 즐거움은 없을지라도 낭군의 옥모수용(玉貌手容)이 황홀하여 눈 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배꽃 속의 두견의 울음소리와 오동나무의 밤비 소리가 처량하여 들려 차마 들을 수 없고, 뜰 앞에 여린 풀이 나고 하늘가에 한 조각 구름이 흘러도 처량하게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혹은 병풍에 의지하여 앉기도 하고 혹은 난간에 의지하여 서기도 하며,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홀로 창천에 호소할 뿐입니다.

낭군께서도 또한 첩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이 몸이 낭군님을 만나기 전에 먼저 죽는다면, 천지가 없어져도 이 정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완사(浣紗)로 가는 길이어서, 양궁의 시녀들이 모두 모여 있는 까닭에 암만하여도 함께 있을 수는 없습니다. 눈물은 먹물로 변하고 넋은 비단실에 맺힙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낭군께서는 몸을 굽혀 돌아봐 주옵소서.

또 졸구로 삼가 앞의 은혜에 답하옵니다. 이것이 거짓으로 기롱하는 것이 아니요, 다만 호의를 두고 읊은 것입니다. 글은 가을을 슬퍼하는 글이요 시는 상사의 시였습니다.

 

 

 

 

14


저녁이 되어 저와 자란이 먼저 나와 동문 밖으로 가려할 적에 소옥이 시 한 수를 지어주었습니다. 그 시는 저를 희롱하는 글이었지만 부끄러움을 참고 받았습니다.

그 시에는,

太乙祠前一水回 태을사 앞에는 한 물이 둘렀고

天壇雲盡九門開 천단에 구름이 다한 곳에 구문이 열렸구나.

細腰不勝狂風急 가는 허리가 미친바람의 급함을 이기지 못하였으니

暫避林中日暮來 잠시 수풀 속에 피하였다 날이 저물어야 돌아오는구나.

 

비경이 곧 차운하고, 비취, 옥련이 서로 계속하여 차운한 것도 모두 저를 희롱하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말을 타고 먼저 무녀의 집으로 가니, 무녀는 원한을 품었는지 밖을 향하여 앉아 돌아보지도 않고, 진사는 나삼(羅衫)을 부여잡고 종일 울어서 상혼실성(喪魂失性)하여 오히려 제가 돌아오는 것도 몰랐습니다.

저는 왼손에 끼었던 운남(雲南) 옥색의 금가락지를 내여 진사의 품속에다가 넣어 주었습니다.

박명한 첩을 박정하다 않으시고, 천금 같은 몸을 굽혀 누추한 집에 와 기다려 주시니, 첩이 불민하오나 또한 목석이 아니외다. 죽음으로써 맹세하고 굳은 마음을 이 금가락지로 보여 바칩니다.”

진사는 급히 일어나서 가려 했습니다. 다시 이별을 당함에 흐르는 눈물이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이때 저는 진사의 귀에다 입을 대고 말했습니다.

서궁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밤이 늦거든 서쪽 담장을 따라 들어오세요. 들어오시면 삼생의 미진한 인연을 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옷을 떨치고 떠났습니다. 먼저 궁문에 들어서니, 여덟 궁녀도 뒤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날 밤 이경에 소옥과 비경이 촛불을 앞세우고 서궁으로 왔습니다.

소옥이 말하기를,

낮의 시는 무심하게 지어 너무 희롱한 듯한 데가 있는지라, 밤이어도 피하지 않고 험한 길을 무릅쓰고 와서 사과하련다.”

자란이 답하기를,

우리 오 인의 시는 다 남궁 사람의 글이라. 우리 비록 궁을 나누어 있으나, 자취야 무슨 다름이 있으랴. 당나라 때에도 우이(牛李)의 당과 같은 것이 있었으니, 어찌 그렇게 하지 않으리오. 여자의 정은 한 가지다. 오래 두 궁에 갇히어, 길이 외로운 그림자를 위로하여 다만 대하는 바가 촛불이요, 하는 바가 노래와 거문고뿐이라. 백화는 꽃송이를 머금고 웃음 지고, 쌍쌍이 나는 제비는 날개를 비비며 희롱하는데, 박명한 우리들은 심궁에 갇혀 사물을 보고 봄을 생각하니, 그리운 정이 오죽하겠는가? 아침 구름과 묏부리 비는 자주 초왕의 꿈속에 들어가고, 왕모선녀는 몇 번이나 요대에 잔치를 참여하였다. 여자의 마음은 의당 다름이 없거늘 남궁 사람들은 어찌 유독 항아와 정절을 고수하면서 영약(靈藥)의 도적질을 뉘우치지 않는가?”

비경과 소옥은 모두 흐르는 눈물을 금하지 못하고 이르되,

한 사람의 마음은 곧 천하 사람의 마음이라. 지금 훌륭한 가르침을 들으니 비감한 회포가 기름 번지듯 하는구나.”

하고, 그들은 일어나 절하고 떠나갔습니다.

저는 자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 나와 진사는 금석의 맹약을 하였다. 오늘 오지 않으면, 내일은 반드시 담장을 넘어 올 것이다. 오면 무엇을 대접할까?”

자란이 대답하기를,

수놓은 장막이 겹겹이고, 비단 자리가 찬란하며, 술은 강물과 같고, 고기는 언덕과 같은데 오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온다면 대접하기가 무엇이 어려우리오.”

그러나 진사는 그날 밤엔 오지 않았습니다.




15


진사는 그날 밤에 서궁에 왔으나 장원이 높고, 몸에 날개가 없어 이를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그냥 돌아가게 되니 말을 못하고 얼굴에는 근심이 쌓였습니다.

진사의 집에는 특이라 하는 종이 있었는데, 그는 술책이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진사의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달라진 것을 보고 나와 땅에 꿇어앉았습니다.

진사님, 낯에 나타난 빛을 보면 진사님은 반드시 오래 사시지는 못합니다.”

특이 땅에 엎드려 울자, 진사도 꿇어 앉아 그의 손을 잡고 심중에 있는 사정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특이 아뢰기를,

왜 진작 말씀을 아니 하셨습니까? 제가 마땅히 도모하겠나이다."

곧 특은 한 개의 사다리를 만들었는데, 심히 가벼운데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었습니다. 접으면 병풍처럼 접히고, 펴면 길이가 오륙장(五六丈)쯤 되었는데 손으로 운반할 만하였습니다.

특이 이르기를,

이 사다리를 가지고 궁궐 담장을 올라가서는 거두어들여 안에다 접어 두었다가, 돌아올 때에도 그와 같이 하소서.”

진사는 특에게 사다리를 집에서 시험사마 시켜보니, 과연 특의 말과 같았습니다. 진사는 이것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했고요.

이튿날 밤에 진사가 가만히 서궁으로 가려할 때, 특이는 품속에서 개가죽으로 만든 털버선을 내여 주면서,

이것이 아니면 담장을 넘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착용하고 걸으면 몸이 가볍기가 새와 같습니다. 땅에서 걸어도 신발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날 밤, 진사는 그 계교대로 담을 넘어 들어갔습니다. 대숲 속에서 엿보고 있었는데, 월색은 낮같고 궁중은 고요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와 이러저리 거닐며 가만히 노래를 읊었습니다.

진사는 대나무를 헤치고 뛰어나갔습니다.

어떠한 사람이기로 여기에 오느뇨?”

그 사람이 웃으며 답했습니다.

낭군님은 나오소서. 낭군님은 나오소서.”

진사는 나아가 절을 올렸습니다.

나이 어린 사람이 상사함을 견디지 못하여,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바라오니 낭자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란이 이르기를,

진사님이 오심을 고대한 것이 큰 가뭄에 무지개를 기다림과 같았습니다. 이제 다행히 만나게 되어 우리들은 살아났습니다. 낭군께서는 의심치 마옵소서.”

곧 자란이 인도하여 진사는 충계를 따라 올라가 구부러진 난간을 돌아 어깨를 조심하며 들어왔습니다.,

저는 사창을 열고 옥등의 촛불을 밝히고 앉아 있었지요. 수형금로(獸形金露)에 울금향을 피워놓고 유리 서안의 태평광기(太平廣記) 한권을 펴놓았는데, 진사를 보고 일어나 절하고 맞이하였습니다.

낭군도 답례하여 주인과 손님의 예를 마친 후에 동서로 갈라 앉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자란에게 진수성찬을 차리게 하고 자하주(紫霞酒)를 따랐습니다. 자하주를 삼배하니 진사는 거짓으로 취한 척했습니다.

진사는,

밤이 얼마나 되었나요?”

하니, 자란은 눈치를 채고 장막을 내린 후에 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등불을 끄고 우리는 동침하였습니다. 그 기쁨은 짐작하겠지요.

 



16


밤은 벌써 새벽이 되고, 닭이 새벽을 알리자 진사는 일어나 떠나갔습니다. 그 후로 황혼이면 궁중에 들어가고 새벽이면 나오니 그렇지 않은 저녁이 없었다. 이렇게 깊고 은밀한 정은 교칠(膠漆)이 되어 스스로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궁 안의 눈 위에는 발자취가 낭자하게 남기 시작했습니다. 궁인들은 모두 그 출입을 알고서 위험하다고 생각지 않는 이가 없었지요.

어느 날 진사도 문득 좋은 일이 끝내 화의 기틀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크게 두려워하며 종일 근심했습니다.

이 때, 특이 바깥에서 들어와 이르기를,

저의 공이 심히 큰데 끝내 포상을 논하지 않으심이 옳은지요?”

진사가 답하기를,

마음에 새겨두고 잊지 않았다. 조만간 마땅히 중한 상을 주리라.”

그런데 이제 안색을 보니 또한 근심이 있는 듯합니다. 알지 못하거니와 무슨 까닭인지요?”

운영과 만나지 못했을 때에는 병이 골수의 맺혀 상사로 그리 했으나, 운영을 만난 후로는 죄를 측량할 수 없으니 어찌 근심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왜 남몰래 데리고 달아나지 않으십니까?”

진사는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특이의 계교를 제게 알렸지요.

특은 종이지만 본디 지략이 많소. 특이 이 계교를 지휘하니 그 뜻이 어떠하오?”

저는 허락했습니다.

첩의 부모님은 재산이 많았으므로 제가 궁에 들어올 때에 의복과 보화를 실어 온 것이 많습니다. 또 대군께서 하사한 것도 심히 많습니다. 이것들을 버려두고는 갈 수 없습니다. 지금 운반하고자 하면 말이 열 필일지라도 다 옮길 수는 없습니다.”

진사는 특이에게 가, 이 말을 전하자 특이는 크게 기뻐했지요.

뭐 어려울 게 있습니까?”

진사가 묻기를,

그렇다면 계교를 어떻게 내겠느냐?”

제 동무 중에서 기운이 많은 자 십칠 인이 이것을 강탈하러 갈 것 같으면, 두려워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습니다. 저와 매우 가까운 이들이니 명령만 내리면 따르겠습니다. 이들로 하여 옮기게 한다면 태산도 옮길 수 있습니다.”

진사는 궁으로 들어와 제게 전했고, 저 역시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특이와 특이의 동무들은 밤마다 물건을 수습하여, 칠 일간의 밤에 모두 궁 밖으로 옮겼습니다.

그 후 특이는 진사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보물을 본댁에 산 같이 쌓아놓으면 대군에게 의심을 받을 것이오, 소인의 집에 두면 이웃 사람에게 또한 의혹을 받을 것이니, 그런즉 이것을 산속에 깊이 파묻어 두고 단단히 지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진사가 답하기를,

만약 실수하면 나와 너는 도적의 이름을 면키 어려우니 너는 조심해서 지켜라.”

저의 계교가 이와 같이 깊고, 동무가 이같이 많아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는데, 어찌 두려워하십니까? 하물며 장검을 가지고 주야로 떠나지 않을 터이니, 제 눈을 뺄 수 있어도, 이 보물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제 발이 잘린대도 이 보물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니, 바라옵건대 의심치 마옵소서.”

하지만 특이의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보물을 얻은 후에 저와 진사를 끌고 산골로 들어가서, 진사를 죽인 후에 저와 재보를 빼앗으려 하는 흉악한 계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을 알지 못하는 진사는 조금도 그것을 의심치 아니하였습니다.




17


대군은 전에 비해당(匪懈堂)을 짓고 현판을 만들어 걸려고 하였으나, 모든 객의 시가 뜻에 맞지 아니하여 현판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에 진사를 불러 잔치를 배설하고 현판을 청하였습니다.

진사가 글을 쓰니, 점을 더하지 아니하여도, 산수의 경치와 비해당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써서 바람과 비를 놀라게 하고, 귀신을 울게 하였습니다.

대군은 시구마다 칭찬하였습니다.

뜻밖에 오늘 다시 왕자안(王子安) 같은 신선을 만났구나.”

글귀를 재삼 읊으시다가 다만 한 구 수장암절풍류곡(隨墻暗竊風流曲)’이란 말에 이르러 입술을 닫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사는 일어나 절을 올렸습니다.

취하여 인사불성이니 원컨대 물러나겠나이다.”

대군은 동복을 부축하여 보내었습니다.

이튿날 밤에 진사는 서궁에 들어가 제게 말하기를,

도망가야 하오. 어제의 시에서 대군을 의심하게 하였으니, 오늘밤 도망가지 않으면 후환이 닥칠까 두렵소.”

어젯밤에 용모가 흉악한 모돈(冒頓)이라 하는 단우(單于)가 말하기를, ‘언약한 바가 있어 오래 동안 성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기에 꿈에서 깨어나 놀라 일어났으니 심히 괴이하오. 몽조가 불길한데 낭군께서도 그리 생각하시는지요?”

꿈이란 것은 허황된 일인데 어찌 믿을 수 있겠소,”

장성(長城)은 궁장(宮墻)이오 모돈은 특()입니다. 낭군께서는 특이의 마음을 익히 아시는지요? 이놈은 본디 미련하고 음흉하오. 그러나 나에게 전날 충성을 다했고, 오늘 낭자와 이런 호연을 맺은 건 모두 이놈의 계교이오. 어찌 처음에 충성을 다하다가 나중에 나쁜 짓을 하겠소?”

낭군의 말씀이 이같이 정성스러운데 어찌 감히 거역하리오. 다만 자란은 정이 형제 같으니 알리지 않을 수 없어요.”

곧 자란을 불러 세 사람이 가마솥발처럼 둘러앉아 저는 진사의 계교를 알렸습니다.

그러자 자란은 깜짝 놀라 저를 꾸짖었습니다.

서로 즐긴 지 오래인데 스스로 화를 빨리 불러들임이 아닌가? 한두 달 동안 서로 사귐도 만족하거늘 담을 넘어 도망하다니 어찌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있으리오. 대군이 정성을 쏟은 지가 이미 오래니 도망할 수 없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마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애중해 하시니 도망할 수 없는 것이 두 번째 이유고, 화가 양친에게 미칠 것이니 도망할 수 없는 것이 세 번째 이유고, 죄가 서궁에 미치니 도망할 수 없는 것이 네 번째 이유리라. 또한 천지는 하나의 그물망이니 하늘로 솟구쳐 오르거나 땅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도망친들 어디로 가겠는가? 혹 잡히게 되면 그 화가 어찌 너 일신에 그치겠는가? 몽조가 불길하여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만약 길했다면 네가 기꺼이 도망가겠는가? 마음을 굽히고 뜻을 억제하고 정절을 지키며, 편히 앉아서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만 같지 못할 것이다. 네 얼굴이 쇠하면 대군은 은총과 보살핌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사세를 보아 병을 일컫고 오래 나오지 아니하면 대군도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기를 허락하리라. 이때에 이르면 낭군과 손잡고 함께 가서 더불어 해로하면 계획이 이보다 큰 것은 없다. 이런 계교로 네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을지라도 감히 하늘을 속이겠느냐?”

그 날은 진사도 뜻대로 되지 아니함을 알고 차탄하고 눈물을 머금고 궁을 나갔습니다.




18


어느 날 대군이 서궁 수헌(繡軒)에 앉아 철쭉꽃이 활짝 피어난 것을 보고, 궁인들에게 오언절구(五言絶句)를 지어 올리라고 명하였습니다.

글을 올리자 대군은 크게 칭찬하고 상을 내리셨지요.

너희들의 시작(詩作)이 날로 진경(進境)의 들어가니, 내가 심히 가상히 여기노라. 허나 운영의 시에는 누구를 생각하는 것이 보인다. 전의 부연의 시를 지을 적에도 미미하게 그런 뜻을 보였는데, 지금 또한 이와 같으니 네가 시에서 따르려 하는 이가 어떤 사람이냐? 김진사의 상량문에도 말에 의심되는 대목이 있으니, 혹 너는 김진사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냐?”

저는 마당에 내려 머리를 땅바닥에 찧으며 울었습니다.

주군께서 처음 의심하실 때, 자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 아직 스무 살이 안 되어 다시 부모를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원통하여 살기를 구차히 생각하다가, 또 지금 의혹을 받으니 한 번 죽는대도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천지신명도 굽어보고 있습니다. 궁녀 오 인도 한 시도 떠나지 아니 하는데, 더러운 이름이 유독 첩에게 돌아오니 살아 있는 게 죽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첩은 지금 죽을 곳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곧 수건으로 스스로 목을 매고 난간 아래서 죽으려 하였습니다.

이때 자란이

주군의 총명함으로 무죄한 시녀를 스스로 사지로 가게 하시니, 오늘부터 저희들은 맹세코 붓을 놓고 글짓기를 전폐하겠습니다.”

하니, 대군은 불같이 진노하였으나, 제 죽음을 가엾이 여기었는지 자란으로 하여금 구하라 하고, 흰 비단 다섯 필을 내어 오 인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작품이 가장 아름다워 이것으로 상을 주노라.”

 



19


이후로 진사는 다시 궁에 출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문을 굳게 닫고 병석에 누우니 눈물이 베개를 적셔, 명이 실오라기처럼 되었습니다.

특이가 이를 보고,

대장부가 죽고자 하면 죽을 것이외다. 그런데 어찌 상사하는 원한을 만들고, 아녀자의 마음까지 상하게 하고, 스스로 천금과 같은 몸을 버리려 하십니까? 지금 마땅히 계교를 취한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깊은 밤 적막할 때에 담을 넘어 들어가 솜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업고 달아나면 누가 감히 따라오겠습니까?"

진사가 답하기를,

그 계교는 위험하다. 정성으로 해결함만 같지 못하다.”

그리고 진사는 그날 밤에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병으로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자란이 맞아 술 삼배를 접대하고 제 편지를 전했습니다.

 

이후로는 다시 낭군을 볼 수 없나이다. 삼생의 연과 백연의 언약이 오늘 저녁에 다 끝나나 봅니다. 만약 하늘의 인연이 있다 하면 구천의 아래에서 만날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나이다.

 

진사는 글을 든 채, 우두커니 서서 말없이 바라보다가 가슴을 치고 눈물을 쏟으면서 나갔습니다. 자란도 비참함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기중의 의지하고 몸을 숨기고 눈물을 흘리고 서 있었습니다. 진사는 집에 돌아와 제 편지를 마저 읽었습니다.

 

박명한 운영은 재배하고 김 낭군님 발아래서 아룁니다. 첩은 변변치 못한 자질로 불행히도 낭군님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워한지 며칠, 서로 만난 지 짧은 시간에 다행히 하룻밤의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이루었으나 바다 같은 깊은 정은 다하지 못했습니다. 인간 세상에 좋은 일에는 조물의 시기함이 많습니다. 궁인들이 그 일을 알고, 대군이 의심하니 화가 조석으로 닥쳐오고 죽음이 뒤따를 뿐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낭군이시여. 이번 이별한 밤부터는 비천한 저를 마음속에 두고 마음 상하지 마시옵소서. 다만 학업을 더욱 힘써 장원급제하여 등용문에 오르시어 이름이 후세의 나타나게 하옵고 부모님을 빛내옵소서.

그리고 첩의 보화와 의복은 다 팔아 불공을 드리되, 온 정성으로 빌어 지성으로 발원하시면, 삼생의 연분을 두 번 다시 후세의 이을 수 있을까 하나이다.

 

진사는 다 읽지도 못하고 기절하여 땅바닥에 넘어졌습니다.



20

 

집안사람들이 급히 구하여 김진사는 소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특이가 밖에서 들어오면서,

궁인이 무슨 말로 답하였기에 이와 같이 죽고자 하십니까?”

진사는 다른 말은 않고 다만,

재보를 잘 지키고 있느냐? 나는 모두 팔아서 불전에 공양하여 오랜 약속을 실천하려 한다.”

특이는 집으로 돌아와 혼자 생각했습니다.

궁녀는 나오지 못할 것이니, 재보는 하늘이 나에게 주신 것이다.”

하고, 벽을 향해 몰래 웃었으나 남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특이는 자기가 입었던 옷을 찢어버리고, 자기의 코를 때려 피를 온몸에 칠하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로 진사의 집에 뛰어 들어가 뜰에 엎어져 울었습니다.

소인이 강도에게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말하지 않고 기절한 듯 엎어져 있었습니다.

진사는 특이가 죽으면 재보를 어디에 묻었는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심으로 약을 주어 치료하고, 음식과 술과 고기를 주어 십여 일이 되어 일어나도록 하였습니다.

특이가 말하기를,

단신으로 홀로 산속을 지키는데 뭇 도적이 들이닥쳐, 그 기세가 소인을 박살하려 하니, 목숨을 걸고 도망하여 겨우 실낱같은 목숨을 보존하였습니다. 만일 이 보물이 아니었으면 소인에게 이 같은 위험이 있었으리까? 운명의 험난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 속히 죽지도 않는지요?”

하고 발을 구르며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통곡하였습니다.

진사는 이 일을 부모가 알까 두려워하여, 일단 특이를 온정 있는 말로 위로하여 보냈습니다. 후에 진사는 장정 수십 명을 인솔하여 특이의 집을 습격하였으나, 집에는 금팔찌 한 짝과 운남의 보경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장물로 증거 삼아 관가로 소송하고 싶으나, 그러면 모든 사실이 노출될 것이 염려되었습니다.

다만 이 두 가지마저 없다면 불공할 수 없다고 여기고, 진사는 한이 골수에 맺혀 특이를 죽이랴 하나 힘으로 제압할 수도 없고, 힘써 침묵하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21


특이는 자기의 죄를 아는지라, 궁 밖에 있는 장님에게 점을 치며,

지난 날, 아침 전에 궁 밑으로 지나가려 할 때, 궁중에서 담을 넘어오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도적이라고 고함을 치고 좇아가니, 가진 것을 내던지고 달아났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서, 본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내 주인이 방구석에서 무엇을 찾다가, 내가 보물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 몸소 와서 찾아냈습니다. 나는 다른 보배가 아니라 다만 팔찌와 거울 두 가지 물건을 얻었다고 대답했는데, 주인은 몸소 들어와 수색하여 과연 두 가지 물건을 얻었습니다. 주인은 내게 무엇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지금 죽이려고 하여 내가 도망치려 하는데, 달아나는 것이 좋을까요?”

장님은 이 말에 달아나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 기린 같은 이가 옆에 있다가, 그 말을 다 듣고는 특이에게 물었습니다.

네 주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노복 학대가 이와 같으나?”

특이 답하기를,

주인은 연소한 문장으로 일찍이 급제하여 조정에 출입하더니, 지금부터 재물을 탐함이 이와 같으니, 후일 조정에 들어가면 마음 씀씀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이 일이 소문이 나서 궁인의 귀에 전해지고, 궁인은 이것을 대군에게 알렸습니다.

대군은 대로하여 남궁 사람들 하여금 서궁을 수색하게 하여, 제 의복과 보화가 다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군은 진로하여, 서궁의 시녀 오 인을 잡아다 뜰에 꿇리고, 안전에서 형장(形杖)을 혹독히 하라 형리에게 명했습니다.

"이 오 인을 죽이여 남궁의 오 인을 경계하리라."

또 집장한 이에게 명했습니다.

곤장 수를 헤아리지 말고, 죽음을 기준으로 하라.”

이에 우리 오 인은,

다만 한 말씀 올리고 죽겠습니다.”

말할 것이 무슨 일이냐? 실정을 다 털어 놓아라.”

은섬이 쓰기를,

이성 간의 정욕은 음양에서 타고난 것으로, 상하귀천이 없이 사람으로서 가지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 깊은 궁에 들면, 한 마리 외로운 새가 되어, 꽃을 보면 눈물을 가리고, 달을 대하면 넋을 사르니, 매화나무에 날아든 꾀꼬리를 쌍쌍이 날지 못하게 함이오, 주렴 사이로 드나드는 제비로 하여금 둘이 집을 짓지 못하게 함입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스스로 몹시 부러워하는 뜻이 있어 질투하고 시기하는 감정입니다. 한 번 궁의 담장을 넘어가면 인간의 즐거움을 알 수 있거니와, 그 같은 일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어찌 힘으로 할 수 없는데, 마음을 참을 수 없사오리까? 다만 주군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 마음을 지키며 청춘을 썩히고 죽어갈 뿐이옵니다. 온데, 궁중의 일에 지금 아무런 죄 없는 첩등에게 죄를 내려 사지로 보내시니 첩등은 황천으로 돌아가도 눈을 감지 못하겠나이다.”

다음에 비취가 쓰기를,

주군의 무휼(撫恤)하신 은혜는 산이 높지 아니하며 바다가 깊지 아니 압니다. 다만 첩 등은 지난날을 떠올리며, 글을 짓고 거문고에 노래로 일을 삼을 뿐이온데, 지금 악명이 서궁에 미쳤으니, 살아가는 것은 죽음만 같지 못합니다. 다만 속히 죽기를 바랄 뿐이외다.”

다음에 자란이 쓰기를,

오늘의 일은 죄가 측량키 어려운 데 있으니, 마음에 품은 바를 어찌 차마 숨기리이까? 첩등은 모다 여항(閭巷)의 천한 여자이옵니다. 아비는 대순(大舜)도 아니요, 어미는 이비(二妃))도 아니외다. 남녀 간의 정욕이 어찌 유독 없으리이까? 목왕왕자(穆天王子)도 요지(瑤池)의 즐거움을 상사하시고, 항우(項羽)같은 영웅도 장막 안에서 눈물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대군은 어찌하여 유독 운영으로 하여금 운우의 정을 없게 하려 하십니까? 김진사는 당대의 호걸이요, 인도하여 내당에 들어오게 하신 것은 주군의 명령하신 바이요, 진사의 곁에서 벼루를 받들게 하신 것도 주군이 명하신 것입니다. 운영은 오래 심궁에 갇혀, 가을날의 달과 봄날의 꽃을 보고도 매양 성정을 상하고, 오동잎 지는 소리와 밤비 소리에도 간장이 몇 번이나 끊어집니다. 이때 한번 아름다운 진사를 보고 상심하고 실성하여, 병이 골수에 들어 장생불사의 약으로도 효험함을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비애 번민하는 그림자도 볼 수 없사오매 하루 저녁, 아침 이슬 같이 사라지면, 대군께서 측은지심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의 생각엔 한 번 김진사로 하여금 운영을 만나보게 하여, 두 사람의 원한은 풀어주시면 주군의 적선은 이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전날 운영의 절개를 훼절하게 한 죄는 첩에게 있지 운영에게는 없고, 첩의 이 말은 위로는 주군을 속이지 않고 아래로는 동료들을 저버리지 않음입니다. 오늘의 죽음은, 죽어서도 영광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주군께서는 첩의 몸으로 운영의 목숨을 잇게 하소서.”

다음에 옥녀가 쓰기를.

서궁의 영화를 첩등이 같이 누리고 있는데, 서궁의 위태로움을 첩이 홀로 면할 수 없습니다. 화염곤강(火焰昆岡)하고 옥석이 구분(俱焚)하니 오늘의 죽음은 그 죽을 곳을 얻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쓰기를,

주군의 은혜는 산 같으며, 바다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옵고 정절을 지키지 못한 것이 죄의 하나이요, 전후 두 번이나 글을 지을 때에 주군의 의심을 받으면서 진실을 아뢰지 아니한 것이 죄의 둘이요, 서궁의 무죄한 사람들이 첩으로 말미암아 죄를 입게 한 것이 죄의 셋이올시다. 이 세 가지에 큰 죄를 지고 살더라도 무슨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만일 죽음을 면하여 주시더라도 첩은 자결하고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대군이 보기를 마치고, 자란의 글을 다시 펴 보시고 노한 기색이 좀 사라진 듯했습니다.

이 때 소옥이 다시 꿇어 울면서 아뢰었습니다.

전일 완사(浣紗)의 어행을 성내로 가게 한 것은 첩에 생각이었습니다. 자란이 밤중에 남궁에 와서 간곡히 청함에, 첩도 그 심중을 알면서도 여러 사람의 뜻을 물리치고 자란을 좇은 것이 운영의 훼절한 동기이옵니다. 그러하온즉 말씀하면 죄는 첩에게 잇고 운영에게는 없습니다. 바라옵나니 첩을 운영으로 대신하사 운영의 명을 살리시기 바라옵나이다.”

이에 대군의 진로가 약간이나 풀리어 저를 별실에 가두시고, 그 나머지 시녀들은 풀어주었습니다. 그날 밤에 저는 수건으로 목을 매여 죽었습니다.

 

김진사는 붓을 잡고 적었고, 운영은 옛날을 떠올리며 서술한다. 심히 남김없이 상세하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상대하여 슬픔을 자제하지 못한다.

운영이 진사에게 말한다.

그 다음 일은 낭군께서 말씀하시지요.”



22


운영이 자결한 후에, 궁의 사람들은 비통해 하며 슬피 울지 아니 하는 자가 없었다. 부모상을 당한 듯이 하여 그들의 곡성은 궁문 밖까지 들렸소.

나도 이 말을 듣고 오랫동안 기절하여, 집안사람들이 초혼(招魂)을 하고 발상(發喪)까지 하였소. 그 후에 정신을 들어 저물녘에야 깨어났소. 그 후 마음을 진정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한 결과 일을 결단하였소. 운영과의 불공 약속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구천에 있는 영혼을 위무하였소.

금팔찌와 보경을 팔아 백미 사십 석을 받아, 그것으로 청녕사(淸寧寺)에 올라가 불공을 드리려 하였으나 믿을 만한 하인이 없어, 생각다 못하여 다시 특이를 불러 일렀소.

"너의 전일 죄를 사하나니, 지금부터 나를 위하여 충성을 다할 마음이 없느냐?”

특이는 울면서 대답했소.

이놈이 사리에 어두운 자이나 목석은 아닙니다. 한 번 지은 죄는 머리카락을 헤아려도 그 수효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자비로운 마음으로 말씀하심에 고목에서 잎이 나고, 백골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만 번 죽음으로 맹세하여 일을 맡겠습니다.”

내가 운영을 위하여 불공을 드려 발원하고자 하나, 신임하는 사람이 없는데 네가 가지 않겠는가?”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그러나 특이는 절간에 올라가 삼일 간 엉덩이를 두드리며 누웠다가 승려를 불러 말했소.

사십 석의 쌀을 어디다 쓰겠소? 불공에 다 바치겠는가? 오늘 술과 고기를 많이 장만하여 세속의 손들을 널리 불러 나누는 것이 좋겠소.”

마침 마을 여인이 지나갔는데, 특이가 강제로 겁탈했소. 절간에 머물면서 술안주를 갖추어 질탕하게 먹고, 수십 일이 지나도 설재(設齋)의 뜻이 없으니 승려들이 모두 분노했소.

제삿날에 이르러 주지승이 말하기를,

"불공하는 것은 시주가 제일이오. 시주가 그렇게 불결하게 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러하니 냇가에 가서 목욕하고 정한 몸으로 예를 행함이 옳습니다.”

이 말에 특이도 할 수 없어 냇가에 가서 풍덩풍덩 몸을 담그고 들어와서 불전에 꿇어앉아 축원하였소.

진사는 오늘 죽고, 운영은 내일 다시 태어나 특이의 배우자가 되게 하여주소서.”

삼일 밤낮 발원한 것이 이것뿐이었소.



23


특이는 돌아와서 내게 말했소.

운영 각시는 반드시 살 방도를 얻을 것입니다. 설재(設齋)하던 날 밤 저의 꿈에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지성으로 불공하여주니 감사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고 절하면서 우시었고, 사찰 승려들의 꿈도 모두 그러하였습니다.”

나는 저는 그 말을 믿고 실성통곡하였소.

마침 백중일을 맞아 나는 과거시험에 뜻이 없었으나 공부를 힘썼소. 청녕사에 올라가 수 일간 체류하는데, 여러 승려에게 특이가 했던 바를 들었소. 다시금 분함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특이 없으니 어이하리오.

나는 목욕재계하고 불전에 나아가, 면배하여 이마를 바닥에 대고 분향하며 합장하고 축원하였소.

운영이 죽을 때의 말을 따라, 특이로 하여금 정성 드려 설재하여 저승에 다다르게 하기를 당부하였더니, 지금 특이의 축원한 말을 들으니 패악함이 지극하였습니다. 이로써 운영의 유언은 다 헛되게 돌아갔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소자가 축원하오니, 운영이 환생하게 하여 김생으로 하여금 후세에 이러한 원통함을 면하게 하여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특이를 죽이어 철가(鐵枷)를 입히시고 지옥으로 보내주십시오. 만약 세존께서 이 축원을 들어주시면 운영은 비구니가 되어 손가락을 불사르고 십이 층의 금탑을 만들 것이고, 김생은 세 곳 큰 절을 지어 이 은혜를 값겠나이다.”

축원을 마치고 분향을 백배하고 고두 백번하고 나왔소.

칠 일 후에, 특이는 함정의 떨어져 죽었소.

나는 이미 세상에 바람이 없어졌소. 목욕재계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평안한 방에 누워 먹지 않은지 사일 만에 깊은 탄식 일성을 남기고 다시 오지 못할 길을 향하여 가게 됐소.



24회 최종회


김진사는 여기까지 적고 붓을 던지자, 두 사람은 서로 붙들고 울며 자제하지 못한다. 류영은 그들을 위로한다.

두 분이 여기서 다시 만남은 지원한 정성 덕입니다. 원수 놈도 이미 제거하고 분함도 스러졌습니다. 왜 그리 비통하심을 그치지 않습니까? 다시 두 번 인간세상에의 태어나지 못하여 한스럽습니까?”

김진사는 눈물을 떨구며 사례한다.

우리 두 사람은 모다 원한을 품고 죽었습니다. 명부를 맡은 이가 무죄함을 불쌍히 여겨, 우리를 인간 세상에 재생케 하고자 하나 지하의 즐거움이 인간의 즐거움에 못지않습니다. 하물며 천상에서 즐거움을 누림이야. 이러므로 세상에 태어남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밤에 비통해 하는 것은, 대군이 한 번 패하자 옛 궁에 주인이 없고, 오작이 슬피 울며 인적이 끊어졌으니 나의 슬픔이 지극함이오, 하물며 병화를 당한 후에 화려했던 궁이 재가 되고 담장은 무너졌으며, 다만 여러 꽃들 우거져 피고 정원의 풀들은 무성하나, 봄빛이 옛날의 경치를 고치지 못하여 인간사가 변하기 쉬움을 생각하고 다시 찾아와 옛날을 생각하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류영이 묻는다.

그러면 당신들은 천상의 사람이십니까?”

김진사가 답하기를,

우리들은 보래 천상의 선인으로 오랫동안 옥황상제를 가까이서 모시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상제께서 태청궁(太淸宮)에서 우리들에게 명하시기를 옥원(玉園)의 과실을 따오라 하심에, 몰래 반도(蟠桃)와 경옥(瓊玉)을 취한 것이 많았는데. 또 운영과 사통한 죄로 인간에 보내사 인간고(人間苦)를 겪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상제께서 전의 죄를 사하시어 삼청(三淸)의 있게 하여, 다시 안전에서 모시게 되었나이다. 이에 표륜(飇輪)을 타고와 인간세상의 옛 놀이를 다시 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류영의 손을 잡는다.

바다가 마르고 바위가 다 닳아도 이 정은 없어지지 않고, 천지가 노쇠하고 황폐하여도 이 한은 해소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밤은 그대와 상봉하여 이처럼 따뜻한 정을 펼쳤으나 전생의 인연은 없으니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엎드려 원하오니 그대께서는 이 초고(草稿)을 수습하여 이것을 전하여 썩지 않게 하고, 경솔한 이들의 입에 흘려 전하지 않고 하고, 우스갯거리로 생각지 않게 하시면 다행한 마음이로소이다.”

김진사는 술이 취하여 운영에 몸에 기대여 절구 한 수를 읊는다.

 

花落宮中燕雀飛 꽃 떨어진 궁중에 연작이 날았으니,

春光依舊主人非 봄빛은 예와 같되 주인은 아니구나.

中宵月色凉如許 밤 가운데 달빛은 차기가 이러한데,

碧露輕沾翠羽衣 푸른 이슬은 가볍게 푸른 털옷에 젖더라.

 

운영도 따라 읊는다.

 

故宮花柳帶新春 고궁의 화류는 새 봄빛을 띠었고,

千載豪華入夢頻 오랜 세월의 호화함은 자주 꿈 가운데 들었구나.

今夕來遊尋古跡 오늘 저녁에 와서 놀아 옛 자취를 찾으니,

不覺哀淚自沾巾 슬픈 눈물이 스스로 수건에 젖음을 금치 못하리로다.

 

류영도 술이 취하여 자다가 산새의 우는 소리에 깨여 사면을 바라보니, 구름과 연기는 천지에 가득하고 새벽빛은 창망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고 김진사가 적은 책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류영은 책자를 거두어 귀가하여 장 속에 감춰 둔다. 슬프고 무료하여 때때로 열어보고는 망연자실하여 침식을 모두 폐하고, 후에 명산에 두로 노닐더니 생애를 마친 곳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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