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웅전(趙雄傳)
송(宋) 문제(文帝) 즉위 23년이라. 이때는 시절이 태평하여 나라에 일이 없고 백성도 평안하여 태평성대를 즐겨 노래하더라. 이듬해 가을 9월 병인일(丙寅日)에 문제께서 충렬묘(忠烈廟)에 나아가는데, 원래 충렬묘는 만고 충신 좌승상(左丞相) 조정인의 사당이라.
승상 조정인이 이부상서(吏部尙書)일 때는 황제 즉위 10년이었는데, 불의에 남란(南亂)을 당하니 사직(社稷)이 위태함에, 구원할 방도가 없었다. 이에 그는 송나라 왕실의 옥새(玉璽)와 함께 문제를 모시고 경화문을 나와 무봉 고개를 넘어 광임교에 다달아 보니, 성밖과 성안에 울음소리가 진동하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구르고 넘어지면서 도망하고 있었다. 이에 남산 북악이 마치 때아닌 봄에 오색 도화(桃花)가 활짝 핀 듯하였다. 승상이 문제를 모시고 급히 달아나니, 피란하는 사람이 산을 덮을 듯한지라. 그는 뇌성관까지 일백오십 리를 가서 자고, 이튿날 또 출발하여 길을 나아갔다.
이때에 승상이 문제를 모시고, 사방을 두루 달려 원병(援兵)을 구해 삼삭(三朔)만에 남란을 소멸하고 사직을 보전하니, 문제의 은덕은 하늘과 땅 같고 승상의 충렬은 해와 달 같은지라. 문제께서 조승상을 정평왕(靖平王)에 봉하였으나 승상이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아니하니, 마지못하여 그를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겸 좌승상에 봉하시고 부인 왕씨는 공렬부인(功烈夫人)에 봉하셨다.
이러구러 세월을 보냈는데, 시운(時運)이 불행하면, 그것이 마치 '나는 새가 없어지니 활을 활집에 넣어 두게 되고, 날랜 토끼가 죽어 없어지니 사냥개를 삶아 먹는 것'과 같은 이치인지라. 이럴 즈음에 간신이 시기하였는데, 우승상 이두병(李斗炳)의 참소함을 보고 조승상이 미리 음독 자살하였다. 이에 문제께서 애통하여 제문(祭文)을 지어 조상(弔喪)하시고 충렬묘를 만들어 화상(畵像)을 그려 넣어두고 때때로 거동하시곤 하였는데, 이날 또 거동하여 사당의 화상을 알현하시고 옛 일을 생각하여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다.
병부시랑 이관(李寬)은 이두병의 아들인데, 왕을 모시고 있다가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폐하를 모시는 신하 중에 어찌 조정인만한 신하가 없겠사오며, 옥면(玉面)에 슬픔이 가득하시니 신하된 도리에 어찌 충렬묘라 하시겠습니까? 이후는 거동을 마시고 충렬묘를 헐어 버리시기를 바라옵니다."
황제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관의 죄상을 신문(訊問)하라 하시고 종일토록 머물러 계시다가 석양에 환궁하신 후에, 조승상 부인의 품계를 높여 정렬부인(貞烈夫人)에 봉하시고 금과 은을 상으로 많이 내리신 후, 하교(下敎)하시기를, "내가 들으니 조정인에게 아들이 있다 하니 데려와서 보이어 짐의 답답하고 상심한 마음을 덜게 하라." 하셨다.
왕부인이 잉태한 지 일곱 달만에 승상을 여의고, 열 달을 채워서 해산(解産)하니 활달한 기남자(奇男子)이므로 이름을 웅(雄)이라 하였다. 부인은 8년이 지나도록 소복을 벗지 아니 하고 그 아들 웅을 의지하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날 황제께서 충렬묘에 거동하셨다 함에 더욱 슬퍼하였다. 황제께서 환궁하신 후 명령을 받은 관원이 나와서 정렬부인 가자(加資)와 함께 상으로 내리신 금, 은을 드리거늘, 부인이 황공하여 계하(階下)에 내려 국궁(鞠躬)하여 받아 놓고 황제의 궁궐을 향하여 국궁 사배(四拜)하고, 명관을 인도하여 외당(外堂)에 앉히고 황은(皇恩)을 치사하였다. 또 조웅을 인견(引見)하라 하시는 패초(牌招)를 보고 더욱 황공하여 웅을 보내니, 웅의 나이 비록 7세나 얼굴이 관옥(冠玉) 같고 읍하며 드나드는 자태는 어른을 압도하는 듯했다.
조웅이 명관을 따라 옥계(玉階) 아래에 다달아 국궁하니 임금께서 오래도록 보시고 크게 칭찬하여 말씀하시기를, "충신의 아들은 충신이요 소인의 아들은 소인이로다. 내가 오늘날 너의 거동을 봄에 충효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또한 나이가 7세라 하니 짐의 태자와 동갑이라 더욱 사랑스럽도다." 하시고, 이어서 태자를 인견하여 하교(下敎)하시되, "저 아이는 충신 아무의 아들이라. 너와 동갑이요, 또한 충효를 겸하였으니 후일에 더불어 국사(國事)를 함께 모의하라. 짐이 여든을 바라보는 늙은 나이에 정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얻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 라고 말씀하시니 태자도 즐거워하더라.
웅이 다시 엎드려 아뢰기를, "명령을 받드는 아랫사람으로서 극히 황공하오나 소신의 나이 아직 어리고 또한 나라의 법이 각별히 엄하오니 어찌 벼슬 없는 여염집 아이가 궐내에 거처하오리까? 국정에 극히 편하지 못하옵고 또 국사가 지중하옵거늘 이제 폐하께서 어린아이를 대하여 국사를 의논하옵시니 어찌 두렵지 아니 하오리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소신은 물러갔다가 입신(立身)한 뒤에 다시 폐하를 알현하오리다." 하며 지극히 간하니, 임금께서 들으시고 비록 어린아이의 말이나 이치가 당연하고, 다시 바라보니 매우 엄숙한지라.
한참 후에 말씀하시기를, "너의 말이 가장 옳도다. 그리하라." 하시고 다시 하교하시기를, "너의 나이 13세 되거든 품직(品職)을 내릴 것이니 그때를 기다려 국정을 도우라." 하시니, 웅이 사배하고 물러나와 태자께 하직하니 태자도 못내 연연(戀戀)해 하시더라.
이때에 천자께서 조정 신하들을 모아 놓고 조웅을 칭찬하시고 말씀하시되, "시신(侍臣) 중에 이관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 신하가 다 이관의 형세를 두려워하는지라 우승상 최식이 아뢰기를, "폐하께서 충렬묘에 거동하실 때 죄상을 신문하라 하셨기에 파직을 당하여 쉬고 있습니다." 황제께서 깨달으시고 마음 속으로 한참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시기를, "저의 말이 한때 경솔하였으나 이제 용서하라." 하셨다.
원래 이두병은 아들이 오형제인데 벼슬이 다 일품(一品)에 이르렀기에 온 조정의 신하가 다 그 형세를 두려워하여 이관 등의 말대로 하는지라. 이날 황제께서 조웅을 사랑하심을 보고 이관이 크게 근심하여 의논하기를, "조웅이 벼슬하면 그 아버지의 원수를 생각할 것이니 어찌 근심되지 아니하리오. 미리 없앰이 마땅하나 아직 벼슬도 하지 않은 아이에게 어찌 죄를 주겠는가?" 하고 모두 모여서 계교를 의논하더라.
이때 웅이 집에 돌아와 어머니 왕부인을 뵈오니, 부인이 즐겨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황상을 뵈었느냐?" 웅이 대답하기를, "입시(入侍)하옵거늘 대면하여 뵈었습니다." 부인이 말하기를, "황상을 대면하니 두렵지 아니 하였으며, 마땅히 묻는 말씀이 있었을 것이니 어찌 대답하였느냐?" 웅이 문답했던 말과 '13세 되면 품직하리라' 하시던 말씀과 황제께서 태자 사랑하던 말씀을 낱낱이 고하니 부인이 일희 일비(一喜一悲)하여 말하기를, "황상의 넓으신 덕택이 하늘 같고 바다 같아서 갚기를 의논치 못하거니와, 네가 만일 벼슬하면 마땅히 소인들의 참소를 입을 것이니 어찌 하려 하느냐?" 웅이 말하기를, "어머님은 염려하지 마소서. 사람의 죽살이는 하늘에 달려 있고, 영광과 욕됨은 수양하기에 달려 있으니 어찌 염려가 있으며, 또 자식이 되어 어찌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를 눈 앞에 두고 그저 있사오리까?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면 무슨 묘책이 있어야 할 것이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어머님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소서." 하고, 말을 마친 후에 모자가 서로 통곡하니 그 정상이 참혹하더라.
이때는 병인년 섣달 그믐이라. 황제께서 명당(明堂)에 전좌(殿坐)하시고 조정의 여러 신하들을 다 조회(朝會)받으시고 국사를 의논할 때 말씀하시기를, "오호라. 짐의 나이가 여든을 바라보는 늙은이로구나. 세월이 사람의 죽음을 재촉하는데 태자가 아직 어리니 국사가 가장 망연한지라. 경들의 소견으로는 어찌 해야 짐의 근심을 덜겠는가?"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흥망성쇠는 마음대로 못하옵거니와 국사가 아직도 장원(長遠)하옵거늘 어찌 동궁의 어리심을 근심하시나이까?" 예부상서 정충이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폐하 춘추 많으심과 동궁의 어림을 어찌 근심하십니까? 승상 이두병이 있사오니 앞날의 국사는 아무런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조정 신하들이 모두 두병의 권세(權勢)를 두려워하기에 일시에 아뢰기를, "승상 이두병은 한(漢)나라의 소무(蘇武)와 같은 신하이온대, 어찌 국사를 근심하십니까?" 임금께서도 오히려 그렇게 여기시지만 그러나 정녕 믿지는 아니하시더라.
이날 진시(辰時)에 경화문으로 난데없는 백호(白虎)가 들어와 궐내에 횡행하거늘 만조백관(滿朝百官)과 삼천 궁졸(宮卒)이 황겁하여 어떻게 할 줄을 모르더니, 이윽고 궁녀 하나를 물고 후원을 뛰어 넘어 달아나 간 데 없거늘 임금께서 크게 놀라 여러 신하들에게 물으시나 여러 신하들이 또한 알지 못하고 궁중과 장안이 요동하여 앞날의 길흉을 알지 못하더라.
황제께서 이 일을 근심하여 침식이 평안하지 아니 하니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수일(數日)동안 북풍이 대취(大吹)하고 한 자가 넘는 백설(白雪)이 산야를 덮었기에 여러 날 주린 범이 의지할 곳 없을 뿐 아니라 기갈(飢渴)을 견디지 못하여 백주(白晝)에 내달아 갈 곳이 없어 수풀인 줄 알고 왔으니 폐하께서는 어찌 그것으로써 근심하시옵니까?"
황제께서 마음을 놓으면서도 일면 재변(災變)인 줄 짐작키도 하시더라.
이럴 즈음에 왕부인의 사촌인 한림(翰林) 왕렬(王烈)이 이 변을 보고 왕부인께 편지하여 보냈는데, 이때 마침 왕부인은 웅을 데리고 독서도 권하며 나라의 옛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더니 시비(侍婢)가 들어와 편지를 드리거늘 떼어 보니 그 편지에 이르기를,
"일전에 황제께서 명당(明堂)에 전좌(殿坐)하시고 조신(朝臣)을 모아 국사를 강론하고 계셨는데, 그날 경화문으로 난데없는 백호가 들어와 작난하다가 궁녀를 물고 달아나 간 데 없사오니, 이것이 극히 괴이하온지라. 황제께서 근심하시고 조정이 또한 화복을 가리지 못하오니 누님은 이를 해득하여 알게 하소서."
하였더라.
왕부인이 편지 읽기를 마치고는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답서를 하여 보낸 후 웅에게 말하기를, "국가에 이러한 재변이 일어나니 네 앞으로 벼슬을 하면 간신의 망측지환(罔測之患)이 있을 것이니, 이를 어찌 면하리오." 웅이 말하기를, "모친은 그런 염려 마옵소서. 사람의 영욕은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옵거니와, 대개 배꽃과 복숭아꽃이 가득 핀 가운데 계수나무 꽃이 한 가지만 피어나도 그 무리에 섞이지 않고 배꽃은 배꽃이요 계수나무 꽃은 계수나무 꽃입니다. 그러므로 소인이 조정에 가득차 있은들 내가 백옥처럼 무죄하온데, 죄 없이 모해하겠습니까?"
부인이 말하기를, "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도다. 형산(荊山)에 불이 나면 옥과 돌이 함께 타는 안타까움이 있거늘 이제 국가가 불행하게 되면, 너의 원수들이 너를 죄없다 하고 그냥 두겠느냐? 아이의 소견이 저토록 예사롭거늘 어찌 마음놓고 믿으리오." 하시니 웅이 이에 대답하기를, "사람이 일을 당하여 근심을 깊이 하면 애가 타서 백 가지 일이 다 불리하옵니다. 이 때문에 죽은 곳에 떨어진 이후에도 살아날 길이 있고 망할 곳에 팽개쳐진 이후에도 살아 남을 수 있다 하였으니 우린들 하늘이 설마 무심하겠습니까?"
부인이 속으로 아이 뜻이 활달한 줄 알고 염려를 덜게 되었다.
이때에 왕한림이 왕부인 답서에 씌어 있는 것을 보니, "놀랍고 놀랍도다. 머지 않아 내란이 일어날 것이니 너는 부질 없이 벼슬을 탐하지 말고 일찍이 관직을 그만 두고 돌아가기를 황제께 요청하라." 하였거늘, 이에 한림이 문득 깨달아 병을 핑계하여 조정에 나가지 아니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니라.
이때는 정묘년 정월 십오일이라. 만조 제신이 다 하례할 때에 황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연전(年前)에 짐이 조웅을 보니 인재가 거룩하고 충효가 거룩하매 이정지표(釐正之表)가 될 만하니 동궁을 위하여 데려다가 짐의 안하(案下)에서 서동(書童)을 삼아 두고 국사를 익히게 하고자 하나니 경들의 소견은 어떠한가?"
여러 신하들이 다 묵묵하되 이두병이 아뢰기를, "나라의 법이 각별히 엄하오니 벼슬 없는 여염집 아이를 이유없이 조정에 둠은 극히 잘못된 줄로 아옵니다." 상이 말씀하시기를, "충효의 인재를 취함이라. 어찌 아무런 이유없이 취하려 하겠는가." 두병이 다시 아뢰기를, "인재를 보려 하시면 장안을 두고 이르더라도 조웅보다 열 배나 더한 충효의 인재가 백여인이요, 조웅 같은 이는 수레에 싣고 말[斗]로 그 양을 헤아릴 정도로 아주 많습니다."
황제께서 윤허하지 않으시고 다시는 문답이 없는지라. 승상이 시대(侍臺)에 나와 조신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후에 만일 조웅을 말하여 천거하는 자가 있으면 죄를 받으리라." 하니, 백관이 누군들 겁내지 아니하리요.
이 즈음에 왕부인과 조웅이 이 말을 듣고 부인은 못내 두려워하고 웅은 분기 등등하더라.
천운이 불행하여 황제께서 우연히 기후(氣候)가 불편하시더니 열흘이 지나도 조금도 차효(差效)가 없고 점점 병이 깊어지니, 장안 인민과 조야(朝野)의 백성들이 다 하늘에 축수하여 병이 나아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랬지만 소인배들의 조정이라 회복을 어찌 기대하리오?
정묘년 삼월 삼일에 황제께서 붕어(崩御)하시니 태자의 애통하심과 만민의 곡성이 천지에 사무치고 왕부인 모자는 더욱 망극하더라. 어느 사이에 국법과 권세가 두병의 말대로 돌아가니 백성이 망국조(亡國調)를 일삼고 산중으로 피란하더라. 이때에 조신(朝臣)이 극례를 갖추어 사월 사일에 황제를 서릉(西陵)에 안장(安葬)하였다.
하루는 조신이 노소없이 시종대(侍從臺)에 모여 국사를 의논할 때 이두병이 역모(逆謀)에 뜻을 두고 옥새를 도모코자 하니 조정 백관 중에 그 말을 좇지 아니 할 사람이 없었다. 시월 십삼일은 문제(文帝)의 탄일이라. 모든 관원이 종일토록 국사를 의논할 때 이두병이 물어 말하기를, "이제 동궁의 나이는 팔 세라. 국사는 매우 중대한데, 팔 세 동궁의 즉위는 일이 매우 위태한지라. 법령이 점점 쇠하고 사직이 위태할 지경이면 그대들은 어찌 하려 하느뇨?"
여러 신하들이 일시에 대답하여 말하기를,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며, 조정은 십대(十代)의 조정이 아니라. 이제 어찌 팔 세 동궁에게 제위(帝位)를 전하리오. 또한 황제 붕어하실 때 '승상과 정사를 의논하라' 하신 유언이 있었지만 나라에는 두 왕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하늘이 없으니 어찌 협정왕(協政王)을 두리이까?"
여러 신하들의 말이 모두 한 입에서 나온 듯하더라.
"이제 국사를 폐한 지가 여러 날이라. 엎드려 빌건대 승상은 전일의 과업을 전수하여 옥새를 받으시고 제위를 이으셔서, 조야(朝野) 신민(臣民)의 실망지탄(失望之嘆)이 없게 하옵소서." 하며, 모든 대소 관원이 일시에 당 아래 땅에 엎드려 사배(四拜)하니 그 위엄이 서릿발 같은지라. 궐내가 떠들썩하여 창황(蒼黃) 분주하고 장안이 진동하여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분노하니 마치 병란을 당한 것과 같았다.
이때 이두병이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국법을 새로이 하여 각국 열읍(各國列邑)에 공문을 보내 벼슬도 올려 주는지라. 여러 신하들이 모여 동궁을 폐하여 외객관(外客館)으로 내치니, 시중(侍中) 빈환(嬪宦)과 내외궁(內外宮)의 노비 등이 하늘을 부르짖고 땅을 치며 끝없이 슬프고 마음 아파하니 푸른 하늘이 부르짖는 듯하고 태양도 빛을 잃은 듯하더라. 이때에 왕부인이 이러한 변을 보고 크게 놀라 실색(失色)하여, "마땅히 죽으리로다." 하며, 주야로 하늘을 향해 축수하여 말하기를, "웅의 나이 팔 세에 불과하니 죄없는 것을 살려 주소서." 하며, 애걸하니 그 정상을 차마 보지 못하겠더라.
웅이 모친을 붙들고 만 가지로 위로하여 말하기를, "모친은 불효자식을 생각하지 마시고, 천금같이 귀하신 몸을 보존하소서. 꿈 같은 세상에 유한한 간장을 상하게 하지 마소서. 인생에서 죽는 일 하나만은 제왕도 마음대로 못하옵거늘 어찌 한 번 죽음을 면하오리까? 짐작하옵건대 이두병은 우리의 원수요, 우리는 저의 원수가 아니오니 어찌 조웅이 이두병의 칼에 죽겠사오리까? 조금도 염려치 마옵소서." 하며 분기를 참지 못하더라.
이때 이두병이 큰 아들 관으로 동궁을 봉하고 국호를 고쳐 평순황제(平順皇帝)라 하고 개원(改元)하여 건무(建武) 원년(元年)으로 삼았다.
이즈음에 송 태자를 외객관에 두었더니, 조신(朝臣)이 다시 간하여 태산 계량도에 정배(定配) 안치(安置)하여 소식을 끊게 하였다. 이날 왕부인 모자가 태자께서 정배되었다는 말을 듣고 망극하여, "우리 도망하여 태자를 따라 사생(死生)을 한 가지로 하고 싶으나 종적이 탄로나면 이에 앞서 죽을 것이니 어찌하리오?" 하며 모자가 주야로 통곡하더라.
하루는 웅이 황혼의 명월을 대하여 원수 갚을 묘책을 생각하더니, 마음이 아득하고 분기탱천(憤氣撑天)한지라. 울적한 기운을 참지 못하여 부인 모르게 중문에 내달아 장안 큰 길 위를 두루 걸어 한 곳에 다다르니 관동(冠童)이 모두 모여 시절 노래를 부르거늘, 들으니 그 노래는 이러하더라.
국파군망(國破君亡)하니 무부지자(無父之子) 나시도다.
문제(文帝)가 순제(順帝)되고 태평(太平)이 난세로다.
천지가 불변하니 산천을 고칠소냐.
삼강이 불퇴(不頹)하니 오륜을 고칠소냐.
맑고 밝은 하늘에서 소슬히 내리는 비는
충신원루(忠臣怨淚) 아니시면 소인(騷人)의 하소연이로다.
슬프다 창생(蒼生)들아, 오호(五湖)에 편주(扁舟) 타고
사해에 노니다가 시절을 기다려라.
웅이 듣기를 다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두루 걸어 경화문에 다다라 대궐을 바라보니, 인적은 고요하고 월색은 뜰에 가득한데 오리와 기러기 몇 쌍이 못에 떠 있고, 십 리나 되는 화원에 전 왕조의 경치와 풍물 아닌 것이 없더라. 전 왕조의 일을 생각하니 일편단심에 구비구비 쌓인 근심이 갑자기 생겨나는지라. 조웅이 담장을 넘어 들어가 이두병을 만나서 사생(死生)을 결단하고 싶으나 강약(强弱)이 같지 아니할 뿐더러, 문 안에 군사가 많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지라 할 수 없이 그저 돌아서며 분을 참지 못하여 필낭(筆囊)에서 붓을 내어 경화문에 대서특필(大書特筆)하여 이두병을 욕하는 글 수삼구(數三句)를 지어 쓰고는 자취를 감추어 돌아오더라.
이날 왕부인이 잠자리에서 한 꿈을 얻었는데, 승상이 들어와 부인의 몸을 만지며, "부인은 무슨 잠을 그리 깊이 자는가? 날이 밝으면 큰 화를 당할 것이니 웅을 데리고 급히 도망하소서." 하거늘, 부인이 망극하여 묻기를, "이 깊은 밤에 어디로 가리이까?" 승상이 말하기를, "수십 리를 가면 자연히 구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니 급히 떠나소서." 하거늘,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웅을 찾으니 또한 없었으므로 대경실색하여 문 밖으로 내달아 두루 살펴보니 인적이 없었다. 왕부인이 정신이 창황하여 이윽히 중문을 바라보니 웅이 급히 들어오거늘, 부인이 크게 놀라 묻기를, "이 깊은 밤에 어디를 갔더냐?" 웅이 말하기를, "마음이 산란하여 월색을 따라 거리를 배회하다가 돌아오나이다." 부인이 목이 메어 말하기를, "아까 한 꿈을 얻으니 네 부친이 와서 이리이리 하라 하셨으니, 가다가 죽을지라도 어찌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겠느냐? 바삐 행장을 차려라." 하시니, 웅이 놀라 말하기를, "소자가 아까 나가서 동요를 듣사오니 그 내용이 이러이러하옵거늘, 분한 마음에 경화문에 다달아 이리이리 쓰고 왔나이다."
부인이 매우 놀라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어린 아이가 이렇듯 일을 망령되이 하느냐? 그렇지 아니 하여도 마음이 우물가에 어린 아이 세워둠과 같거늘 어찌 그리 경솔한가? 밝은 날에 그 글을 보게 되면 경각에 죽을 것이니 바삐 행장을 차려 도망하자." 하시고 모자가 힘닿는 대로 약간의 의복과 행장을 가지고 곧바로 충렬묘에 들어가니, 화상의 얼굴이 붉고 땀이 나 화안(畵顔)을 적셨거늘 모자 나아가 안하(案下)에 엎드려 크게 울지는 못하고 체읍(涕泣)하여 가슴을 두드리며 애통해 하니 그 모습이 불쌍하고 가련하더라.
정신을 진정하여 일어나 화상을 떼어 행장에 간수하고 급히 나와 웅을 앞세우고 걸음을 재촉하여 수십 리를 나와 대강(大江)에 다달으니 물새는 하늘에 닿았고 달은 떨어져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려 길을 분별하기 어려웠다. 마침 물 가에 빈 배가 매여 있되 사공은 없는지라. 배에 올라 부인이 손수 삿대를 들고 아무리 저은들 매여 있는 배가 어디를 가리오? 벌써 동방이 밝아오고 갈 길은 아득하여 하늘을 우러러 목놓아 울부짖다가 물에 빠지려 하거늘, 웅이 붙들고 무수히 애걸하니 차마 죽지는 못하더라.
마침 바라보니 동남쪽 대해(大海)에서 선동(仙童)이 일엽주(一葉舟)에 등불을 돋워 달고 만경창파에 살같이 오기에, 반겨 기다렸더니 순식간에 지나가거늘 부인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선주(船主)는 급한 사람을 구원하소서." 하시니, 선동이 배를 멈추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어떠한 사람이 바삐 가는 배를 만류하나이까?" 하며, 오르기를 재촉하거늘 부인이 반겨 배에 오르니 매우 편안하고 배를 젓지 아니 하여도 빠르기가 화살 같은지라.
부인이 묻기를, "선주는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만경창파(萬頃滄波)에 육지같이 다니느뇨?" 선동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남악선생께서 '강호의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라'고 명하시는 것을 받자와 사해팔방(四海八方)을 두루 다니나이다." 하며 삽시간에 강둑에 다달아 내리기를 청하거늘, 모자가 행장을 메고 배에서 내려 백배 사례하여 말하기를, "선주의 덕을 입어 대해(大海)를 무사히 건넜으니 은혜가 망극하여 갚을 길이 없거니와, 묻나니 여기는 황성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느뇨?" 선동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아까 온 길이 수로(水路)로 일천삼백 리요, 육로로 삼천삼백 리로소이다." 부인이 말하기를, "어디로 가야 살 수 있겠사옵니까?" 선동이 말하기를, "잠깐 곤란하고 급박하지만 어찌 죽사오리까? 이제 저 산을 넘어 가면 인가가 많으니 그곳으로 가소서." 하고는 배를 저어 가버리더라.
이날 밤에 황제의 꿈이 몹시 흉하고 참혹하기에 날이 밝기를 기다려 여러 신하들을 입시(入侍)하여 꿈 속의 일을 의논할 때, 경화문을 지키던 관원이 급히 고하여 말하기를, "밤이 지나고 나니 문 밖에 없던 글이 있기에 등서(謄書)하여 올립니다." 황제께서 그 글을 보니,
송나라 황실이 쇠미(衰微)하니 간신이 조정에 가득하도다! 만민이 불행하여 국상(國喪)이 나셨도다! 동궁이 장성하지 못했으니 소인이 득세하는 때로다! 만고 소인 이두병은 벼슬이 일품이라. 무엇이 부족하여 역적이 되었단 말인가? 천명이 온전하거늘 네 어이 장수하리오. 동궁을 어찌하고 네가 옥새를 전수하느냐? 진시황의 날랜 사슴 임자 없이 다닐 때에 초패왕의 세상 덮는 기운과 범증의 신묘(神妙)로도 임의로 못 잡아서 임자를 주었거늘, 어이할까 저 반적아! 부귀도 좋거니와, 신명을 돌아보아 송업(宋業)을 끊지 말라. 광대한 천지간에 용납 없는 네 죄목을 조목조목 생각하니 일필(一筆)로도 난기(難記)로다.
이 글은 전조 충신 조웅이 삼가 쓰노라."
하였더라.
황제와 여러 신하들이 보고나서 놀라며 분기 등등하여 우선 경화문 관원을 잡아들여 그때에 잡지 못한 죄로 곤장을 쳐서 내쫒고는 크게 호령하여 조웅 모자를 결박하여 잡아들이라 하니 장안이 분분한지라. 관원들이 조웅의 집을 에워싸고 들어가니 인적이 고요하고 조웅 모자는 없는지라.
금관(禁官)이 돌아와서 도망한 사연을 주달(奏達)하니, 황제께서 서안(書案)을 치며 크게 노하여 대신을 매우 꾸짖어 말하기를, "조웅 모자를 잡지 못하면 조신(朝臣)에게 중죄(重罪)를 내릴 것이니 바삐 잡아 짐의 분을 풀게 하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매우 급하고 두려워하여 장안을 에워싸고, 또한 황성 삼십 리를 겹겹이 싸고 곳곳을 뒤져 본들 벌써 삼천 리 밖에 있는 조웅을 어찌 잡으리오.
끝내 잡지 못하니 황제께서 분기를 참지 못하여 크게 호령하기를, "우선 충렬묘에 가서 조정인의 화상을 가져오라." 하였는데, 금관(禁官)이 명을 듣고 말을 달려 충렬묘에 가서 화상을 찾으니 또한 없는지라. 금관이 황망히 돌아와 화상도 없는 연유를 아뢰어 보고하더라. 황제가 서안을 치며 좌불안석(坐不安席)하여 '경화문 관원을 다시 잡아들이라' 하니, 시신(侍臣)이 창황 분주하여 넋을 잃더라.
순식간에 경화문 관원을 잡아들이니, 황제께서 매우 화가 나 '불문곡직하고 끌어내어 효시(梟示)하라' 하니, 즉시 끌어내어 목을 매단 후에 아뢰니 황제께서 또 명을 내리기를, "충렬묘와 조웅의 집을 다 불태워라." 하고도 침식이 불안하므로, 여러 신하들이 여쭈기를, "웅은 나이가 팔 세이고, 그 어미는 여인이라서 멀리 못 갔을 것이니, 각도 열읍(列邑)에 급히 공문을 보내면 우물에 든 고기를 잡듯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황제가 옳다고 여겨 각도의 열읍에 행관(行關)하여 '조정 관료나 서민을 막론하고 조웅 모자를 잡아 바치면 천금의 상과 함께 만호후(萬戶侯)에 봉할 것이리라' 하였더니, 각도 열읍이 행관을 보고 방방곡곡에 지휘하여 조웅 모자 잡기를 힘쓰더라.
이 즈음에 조웅 모자는 배에서 내려 선동(仙童)이 일러준 대로 한 뫼를 넘어가니 인가가 많고 송죽이 빽빽한 고요하고 깨끗한 마을이었다. 마을 앞에 앉아 인물을 구경하니, 사람의 거동이 유순하고 한가하더라. 우물가의 물 긷는 사람에게 물을 얻어 마시고, 여러 사람에게 하룻밤 지내기를 청하니, 그 중에 한 사람이 인도하여 한 집을 가리켜 주더라. 그 집에 들어가니 적막하고 고요하여 남자가 없고 다만 나이 많은 여인이 젊은 처녀를 데리고 있거늘, 나아가서 예를 표하고 방안을 둘러보니 매우 맑고 깨끗하여 사람이 비칠 듯하더라.
주인이 묻기를, "부인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시나이까?" 부인이 대답하기를, "신수가 불길하여 일찍 남편을 여의고, 또 가정에 화를 만나 신명(身命)을 도망하여 어린 자식을 데리고 갈 곳 없이 다니옵더니, 천우신조로 주인을 만났기에 묻자오니 이곳은 어디오며 마을 이름은 무엇이옵니까?" 주인이 말하기를, "계량섬 백자촌이라 하나이다."하고, 여아를 시켜 저녁밥을 지어왔는데 보니 음식이 소담한데다 종류가 많고 향기가 좋은지라.
모자가 포식하고 주인을 향하여 무수히 치사(致謝)하니, 주인이 도리어 사양하기를, "변변치 못하게 차린 밥으로 큰 인사를 받으니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옵니다." 부인이 더욱 치사하고 바깥 주인의 유무를 물으니, 길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팔자가 기박하여, 남편이 일찍 계량태수를 지내고 이 마을이 한적하고 외진 곳이기에 이 집을 짓고, 오십 후에 다만 한 딸을 두고 별세하므로 혈혈단신(孑孑單身)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땅 백성이 되어 목숨을 부지하고 있나이다."
부인이 차탄하고 그 집에 머무니, 일신은 편하나 고향을 생각하니 상심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일월이 무정하여 세월이 저무는데, 객지에서 해를 보내니 층층한 수회(愁懷)와 무한한 분기(憤氣)는 비할 데 없더라.
(중략)
웅이 말하기를, "어디로 가면 어진 선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말하기를, "이제 남방으로 칠백 리를 가면 관산이란 산이 있고 그 산중에 철관도사가 있으니, 정성이 지극하면 만나보려니와, 그렇지 아니 하면 낭패할 것이니 각별히 살펴 선생을 정하여라."
하고, 서로 악수하며 이별하고 웅이 허리에 삼척 장검을 차고 남쪽으로 향해 간 지 여러 날만에 관산을 찾아 들어가니, 산세가 기이하고 경치가 빼어난지라. 만장(萬丈) 절벽 사이에 개벽하여 천지를 열었고 수간 모옥에 석문을 열었거늘, 두 손을 마주 잡고 예를 표하면서 천천히 들어가니 지당(池塘)에는 연꽃이 만발하고 층계(層階)에는 국화로 둘렀더라.
외당(外堂)이 고요하고 여러 명의 동자가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거늘, 웅이 나아가 선생의 유무를 물으니, 동자가 일어나 읍(揖)하고 말하기를, "요즘은 천렵에 골몰하시어 벗님을 데리고 나가셨으니 늦게야 오실 것입니다." 웅이 낙심하여 묻기를, "어느 때에 오시겠습니까?" 동자가 대답하기를, "황혼에 달이 뜨면 돌아오실 것입니다."
웅이 석양이 되도록 기다려도 형적이 없는지라. 주인 없는 집에 유숙하지 못해 산 밖으로 나와 마을에서 자고, 이튿날 또 가니 초당이 적막하거늘 동자를 청하여 물으니 대답하되, "삼경에 돌아와 새벽에 나가셨나이다." 하거늘, 웅이 낙심하여 마음을 둘 데가 없는지라. 또 반나절이 되도록 종적이 없거늘, 다시 마을에 와서 밤을 지내다가 삼경에 가니 또 없었다.
웅이 민망하여 동자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첫 닭이 울면 나가시나이다." 하거늘 웅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십년을 정성드려 선생을 찾아왔는데 뵙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동자는 가신 곳을 가르쳐 주소서." 동자가 웃고 말하기를, "나뭇꾼이 기러기를 쏘아 맞히지 못함에 제 공부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활과 살을 꺾어 버리니, 그대도 나뭇꾼과 같도다. 그대 정성이 부족한 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주인이 없음을 원망하니 매우 우습도다. 다만 선생께서는 이 산중에 계시건만 천봉이 높고 만학이 깊었으니 종적을 어찌 알리오?" 하거늘, 무료하여 다시 묻지 못하고 반나절을 기다렸으나 종적이 망연한지라. 울적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붓을 잡아 못 보고 가는 뜻으로 글을 쓰고 동자를 불러 하직하고 나오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러라.
이때 철관도사가 산중에 그윽이 앉아 그 거동을 보더니 벽에 글을 쓰고 가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급히 내려와 벽의 글을 보니 그 글은 이러하다.
기작 십년객이, 幾作十年客
영견 만리외라. 迎見萬里外
몽택에 용유비어늘, 夢澤龍有飛
시성이 미달야라. 是誠未達也
도사가 보기를 다하고 크게 놀라 급히 동자를 산 밖에 보내 웅을 청하니, 웅이 동자를 보고 묻기를, "선생이 오셨습니까?" 동자가 말하기를, "이제야 오셔서 청하시나이다." 웅이 반겨 동자를 따라 들어가니 도사가 사립문에 나와 웅의 손을 잡고 매우 기뻐하여 웃으며 말하기를, "험한 산길에 여러 번 심히 고생하였도다." 하고 동자로 하여금 저녁밥을 재촉하여 주거늘,
웅이 먹은 후에 치사하여 말하기를, "여러 날 굶주린 배에 좋은 밥을 많이 먹으니 향기가 뱃속에 가득한지라 감사하여이다." "그대의 먹는 양을 어찌 알아서 권하였으리오?" 하고 책 두 권을 주며, "이 글을 보아라." 하거늘, 웅이 무릎을 꿇고 펼쳐보니 그것은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 웅이 다 본 후에 다른 책을 청하니, 도사가 웃고 육도삼략(六韜三略)을 주기에 받아 가지고 큰 소리로 읽으니, 도사가 더욱 기특하게 여겨 천문도(天文圖) 한 권을 주거늘, 받아 보니 기묘한 법이 많은지라. 도사가 가르치는 술법을 배우니 뜻이 넓어지고 눈 앞의 일을 모를 것이 없더라.
하루는 석양이 서쪽으로 기울고 새들이 자려고 숲으로 들어갈 때 광풍이 크게 일며, 무슨 소리가 벽력같이 산악을 울려치거늘 웅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곳에 어찌 짐승이 있나이까?" 하니, 도사가 말하기를, "다름이 아니라 내 집에 매우 늙은 암말이 있는데 수척하므로 날이 새면 산중에 놓아 길렀더니 하루는 천지가 진동하며 산중이 요란하거늘, 이상하게 여겨 말을 찾아 마장(馬場)에 들어가니 말은 보이지 않고 오색 구름이 산에 가득하여 지척을 분별하지 못하더니, 한참 후에 뇌성이 그치고 구름이 걷히자 말이 젖은 채 정신없이 섰거늘, 진정하여 말을 이끌고 집에 와 여물과 죽을 먹였더니 새끼를 배어 낳으니, 몇 달이 못되어 어미는 죽고 새끼는 살았으되 사람이 마음대로 이끌지 못했다. 점점 자라남에 사람이 근처에 가지 못하고 날이 새면 산중에 숨고 밤이면 마구간에 자고 새벽바람에 고함치고 나가니 사람이 상할까 걱정이니라." 하거늘, 웅이 다시 보니 높고 높은 층암 절벽으로 나는 듯이 오르고 내리기는 비호라도 당하지 못할러라.
한참 후에 말이 들어오거늘 웅이 내달아 소리를 크게 지르니 그 말이 이윽히 보다가 머리를 들고 굽을 치며 공순하거늘 웅이 경계하여 말하기를, "인마역동(人馬亦同)이라. 임자를 모르느냐?" 그 말이 고개를 들고 냄새를 맡고 꼬리를 치며 반기는 듯하거늘 웅이 크게 기뻐하여 목을 안고 굴레를 갖추어 마굿간에 매고 도사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이 말의 값을 따져 보면 얼마나 하나이까?" 도사가 말하기를, "하늘이 용마를 내심에 반드시 임자가 있거늘, 이는 그대의 말이라. 남의 보배를 내 어찌 값을 따져 말하리오? 임자 없는 말이 혹시나 사람을 상할까 염려하였더니, 오늘 그대에게 전하니 실로 다행이로다."
웅이 감사하고 절하여 말하기를, "도덕문(道德門)에 구휼하신 은덕이 망극한데, 또 천금의 준마를 주시니 은혜가 더욱 난망(難忘)이로소이다." 도사가 말하기를, "곤궁(困窮)함도 그대의 운수요, 영귀(榮貴)함도 그대의 운수라. 어찌 나의 은혜라 하리오?"
웅이 도사를 더욱 공경하여 선술(仙術)을 배우니 일 년이 지나자 신통 묘술을 배워 달통하니 진실로 괄목상대(刮目相對)일러라.
하루는 웅이 도사께 아뢰기를, "객지에 어머니를 두고 떠나 왔삽더니, 잠깐 가서 어머니를 뵈어 근심을 덜어 드리고 돌아올까 합니다." 도사가 허락하여 말하기를, "부디 빨리 돌아오너라." 하시니, 웅이 하직하고 말을 이끌어 사립문 밖에 나와 타고 채찍질을 한 번 하니 말은 가는 줄을 모르되, 마음에 날개를 얻어 공중에 나는 듯한지라. 순식간에 칠백 리 강호에 이르니, 날은 넉넉하나 노곤함이 매우 심하여 객점(客店)을 찾으니 마침 한 사람이 길가에 있다가 인도하거늘 따라가니 집이 아주 깨끗하고 경치가 매우 거룩하더라.
원래 이 집은 위나라 장진사의 집이니, 진사는 일찍 죽고 부인이 한 딸을 두었으되, 인물이 절색이고 시서를 통달하였기에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지라. 그 모친 위부인이 소저와 같은 배필을 얻고자 하여 객실을 깨끗하게 짓고 왕래하는 손님을 청하여 인물을 구경하더니, 이날 웅이 초당에 나아가 주인을 청하니, 시비(侍婢)가 나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예절이 비상하였다.
웅이 마음속으로 기특히 여겼더니, 이때 부인이 외당에 손님이 왔다는 말을 듣고 시비를 불러 손님의 거동이 어떠하냐고 물으니 시비가 아뢰되, "어떤 어린아이 과객이더이다." 부인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세월이 물같이 흘러 여아의 나이가 열여섯 살이라. 저와 같은 배필을 볼 길이 없다." 하고 스스로 탄식하니, 소저가 위로하여 말하기를, "불초녀를 생각하시 마시고 천금 같은 몸을 보중하십시오." 하며, 온갖 방법으로 위로하더라.
조웅이 혼자 초당에서 생각하기를, '이 집에 규중 절색을 두고 인재를 구한다고 하더니 끝내 몰라보는구나! 형산 백옥이 돌 속에 묻힌 줄을 지식 없는 안목이 어찌 알리오?' 황혼의 명월을 대하여 풍월도 읊으며 노래도 부르더니, 한참 후에 안으로부터 맑고 깨끗한 거문고 소리가 들리거늘 반겨 들으니, 그 곡조에 이르기를,
초산의 나무를 베어 객실을 지은 뜻은 인걸을 보려함이었더니,
영웅은 간 데 없고 걸객만 많이 온다.
석상의 오동을 베어 금슬(琴瑟)을 만든 뜻은 원앙을 보려함이었더니,
원앙은 오지 않고 까마귀와 참새만 지저귄다.
아이야, 잔 잡아 술 부어라. 만단 회포를 지워 볼까 하노라.
라고 하였다.
웅이 듣고 심신이 맑아 혼자 즐겨 말하기를, '이 곡조를 들으니 분명 신통한 사람이로다. 이러한 가운데 내 어찌 노상걸객(路上乞客)이 되어 상대를 못하리오' 하고 행장에서 퉁소를 내어 거문고 소리가 그친 뒤, 초당에 높이 앉아 달빛 아래서 구슬프게 부니, 위부인과 소저가 퉁소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 급히 중문에 나와 들으니 초당에서 부는지라. 그 소리가 쟁영(錚嶸)하여 구름 속에서 나는 듯한지라. 그 곡조에 이르기를,
십년을 공부하여 천문도를 배운 뜻은
월궁에 솟아 올라 항아를 보려함이었더니,
속세에 인연이 있었지만, 오작교가 없어 은하에 오르기 어렵도다.
소상의 대를 베어 퉁소를 만든 뜻은 옥섬(玉蟾)을 보려함이었더니,
달빛 아래 슬피 분들 지음(知音)을 뉘 알리오?
두어라, 알 이 없으니 원객(遠客)의 근심과 회포를 위로할까 하노라.
부인과 소저가 듣기를 마치자 상쾌한 마음이 하늘에 오를 듯하여 문에 비스듬히 서서 그 아이의 거동을 보니 얼굴이 관옥(冠玉) 같고 거동이 비범하여 보던 중에 으뜸이라.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성인이 나심에 기린이 나고 경아(瓊兒)가 남에 영웅이 나도다." 하니 소저가 부끄러워하여 일어나 별당으로 가서 등촉을 밝히고 침금에 의지하여 잠깐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부친이 나타나 이르기를, "너의 평생 배필을 데려 왔으니, 오늘 밤에 가연(佳緣)을 잃지 말아라. 천지에 집 없이 떠도는 나그네이기에 한번 가면 만나기 어려울지라." 하고 손을 잡고 나오거늘, 소저가 부친께 이끌려 초당으로 나오니 황룡이 오색 구름에 싸여 칠성을 희롱하다가 소저를 보고 머리를 들어 보거늘, 소저가 놀라 안으로 급히 들어오니, 그 용이 따라와 소저의 소매를 물고 방으로 들어와서 소저의 몸에 감기거늘 소스라쳐 깨달으니 평생 대몽이라.
몸에 땀이 나 옷이 젖었거늘 잠시 후 진정하여 벽에 기록하고 풍월을 읊으니, 이때 웅이 퉁소를 그치고 달빛 아래 배회하며 무슨 소식이 있을까 하여 바랬는데 도무지 아무런 기미가 없는지라, 웅이 스스로 탄식하여 말하기를, "다만 거문고 곡조만 알 따름이요, 퉁소 곡조는 알지도 못하고 예사 나그네의 퉁소로 아는가 싶으니 애닯도다." 하고 스스로 탄식만 하였다.
잠시 후에 풍월을 읊는 소리가 공중에 솟아나기에, 들어보니 산호 부채를 들어 옥 쟁반을 깨치는 듯하더라. 웅이 활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중문을 열고 후원에 들어가니 인적은 고요하고 달빛은 삼경이라. 후원 별당에 등촉이 영롱한데 풍월 소리가 나는지라. 조용히 방문을 열고 완연히 들어가 앉아 사면을 둘러보니 여자가 거처하는 방안에 병풍이 둘렀는데, 풍월하던 옥녀가 침금에 의지하고 있다가 웅을 보고 크게 놀라 침금을 덮어쓰고 온몸을 감추거늘 웅이 등불 아래에 앉아 예를 표하고 말하기를, "소저는 놀라지 마시오. 나는 초당에 묵고 있는 나그네인데 객지에서 달 밝은 밤을 맞으니 근심 걱정이 많아 배회하다가 풍월 소리가 들리기에 행여 귀댁의 공자인가 하여 시흥(詩興)을 탐하여 들어왔삽더니, 이리 깊은 규방에서 남녀가 서로 만났사오니, 바라건대 진퇴할 수 없는 자취를 인도하여 주소서."
소저가 침금 속에서 아무리 생각하여도 피할 길이 없는지라. 마지못해 대답하기를, "천지가 나누어 가려짐이 있고 예절이 끊어지지 아니하였거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이렇듯 범죄하니 빨리 나가 잔명을 보존하소서." 웅이 답하기를, "꽃을 본 나비가 불인 줄 어찌 알며, 물을 본 기러기가 어옹(漁翁)을 어찌 두려워하리오? 목숨을 아낀다면 이렇듯 방자하리이까? 바라건대 소저는 빙설같은 정절을 잠깐 굽혀 외로운 나그네와 이웃을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며 다가앉으니, 소저는 형세가 매우 급한지라.
잠시 생각하다가 애걸하며 말하기를,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라. 첩인들 어찌 빈 방에서 혼자 자기를 좋아하리오마는, 조상을 생각하니 구대(九代) 진사(進士)의 후예인지라. 부모의 명령이 없삽고 육례(六禮)를 행치 못하였사오니, 어찌 몸을 허락하여 조상님께 죄인이 되고, 가문에 욕이 미치오면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바라건대 마음을 돌이켜 돌아가 뒷날을 기약하소서."
웅이 들으니 말은 당연하나 사랑하는 마음이 염치를 가리었으니 예절을 어찌 분별하리오. 이에 대답하기를, "성현의 문하에도 남의 집 여자에게 탐심을 가지고 몰래 담을 넘는 경우가 있삽고, 명령과 육례는 제왕과 부귀한 사람의 호사스런 사치라. 나는 혈혈단신인데 어찌 육례를 바라리오? 다만 내 몸이 매파 되고 서로 만난 것으로 육례를 삼아 백년을 기약코자 하나이다." 하고, 침금 속에 들어가니 모기가 태산을 짊어진 꼴이요, 우물에 든 고기라. 원앙과 비취의 즐거움을 뉘라서 금하리오. 인연을 맺었으니 도망키 어렵도다.
소저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 몸이 규중의 처자요, 사대부의 후예로서 이렇듯 죄인이 되어 가문에 욕을 끼치니 살아서 무엇하리오." 하며 슬피 울거늘, 웅이 위로하여 말하기를, "난들 어찌 죄인이 아니리오?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부인을 맞았으니 불효가 이보다 더 큼이 없건마는 거문고 한 곡조를 퉁소로 화답하니 어찌 천생연분이 아니리오? 하늘이 정하신 바라. 어찌 내 마음대로 왔다하리오?"
은은한 정으로 밤을 지내고 삼경이 지나 멀리서 닭울음 소리가 들리는지라. 웅이 일어나니 소저가 말하기를, "어머니께서 낭군을 보려 하시니 오늘은 머물러 어머니를 보시고 훗날 가소서." 웅이 대답하기를, "내가 어머니를 천리 밖에 두고 떠난 지 삼 년이라. 일각이 삼추(三秋)와 같아 하루가 바쁜데 어찌 잠시인들 머물러 있으리오?"
소저가 옷자락을 붙들고 슬피 울며 말했다. "낭군께서 이번에 가시면 어찌 소식을 알리오. 사람의 연고를 모르오니 다음에 만날 때 증거로 삼을 것이 없사오니 무슨 표시를 주어 신물로 삼게하소서." 웅이 옳게 여겼지만 행장에 가진 것이 없고 다만 손에 부채뿐이기에 부채를 펴 글 두어 구를 써주며 말하기를, "이것으로 뒷날에 신표를 삼으소서."
소저가 받아보니,
퉁소로 장화옥녀금하고 洞簫將和玉女琴
적막심규의 광부지라. 寂寞深閨狂夫至
금안야랑이 수가아오 金顔冶郞誰家兒
장씨방연이 조웅시라. 張氏芳緣趙雄是
문장취벽이 괘일포하니 紋帳翠壁掛一袍
분도화연에 농가희라. 奔到華筵弄佳姬
신풍수어 엄누사하니 晨風數語掩淚辭
소식이 망망 부도시라. 消息茫茫不道時
라 하더라. 이 글은,
퉁소로 옥녀의 거문고를 화답하고
고요한 깊은 규방에 미친 흥이 들어갔는지라.
멋쟁이 풍류객은 뉘 집 도령인가?
장씨의 꽃다운 인연은 조웅이 분명하도다.
아름다운 무늬의 휘장을 친 푸른 벽에 도포를 걸고
예도 갖추지 아니 하고 규방에 들어 아름다운 여인을 희롱하는도다.
새벽 바람 두어 마디에 눈물로 하직하니,
소식이 망망하여 재회를 기약치 못하리로다.
라고 하였더라.
조웅이 하직하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 나오니, 소저가 나와 문에 기대어 웅의 가는 거동을 보니 천리 준마에 표연히 높이 앉았으니 광풍에 한 조각 구름 같은지라.
이날 밤에 위부인이 한 꿈을 얻으니, 황룡이 별당에 들어가 소저를 업고 구름 속으로 올라가거늘, 놀라 발을 구르며 소저를 부르다가 소리에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급히 창을 열고 밖을 보니 날이 이미 밝았는지라. 일어나 별당에 가니 소저가 잠을 깊이 자고 있기에 부인이 깨워 말하기를, "날이 밝았거늘 무슨 잠을 자느냐?" 소저가 놀라 일어나 묻자오되, "어찌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나이까?" 부인이 말하기를, "네 거동을 보니 정신이 없어 보이는데 몸이 곤하냐?" 소저가 말하기를, "간밤에 달빛을 구경하고 잤더니 자연히 곤한 것 같습니다." 부인이 말하기를, "달빛을 오래도록 보면 병이 아니 되느냐? 너는 매우 철이 없구나."
하시고, 시비로 하여금 외당에 음식을 보내려 하니 시비가 말하기를, "외당의 손님은 벌써 가고 없나이다." 부인이 크게 놀라 묻기를, "어느 때에 갔느뇨?" 시비가 아뢰기를, "언제 갔는지 모르나이다." 부인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대접을 잘 못하기에 말도 하지 아니 하고 갔도다!" 하며 종을 불러 말하기를, "행여 멀리 가지 않았으면 바삐 나가 데려오너라."
하시니, 종이 영을 듣고 급히 달려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본들, 벌써 천리 준마를 탔으니 어찌 찾을 수 있으리오. 끝없이 넓고 멀어서 종적이 아득하고 망연한지라. 돌아와서 사연을 아뢰니 부인이 낙심하여 말하기를, "나의 팔자 무상하다. 몇 해를 걱정하여 그런 수재(秀才)를 만났다가 즉시 잃으니 내가 살 마음이 없도다." 하고 무수히 슬퍼하시니 소저가 위로하여 말하기를, "어머니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그 사람이 우리 집과 인연이 있사오면 갔다 한들 어찌 다시 소식이 없으리오? 세상 만사를 뜻대로 못하니 너무 마음쓰지 마옵소서." 하며, 누차 위로하더라.
(중략)
각설, 원수가 부인께 말하기를, "소자가 잠깐 나가 선생을 찾아보고 대국 소식을 알아본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하니 모든 부인이 아연하여 당부하기를, "부디 수이 돌아오기를 바라나이다." 하거늘 원수가 하직하고, "소자 잠깐 나아가 고국 소식을 탐지하옵고 돌아오리이다." 하며, 위왕과 여러 충신께 하직하였다.
이날에 필마 단창으로 길을 떠나 여러 날만에 강선암에 도착하니 산중은 고요하고 인적이 없거늘 원수가 크게 실망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문득 살펴보니 층암 절벽 위에 여자아이가 약초를 캐며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원수가 그 노래 소리를 들으니 소리가 맑고 고와서 산악(山岳)을 깨치는 듯하였다. 원수가 마음속으로 놀라고 의아하여 들으니 그 곡조에 하였으되,
석경 좇는 손이 속객(俗客)임이 분명하다.
팔천 병사 어디 두고 독행천리(獨行千里) 하시는가?
구은(舊恩)을 생각하고 선생을 찾아온들 은대(慇待) 보필하니,
백운을 잡아타고 소행이 망망하다.
바위 위에 저 장군은 갈 길이 바쁜지라.
학산(鶴山)에 일이 있으니 그리로 갈지어다.
이즈음에 원수가 듣기를 다하고는 미친 듯이 급히 가서 물으려고 하니 벌써 간 데 없었다.
원수 마음이 애연하여 촌려(村閭)에서 나와 학산을 물으니 대국 변양 땅이라 하거늘 찾아갔다. 한 곳에 다다르니 한 사람이 척검(尺劍)을 허리에 차고 필마 단기로 급히 오거늘 원수가 나아가 말 위에서 읍하고 묻기를, "여기서 변양 땅이 얼마나 됩니까?" 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이 길로 수백 리를 가면 변양 땅이 나옵니다."
원수가 말하기를, "그대는 어디로 향하시나이까?" 대답하기를, "나는 대국에 있는데 왕명을 받자와 태산부 계량도로 급히 가나이다." 하거늘 원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무슨 일로 가나이까?" 대답하기를, "계량도에 귀양살이하는 송나라 태자에게 사약을 지니고 간 사신이 간 지 네댓 달이 되도록 소식이 없기에 천자께서 노하시어 나로 하여금 봉명(奉命)하여 태자에게 사약을 내리고 사신은 잡아오라 하시기에 갑니다."
원수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나는 전조의 충신 조공의 아들 웅이라. 역적 이두병과 간신 무리를 어찌 살려 두리오?" 말을 마치고 칼을 들어 천자의 사신의 목을 치니 말에서 거꾸로 떨어지거늘 말에 매달고 말을 채찍질하여 순식간에 변양 땅에 도달하였다.
한 사람을 만나 묻기를, "학산은 어디로 갑니까?" 그 노옹이 대답하기를, "학산은 듣지 못하였삽거니와 저 산이 천수동인데 골 안에 학산이 있다고 하나 보지 못하였습니다마는 속언에 그런 말이 있더이다."
원수가 묻기를 다하고 그 산 중으로 가니 비탈길은 반공중에 솟아 있고 푸른 숲은 무성한데 슬피 우는 두견성과 수려한 산은 깊고 험악하여 첩첩이 쌓였는지라. 깊이 들어가니 길가 반석(盤石) 위의 반송(盤松) 아래에 한 노승이 있어 고깔을 벗어 소나무 가지에 걸고 구절죽장(九節竹杖)을 바위 위에 세우고 단정히 앉아 무슨 책을 보다가 원수를 보고 놀래며 모르는 체 하거늘 원수가 이상하게 여겨 크게 소리하여 물었으나 노승이 들은 체 아니 하였다.
원수가 크게 노하여 칼을 빼어 그 중을 치려 하니 그 중이 겁내여 무슨 글 두 구(句)를 던지고 층암 절벽 위로 나는 듯이 달아나거늘 원수가 급히 쫓아갔으나 망연하거늘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며 돌아와 그 글을 보니
푸른 산이 아득한데 나그네가 내닫거늘 흰 구름은 선경보다 더욱 깊도다. 옥제가 덕담을 사설처럼 하면서 유인하니 가히 그 위에 집이 있음을 알겠다.
라고 쓰여 있었다.
원수가 그 글을 봄에 그 안에 무슨 집이 있다 하였거늘 집에 들어가 주인을 찾으니 동자가 나와 사립문을 열어 인도하거늘 원수가 묻기를, "주인은 뉘시며 어디 계시오?" 동자가 대답하기를, "이 집은 천명도사께서 왕래하시는 집입니다. 조금 전에 도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손님이 오실 것이니 이를 두었다가 전하라' 하시고 가셨습니다." 하며 일봉서(一封書)를 내어 주거늘 받아 보니 쓰였으되, "급히 학산에 가서 이두병의 머리를 베어라." 하였다.
원수가 읽기를 마치고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 기뻐하면서 동자에게 묻기를, "어디로 가면 학산을 가며, 도사는 어디로 가셨는가?" 동자가 대답하기를, "이 길로 가시면 선생님 계신 곳으로 가고, 저 길로 가시면 학산으로 가나이다."
원수가 도사를 보려고 층암 절벽 위로 올라가니 불과 수 리를 못가서 출처 없는 백호들이 내달아 고함하고 급히 쫓아오거늘 형세가 급하여 넘어질 듯이 급히 도망하니 그 범들이 쫓다가 다시 달려들었다. 원수는 형세가 점점 위태해지자 가져갔던 천자의 사자의 머리를 던지니 그 범이 천사(天使)의 머리를 물고 무수히 궁굴리며 즐기다가 먹고 갔다.
원수는 할 수 없어 학산으로 향하여 근근히 찾아가니 좌우의 산천은 하늘에 닿은 듯하고 가운데는 광활하게 열렸는데 수천 병마 진을 치고 위엄이 추상 같거늘 원수 괴히 여겨 은신하고 살펴보니 남대(南臺)로부터 한 사람을 결박하여 대하(臺下)에 꿇리고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송나라의 기둥이 되는 신하요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은 신하로서, 곡식이 산과 같이 쌓이고 직위가 일품에 이르러 귀와 눈의 좋아하는 바와 심지(心志)의 즐거움을 네 혼자 즐겨하면서도 너는 부족하다 하고 대체 무슨 심정으로 역적이 되었단 말인가? 태자는 무슨 죄로 만리 밖에 귀양살이 보냈으며, 하늘 높고 땅 깊은 줄을 모를지언정 사약은 무슨 일인고? 광대한 천지간에 용납할 수 없는 네 죄목을 조목조목 생각하니 죽여도 애석하지 않으며, 무지한 백성들도 네 고기를 구하는지라."
하고는 수레 위에 높이 달고 명패를 완연히 달았으되 '역적 이두병'이라 대서 특자(大書特字)하여 밖으로 나오거늘, 원수가 칼을 들고 소리를 우뢰같이 하며 달려들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역적 이두병아, 목을 늘이어 내 칼을 받아라." 하고 치니 목이 말 아래에 떨어지거늘 배를 찔러 헤치니 과연 사람은 아니요 허수아비를 만들어 형용을 그렸는지라. 비록 허수아비라도 즐거운지라.
장전(帳前)에 나아가며 말하기를, "소장은 전조의 충신 아무의 아들이옵더니 나라 밖의 사람으로 미리 아뢰지 않고 참여하였으니 죽음의 처벌을 내려도 애석하지 않소이다." 하니, 진중의 여러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일시에 대경 실색하여 원수를 붙들어 당상에 앉히고, "그대 어찌 잔명을 보존하였으며 태자 존망과 소식을 아는가?" 하니, 원수가 대답하기를, "이두병의 환을 면하시고 지금은 기체 안녕하십니다." 하니, 그 자리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대경 실색하고 일시에 당에서 내려와 공중을 향하여 땅에 엎드려 사배하고 말하기를, "황천이 명감하여 오늘날 우리 대왕의 안녕하신 소식을 들으니 이제 죽는다 한들 무슨 한이 있사오리까?" 하며 무수히 즐겨 하더라.
원수가 묻기를, "좌중의 제공(諸公)을 알지 못하옵거니와 이곳에서 만나기를 약속함은 무슨 일입니까?" 하니 한 백수 노인이 원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는가? 나는 네 어미의 사촌이요, 나의 성명은 왕태수라. 네가 어릴 때 이별하였으니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이두병의 난을 만나 각각 도망하였는데 수개월 전에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하매 피난하였던 인민들이 우리의 소식을 알고 약속하지 않고서도 모인 사람이 오천 인이라. 옛적에 주나라 무왕이 벌주(伐紂)할 때와 다름이 없는지라. 어찌 반갑지 아니 하리오? 그러나 아직 용병술을 지닌 장수도 만나지 못하고 천시(天時)만 기다렸는데 오늘 이 일은 모든 충신이 밤낮으로 분을 이기지 못하여 거짓으로 두병의 형용을 그려 허수아비를 만들어 우선 분을 덜고자 함이라. 다시 묻나니 너는 어디 가서 장성하였으며 태자와 네 모친은 또한 어디에 계시며, 이두병의 기포(棄暴)를 어찌 면하였으며 태자를 어찌 구원하였는가?"
원수가 다시 땅에 엎드려 통곡하여 말하기를, "소질(小姪)이 살아 다시 만나 뵈오니 이제 죽는다 한들 여한이 있사오리까."
조웅이 당초에 천명도사 만나 공부하던 일이며, 처음에 모친을 모시고 환란을 피하여 한 곳에 머물러 하늘의 명만 기다렸더니 우연히 천명도사를 만나 술법 배우던 말씀이며, 위국에 들어가 서번을 쳐 승전하여 대원수된 이야기며, 계량도에 들어가 보니 천자의 사신이 내려와 태자에게 사약을 내리려고 모든 충신을 다 결박하였거늘 사자를 베고 태자를 구하여 모시고 오는 길에 번국에서 죽을 뻔 했던 말씀이며, 이로 인하여 위왕의 부마된 말씀이며, 필마로 오다가 선생을 보고 학산을 찾아오다가 천사를 만나 죽인 사연 등을 차례로 아뢰니 좌중의 여러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대경 실색하여 원수를 붙들고 이야기하며 칭찬하여 말하기를, "고금에 이런 상쾌한 일이 어디 있으리오?" 하고 못내 사랑하며 즐거움을 헤아리지 못하더라. 또한, "맑은 하늘이 감동하셔서 이런 영웅을 내시어 송나라 왕실을 회복하게 하고 흉적을 잡게 되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 하겠는가?" 하더라.
이즈음에 능주 땅에서 죽은 천사(天使)의 하졸(下卒)이 황성에 들어가 천사가 조웅에게 죽은 사연을 아뢰니 황제가 듣고는 크게 놀라고 노하여 서안(書案)을 치며 조신(朝臣)을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불과 수백 리 밖에 있는 조웅을 잡지 못하고, 또한 마침내 황제의 사신을 마음대로 죽였으니 어찌 분하지 않겠는가? 이번에도 조웅을 잡지 못하면 조신을 다 처참할 것이다." 하니, 조신 중 누가 겁내지 않으리오.
좌승상 최식이 아뢰기를,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옵소서. 조그마한 조웅 잡기를 어찌 근심하리이까? 이제 용맹있는 무사를 택하여 조웅을 잡게 하옵소서." 하니, 황제가 옳게 여겨 중랑장 이황에게 일천 명의 병사를 주어 보내니라.
이적에 학산의 모든 충신이 조웅을 배수하여 대사마 대원수로 봉하고 택일(擇日) 행군하여 대국으로 향하게 하였다. 원수는 머리에 봉천(奉天) 투구를 쓰고 몸에는 쇠조각을 붙여서 만든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보물을 장식해 넣은 활을 차고 천리(千里) 용총마(龍寵馬)를 타고 왼손에 비수를 들고 오른손에 긴 창을 들고 선봉을 재촉하니, 선봉군이 북을 울리며 진을 펼쳐 나아가는데, 기치창검(旗幟槍劍)은 해와 달을 가리고 검극병마(劍戟兵馬)는 푸른 하늘에 닿을 듯하고 호령과 위엄이 추상 같더라. 노소 충신이 크게 칭찬하여 말하기를, "원수의 행군하는 법은 한신 팽월과 같도다." 하며 칭찬하더라.
원수가 여러 장수들을 호령하며 동관을 짓쳐 들어가니 지나는 바의 정예한 선봉을 당하지 못하여 소리로 응하고 항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더라.
번양 땅에 도달하니 태수 태원이 크게 놀래어 군사를 가려 뽑아서 길을 막거늘 원수가 크게 성내여 말하기를, "태수 태원은 빨리 나와 나의 날랜 칼을 받아라. 나는 송조(宋朝) 충신 조웅이러니 역적 이두병을 치러 가노라."
태수가 그제서야 크게 기뻐하여 칼을 버리고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죄를 청하고 말하기를, "소장이 잘 알지 못하고 그릇 대군에게 항거하였사오니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옵소서. 죄를 용서하옵고 진중에 두시면 힘을 다하여 원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하고 땅에 엎드려 애걸하거늘 원수가 크게 노하여 높은 목소리로 질책하여 말하기를, "너는 음흉한 흉적이라. 두병과 더불어 다름이 없는지라. 내 어찌 두병의 조신을 씨나 남겨 두리오." 하고 말을 마치자 칼을 들어 태수를 찔러 말에서 내려치고, 군기와 군량을 취하여 호군( 軍)하고 발행하여 장안을 향하니, 초야(草野) 인민이 조원수의 기병(起兵)함을 듣고 오는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행군을 재촉하여 한 곳에 이르니 군사 천여 명이 길을 막아 진을 쳤거늘 원수가 이상하게 여겨 정탐해 보니 또한 계량도로 가는 사신이라. 원수가 크게 성내어 말하기를, "빨리 목을 늘이어 내 칼을 받아라. 나는 송조 충신 조웅이라." 하니 군사는 일시에 물러나고 사신은 칼을 들고 달려들며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반적 조웅아 어찌 만남이 늦는가? 이는 반드시 하늘이 지시한 바라. 내 너를 잡아 공을 이루기 위함이니 어찌 기쁘지 아니 하리요? 오늘날 너의 머리를 베어 우리 황상의 평생 원을 풀리라." 하거늘 원수 더욱 노하여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너 같은 간사한 놈을 두어 쓸 데 없는지라. 우선 너를 잡아 분함을 덜리라." 하고, 달려들어 서로 싸우는데 일 합이 못되어 원수의 칼이 번득하며 사신의 머리가 말 아래에 떨어지거늘 머리를 창 끝에 꿰어 들고 본진으로 돌아오니 여러 장수들과 군졸이 하례하고 노소 충신이 칭찬하더라.
이때 사신의 군사가 도망하여 황성에 들어가 황상께 사정을 아뢰어 말하기를, 조웅이 번양을 쳐 태수를 베고 황성을 향하다가 또 사신을 죽이고 짓쳐 들어옴에 소졸 등이 겨우 명을 보존하여 도망한 사연을 고하고 급히 쳐들어옴을 아뢰니, 상이 들으시고 크게 놀라 어찌 할 줄을 모르더라. 문득 서관장(西關將) 채탐이 보고하되, "조웅이 군사 팔십만을 거느리고 광음(光音)처럼 빨리 서주를 범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황상은 급히 군사를 거느려 도적을 막으소서." 하거늘 황제가 크게 놀라 여러 신하들을 돌아보며 울며 말하기를, "이를 어찌 하리오?" 하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좌장군 장덕이 반열을 나서서 아뢰기를, "소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한번 북을 쳐 조웅을 사로잡아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하거늘 상이 크게 기뻐하며, "바삐 나아가 짐의 분을 덜라." 하였다. 장덕이 머리 숙여 명을 받들고 군사를 가려 뽑아 행군하더라.
이즈음에 원수가 행군하여 서주 땅 계양산 아래에 이르니 계양산 깊은 골로 한 장수 엄심갑을 입고 장창(長槍)을 들고 군사 삼백 기를 거느리고 나와 원수의 말 아래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소장은 전조의 충신 강굴의 아들 백이옵더니 이두병의 난을 만나 부친을 잃고 밤낮으로 망극하여 슬퍼하옵더니 약간 용맹이 있삽기로 병서(兵書)를 보고 군사 수백 기를 얻어 하늘의 때를 기다렸는데 오늘날 상봉하니 어찌 반갑지 아니 하리오? 바라옵건대 진중에 있다가 흉적 이두병의 머리를 베어 대송(大宋)을 회복하고 부친의 원수를 갚을 수 있기를 바라나이다."
원수가 크게 기뻐하면서 강백의 손을 잡고 일러 말하기를, "그대 부친이 계량도에서 태자를 모시고 있거늘 이리이리 구하여 위국으로 모셔 왔나니 기후는 안녕하신지라. 그대는 조금도 근심치 말라." 하니, 백이 이 말을 듣고 한편으로 기뻐하고 한편으로 슬퍼함을 마지 아니 하면서 원수께 무수히 치사하더라.
이러구러 기약없이 모인 사람이 십만에 가까운지라. 서주를 쳐들어 가니 서주 자사 위길대가 삼천 기를 거느리고 진을 치면서 길을 막거늘 원수가 크게 성내여 선봉장 강백을 불러, "그대가 나아가 대전(對戰)하면 오늘 재주를 시험하리라." 하니, 강백이 대답하고 말을 내몰아 장창을 높이 들고 적진에 나아가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나는 선봉장 강백이니라. 적장은 빨리 나와 목을 늘이어 나의 날랜 칼을 받아라." 하니, 위길대가 분기 등천하여 진문 밖에 내달아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오늘날 조웅을 잡아 우리 황상의 분함을 씻으리라." 하고 달려들거늘, 강백이 장창을 날려 서로 싸우는 양은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모습이라. 십여 합에 이르러 승부를 결단하지 못하였다.
두 장수의 검술을 보니 강백의 칼이 날래어 길대보다 배나 더하나 힘은 길대만 못하거늘 원수가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칼을 들고 진문 밖에 내달아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반적 위길대야 너는 반국지적(反國之敵)이라. 승천입지(昇天入地)하는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냐?" 하고, 호통을 지르며 달려드니 길대 또한 격분하여 대답하지 않고 맞아 싸웠다. 한 합이 못되어 원수의 칼이 번득하며 길대의 머리 말 아래에 떨어지니 창으로 찔러 문기 위에 달고 좌충우돌하니 그 날램이 비호(飛虎) 같더라.
길대의 아들 위영이 또한 만부지용(萬夫之勇)이 있는지라. 부친의 죽음을 보고 크게 놀래어 실색 통곡하여 말하기를, "부친의 원수를 갚으리라." 하고 분을 이기지 못하여 칼을 들고 내달아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반적 조웅은 빨리 나와 대적하라. 오늘은 네 목을 베어 불공대천지원(不共戴天之怨)을 갚으리라." 하거늘 원수가 바라보니 신장이 팔 척이오 눈은 방울 같고 얼굴은 검고 짙은지라. 원수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젖비린내나는 어린 아이라. 어찌 나를 당하겠는가? 그러나 일시지내(一時之內)에 부자 동참이 불쌍하지마는 이것도 천수(天壽)라." 하고 선봉장 강백을 불러, "대적하라." 하니, 백이 대답하고 말에 올라 창을 휘둘러 달려들어 위영을 치니 영이 급히 맞아 싸우기를 이십여 합에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더니 위영의 칼이 번득하며 백의 말을 찔러 엎어지게 하니 백이 크게 놀라 말을 버리고 뛰면서 공중에 솟아 위영의 말 뒤에 올라서며 칼을 날려 위영의 머리를 베어 말 아래에 내려치고 그 말을 빼앗아 타고 나는 듯이 본진으로 돌아오거늘 원수가 그 용맹을 보고 크게 놀래어 칭찬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용맹은 실로 범상한 장수 아니로다." 하고 칭찬을 마지 아니하더라.
적진 장졸이 자사의 죽음을 보고 일시에 도망하거늘 원수가 승전고를 울리며 떠나 황성으로 향하였다. 관산에 다다르니 황성 대진이 관산 아래에 진을 치고 기다리거늘 원수가 나아가 적진을 대하여 산을 등져 진을 치고 중군에 분부하여 말하기를, "아직 군사를 움직이지 말라." 하고 적진 진세를 살펴보는데 문득 적진으로부터 한 장수가 크게 외쳐 말하기를, "반적 조웅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아라." 하며 진전에서 횡행하거늘 원수가 크게 성내여 진전에 나서며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조그마한 반적이라. 어찌 너를 살려 두리요? 나의 장수 하나를 보내니 너희들은 혼백을 이 장수 칼 끝에 붙여 보내라." 하고 강백으로 하여금, "나아가 대적하라." 하니 백이 창을 번득이며 말을 달려 나와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무지한 반적은 천시를 알지 못하고 당돌히 대적하니 어찌 가소롭지 아니하리오." 하고 두 장수가 어우러져 접전하니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듯하더라.
십여 합에 이르러 강백의 창이 번득하며 적장의 머리 말 아래에 떨어지는지라. 백이 창 끝에 꿰어 들고 춤추며 본진으로 돌아오니 원수가 기뻐하더라. 황성 대진이 강백의 용맹을 보고 근심하여 말하기를, "조웅이 또한 명장을 얻었도다." 하고, 크게 근심하더라.
이튿날 적진 중에서 한 장수 나와 크게 외쳐 말하기를, "반적 조웅은 바삐 나와 내 칼을 받아라. 어제는 우리 진 조그마한 장수 하나를 죽이고 승전을 자랑하였지마는 오늘은 맹세코 너의 목을 베어 천하를 평정하고 또한 우리 황상의 근심을 덜리라." 하고 진 앞을 마음대로 다니거늘 강백이 응성 출마하여 크게 외치기를, "너희 진중에 장수가 얼마나 되는가? 빨리 나와 승부를 결정하자." 하며 달려들거늘, 서로 맞아 싸우더니 참으로 호적수였다. 강백의 창이 번득하며 적장의 투구가 말 아래에 떨어지니 적장이 황겁하여 달아나니 적진 중에서 또 한 장수 고함치고 내달아 외쳐 말하기를, "반적 조웅아, 너는 망명 죄인이라. 여태까지 살려 두었기로 이렇듯 대죄(大罪)를 생각지 않고 이렇듯 큰 죄를 지으니 네 어이 살기를 바라리오? 바삐 나와 목을 늘이라. 또한 네 어미를 어디에 두었으며 데려 왔거든 함께 와 잔명을 바쳐라." 하며 강백에게 달려드니 이는 적진 대원수 장덕이라.
강백이 대로(大怒)하여 말하기를, "반적 장덕은 어찌 낯을 들고 입을 열어 이런 말을 감히 하는가? 하늘이 두렵지 아니 하느냐? 너 같은 반적을 일시나 살려 두리오?" 하고, 싸워 삼십여 합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더니, 원수가 바라보니 강백의 형세 매우 급한지라. 원수가 노기 등천하여 내달아 강백을 물리치고 장창을 높이 들고 달려들어 장덕을 치니 덕이 당치 못할 줄 알고 말머리를 돌리어 본진으로 달아나거늘 원수가 장덕을 따라 적진 중에 달려들어 서로 가는 듯 남을 치고 북으로 가는 듯 남장(南將)을 베고 들어가니 대소 장졸이 눈을 뜨지 못하고 서로 밟혀 죽는 자 부지기수라.
장덕이 크게 겁내어 말을 급히 놓아 달아나거늘 원수 쫓아가며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역적 무모지장(無謀之將)은 달아나지 말라." 하고, 호통을 벼락같이 지르며 쫓아가니 장덕이 힘을 다하여 달아났다. 문득 산 뒤로부터 출처 없는 백호가 내달아 길을 막고 물려 하거늘 장덕이 크게 놀라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앞에는 백호가 막아 섰고 추격하는 병사는 급한데 그 가운데 든 자가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사세 급박하니 어디로 향하리오?" 자탄하기를, "이를 어찌 하리오?" 할 즈음에 말 소리가 벽력같이 나거늘 돌아보니 조원수가 장창을 휘두르며 나는 듯이 달려오거늘 사세 급한지라.
장덕이 말에서 내려 원수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려 애걸하기를, "소장을 족히 아올지라. 일시 황명으로 원수와 더불어 전장(戰將)이 되었사오니 하올 말씀은 없지만 병가(兵家)의 분(憤)은 잠시 뿐이라 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원수께서는 인후(仁厚)하신 마음을 생각하옵소서. 죄를 용서하옵고 진중에 두시면 원수의 뒤를 쫓아 공을 함께 이루어 빛난 이름을 천추(千秋)에 남겨 전할까 바라나이다." 하며 지극히 애걸하거늘 원수가 더욱 대로(大怒)하여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네 형상을 보니 가긍(可矜)하나 흉적 두병의 무거불측지죄를 생각하니 너를 어찌 살려 두리오?" 말을 마치자 칼을 빛내니 장덕의 머리 떨어지거늘 칼 끝에 꿰어 들고 본진으로 돌아오니 모두 원수의 용맹을 치하하더라.
차설, 황제 장덕을 보내고 날로 소식을 기다리더니 문득 채탐이 보고하기를, "조웅이 서주 칠십 주를 쳐서 함몰하고 관산에 이르러 대진하고 서로 싸웠는데 하루를 지내니 원수 장덕을 베고 물밀 듯 쳐들어오나이다." 하였거늘 황제가 보기를 다함에 대경 황망하여 여러 신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 일을 어찌하리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마 장군 주천이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장덕은 본래 우직하온지라 제 어찌 당하오리까? 소장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대장의 인장과 칼을 주시면 전장에 나아가 반적 조웅을 잡아 폐하의 휘하에 올리리다." 하니 황제가 크게 기뻐 말하기를, "적진에 나아가 부디 조심하여 공을 이루어 수이 돌아오라." 하시니 주천이 명을 받들고 물러나오니, 황제가 또한 좌승상 최식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경이 짐을 위하여 주천을 도와 적진에 나아가 조웅을 사로잡아 돌아오면 강산(江山)을 반분(半分)하리라." 하시니 최식이 아뢰기를, "황상의 명령을 어찌 피하오리까? 싸움의 승패는 병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 패하여 돌아온들 어찌 하교를 거역하오리까? 이제 군사를 발하여 주시면 주천을 데리고 전장에 나아가 반적 조웅을 사로잡아 천하를 평정할 것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는 너무 마음 쓰지 마소서." 하였다.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최식으로 대원수를 봉하시고 주천으로 선봉장을 삼아 장수 천여 명과 군사 팔십만과 백모황월(白矛黃鉞)과 용정봉기(龍旌鳳旗)며 전포인검(戰袍印劍)을 내려주시니 원수가 사은하고 물러나와 군사를 발행하니 위엄이 엄숙하여 용병하는 법은 귀신도 헤아리지 못할러라. 황제가 친히 나와 원수를 전송할새 기치 창검은 해와 달을 희롱하고 고각(鼓角) 함성은 천지에 진동하니 그 위엄이 서릿발 같더라.
화설, 조원수는 군마(軍馬)를 몰아 무인지경(無人之境)같이 들어가니 향하는 곳마다 대항하는 적이 없었다. 오산 동관에 이르니 대원수 최식이 팔십만 대병을 거느려 산야(山野)를 덮어 진을 치거늘 원수가 황진(皇陣)의 형세를 살펴보고 선봉장 강백을 불러 말하기를, "초목을 의지하여 진을 쳐라." 하고 적세를 보고 있는데, 문득 적진으로부터 방포일성(放砲一聲)에 한 장수가 문기(門旗) 아래에 나서며 크게 외치기를, "반적 조웅은 빨리 나와 내 창을 받아라." 하는 소리 우뢰와 같거늘 원수 대로(大怒)하여 선봉장 강백에게 명하여 치라 하니, 백이 창을 휘두르며 말을 내달아 진전에 나서며 크게 꾸짖기를, "반적 두병의 장졸은 들으라. 네가 천시(天時)를 모르고 감히 우리와 대적하니 우선 너를 베어 분함을 씻으리라." 하고 호통 일성(一聲)에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들어 서로 싸우니 기치검극(旗幟劍戟)은 해와 달을 가리웠고 모래와 자갈이 일어나 안개되어 양진을 분별치 못하는지라. 수십여 합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날이 저물거늘 원수가 징을 쳐 군사를 물리치니, 강백은 본진으로 돌아와 분을 이기지 못하여 날이 새기만을 고대하더라.
이럴 적에 황진 중에서 크게 외치기를, "가련타! 조웅이 저렇듯 무지한 장수를 믿고 대국을 침범하니 어찌 가소롭지 아니 하리오?" 하더라.
이때에 대원수 최식이 간계를 내어 군중에 지휘하되, "조웅이 수풀을 의지하여 진을 쳤으니 제 어찌 병법을 안다 하리오? 너희는 화약과 염초를 준비하여 자정 무렵에 적진에 나아가 고요한 때를 타 불을 지르라. 적진을 함몰하고 조웅을 사로잡아 천하를 평정하리라." 하니, 장졸이 다 즐겨하더라.
이날 초경에 원수는 선봉장 강백을 불러 말하기를, "적진이 우리가 수풀에 진 침을 보고 응당 불로 칠 것이니 어찌 저의 꾀에 빠지리오? 이제 진을 급히 옮기되 떠들썩한 소리를 일제히 금하라." 하니 강백이 명을 받들고 진을 옮기더라. 원수는 군사 수십 명을 보내어 수풀에 진을 머무르게 하는 척하고 밤이 깊도록 솔불을 흔들고 군호(軍號)하다가 본진으로 돌아오게 하더라.
이날 밤에 적진의 장졸이 상림에 와 복병하였다가 자정 무렵을 기다려 방포일성에 좌우 수풀에 일시에 불을 놓으니 화광이 충천하여 상림을 다 불태우는지라. 황진 장졸이 모두 즐겨 말하기를, "이제는 적진 장졸이 혼백도 남지 못하리라." 하며, 즐거워하더라.
이때에 조원수 은신하였다가 필마로 내달아 크게 외쳐 말하기를, "죽은 조웅이 살아 왔노라." 하며 장졸을 무수히 죽이고 본진으로 돌아오니라. 이날 밤에 황진 중에서 상림에 장졸을 보내고 삼경에 이르러 바라보니 방포일성에 화광이 충천하거늘 장졸이 다 즐겨 말하기를, "이제는 조웅이 죽었도다." 하며 본진 장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더니 살아 온 몇몇 군사가 울며 고하기를, "무섭고 두렵더이다. 분명 죽은 조웅이 다시 살아와 장졸을 짓치고 인하여 간 데 없으니 어찌 두렵지 아니 하오리까?"
최식과 주천이 듣고 크게 놀라 낯빛이 변하며 말하기를, "조웅은 분명 명장이로다. 죽은 혼백도 장졸을 짓치니 만일 살려 두면 대환을 당하리랏다." 하며, "황제께서 우리를 보내시고 날로 소식을 기다리는지라 승전한 격서를 보내는 데 어찌 시각을 지체하리오?" 하고, 즉시 주문(奏文)을 발송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날이 새기를 기다리더니 계명성이 나며 동방이 장차 밝거늘 군사를 호군하고 선봉을 재촉하여 진을 풀러가고자 하였더니 문득 일성방포에 고각과 함성이 천지 진동하며 요란하거늘 황진 장졸이 모두 놀래어 함성 소리 나는 곳을 살펴보니 상림 동편에서 한 장수 내달으며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황진은 가지 말고 내 칼을 받아라. 오늘날 너희를 씨 없이 멸하리라." 하며, 칼춤 추며 달려드니 황진 장졸이 크게 놀래어 진퇴를 능히 못하고 진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아니 하더라.
주천이 최식에게 말하기를, "조웅을 잡았다 하고 주문(奏文)을 올렸더니 이제 조웅이 살았으니 그대로 두면 우리는 능히 임금을 속이는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주문을 다시 합시다." 하니, 최식이 다시 주문을 하니라.
각설, 조웅이 진전(陣前)에 나와 횡행하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무지한 반적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하며 재주를 비양(飛揚)하니 황진 장졸이 황겁하여 어떻게 할 줄을 모르더라. 최식이 주천더러 말하기를, "이제 조웅의 용맹을 당할 장수가 없으니 항복하여 살기를 바람만 같지 못하도다." 하니 주천이 크게 성내어 칼을 빼어 들고 최식을 겨누며 꾸짖어 말하기를, "원수는 나라의 중신(重臣)이라. 저렇듯 추하고 더러운 뜻을 가지고 어찌 국록(國祿)을 먹는 신하가 되었으며, 또한 군졸이 되었습니까?" 하니 최식이 대답하기를, "나는 일신을 위함이 아니다. 낸들 어찌 근심치 아니하리오? 우리들이 만일 패한다면 국가의 흥망은 알지 못할지라. 그대는 어찌 생각하지 못하느냐?" 주천이 더욱 성내어 크게 꾸짖기를, "어찌 원수라 칭하리오?" 하고 창을 들어 문에 내달아 외치기를, "반적 조웅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아라. 어제는 천행으로 살았으나 네 목숨은 오늘뿐이로다."
하고 달려들거늘 원수가 또한 격분하여 내달아 접전하나 이십여 합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거늘 주천이 원수를 당하지 못할 줄을 알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원수가 칼을 들어 주천을 치니 검광이 번득하며 주천의 머리 말 아래로 떨어지거늘 창 끝에 꿰어들고 황진을 횡행하여 크게 외쳐 말하기를, "적진에는 장수가 몇이나 더 있느냐? 한꺼번에 모두 나와 목을 늘이어 내 칼을 받아라." 하는 소리가 우레와 같은지라.
황진의 장졸이 대경하여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도망하거늘, 최식이 형세가 궁하고 힘이 다하여 항서(降書)를 써 가지고 통곡하며 진문 밖으로 나와 원수의 휘하에 꿇어 땅에 엎드리고는 애걸하기를, "윗사람의 뜻을 함부로 거슬렀사오니 죽음의 죄를 받아도 애석함이 없습니다. 원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잔명을 구해주기를 바라나이다." 하였다.
원수는 최식의 간사함을 절통히 여겨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네게 받은 항서를 무엇하리오? 너는 만고의 간신이며, 이두병은 중한 역적이라. 내 어찌 씨라도 두리오?" 말을 끝내자 칼을 들어 최식의 머리를 베어 적진 중에 던지니 황진 장졸이 대경 실색하여 말하기를, "형세를 장차 어찌하리오?" 하고 도망하는지라.
차설, 이때에 황제는 대군을 보내고 소식을 날마다 기다렸더니 문득 승전한 격서가 올라오거늘 급히 떼어 보니,
승상 겸 대원수 최식은 삼가 백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씀을 폐하 전에 올리나이다. 신이 모월 모일에 오산 동관에 이르러 적진을 만나 대진(對陣)하였습니다. 이러이러하여 조웅을 죽이고 승전(勝戰)하여 평국한 사정을 올리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황상께서는 아무런 염려 마시옵소서."
하였더라.
상이 보기를 다함에 기뻐하여 만조 백관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원수 한 번 감에 반적 조웅을 잡고 짐의 근심을 더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오?" 하시고 즉일에 태평연을 배설하고 즐기더니, 또 한 주문을 올리거늘 뜯어보니 그 글에 하였으되,
"승상 겸 대원수 최식은 삼가 백 번의 절을 폐하께 올립니다. 신은 임금을 속이는 죄를 지었사오니 죽어도 아깝지 아니 하오되 천위(踐位)함을 앙달하옵나니 일전 상림에서 조웅을 잡았다 하옵고 승전한 격서(檄書)를 올렸거니와, 이튿날 회환(回還)하려 할 때 다시 보니 뜻밖에 한 장수가 있기에 자세히 보니 조웅이 진을 옮겨 치고 환을 면하고 다시 대전한 것임에 황공하여 땅에 엎드려 감히 아뢰옵나이다."
하였더라.
보기를 다함에 황제는 실색하여 어찌 할 줄을 모르더라. 또한 채탐이 보고하되, "조웅이 대원수 최식과 부장 주천을 베고 팔십만 대병을 몰아 물밀듯이 들어오니 그 세가 큰지라 바삐 명장을 보내어 급함을 막으소서." 하였더라.
황제는 보기를 다함에 대경 실색하여 여러 신하들을 돌아보며 자탄을 마지 아니하더라. 또한, 문득 궐문 밖에서 크게 요란하거늘 상이 크게 놀라시어 그 까닭을 물으시니 수문장이 급히 아뢰기를, "출처를 알 수 없는 장수 세 사람이 와서 이리이리 합니다." 하니, 상이 데려오라 하여 보시고 묻기를, "경 등은 어디에 있으며, 무슨 품은 뜻이라도 있는가?"
삼 인이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신 등은 동해 땅에 사옵더니 신의 숙부가 태산부 자사로 가서 반적 조웅의 손에 죽었사오니 숙부와 조카 사이에 어찌 놀랍지 아니 하오며, 또한 국가가 위태하옴을 듣사오니 신하된 사람의 도리에 어찌 마음이 편안하오리까? 신 등은 삼형제니 이름은 일대․이대․삼대라.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조웅은 두렵지 아니 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황상께서 한 무리의 병사를 빌려 주시면 반적 조웅을 잡아 폐하 앞에 바치리다." 하니, 상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군사 오십만을 가려 뽑아 일대를 대원수에 봉하시고 이대를 부원수로 삼으시고 삼대를 선봉장으로 삼아 백모황월(白矛黃鉞)과 용정봉기(龍旌鳳旗)며 전포인검(戰袍印劍)을 주시고 하교하시되, "경 등이 힘을 다하여 국가를 평정하라. 만일 국가를 평정하고 조웅을 잡아 바치면 장차 강산을 반분하리라."
상이 친히 잔을 잡고 원수를 전송하니 일대 삼형제는 황공하여 땅에 엎드려 사은하고 물러나와 전군을 호령하여 나아가니 군중의 사기가 충만하고 위엄이 엄숙하더라. 행군하기를 여러 날만에 곡강에 도착하여 유사천 백사장에 진을 치고 군사를 쉬게 하더니 수문장이 급히 고하여 말하기를, "어떠한 선비가 자칭 도사라 하고 군중에 들어오려 하거늘 잡아 두고 성스런 분의 뜻을 감히 기다리나이다." 하거늘 원수가 크게 놀라 진문에 내달아 도사를 붙들고 장대(將臺)에 들어가 땅에 엎드려 사죄하기를, "소자 등이 어찌 사제간의 분의(分義)를 안다 하오리까? 선생께 하직도 아니하옵고 마음대로 세상에 나왔으니 죄가 죽음에 당하여도 아깝지 않습니다."
도사가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그대 등은 망발상의(妄發上意)를 하였도다. 하늘이 그대 삼형제를 내심에 반드시 큰 일을 당코자 함이요, 나 또한 그대를 만나 하늘의 때를 알아 지시하는 것이어늘 그대 등은 내 말을 듣지 아니 하고 마음대로 세상에 나아갔으니, 저 군병을 돌려보내고 산중으로 돌아가자." 하니 삼대가 말하기를, "너무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저희들 삼형제의 재주를 가지고 조웅 하나 잡기를 어찌 염려하오리까? 또한 장군의 지략을 가지옵고 이렇듯 분분한 시절을 그저 보내면 흐르는 물같은 세월이 연광(年光)을 침노하는지라. 선생께서는 회의(懷疑) 마시고 진중에 동행하여 지모(智謀)를 가르치소서."
하고 행군하여 가거늘 도사가 결단코 삼대를 붙들고 만류하기를, "나는 그대 등을 위하는 사람이라. 어찌 내 말을 듣지 않는가? 이번 싸움은 이롭지 아니 하거늘 부질없이 가지 말고 돌아가자." 하고 무수히 만류하였으나 일대 등 삼형제는 끝까지 듣지 않고 행군하여 갔다. 도사가 진중에 가며 밤낮으로 달래어 말하기를, "천시를 거역말고 그저 돌아가자." 하니, 삼대는 끝까지 듣지 아니하고 가는지라.
여러 날만에 서창에 도달하니 조원수는 벌써 동창에 이르러 진을 쳤는지라. 일대는 서창에 진을 치고 이대는 화음에 진을 치고 삼대는 강진에 진을 쳤다. 도사가 조원수의 진세를 보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그대 등은 조웅의 진세를 보라. 조웅의 진세가 이러하였으니 분명 신통한 도사의 가르친 바요, 진전에 안개가 자욱하니 반드시 용총(龍寵)과 천사검(天賜劍)을 가진가 싶으니 마음이 놀랍도다. 끝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니 가련하고 분하도다. 헛되이 접전 말고 돌아가 시절을 기다려 나오게 하라."
일대가 듣지 아니 하고 이르기를, "조웅의 거동과 지략을 봅시다." 하고 중군을 불러 말하기를, "이제 장수 하나를 보내어 싸우기를 요청하라." 하니 총독장(總督將) 설인태가 지시에 따라 말을 내몰아 가서 말하기를, "반적 조웅아, 빨리 나와 목을 늘이어 내 창을 받아라." 하며 진전에 횡행하거늘, 원수가 대답하기를, "너는 울지 못하는 닭이요, 짖지 못하는 개라." 하고 말을 마침에 창을 들고 말에 올라 진전에 내달아, "반적 필부는 잔명을 재촉말고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하며 접전하니 수십여 합이 못되어 원수의 창이 번득하며 인태의 말을 맞히니 인태가 놀래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거늘 원수가 따르지 아니 하고 본진으로 돌아오니 제장 군졸이 분분히 칭찬하더라.
일대가 조웅의 용맹을 보고 크게 웃으며, "저러한 것을 누군가 자랑하더니, 오늘 용맹을 보건대 어린아이 같은지라. 어찌 보잘것없지 아니하리오? 하니, 도사가 이르기를, "그대는 어찌 남을 쉬이 아는가? 잠깐 조웅을 보니 앞은 용이 일어나는 기상이요 뒤에는 자미성(紫微星)이 응하였고, 손에는 천사검이요 말은 용총이라. 어찌 범연한 장수라 하리오? 그대는 헛되이 싸우지 말고 돌아가자." 하시니, 일대는 노기 등등하여 대답하지 아니 하고, 이에 도사는 대로(大怒)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또, 이대의 진에 들어가니 이대가 나와 맞이하거늘 이대더러 말하기를, "그대의 형 일대는 고집이 과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 하니 할 수 없지만 그대는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갈 마음이 없느냐?" 하니, 이대도 크게 성내며 들은 체 아니 하거늘, 도사가 대로(大怒)하여 말하기를, "그대 또한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삼대의 진에 들어가 삼대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 형제가 다 내 말을 듣지 아니 하니 할 수 없으나 그대 등은 천시를 알지 못하는지라. 내 말을 들으면 좋은 시절이 있을 것이니 군대를 해산하고 산중으로 돌아감이 어떠한가?" 하니, 삼대 또한 분연하여 이르되, "선생은 어찌 그리 근심하나이까? 이때를 잃고 치지 아니 하면 호랑이를 길러 근심을 사는 것이라. 선생은 의심하지 마시고 이곳에 계시면서 승부를 구경하소서." 하거늘 도사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삼대더러 일러 말하기를, "너희 삼형제는 다시 나를 보지 못할지라. 참으로 아깝도다. 이는 다 하늘의 운수라." 하고 비창함을 마지 아니 하다가 도사는 삼대와 이별하고 떠나니라.
도사가 탄식하며 조원수의 진에 나아가 문 지키는 군사더러 일러 말하기를, "지나가는 사람인데 조원수를 보려 하노라." 하니, 군사가 원수께 이 뜻을 고하니 원수가 듣고 괴이히 여겨 청하여 당상에 앉히고 예를 표한 후에 묻기를, "선생을 뵈오니 족히 아올지라. 청컨대 지모를 가르쳐 주소서." 도사가 말하기를, "원수는 신통하도다. 남의 행색을 어찌 알아보는가? 그러나 잠깐 천기를 누설하노라." 하고 소매로부터 편지 한 통을 내어 주며 말하기를, "이대로 행하라." 하고 말하기를, "나는 세상에 머무를 만한 사람이 아니라." 하고 가거늘, 원수가 망연하여 무수히 만류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소매를 떨쳐 섬돌에 내리어 두어 걸음에 문득 간 데 없거늘 원수는 하는 수 없이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하였다. 또한 그 봉서(封書)를 떼어 보니 그 글에 하였으되,
일대의 진중에는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이대의 진에는 백마혈인검(白馬血印劍)을 사용할 것이며, 귀신 쫓는 주문(呪文)을 외우고, 또 삼대의 진에는 삼대의 왼편에는 가까이하지 말라
라 하였더라. 원수가 그 글을 보고는 일변 의심하고 일변 즐거워하더라.
이튿날 원수가 갑주를 갖추고 말에 올라 진전에 횡행하며 크게 외치기를, "반적은 바삐 나와 내 창을 받아라." 하는 소리가 벽력이 우는 듯하더라. 일대는 진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아니 하거늘 원수가 진전에 독행(獨行)하며 재주를 비양하되 끝내 나오지 아니 하거늘 본진에 돌아와 강백에게 일러 말하기를, "적장이 진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 하니 괴이하도다. 무슨 계교를 부리는가 싶으니 각별히 조심하라." 하였다.
이튿날 원수가 또 진전에 나와 횡행하며 승부를 돋우되 끝내 진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아니 하는지라. 십 일만에 일대가 진문을 크게 열고 대장 기치를 진전에 돋워 세우고 크게 외쳐 말하기를, "반적 조웅아, 너는 아직 어린아이라. 천시를 알지 못하고 태평 성대를 요란케 하니 너의 죄가 매우 큰지라. 오늘날 너를 잡아 큰 환(患)을 덜리라." 하거늘, 원수 또 진전에 나서 일대를 보니 구척 장신에 쇳조각으로 만든 갑옷을 입었는데 수염은 두 자가 넘고 눈은 샛별 같은지라. 원수가 강백을 불러 말하기를, "그대가 나아가 대적(對敵)하라." 하며 말하기를, "적장을 보니 분명 거짓 패하여 달아날 것이니 부디 따르지 말라."
백이 명을 듣고 내달아 마주하여 싸우기를 삼십여 합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다가 문득 일대가 거짓 패하여 달아나거늘, 강백이 크게 소리치며 창을 들고 쫓아 적진 앞에 다다르니 일대가 진문에 들며 좌우편 군사를 인도하여 들어가거늘 백이 오랫동안 마음대로 다니면서 꾸짖어 욕하다가 본진에 돌아와 원수께 고하여 말하기를, "소장이 쫓아 적진 앞에 이르니 적장이 진문에 들며 군사를 인도하니 참으로 괴이하더이다." 하며 의심하더라.
이튿날 원수가 장창을 높이 들고 크게 소리질러 말하기를, "반적 일대야, 무슨 용맹으로 나를 당적(當敵)하려 하는가? 바삐 나와 나의 날랜 창을 받아라. 나는 하늘의 명(命)을 받아 역적 이두병을 베고 송나라 왕실의 사직을 회복하려 하나니 너는 어떤 놈이관대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는가?"
일대가 이 말을 듣고 나와 접전하는데 이는 두 마리 호랑이가 서로 싸움이라. 모래와 자갈이 일어나고 칼과 창이 양진(兩陣)을 덮었는지라. 십여 합이 지나도록 승부를 가리지 못하더니, 일대가 또한 거짓 패하여 달아나거늘 원수가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반적은 달아나지 말고 내 창을 받아라." 하며 적진 앞을 횡행하니, 일대가 거짓으로 진중에 가 숨는 체 하다가 또 내달아 접전할새, 칼과 창은 햇빛을 가리웠고 말굽은 분분하여 양진 장졸이 눈을 뜨지 못하는지라.
십여 합에 이르러 일대가 본진으로 도망하거늘 원수가 끝내 따르지 아니함을 보고 본진에 돌아와 크게 의심하여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거짓 패하여 여러 번 도망하였으나 조원수가 끝내 따르지 아니 하니 실로 괴이하도다." 행여 누설할까 각별히 타일러서 경계하더라.
이즈음에 원수는 본진으로 돌아와 제장(諸將)을 불러 말하기를, "적장 일대는 범상한 장수 아니라. 그리 쉽사리 잡지 못할 것이니 내일은 강백이 나아가 싸우되 적장과 접전하여 날이 저물거든 그대가 먼저 거짓으로 패하여 적진에 들라. 그러면 군사가 분명 저의 장순가 하여 무슨 일을 행할 것이니 내일은 적의 숨은 계교를 명백히 알지라." 하고, 은밀히 의논하더라.
이튿날 일대가 진전에 횡행하며 무수히 도전하였으나 원수는 진문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아니 하다가 석양에 이르러 원수가 강백을 명하여 싸우라 하니 강백이 창을 잡고 말을 내달아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무지한 필부는 들어라. 오늘은 네 목을 베어 천지간의 걱정거리를 덜리라." 하고 달려들어 싸워 삼십 합이 되도록 승부를 가리지 못하더니 날이 저물거늘 백이 거짓 패하여 적진 중으로 달려드니 적진 군사가 저의 장수인가 여겨 내달아 말을 이끌고 왼편으로 인도하여 장대(將臺)로 모셔갔다.
일대가 매우 놀라 강백을 쫓아 본진으로 달려드니 일대의 군사가 적장인 줄 알고 일시에 내달아 말을 치니 일대의 말이 놀래어 함지(陷地)에 떨어지니 장졸이 즐기어 일시에 칼로 쳤다. 일대는 할 수 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 군사들아 너희들의 장수를 알지 못하는가?" 하니, 장졸들이 크게 놀래어 불을 밝히고 자세히 보니 과연 일대이러라. 일진이 황공하여 할 수 없어 일시에 흩어지니 원수와 강백이 기뻐 급히 가보니 일대가 함정에 빠져 몸에 창검이 무수히 어리어 혼이 빠진 듯 하는지라.
원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반적 일대야, 천시(天時)를 거역하고 망발상의(妄發上意) 하였다가 네 꾀에 네가 죽었도다. 족히 용맹이 있거든 살아 나오너라." 하니, 일대가 이 말을 듣고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죽는지라.
원수와 강백이 본진에 돌아와 밤을 지낸 후에 이튿날 적진 진문에 나아가 보니 문에 구덩이 수 백 간을 파고 창검을 무수히 묻었는지라. 보매 마음이 놀라와 군기와 군량을 거두어 가진 뒤에 백마를 잡아 피를 내어 칼에 바르고 이대의 진에 다달으니 이대는 제 형이 죽었단 말을 듣고 크게 놀래어 통곡하고 이를 갈며 칼을 들고 진전에 나서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반적 조그마한 아이야, 너를 잡아 망형의 원수를 갚으리라." 하고, 나는 듯이 달려들거늘 원수가 맞아 싸울 적에 원수가 백마혈인검(白馬血印劍)으로 이대의 앞을 치니 이대의 칼이 공중에서 날아오다가 원수의 칼을 범하지 못하였다.
이대가 분기 등천하여 칼을 공중에 던지고 나는 듯이 횡행하니 이는 힘으로 싸울진대 비호라도 당치 못할러라. 이대의 칼이 공중에서 떠 오다가 끝내 원수의 칼을 범하지 못하는지라. 이대가 본진에 돌아와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조웅의 칼이 수상하도다. 내 칼이 여러 번 가되 범치 못하니 참으로 괴이하도다." 하고 크게 근심하더라.
이튿날 이대가 진문을 열고 원수를 맞아 싸울 적에 칼을 공중에 던지고 달려들거늘 원수가 정신을 가다듬고 칼을 높이 들고 말을 몰아 달려들며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반적 이대야, 네 형 일대도 내 칼에 죽었거늘 네 어찌 나를 당하리오? 부질없이 잔명을 재촉 말고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하고 싸우는데, 이대의 용맹이 원수보다 십 배나 더하고 또한 칼이 공중에 날아드니 극히 두려운지라. 팔십여 합에 승부를 결단치 못하니, 원수의 기력이 점점 쇠진하여 형세가 매우 위태한지라. 원수가 말머리를 돌리어 본진으로 향하고자 하더라.
이대가 칼을 돌려 가는 길을 막고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필부 조웅아 너는 어디로 가느냐? 오늘날 네 머리를 베어 망형의 혼백을 위로하리라." 하고 칼을 들어 치려 하거늘, 원수가 평생의 기력을 다하여 백마혈인검으로 이대의 칼을 치며 축귀문을 큰 소리로 외우니 이대가 매우 놀라 칼을 말 아래로 던져 버렸다. 원수가 그제야 쇠잔하던 기운을 새로이 가다듬어 다시 칼을 들어 이대의 목을 치니 머리가 말 아래로 내려지며, 천지가 아득하며 구름과 안개가 빛을 가리어 지척을 분별치 못하는지라. 원수가 축귀문 외우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크게 읽으니 비바람이 그쳐 멈추는데, 문득 바라보니 한 팔 척 신장(神將)이 울며 공중으로 날아가거늘 원수가 놀래어 생각하되 '이대는 반드시 신장과 접하였도다'하더라.
이즈음에 이대의 장졸이 이대의 죽음을 보고 일시에 마음이 흔들려 도망가거늘, 원수는 이대의 머리를 창 끝에 꿰어들고 본진으로 돌아오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치하하더라. 승전고를 울리며 장차 삼대의 진에 다달아 대진(對陣)하고 이대의 머리를 삼대의 진에 던지며 말하기를, "반적 삼대야 들어라. 서창에서 네 장형 일대를 베고 화음에 와서 네 중형 이대의 머리를 베어 왔도다. 너는 부질없이 용력(勇力)을 허비치 말고 바삐 나와 목을 늘이어 내 칼을 받아라." 하며 진전에 횡행하니 적진의 장졸이 누가 아니 겁내리오?
삼대가 분기 등등하여 왼손에 장창을 들고 내달아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오늘날 너를 잡아 나의 망형의 원수를 갚으리라." 하고 호통 일성에 달려들거늘, 원수가 창으로 춤추며 삼대의 우편으로 달려들며 접전하니 삼대는 항상 좌수로 칼을 날려 좌편으로 달려들거늘 원수가 일향 피하여 우편을 범하니, 이날 팔십여 합에 승부를 결정치 못하고 각각 본진으로 돌아오니라. 삼대가 크게 의심하여 말하기를, "조웅이 반드시 무슨 아는 일이 있는가 싶으니 괴이하도다." 하며, 행여 천기를 누설할까 두려워하더라.
원수가 본진으로 돌아와 강백더러 말하기를, "삼대는 용맹이 참으로 범상한 장수가 아니라. 쉽사리 잡지 못할 것이니 내일은 강장이 먼저 나아가 싸우라. 내가 기세(氣勢)를 타서 함께 싸우리라." 하고 또 이르되, "삼대의 왼쪽편을 범하지 말고 부디 적을 가벼이 대하지 말라." 하더라.
이튿날 삼대가 창을 들고 말을 내달아 크게 외치며 말하기를, "오늘날 맹세코 네 머리를 베어 분함을 씻으리라." 하고 진전에 횡행(橫行)하거늘 강백이 또 창을 들고 진전에 나서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무지한 삼대는 들어라. 너의 두 형의 혼백이 우리 진중에 갇히어 나가지 못하고 밤낮으로 울며 애통하되 '소장의 동생 삼대의 머리를 마저 바치올 것이니 가긍한 혼백을 놓아 주옵소서'하며 밤낮으로 가긍(可矜)한 소리가 진중에 낭자하거늘 네 아무리 살리고자 한들 어찌 살리리오?"
달려들어 바로 삼대의 오른쪽을 쳐들어가니 삼대가 아무리 왼손으로 칼을 잘 쓴들 오른쪽으로 범하니 의심스러워 기운이 줄어드는지라. 싸우기를 십여 합에 승부를 결정하지는 못하였으나 강장의 형세가 매우 급한지라. 원수가 진전에서 두 장수의 자웅을 보니 강장의 형세 급한지라. 칼을 들고 내달아 삼대의 오른쪽을 쳐들어가니 삼대가 아무리 재주가 용한들 어찌 창을 한손으로 쓰리오? 이십여 합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더니 문득 강장의 창이 번듯하며 삼대의 탄 말을 찔러 말이 꺼꾸러지니 삼대도 땅에 떨어지는지라. 원수가 달려들어 치려 하니 삼대가 공중으로 솟아 달려들어 싸우는데, 원수 강백과 더불어 급히 치니 삼대가 견디지 못하여 달아나거늘, 원수가 말을 달려 급히 따르며 칼을 들어 삼대의 창 잡은 손을 치니 삼대가 놀래어 창을 버리고 공중으로 날아 달리거늘 원수가 솟아올라 삼대의 목을 치니 일진 광풍이 일어나며 머리 떨어지는지라. 문득 진 앞에 푸른 안개 일어나며 두 줄 무지개가 공중에 뻗치거늘 원수가 이상하게 여겨 살펴보니 왼팔 밑에 날개가 돋혔더라.
삼대의 죽음을 보고 적진이 크게 놀라 황망하여 일시에 흩어져 도망하거늘 원수와 강장이 본진에 돌아와 승전고를 울리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분분히 치하하며 모두 즐기더라.
이즈음에 원수가 삼대 등을 베고 의기 양양하여 군사를 배불리 먹이고 편히 쉬게 한 후 바로 황성을 짓쳐 들어가니 이르는 곳마다 주검이 무수하더라.
이때 동관장 채탐이 급히 아뢰기를, "조웅이 일․이․삼대를 모두 베고 짓쳐 들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황상께서는 급한 환을 막으소서." 하였거늘, 황제와 여러 신하들이 황황 실색하더라.
황제가 여러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경 등은 비계를 써 나의 근심을 덜라." 하시니 여러 신하가 함께 아뢰어 말하기를, "일대 등 삼형제는 하늘이 낸 장수라. 지혜와 용맹이 범상치 아니 하온데 조웅의 손에 죽었사오니 이제는 무사(武士)가 없고 장군의 책략을 지닌 장수도 없사오니 항복함만 같지 못하올까 하나이다." 하더라.
문득 서관장이 격서를 올리거늘 황제가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뜯어 보니 그 격서에 하였으되,
중국 대사마 대원수 겸 의병장 조웅은 격서를 이두병에게 부치나니 하늘이 나를 명하사 너를 죽여 만민을 안정시키고 송실을 회복하고자 하였음에 마지 못하여 의병 팔십만을 거느리고 반적에게 격서를 전하나니 족히 당적할까 싶거든 빨리 나와 대적하라. 만일 두려웁거든 항복하여 잔명을 보전하라."
하였더라.
보기를 다함에 황제와 여러 신하들이 크게 놀라고 황망하여 어찌 할 줄을 모르고 서로 돌아보며, "이 일을 어찌하리오?" 하고 두서를 정치 못하거늘 태자 이관 등 오형제가 출반하여 아뢰기를, "폐하는 근심치 마시고 이제 장수의 지략을 갖춘 자를 택출하여 선봉을 하시옵고 폐하께서 스스로 군사를 이끌어 그들을 격퇴하여 급함을 면하소서. 조정의 신하들은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반역하는 불충한 사람뿐입니다. 처자를 보위하기만 생각하옵고 위국충정(爲國忠情)이 없사오니 어찌 절통치 아니 하오리까? 국가를 평정한 후에 역률로 다스려 분함을 덜게 하옵소서." 하니, 여러 신하들이 묵묵 부답하고 머리를 숙이더라. 황제가 할 수 없어 군사와 장수를 택취하시며 친행하려 하시나 감히 응하는 자가 없더라.
이날 밤에 승상 황덕이 만조 백관과 더불어 의논하기를, "국가 존망이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 있음이라. 이제 아무리 하여도 살 길이 없는 지라. 그대 등은 어찌하려 하느뇨?" 백관(百官)이 대답하기를, "우리 생각은 도망하면 좋을까 하는데, 승상은 무슨 계교가 있나이까?" 황덕이 칼을 빼어 놓고 말하기를, "그대 등은 내 말을 좇으려 하는가?" 하니, 모두 대답하기를, "이제 강요 말 것이라. 사생을 도모하려 하니 무슨 일을 못 하오리까?"
황덕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다가 말하기를, "이제 도망하여도 수많은 집안 사람들을 모두 어찌 하며, 도망한들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나의 아득한 소견으로는 처자를 안보하고 좋은 벼슬을 할 묘책이 있으니 그 일이 어떠한고?" 모두 크게 즐겨 말하기를, "승상의 말씀이 당연하오니 어찌 좇지 아니 하오리까?" 황덕이 말하기를, "우리 모든 사람 중에 용맹이 있는 무반(武班) 장수 육십 명을 가려 뽑아 가만히 궐내에 들어가 황제와 황자 오형제를 다 결박하여 마주 나아가 조웅에게 들리면 우리는 제일 공신이 될 것이니 이 꾀가 어떠한가? 모두 말하기를, "이 일은 실로 상책이로소이다."
하고 그날 밤에 용장 육십여 인을 궐내에 복병시켰다가 밤이 깊은 후에 달려 들어 황제와 황자 오형제를 다 결박하며, "천시가 이미 쇠잔하였으니 어찌 할 수가 없도다." 하고 결박하니 이미 동방이 밝아오는지라. 이날 만조 제신이 이두병과 이관 오형제를 수레에 싣고 조원수의 대진을 찾아가니라.
이때에 황성 백성들이 조원수가 온단 말을 듣고 즐겨하여 마중 나오니 그 수를 가히 세지 못할러라. 또 이두병을 잡아 온다는 말을 듣고 장안의 백성들이 노소 없이 다 즐겨 말하기를, "극악한 이두병이 형세만 믿고 자칭 천자라 하여 천지가 무궁하기를 바라더니 일시를 보존치 못하고 어이 그리 단명한고? 황천(黃天)이 명감하사 네 죄를 아시고, 무지한 백성들도 네 고기를 원하거니 착하고 빛나도다. 일월같은 조원수를 보니 도탄 중에 든 백성들이 빗발을 만났도다.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충신들도 소식을 알았던가? 백발 노소 장안 백성들아, 구경가자스라!" 하고 무수한 백성들이 다투어 구경하더라.
원수가 팔십만 대병을 몰아 황성을 짓쳐 들어오더니 황성 백성들이 남녀노소 없이 길을 막고 나와 원수께 치하하며 말하기를, "장하고 장하도다. 어디를 가셨다가 이제야 오십니까? 천우 신조로 대송(大宋)이 회복되도다." 하고 무수히 하례하거늘 원수가 위로하기를, "살아서 너희를 다시 보니 반갑기 그지 없도다." 하시며 행군을 재촉하여 수일만에 황자강에 이르니 강산 풍경이 예와 같은지라.
문득 옛일을 생각하니 비회를 금치 못하고 사공을 재촉하여 강을 건넜더니 황성관 어귀에 만조 백관이 이두병과 이관 등을 수레 위에 높이 싣고 원수의 군행(軍行)을 기다리다가 원수가 오심을 보고 나아와 땅에 엎드려 여쭈오되, "소인 등은 기군망상(欺君罔上)이라. 죽어 마땅하나 그때를 당하여서 도망치지 못하였고 또 두병의 형세를 당하지 못하여 참여하였사오나 매일 송 태자를 생각하오니 가슴 속이 막혀 한 순간인들 온전하리오? 천행으로 원수가 이리 오신다 하옴에 범죄 불고하고 두병의 부자를 결박하여 바치니 엎드려 바라건대 원수께서는 불쌍히 여기셔서 널리 용서해주소서. 소인들의 잔명을 보전하여 주옵심을 바라나이다."
하며 애걸하거늘 원수가 이두병을 보니 분기 충천한지라. 진을 머무르게 하고 군사를 호령하여, "두병을 나입(拿入)하라." 하니, 군사가 일시에 달려들어 두병을 추살(追殺)하여 진중에 꿇리니 원수가 호령하여 말하기를, "두병아 네 낯을 들어 나를 보라. 네 죄를 생각하니 죽여도 아깝지 않음이라. 태자를 귀양살이 보내고 사약을 내리니 그 죄가 어떠하며, 또 나를 잡으려고 장졸을 보내어 시절을 요란케 하니 무슨 일이뇨? 사실대로 똑바로 아뢰어라." 하시니 좌우의 무사가 달려들어 창검으로 찌르며 '바삐 아뢰라' 하는 소리 천지를 진동하는지라.
두병이 겨우 진정하여 아뢰되, "나의 조정의 신하들은 성정이 비길 바 없이 음험하고 흉악한 신하들이라. 죄를 알고 나의 부자를 잡아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제 무슨 말을 하리오? 원수의 처분대로 하라." 하니 원수가 더욱 크게 성내어 무사를 호령하여 심문하라 하니 무사들이 일시에 소리하고 달려들어 창검으로 찌르니 두병이 견디지 못하여 이르되, "이미 일이 발각되었으니 무슨 말을 못 하겠는가? 당초에 조신이 만고의 소인으로 송실(宋室)의 옥새를 모함한 것과, 태자를 변방 땅에 멀리 귀양 보내고 사약을 내린 것도 모두 저들의 소견으로 하온 바인데 발각되니 저들은 죄를 면하려고 간계를 내어 내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다 저들의 죄요 실로 나는 송실을 해코자 함이 아닐러니 이제 나는 죄를 범하고 저들은 죄를 면하고자 함입니다."
원수가 들음에 분기 충천하여 큰 소리로 꾸짖어 말하기를, "이 간악한 놈아, 너를 잠신들 어찌 살려 두리요마는 아직 살려 두는 뜻은 태자를 모셔 온 후에 죽이려 함 때문이니라." 하고 또 이관 등 오형제를 나입하여 약간 수죄(數罪)하고 무사로 하여금 이두병과 그 아들 오형제를 다 수레 위에 올려 앉히고 춤추며 행군하여 황성으로 들어가는데 그 위의(威儀)가 추상 같더라.
장안에 들어가 백성을 편안케 하고 택일(擇日)하여 진을 떠날 때에 노소 충신으로 도성을 지키게 하고, 바로 위국에 이르니 태자와 위왕이 못내 칭찬하더라. 나와서 모친을 뵈오니 부인 또한 사랑하시더라.
원수가 부인 장씨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그대는 두 모친을 모시고 안녕하시더이까?" 하며 희색이 얼굴에 가득찼더라. 또한 금련이 나아와 배례 후에 여쭈오되, "장군은 만리 원정에 평안히 행차하셨나이까?" 원수가 반가이 대답하기를, "나는 무사히 왔거니와 너의 모친도 평안하신가?" 하며, 못내 사랑하더라.
이날 원수가 태자전에 숙배(肅拜)한 후에 여쭈오되, "도성이 오래 비었사오니 급히 행군하사이다." 하고, 여쭈오니 태자가 웃으며 말하기를, "이제 발행하려 하니 황후 모실 기구를 차리라." 하고 위왕께 하직하니 위왕이 못내 애연하여 아뢰기를, "소왕이 대왕을 모셔 행군 후에 돌아오고 싶으나 위국은 가달국의 접경이라서 한순간도 비우지 못하겠삽기로 모시지 못하오니 그 죄는 죽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하니, 황제 떠나는 정을 못내 슬퍼하더라.
이날 원수는 태자와 황후와 모부인, 빙부인과 장씨와 금련 모녀를 함께 모시고 대국으로 향할 때 위왕이 백리 밖까지 나와 이별하는 정은 못내 애연히 하더라. 위왕은 이별하고 황성으로 향할 때에 그 위의와 거동은 이루 다 형언치 못할러라. 황성에 다다르니 노소 충신과 장안 백성이 남녀노소 없이 도성 백리 밖에 나와 못내 즐겨하며 격양가를 부르더라.
이날 환국하여 즉위하신 후에 이두병과 이관 등 오형제를 나입하여 친히 심문하신 후에 진 밖에서 참형에 처하여 사지를 갈라 저자에 돌려 보인 후에 이 까닭을 여러 나라에 반포하니라. 또한 두병의 가솔을 적몰하여 각국에 소속시켜 종으로 삼았다.
이날 황제 황극전(皇極殿)에 나가 좌정하시고 태평연을 배설하여 출전한 여러 장수들에게 차례로 공을 기록하는데 조원수로 번왕을 봉하시고, 그 부인 장씨로 정숙 왕비를 봉하시고, 원수의 외숙부 왕태수로 우승상을 삼으시고, 강백의 아비로 좌승상을 봉하시고, 강백으로 대사마 겸 대원수 태학사를 삼으시고, 그 남은 여러 장수들은 차례로 공에 따라 등용하는데, 하나도 부족하다 하는 이 없더라. 또한 무사에게 명하여 전조(前朝)의 여러 신하들을 나입하여 계하(階下) 꿇리고 꾸짖어 말하기를, "너희는 간사한 파당의 무리들이라. 너희 임금을 잡아 내게 들이니 너희들은 두병보다 더한 역적이라. 어찌 살려 두리오?" 하시고 즉시 능지처참하시니라.
이때에 황제가 조웅을 번국으로 보내는데, 황제 다시 원수의 손을 잡고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짐이 경의 충성을 헤아릴진대 다만 번국으로 보낼 바 아니라 천하는 짐의 천하가 아니니 경에게 맡기고 짐은 물러앉고자 하나, 경의 충성 절의를 아나니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범연(泛然)할까 하는지라." 하시니 번왕이 계하(階下)에 내려 땅에 엎드려 사례하며 말하기를, "대왕이 옥체를 움직여 만리 밖에서 이렇듯 괴로이 지내시니 신민(臣民)의 망극하온 마음은 천하가 다 일반이라. 대왕의 넓으신 덕으로 오늘날 환조(還朝)하옵시니 소왕을 애휼하옵신 은덕은 금세에 머리를 베이고 후세에 풀을 맺어 갚을 길이 없사옵니다. 또한 신하된 자가 되어 이렇듯 하는 일이 법도에 떳떳한 바이어늘 오늘날 소왕을 대하여 이렇듯 하문하옵시니 도리어 후세에 역명(逆名)을 면치 못할까 하옵나이다."
황제가 대경하시며 왕을 붙들어 앉히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짐이 경을 만리 밖에 보내고 일신들 어찌 잊으리오? 일년에 한 차례씩 조회(朝會)하라." 하시니, 번왕이 숙배(肅拜) 하직하고 가솔을 거느려 번국으로 가니라.
이때에 송 황제가 즉위한 후로 해마다 풍년이 드니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않고 산에 도적이 없으니, 백성이 격양가를 부르며 강구연월(康衢煙月)에 요임금의 세월이요 순임금의 천하라 하더라. 천하가 태평함에 변방이 고요하니 반심(叛心)을 두지 아니 하고 송 황제의 성덕이 여러 나라에 가득하고 백성들이 노래하되, "우리 황상은 만세지무궁(萬世至無窮)하옵소서" 하고 다 성덕을 일컫으며, "우리도 권학강문(勸學講文)하여 갈충보국(竭忠報國) 할 것이라. 요순 같은 우리 황상 천천 만만세(千千萬萬歲)나 무궁하옵소서." 하고 칭송하더라.
혈혈 단신 조원수는 해와 달같이 빛난 충을 기린각(麒麟閣) 제일층(第一層)에 게명(揭名)하고, 성은을 하직하고 번국으로 돌아가 왕화(王化)를 펼치어 민정을 살피니, 만민이 태평가를 부르고 성덕을 다 일컬으며 '천세 만세 하옵소서' 하더라.
송 황제의 성덕과 조원수의 충성은 천고무비(千古無比)하오니 일필로 기록하기 어렵노라. 보는 사람이 스스로 성덕과 충렬을 헤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