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학교에서 생각하는

늙은 깃발들 - 전국교사대회를 위한

New-Mountain(새뫼) 2014. 7. 1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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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이되 집회는 10년만이다. 조합원이되 그리 철저한 조합원은 아니었던 셈이다. 관성처럼, 혹은 절차상의 번거로움으로, 아니면 옛날의 의지를 버리기 어려워 그대로 그 조합원이라는 위치를 안고 있다가 '노조 아님'이기라는 선언에 약간의 미안함과 의무감이 일어 "이번에는....." 하고 나선 길이다. 그게 10년만이다.


혼자는 아니었다. 딸애가 같이 길을 나섰다. 명색 사범대 학생이기에 약간의 관심이 있었을 것이고, 긴긴 방학 중 무료했던 차에 뭔가 생긴 거리에 따라 나섰을 거다. 전철역에서는 김선생을 만났다. 지금 학교에 나 말고 유일한 조합원, 나보다 한 해 이곳으로 온 이다. 나 오기 전에 혼자 학교일로 무진 속 썩었을 이, 하긴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내가 왔어도 그리하여 조합원이 둘이 되었어도, 여기는 달라진 것이 없으니까. 그이에게 그러니까 일주일 전에, 슬쩍 "김선생 우리 여의도나 가 볼까?" 했더니, 따라 나섰다. 혹 먼저 내게 가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셋이서 바다 건너 강 너머 여의도로 갔다. 깔개를 펴고 앉았다. 아스팔트 바닥이 뜨거웠따. 이런저런 구호가 적힌 조끼를 껴입고 앉았다. 여름이어서 더웠다. 이렇게 앉아 보는 것도 10년만이다. 김선생이 "참 깃발들이 낡았네." 한다. 둘러보니 그렇다. 깃발들을 세웠으되 세월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는 듯 전부 바랬다. 깃발뿐이 아니라, 게 모인 이들도 다들 낡고 바랬다. 흰머리, 깊은 주름 살,  각자 학교에서는 원로교사 대접을 받을 만한 그런 나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내 앞에, 옆에, 그리고 뒤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창립 25이라 하니, 세월은 많이 흘렀으되, 거기 사람들은 정말 멈춰 있는 것일까.


정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20년전 ㅂ여중에서 함께 했던 김선생, 또 김선생, 15년전 ㄱ고등학교에서 같이 했던 최선생, 나선생, 10년전 ㅅ고등학교에서 함깨 한 정선생, 그들이 다 거기에 있었다. 잠시 손을 잡고, 안부를 묻고, 그 다음에 얼굴을 보았다. 모두들 늙었다. 세월이 무서웠다. 저렇게 세월이 흐르도록 깃발은 낡아 문드러졌는데 그들은 거기 앉아 있었다. 앉아 있었어도 변한 것 아무것도 없는 그런 세상에, 늙도록 거기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 다시 강을 건너 바다를 건너 돌아왔다. 집 앞 선술집에서 출발했던 셋이 다시 앉았다. 찌그러진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며 세상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지 못했다. 아까 여의도에서 보았던 나보다 더 늙은 이들이었다면 푸념처럼 떠들었을 거다. 달라진 게 뭐냐고. 왜 지금 이렇게 찌그러진 막걸리 사발처럼 남아아야만 하냐고, 찌그러져 막걸리나 겨우 담는걸 대단한 멋으로 여기고만 있냐고. 하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나보다 다섯해 덜 산 후배교사이고, 또 한 사람은 이제 세상에 걸음을 뗀 딸애였으니까.


사발을 찌그러뜨렸다라는 책임을 묻는다면 이 자리에선 당연 나일 테니까. 그렇게 늙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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