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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성전' 전문 현대어풀이

New-Mountain(새뫼) 2018. 1. 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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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성전 (경판16장 한남서림본)

 

 

대명(大明) 성화(成化) 연간(年間)에 일위(一位) 재상(宰相)이 있으되, ()은 소(), 이름은 양이라.

재조(才調)와 덕행(德行)이 일국(一國)에 진동(振動)하더니, 일찍 용문(龍門)에 올라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러 명망(名望)이 조야(朝野)를 덮었더니, 일찍 나라를 하직(下直)하고 고향 해동(海東) 땅에 돌아와 한가(閑暇)한 사람이 되었으니, 가산(家産)은 요부(饒富)하여 세상에 거릴 것이 없으되, 슬하에 한낱 자식이 없어 주야(晝夜)로 슬퍼하더니,

 

하루는 상서(尙書)가 부인과 더불어 탄식하되,

우리 누대(累代) 봉사(奉祀)가 내게 이르러 향화(香火)를 전할 곳이 없으니, 지하로 돌아가면 어떤 면목으로 선조를 뵈오리오.”

하며, 누수(漏水)가 옷깃을 적시거늘 부인이 피석(避席)하여 답하기를,

삼천지죄(三千之罪) 중 무후(無後)가 위대(偉大)라 하오니, ()을 존문(尊門)에 용납하게 하신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외다. 원컨대 상공(上公)은 어진 숙녀(淑女)를 취하여 귀자(貴子)를 보게 된다면 첩의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면할까 하나이다.”

상서가 추연(惆然)하여 탄식하여 이르되,

이는 나의 무덕(無德)이오, 부인의 죄가 아니라.”

하고, 서로 위로하더니 문득 시비(侍婢) ()하되,

밖에 한 노승(老僧)이 와 상공을 뵙고자 하나이다.”

하거늘, 상서 즉시 외당(外堂)으로 나와 노승을 마주 살펴보니 나이 팔십은 되었고, 얼굴이 관옥(冠玉) 같으며, 풍신(風神)이 헌아(昍峨)하여 진애(塵埃)의 티끌이 없는지라. 상서가 생각하되,

내 초야(草野)에 있으니 이름이 사해(四海)에 진동(振動)하거늘, 저 범상(凡常)한 중이 아니면 어찌 당돌하게 나를 청하리오.”

하고, 몸을 굽혀 답례(答禮)하기를,

선사(禪師)는 어디 있으며, 무슨 허물을 이르고저 하느뇨?”

노승 이르되,

소승(小僧)은 서역(西域) 영보산(靈寶山) 청룡사(靑龍寺)의 있거늘 절이 퇴락(頹落)하기로 부처의 풍우(風雨)를 면하고자 하나, 재력(財力)이 부족함을 근심하더니 듣자온즉, 상공이 적선(積善)을 좋아하신다 하기에, 불원만리(不遠萬里)하고 상공을 뵈러 왔나이다.”

상서 답하되,

내 재물이 많으나 자식이 없어 전할 데 없으니, 차라리 부처께 드려 후사(後事)를 닦으리라.”

하고 이르기를

물역(物役)에 얼마나 쓰려 하는가?”

노승 이르되,

물역(物役)의 다소(多少)는 불계(不計)하고, 상공의 형세(形勢)대로 시주하소서.”

상서가 즉시 황금 오백 냥과 백금 일천 냥을 주며 말하기를,

선사(禪師)가 부처를 위하여 수고를 생각하지 아니하니, 내 어찌 재물을 아끼리오. 이것이 약소하나, 그 퇴락함을 중수(重修)한 후 병신자식이라도 점지하게 축원함을 바라노라.”

노승이 소()하며,

()을 드려 자식을 볼진대 천하(天下)에 무자(無子) 할 이 있으리오.”

상서 이르기를,

정성(情性)을 이름이라.”

노승 이르기를,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하오니, 만일 세존(世尊)이 알게 되시면 필경(畢竟) 후사(後嗣)를 얻으려니와 불구(不久)의 세계이니 모르더이다.”

하고 말을 마치며 계하(階下)의 내려 두어 걸음 걸으니, 간 곳을 모르거늘, 상서가 대경(大驚)하여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射禮)하며, 부인에게 이 말을 전하니 부인이 또한 신기하게 여기더라.

일일(一日)은 천지 자욱하고 벽력(霹靂)이 진동한 가운데, 청의동자(靑衣童子)가 내려와 부인에게 재배(再拜)하며 이르기를,

소자(小子)는 동해(東海)의 용자(龍子)이었는데, 비를 그릇 내린 죄로 상제(上帝)께옵서 내치심에 갈 바를 모르더니, 청룡사 부처가 지시하심으로 왔으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고 품속으로 들어가거늘,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부인이 몽사(夢事)를 상서에게 고하니, 상서가 기뻐하며 이르기를,

전일(前日) 부처가 나의 정성에 감동하시어 자식을 점지하신다 하더니이다.”

과연 그 달부터 잉태하여 십 삭()이 차니, 서기(瑞氣) 반공(半空)하며 일가(一家)에서 옥동(玉童)을 생()하니 용()의 얼굴에 표()의 머리요, 곰의 등에, 이리의 허리요, 잔나비의 팔이며, 소리가 웅장하여 종고(鐘鼓)를 울리는 것 같으니, 진실로 천하 기남자(奇男子)이라. 상서가 만심(滿心)이 환희(歡喜)하여, 이름을 대성(大成)이라 하고, 자를 용부라 하더라.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대성의 나이 십 세가 되니, 반악(潘岳)의 용모와 두목지(杜牧之)의 풍채(風采), 이백(李白)의 문장(文章)과 왕희지(王羲之)의 필법(筆法)을 가졌으니, 인인(人人)이 칭찬 아니 하는 이 없어, 상서가 매양 그 숙성함을 염려하더니 흥진비래(興盡悲來)는 고금상사(古今常事).

 

상서가 홀연 득병(得病)하여 백약(百藥)이 무효(無效). 마침내 이기지 못할 줄 알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기를,

내 병이 가볍지 아니하니 황천객(黃泉客)이 되리로다. 이제 죽어도 나쁘지 아니하되, 대성의 장성함을 보지 못하니 이것이 유한(有限)이라. 그러나 천명(天命)을 어찌하리오.”

하고 부인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내 죽은 후에 과히 슬퍼 말고 대성을 잘 길러 문호(門戶)를 빛내소서.”

하고 인()하여 명()이 진()하니, 일가(一家)가 망극(罔極)한 중, 부인은 자로 혼절(昏絶)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대성의 손을 잡고 탄식하며 이르기를,

세상에서 도망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명이라. 장차 어찌 하리오? 너는 모름지기 일신(一身)을 보중(保重)하여 우리 고혼(孤魂)을 위로하라.”

하고 언파(言罷)하고 명을 진하니 대성의 망극지통(罔極之痛)을 어찌 기록하리오.

일조(一朝)에 천지 무너진 설움을 당하매 자주 기절하다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비복(婢僕) 등을 거느리고 예를 갖추어 선산(先山)에 안장(安藏)하니, 나이 비록 어리나 예도(禮道)의 극진함이 어른도 미치지 못하니, 향당(鄕黨) 제인(諸人)이 칭찬 하지 않는 이 없더라.

 

광음(光陰)이 여류(如流)하여 삼상(三喪)을 마치매 대성의 슬픔이 더욱 간절하더라.

초토(草土)를 지내매 가산(家産)이 점점 탕진하여, 산업(産業)을 지키기 어려움을 헤아리고, 남은 전장(田莊)을 팔아 노복(奴僕)에게 주어 집을 지키라 하고, 다만 은자(銀子) 오십 냥을 가지고 집을 떠나 서쪽으로 향하여, 소주(蘇州) 지경(地境)의 이르러 날이 저물거늘, ()을 찾아 석반(夕飯)을 사 먹고 쉬더니, 곁방의 한 사람이 종야(終夜)토록 천지를 부르짖어 슬피 울거늘, 소생(蘇生)이 또한 비감(悲感)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은 후 그 울던 사람을 찾으니 한 백발노인이라. 울던 연고(緣故) 물으니, 노인이 답하기를,

내 나이 칠십이요, 노모의 나이는 팔십구 세라. 불행하여 금춘(今春)의 기세(棄世)하신 후 건조(乾燥)를 하였더니, 여름이 진()하고 가을을 당하매 완장(完葬)할 형세가 없어, 노모의 해골을 거두지 못함으로 우노라.”

소생이 이 말을 듣고 불승(不勝) 척연(惕然)하여 눈물을 흘리고 오십 냥 은자를 주며 이르기를,

나도 천지를 여윈 사람이라. 노인의 효성을 보매 어찌 감동치 아니리오. 이것이 비록 적으나 장사(葬事)의 보태어 쓰라.”

하니, 노인이 금을 받고 머리 조아 사례하여 이르기를,

오십 냥 은자(銀子)가 어찌 적다하리오. 행년(行年) 칠십의 불효를 면하게 하시니 은혜 백골난망이라. 높으신 성명을 알고자 하나이다.”

소생이 탄식하며 이르기를,

노인의 효성을 하늘이 감동하심이니 어찌 나의 덕이리오. 나는 사방에 정처 없이 다니나니 성명을 알아 무엇 하리오.”

하고 하직하니, 노인이 백배(百拜) 고두(叩頭)하더라.

소생이 길을 떠나매 행탁(行橐)이 핍절(乏絶)하여 빌어먹는지라. 본지 기골이 장대하여 한 말 밥을 먹더니, 빌어먹기를 당하매 어찌 그 양을 채우리오. 기갈(飢渴)을 참지 못하니, 가장 곤궁(困窮)하되, 은 준 것은 조금도 생각지 아니하니, 그 도량(度量)을 가히 알러라.

이러구러 세월이 오래 지나매 남의 우양(牛羊)도 치며 나무도 베어 겨우 명을 이으니, 주림을 견디지 못하여 얼굴이 초췌하고 의복이 남루하여, 그 화려한 기남자가 주린 귓것이 되었으니 천도(天道)가 어찌 무심하리오.

이때 청주 땅에 이진이라 하는 재상이 연기(年紀) 칠십에 벼슬을 하직하고 고향의 돌아와, 부인 왕씨와 더불어 구름 속의 밭 갈기와 달 아래 고기 낚기를 일삼아 세월을 보냈더니, 일찍 삼자 이녀를 두었으니 장자의 명은 태경이요, 중자의 명은 중경이요, 삼자의 명은 필경이라. 다 공문(公門) 거족(巨族)을 성취하고, 장녀의 명은 채란이니 공부상서 정양의 며느리 되고, 차녀의 명은 채봉이니 춘광 십삼 세라.

왕씨가 채봉을 낳을 때, 장운(長雲)이 집을 두르고, 한 쌍의 선녀가 내려와 이르되,

우리는 월궁(月宮) 선아(仙娥)이러니, 항아(姮娥)의 명을 받자와 이 애기를 잘 길러, 동해 용왕 태자와 속세 연분을 맺으라 하여 부인에게 지시하시니 천정(天定)을 어기지 마소서.”

하고 채운(彩雲) 속으로 표연(飄然)히 올라가거늘, 부인이 선녀의 말을 승상에게 고하니 승상이 신기하게 여기더라. 이럼으로 승상 부부 장중보옥(掌中寶玉) 같이 사랑하더니, 세월이 여류하여 방년 삼오의 이르매 아리따운 용모와 선연(嬋娟)한 태도가 유한(幽閑) 정정(貞靜)하고, 문장과 필법이 귀신을 놀라게 하고, 인자(仁者)의 덕과 장강(莊姜)의 색()을 가졌으니, 승상이 애중(愛重)하여, 부인에게 이르기를,

채봉은 여중(女中) 군자(君子). 인간에서 적수가 없을까 하나니, 만일 그 쌍을 얻지 못할진대, 차라리 규중에서 세월을 보냄만 같지 못하리로다.”

부인이 답하기를,

자고(自古)로 봉()이 나매 황()이 나고, 문왕(文王)이 나시매 태사(太似)가 나시니, 너른 천하에 어찌 채봉의 짝이 없으리까.”

승상이 웃으며 이르기를,

부인의 말씀이 지극하나 세상에 문왕(文王) 같은 이 어디에 있으리오.”

하고 언파(言罷)하고, 소저를 불러 옥수(玉手)를 어루만지며 더욱 애중하게 여기더라.

이후로 승상이 택서(擇壻)하기를 널리 하되 마땅한 곳이 없으므로, 심중의 번뇌하여 술을 내어 취하고 홀로 서안(書案)에 의지하더니, 문득 호접(胡蝶)을 따라 한 곳의 다다르니, 이곳은 평일 한가한 때면 올라가 음풍영월(吟風詠月)하던 월영산(月影山) 조대(釣臺)더라. 취흥(醉興)을 띠며 들어가니, 시냇가에 상서(祥瑞)의 구름이 어리어 광채(光彩) 조요(照耀)하거늘, 괴이 여겨 나아가 보니 청룡이 서렸다가 승상을 보고 반공(半空)의 소소()하거늘, 놀라 깨니 한 꿈이라.

심히 괴이 여겨 즉시 죽장망혜(竹杖芒鞋)로 소대(燒臺)의 올라가니, 한 목동이 나무를 베어 시냇가의 벗어 놓고 버들 그늘을 의지하여 누웠거늘, 승상이 나아가 본즉 의상이 남루하여 몸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털이 흐트러져 얼굴을 덮었는데, 검은 때 줄줄이 맺혔고 귀밑으로 주린 이 쌍쌍이 내리니, 그 추루(醜陋)함을 바로 보지 못하겠노라. 그러나 은은한 골격이 때 속의 비추거늘, 승상이 그 주린 이를 잡아 죽이며 잠깨기를 기다리더니, 이윽고 그 아이가 몸을 번듯하게 누우며 도로 잠들거늘 승상이 소리를 나직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는 춘일(春日)이 곤하나 무슨 잠을 오래 자느냐? 일어나 앉으면 들을 말이 있다.”

하니, 그 아이 머리를 극적이며 눈을 떠 보다가 일어나 앉으며 고개를 숙이거늘, 승상이 자세히 보니 천지 정기(精氣)와 일월 명광(明光)이 비취니, 짐짓 수중(水中)의 기린(麒麟)이요, 금중(禁中)의 봉황(鳳凰)이라. 승상이 명감(明鑑)이 아니면 뉘 대성을 알리요. 승상이 일견(一見)에 대희(大喜)하여 생각하되,

내 평일(平日) 혼처(婚處)를 구하더니 금일이야 영웅을 만나도다.’

하고 인하여 대성의 손을 잡고 이르기를,

네 성명은 무엇이며 무슨 일로 이렇듯 곤궁(困窮)한가?”

그 아이 눈썹을 찡그리고 답하기를,

나는 빌어먹는 아이로 하늘이 높고, 땅이 두려운 줄 모르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며, 걸인의 성명을 물어 쓸데 업도소이다.”

승상이 이르기를,

천지를 모르노라 하니 그 부모 없는 줄 알거니와, 실정(實情)을 숨김은 어찌된 일이뇨?”

그 아이 침음양구(沈吟良久)에 탄식하여 이르기를,

대인(大人)이 지극히 물으시니 어찌 은휘(隱諱)하리까? 소자의 성은 소요, 명은 대성이요,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으니 가친(家親) 명자(名字)를 모르도소이다.”

승상이 추연(惆然)하여 탄식하여 이르기를,

네 성명은 알았거니와 문호(門戶)를 숨김은 어찌된 일이뇨? 자고로 오작(烏鵲)의 류()에 봉황(鳳凰)이 없고, 우마(牛馬)의 류()의 기린(麒麟)이 섞이지 아니 하나니, 소문(所聞)에 본디 미천한 사람이 없는지라. 진정을 다하여 노부(老夫)의 의심이 없게 하라.”

대성이 승상의 관곡(款曲)함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기를,

소자는 현성의 현손(玄孫)이오 병부상서 소량의 아들이더니, 죄악(罪惡)이 심중(深重)하여 십 세 전에 천지 무너지매 가업을 이루지 못하고, 삼상(三喪)을 마친 후에, 자연 가산이 탕진하므로 도로(道路)에서 걸식(乞食)하매, 남의 은혜 입은 것이 많사와 종적(蹤迹)을 산간의 붙여 나무 베기로 생애(生涯)를 하옵더니, 오늘날 대인을 만나 고단한 종적(蹤迹)을 물으시니 은혜 감격하도소이다.”

승상이 청파(聽破)하고 대경(大驚)하여 이르기를,

소공(蘇公)은 나의 지기지우(知己之友). 같이 사로(仕路)에 올라 성주(聖主)를 받들더니, 중로(中路)에 해관(解官)을 빌어 고향의 돌아온 지 이미 이십여 년이라. 소공을 생전의 다시 만나봄을 원하였더니 벌써 황천객(黃泉客)이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자고로 현인군자(賢人君子)가 때를 만나지 못하면 초야(草野)의 곤궁함이 예사(例事)이려니와, 기갈(飢渴)의 골몰(汨沒)하면 성정(性情)이 손상(損傷)하나니, 남의 천대를 받지 말고 나와 함께 머물며 때를 기다림이 어떠한가?”

대성이 재배(再拜)하여 이르기를,

대인이 선친(先親)붕우(朋友)라 하시니 선인(先人)을 뵈온 듯 반갑고, 소자가 집을 떠나 사방에 일신이 표박(漂迫)하여 천지 아득하옵더니, 명천(明天)이 어여삐 여기사 오늘날 대인을 뵈오니 감은(感恩)하오나, 이제 존문(尊門)의 의탁(依託)하였다가 천루(賤陋)한 행실이 대인의 청덕(淸德)을 더럽힐까 하나이다.”

언파(言罷)에 눈물 흘리거늘, 승상이 위로하여 이르기를,

옛적에 백리해(百里)는 양치기를 일 삼았고, 여상(呂尙)은 위수(渭水)의 어옹(漁翁)이 되었더니, 너는 나무 베기를 달게 여기니, 예부터 영웅(英雄)호걸(豪傑)이 초분(初分)의 곤함이 예사이라. 어찌 과도하게 싫어하느뇨.”

하고 인()하여 함께 돌라오더라.

 

승상이 소생을 얻은 후로 희열(喜悅)자승(自勝)하여, 후원 서당을 수쇄(水刷)하고 머물게 하니, 비복(婢僕) 등이 다 놀라고 괴이 여겨 서로 이르되,

상공이 어떤 걸인을 데려오시다.”

하고 의심을 말지 아니하더라. 승상이 소생을 명하여 목욕을 시키며 의복을 갖추어 관례(冠禮)를 이루니, 풍영(諷詠)한 얼굴과 쇄락(灑落)한 골격이 천고영웅이오, 개세군자(蓋世君子)이라. 뉘 조대(釣臺)의 누었던 걸인을 알리오. 승상이 소생의 손을 잡고 탄식하며 이르기를,

미재(美材)며 기재(奇才). 그대 천지정기(天地精氣)를 품었으니, 타일(他日)에 반드시 조종(祖宗)을 빛내리로다. 소형(蘇兄)은 비록 세상을 이별하였으나, 이런 영걸(英傑)의 아들을 두었으니, 족히 남의 십 자(十子)를 부러워 아니하리로다.”

소생이 부복(俯伏)하여 이르기를,

대인의 덕을 입사와 존문에 의탁해 주신 은혜 백골난망이로소이다.”

승상이 소생의 식량(食量)을 짐작하고 한 말 밥을 지어 주매, 소생이 다 먹으니 승상이 웃으며 이르기를,

그대 양()을 아나니 밥이 나쁘거든 더 청하라.”

소생이 손사(遜辭)하며 이르기를,

열 사람의 밥을 혼자 먹사오니 더 어찌 먹사오리까.”

하며 태연(泰然)히 상을 물린 후의 모시어 말씀하더니, 승상이 내당으로 들어가니 왕 부인이 여아로 더불어 말하다가, 승상을 마저 좌정한 후, 승상의 희색(喜色)이 만면함을 보고 이르기를,

승상이 금일 들어오시매 춘풍(春風)화기(和氣)가 안색에 나타나시니 무슨 좋은 일이 있나잇가?”

승상이 흔연(欣然)히 웃으며 이르기를,

하늘이 영웅을 지시(指示)하시매, 자연 화기 솟아남을 깨닫지 못하나이다.”

부인이 기뻐 묻기를,

어떤 사람을 만나시니잇고?”

승상 이르기를,

이는 소현성의 손()이오, 병부상서 소랑의 아들이니, 천지간 영웅이로되 일찍 부모를 여의고 동서로 표박(漂迫)하여 다니기로 데려왔나니, 쉬 택일(擇日)하여 이성지친(異姓之親)을 이룰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부인이 이미 걸인을 데려옴을 아는지라. 처음에는 다른 사람으로 여기더니 이 말을 들으매 발연(勃然) 변색(變色)하여 이르되,

소생이 비록 문화(文華) 높으나 부모친척이 없고, 거리로 개걸(丐乞)하였거늘, 상공은 한갓 소공의 청덕(淸德)을 사모하여 이런 뜻을 두시니, 전일 여아를 태사(太姒)에게 비하시다가 어찌 부끄럽지 아니릿가?”

승상이 웃으며 답하기를,

부인은 어찌 이토록 무식하오? 자고로 영웅열사는 만나지 못하면 초야에 묻혀 재조를 감추나니, 소생이 비록 혈혈단신(孑孑單身)이나 현인의 자손이오, 풍도(風度)가 준수(俊秀)하여 흉중(胸中)의 경천위지(經天緯地)할 재조(才調) 금도(襟度) 없으니, 오래지 아니하여 이름이 사해(四海)에 진동할지라. 어찌 아직 미천함을 혐의(嫌疑)하리오? 금일 부인이 천()하게 여기나 타일(他日)은 우러러 보리니 내 말을 헛되이 알지 마소서.”

부인이 다시 말을 못하고, 심중(心中)에서 가장 불평하여 하더라.

이튿날 승상이 서당의 이르니, 소생이 손오병서(孫吳兵書)를 잠심(潛心)하거늘 승상이 웃으며 이르되,

태평시절에 공맹(公孟)의 글을 읽어 재조를 닦음이 옳거늘 어찌 병서를 읽는가?”

소생이 염슬(斂膝)하여 이르되,

대순()같은 성군(聖君)도 사흉(四凶)의 난()을 보시고, 주공(主公) 같은 성인도 산동(山東) 지역이 있어, 성제명왕(聖帝明王)도 불우지변(不虞之變)이 있거늘, 어찌 매양 태평을 믿으리잇고. 장부가 세상의 처하매 문무를 겸전(兼全)하여 이음양 순사시(理陰陽 順四時)하고 출장입상(出將入相)함이 장부의 떳떳한 일이오니, 어찌 녹녹히 서책(書冊)만 일삼으리잇고.”

승상이 장탄(長歎)하며 이르기를,

장하다 이 말이여. 족히 고인(古人)이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내 삼자(三子)를 두었으되 활달(豁達) 대도(大度)한 사람이 되지 못함을 한하더니, 그대 말을 들으니 흉금(胸襟)이 열리는도다.”

소생이 배사(拜謝)하여 이르되,

대인이 이같이 말씀하시니 불승감사(不勝感謝)하오나, 사람이 음양(陰陽)을 품수(稟受)하매 기질이 다름이 있나니, 공자(公子)가 약하시되 천하 대성인이 되어 계시니, 어찌 필부(匹夫)의 용렬(庸劣)함을 비하리잇고?”

승상이 웃고, 술이 나와 권하여 술이 반감(半減)하니 승상이 잔을 들고 이르기를,

그대에게 부칠 말이 있으니 즐겨 용납(容納)하겠는가?”

소생이 제수(齊手)하며 답하기를,

대인이 이르신바 비록 수화(水火)라도 감히 사양치 못하리니, 무슨 말씀이니잇가?”

승상 이르기를,

노부가 이녀(二女)를 두었더니, 장녀는 공부상서(工部尙書) 정양의 며느리 되고, 필녀(匹女) 있으니 시년(時年)이 십오 세라. 비록 장강()의 색()과 태사(太姒)의 덕()이 없으나, 군자의 건즐(巾櫛)을 소임(所任)함이 부끄럽지 아니하매, 그 쌍을 얻고자 하였더니 하늘이 그대를 지시하시니 이는 천정연분이라. 다만 그대 뜻을 알지 못하나니, 만일 용납할진대 한번 기러기 전함이 어떠하뇨?”

소생이 배사(拜謝)하며 이르기를,

소자를 사랑하심이 이렇듯 하시니 은혜난망이라 어찌 사양하리까 마는 소생의 나이 약관(弱冠)의 미치지 못하고, 행실이 성문(聖門)에 합()하지 못하오며, 일신이 천하여 세상에서 버린 바이니, ()컨데 날개 없는 봉()이요, 구슬 잃은 용()이라. 쓸 곳이 없사오니 감히 대인의 청문(請問)을 들음이 산계(山鷄)와 봉()이 짝함과 같으리니 이러함으로 존명(尊命)을 받들지 못하리로소이다.”

승상이 미소(微笑)하며 이르되,

그대 사양하는 뜻을 짐작하나니 난봉(鸞鳳)이 오작(烏鵲)과 결연(結緣)할까 저어함이려니와, 내 비록 용우(庸愚)하나, 모래를 가져 구슬을 구하지 아니하리니, 노부의 말을 믿지 아니할진대 나의 여아를 보라.”

하고 언파(言罷)하고 소생의 소매를 이끌고 내당으로 들어가니, 소생이 감히 거역하지 못하여 이끌려 중헌(中軒)의 미치더니,

이 때 왕 부인이 중헌에서 배회하다가 문득 보니, 승상이 한 소년을 이끌고 중헌의 다다라 청상()에 오르거늘, 놀라 황망이 내당으로 들어가니, 승상이 중헌에 좌정하고 시비에게 부인을 청()하여 이르기를,

이는 부인의 백년손이라. 대접함이 옳거늘 어찌 피하시나뇨?”

부인이 비로소 소생인 줄 알고 마음에서는 불평하나, 평일 승상의 제가(齊家)함이 엄숙한 고로 마지못하여 나오니, 승상이 웃으며 좌()를 정한 후, 소생이 재배(再拜) 회자(會坐)하거늘, 승상이 부인을 대하며 생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소상서의 아들이라. 부인이 말을 허수히 여기시매 데려왔으니, 부인은 쾌히 여아를 불러 차등(差等)이 있는가 보소서.”

하고 시비로 하여금 소저를 부르니, 시비 수명(受命)하고 들어가니 부인이 가장 미안하나, 감히 말리지 못하고 잠깐 소생을 살펴보니, 기골이 장대하여 아름다운 선비가 아니라 내심 불열(不悅)하여 생각하되,

채봉은 약한 여자이라. 저와 같은 쌍을 얻어 슬하의 재미를 볼까 하여더니 저 걸인을 어찌 사위로 삼으리오.’

하고 한탄하더라.

시비 소저에게 고하니 소저가 경아(驚訝)하며 이르기를,

소생은 외인(外人)이라. 야야(爺爺)께서 어찌 보라 하시는가? 명을 좇지 못하리니 병들었다 고하라.”

시비 이대로 고하니 부인은 암희(暗喜)하고, 승상은 불열(不悅)하여 나오라 재촉하니, 소저가 부명(父命)을 재삼 거역함을 사죄하고 나오지 아니 하거늘, 승상이 대노(大怒)하여 이르기를,

네 아비 명을 거스르니 삼강(三綱)이 무너졌는지라. 세 번 재촉하야 좇지 아니하면 부녀지의(父女之義)를 끊으리라.”

소저 이 말을 듣고 황황경동(遑遑驚動)하여 시비를 따라 나올 새, 시비 먼저 보()한대, 소생이 일어나 피하고저 하거늘, 공이 소()하며 이르기를,

여아(女兒)를 부름은 그대를 위함이라. 어찌 피하고저 하는고.”

하고 소저를 재촉하니, 소저가 연보(蓮步)를 옮겨 부모에게 승명(承命)하니, 소생이 피하지 못하여 공수(拱手)하고 일어서니, 공이 명하여 서로 보게 하니, 소저가 먼저 예()하니 소생이 답례(答禮)하고, 각각 좌정(坐定)하매, 공이 소저를 대하여 이르기를,

하늘이 인연을 주시매 나를 위하여 데려 왔거늘, 재삼 추탁(推託)하여 나의 무류(無謬)를 끼치는가?”

소저가 부끄러워 아미(蛾眉)를 숙이거늘, 공이 소생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여아가 비록 곱지 못하나, ()히 그대의 재덕을 욕되게 아니할지라. 그대는 어떠하뇨?”

소생이 부복(俯伏)하여 칭사(稱謝)할 뿐이라. 승상이 웃기를 마지 아니 하더라.

소생이 눈을 들어 소저를 바라보니 장속(裝束)은 치레하지 아니하고, 채복(綵服)을 갖추지 아니하였으되, 녹발(綠髮)이 귀밑을 덮었으니, 은은한 구름 속의 명월이 비추는 듯, 한 쌍의 거울이 원산(遠山)에 걸렸는 듯, 양협(兩頰)은 홍도화(紅桃花)처럼 춘풍(春風)의 무르녹고, 단순(丹脣)은 앵두가 이슬이 붉었으며, 찬란한 광채는 모란화(牡丹花)가 조양(朝陽)에 어리었으니, 진실로 서왕모(西王母)가 요지연(瑤池宴)에 내림이 아니면 월궁(月宮)항아(姮娥)가 인간을 희롱하는 것인가. 한번 보매 정신이 황홀하여, 이윽히 생각하되,

내 여색을 많이 보지 못하였으되, 내 눈이 놀랄 리가 없을까 하였더니, 오늘날 소저를 대하니 심신이 황홀하도다.’

소저가 또한 아미를 잠깐 들어 소생을 살펴보니 위풍(威風)이 엄하고, 풍채가 헌앙(軒昂)하여, 한번 보매 심중(心中)의 경복(敬服)함을 마지 아니 하더라.

승상이 소생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오늘날 군자와 숙녀의 인연을 맺으매, 너의 양인(兩人)이 각각 글을 지어 노부의 마음을 쾌()하게 하라.”

소생이 손사(遜辭)하고 언연(偃然)히 화전(華牋)을 펼쳐 쓰니, 용사비등(龍蛇飛騰)하고 언사(言辭) 쾌활(快活)하니 하였으되, 춘풍(春風)이 사람을 인연(因緣)하여 옥경(玉京)에 오르니, 세상 진애(塵埃)를 벗는 듯, 상하 그림자가 경수(鏡水)에 비침이여. 월색이 무광(無光)함을 깨닫는다 하였더라.

승상이 남필(男筆)의 그 뜻이 화려함을 재삼 칭찬하고, 소저의 화답함을 재촉하니, 소저가 아미를 숙이고 마지못하여 산호필(珊瑚筆)을 들어 일필휘지(一筆揮之)하니, 자자(字字)가 주옥(珠玉)이라. 그 글에 하였으되, 낙락장송(落落長松)은 군자절(君子節)이요, 의의취죽(依依翠竹)은 열녀조(烈女操)이며, 금일(今日)에 봉명화(鳳鳴和)를 시사(施舍)하니 천지위증(天地爲證) 일월명(日月銘)이라 하였거늘, 승상이 받아보고 무수히 칭찬하며 이르기를,

천지를 가리켜 일월(日月)을 일렀으니 굳은 뜻은 아름답거니와, 송죽(松竹)을 비()함은 수절(守節)할 뜻이니, 어찌 사의(思義) 약차(若此) 불길(不吉)하뇨? 그러나, 일시(一時) 희사(喜事)이니 어찌 쾌회(快回)하리오.”

하고 두 글을 바꾸어 서로 주며 이르기를,

오늘날 인륜을 이루었으니 각각 간수하여 서로 신물(信物)을 삼으라.”

소생이 받아 보니 시법(詩法)이 청신(淸新)하고 필획(筆劃)이 기이(奇異)한지라. 심중에 탄복하여 거두어 소매에 넣으니, 소저가 또한 사양하지 아니하고 흔연(欣然)히 받으니 승상이 희색이 만면하되, 홀로 왕씨는 불열(不悅)하더라.

석양이 되매 소생이 서당의 나와 촉()을 대하며, 소저의 재덕(才德)을 못내 흠앙(欽仰)하더라.

 

승상이 택일(擇日)하여 혼사를 이루고저 하더니 슬프다. 조물이 시기하여 승상이 홀연 득병(得病)하여 증세(症勢) 위중(威重)한지라. 삼자(三子)는 벼슬에 매여 경성의 있으니, 길이 멀어 통하지 못하고, 소생이 약을 맛보아 주야 근심으로 지내더라.

승상이 스스로 기세(棄世)할 줄 알고 부인과 소저를 불러 탄식하여 이르기를,

내 나이 칠십이라. 아깝지 아니하나 다만 삼자를 보지 못하고, 또한 여아의 혼사를 보지 못하니 유한(遺恨)이라. 나 죽은 후 가사를 부인이 총찰(摠察)하여 백사(百事)를 나 있을 때와 같이 하고, 삼 년 후 즉시 혼사를 이루게 하라.”

하고 또 소저를 불러 집수(執手)하며 탄식하여 이르기를,

본디 내 네 천품(天稟)을 아나니, 다시 할 말 없거니와, 다만 중헌에서 지은 글을 잊지 말라.”

하고 또 소생을 불러 유체(流體)하며 이르기를,

인명(人命)이 재천(在天)하니 한 때 빌기 어려운지라. 여아의 일소생(一巢生)이 그대에게 있노라.”

하고 언파(言罷)하고 졸()하니, 시년(時年)이 칠십오 세러라. 일가(一家)가 망극하여, 부인과 소저가 자주 기절하고, 소생은 친히 조종(弔鐘)을 잡아 치상(治喪)하더니, 이생 등이 문부(聞訃)하고 돌아오매, 부인과 소저가 더욱 망극하여 하더라.

소생이 이생 등이 왔음을 듣고 조문(弔問)을 통하니, 이생 등이 알지 못하여 부인에게 묻자오니, 부인이 소생의 근본을 자세히 이르니, 이생 등이 소생을 맞아 조문을 받은 후에 소생을 살펴보니, 기위(奇偉) 웅장하여 장군의 형상이라.

심중에서는 꺼리나 잠깐 말하다가 들어가니, 소생이 비로소 이생 등을 보고 승상의 관인(寬仁)대덕(大德)을 본받을 이 없음을 못내 한탄하고, 이후로 서책(書冊)을 물리치고 잠만 자더니, 이생 등이 택일하여 장사를 지내매, 소생이 마지못하여 일어나 장사를 지내고, ()하여 의관(衣冠)을 전폐(全廢)하고, 이생 등으로 상종(相從)치 아니하니, 이럼으로 부인 더욱 불합(不合)하여 한 번도 물음이 없고, 비복 등이 또한 천대하며 하루에 한 때를 먹이니, 기갈이 자심(滋甚)하매 장구(長久)치 못할 줄 알고 생각하되, 아직 머물러 저의 혼사를 기다리리라 하더라.

왕씨 삼자에게 이르기를,

소생은 본디 걸인이라. 승상이 망녕되이 데려다가 채봉의 혼사를 정하여, 문호(門戶)의 욕이 되니 나의 한하는 바이라. 여등(汝等)은 소생 내칠 계교(計較)를 생각하라.”

장자(長子) 태경이 대답하기를,

소자 등도 불합(不合)하오나 매제(妹弟)가 충절을 아나니, 소생을 보낸 후에 뉘우침이 있을까 하나이다.”

부인 이르기를,

여아가 춘광(春光)이 차면 자연 회심(回心)하리니, 여등은 다만 소생 내칠 거조(擧措)를 시행하라.”

이생 등이 서당으로 나오니, 소생이 자다가 마지못하여 의관을 갖추고 맞을 새 이생이 이르기를,

선비가 학업을 전폐하니 어찌 공명을 취하리오.”

소생이 탄식하며 이르기를,

공명은 호화(豪華)한 사람이 할 바라.”

하거늘 이생 이르기를,

우리 선군(先君)이 아니 계시고, 우리 경성에 가면 그대를 대접할 주인이 없으매, 객의 마음이 무류(無謬)할까 하노라.”

소생이 이 말 듣고 잠깐 지음(知音)하여 답하기를,

의지 없는 사람이 일시 의탁도 과망(過望)하거든 어찌 나중을 바라리오. 그러나 대인(代人) 생시에 소생의 용렬(庸劣)함을 보지 않으시고, 소저로 굳이 정한 언약이 있는 고로 존문의 의탁하였으니, 제형(諸兄)은 용납함을 바라노라.”

이생이 웃으며 이르기를,

비록 언약이 있으나 삼년이 멀었으니, 성례(成禮)를 염려(念慮) 말라.”

하고 내당으로 들어가 부인에게 수말(首末)을 고한대,

부인이 대노하여 이르기를,

이 놈이 혼사를 칭탁(稱託)하니 어찌하리오.”

정생 이르기를,

천금을 버려 자객(刺客)을 구하여 근심을 덜니이다.”

왕씨 대희(大喜)하여 이르기를,

그 계교 내 뜻과 같으니 바삐 행하라.”

하거늘 즉시 조현이란 자객을 불러 수말(首末)을 이르니,

조현 말하기를,

근심하지 말고 내 재조를 보라.”

하고 금을 받은 후 밤을 기다려 서당으로 가더라.

 

차시(此時) 소생이 이생 등을 보내고 탄식하여 이르기를,

주인이 손을 싫어하니 어찌할고.”

할 즈음에 소생이 쓴 관()이 스스로 벗어져 공중에 솟았다가 떨어지거늘, 소생이 경아(驚訝)하여 관을 즉시 소화(消化)하고, 잠깐 팔괘(八卦)를 보고 앙천(仰天) 하며 탄식하여 이르기를,

무슨 재앙을 당할까.”

하여 촉()을 밝히고 앉았더니, 삼경(三更)이 되어 음풍(陰風)이 일어나거늘, 둔갑법을 행하여 일신(一身)을 감추고 동정을 살피더니, 자객이 변하여 음풍이 되어 들어와 살피다가 인적이 없으매 밖으로 행하고저 하거늘, 소생이 촉하(燭下)의 의지()하여 불러 이르기를,

너는 깊은 밤에 칼을 들고 누구를 해치고자 하느뇨?”

조현이 비로소 소생인줄 알고 칼로 지르니, 홀연 소생이 간 데 없는지라. 조현이 놀라 주저하더니 소생이 북녘 촉하(燭下)에서 꾸짖기를,

도적이 어찌 나를 당하리오.”

하고, 몸을 날려 칼로 조현을 치니, 조현의 검광(劍光)이 빛나며 소생이 간 데 없더라. 조현이 급히 나오려 하더니, 문득 한 소년이 단금(短笒)을 희롱(戲弄)하며 처량한 노래를 부르며 이르기를,

전국(戰國)적 시절인가 풍진(風塵)도 요란하고, 초한(楚漢)적 건곤(乾坤)인가 살기(殺氣)도 등등(騰騰)하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도 강동(江東)을 못 건너거든 필부(匹夫) 조현이야 역수()를 건널쏘냐. 하니 한 곡조에 살벌(殺伐)이 서렸으니 슬프다. 마음을 닦아 깨치거든 선도(善道)를 닦게 하라.”

조현이 듣기를 다하고 본 즉 이곳 소생이라. 대경하여 생각하되,

내 재조를 배워 당할 자가 없더니, 이 사람이 가장 비상(非常)하도다.’

하고 다시 칼을 널어 던지니 칼 소리 쟁연(錚然)하며, 소생이 간 데 없거늘, 조현이 놀라 칼을 두르니 칼조차 없는지라. 괴이 여겨 촉을 돋우고 살피더니 홀연 소생이 칼을 들고 대질(大叱)하여 이르기를,

무지(無知)한 도적아. 값을 중히 여겨 무죄한 사람을 해치고저 하니, 하늘이 어찌 무심하리오. 내 살생(殺生)을 말고자 하여, ()로써 이르되 종시(終始)도 깨닫지 못하니, 너는 나를 원망치 말라.”

하고 칼을 들어 조현의 머리를 베고 대노하여, 칼을 들고 내당에 들어가 이생 등을 죽이려 하다가 생각하되,

군자(君子)가 차마 못할 바이라.’

하고 칼을 던지고 붓을 빼어 글을 지어 벽상의 붙이니 글에 이르기를,

주인의 은혜 입음이 태산이 가볍도다. 객자(客子)의 정이 깊음이 하해(河海)였도다. 사람이 지음(知音)을 일음이여 다시 만나기 어렵도다. 객탁(客託)이 오래지 못함이여 액운(厄運)이 미진(未盡)하도다. 후생(後生)의 불초함이여 변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목숨을 도망함이여 하늘이 슬퍼하는도다. 가인(佳人)을 생각하니 뜬구름 같도다. 알지 못할 게라. 밝은 해 돋게 되면 대성의 이름을 알리로다. 다시 이 집의 이름이여, 부지(不知)하일(何日)하시로다.”

쓰기를 다하매 붓을 던지고, 이 밤의 몸을 빼쳐 표연히 서천으로 향하니라.

 

차시(此時) 이생 등이 날이 밝으매 외당(外堂)의 나아가 살피니, 인적이 고요하거늘 문을 열고 본즉 한 주검이 있으매, 소생인 줄 알았더니 조현의 주검이라. 대경하여 서로 의혹하며 살피더니, 벽상(壁上)에 예 없던 글이 있거늘, 보니 소생의 필적이라.

놀라 이르기를,

이 글 뜻이 사적(事跡)을 알았으니 반드시 후환이 될지라. 이를 어찌 하리오.”

하며 즉시 조현의 주검을 치우고 부인에게 수말을 고한 후, 의논하기를,

소생이 무상(無常)하여 배은(背恩)하고 하직(下直)없이 갔다 하더라.”

일일은 소저가 소생이 나갔단 말을 듣고 의혹하여 난영에게 말하기를,

네 나를 위하여 탐지(探知)하여 오라.”

난영이 서당 벽상의 글을 벗겨 왔거늘, 소저가 보기를 다하고 실색(失色)하여 탄식하기를,

가문이 불행한들 이다지 해원(解冤)한 일이 있으리오.”

하며 탄식함을 마지 아니 하더라.

 

각설(却說) 소생이 자객을 베고 종일토록 가더니, 문득 대해(大海)를 당하매 살피되, 배가 없어 건너기 망연(茫然)한지라.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더니 이윽고 청풍(淸風)이 일어나며 청아(淸雅)한 저()소리 들리거늘, 소생이 어선으로 여겨 크게 불러,

해상(海上)의 어옹(漁翁)은 길 막힌 사람을 건네소서.”

그 사람이 저()를 그치고 배를 강변에 대거늘, 소생이 바삐 오르며 보니, 청의동자가 머리에 벽련화(碧蓮花)를 꽂고 손의 옥저(玉箸)를 쥐었으매, 범인(凡人)이 아닌 줄 알고, 사례()하며 이르기를,

인간의 무지한 눈이 선동(仙童)을 모르고 배를 청하였더니 죄를 용서하소서.”

동자 이르기를,

약수(弱水) 삼천리에 어찌 어선(漁船)이 있으리오.”

하고 배를 저어 서편 언덕의 대며 내림을 청하거늘 소생이 묻기를,

약수는 서천(西天) 대해(大海). 어찌 순식간에 건너리오. 선동이 속객(俗客)을 희롱하는가 하노라.”

동자가 웃으며 이르기를,

나는 동해 용왕의 명을 바다 상공을 건네는 것이니, 이만한 바다를 어찌 근심하리오.”

하고 소매에서 선과(仙果) 한 낱을 내여 주거늘 소생이 받아먹으니 정신이 상활(爽闊)한지라. 재삼 사례하니 선동이 하직하고 배를 돌이켜 표연히 가거늘

소생이 공중을 향하여 사례하고, 서쪽으로 종일토록 가더니 뫼가 막혀 하늘이 다했는데, 시내를 좇아 석벽 사이로 올라가니, 청송취죽(靑松翠竹)이 울울(鬱鬱)하고 기화요초(琪花瑤草)가 향기를 띠었는데, 난봉(鸞鳳)공작(孔雀)이 쌍쌍이 왕래하니 경개(景槪)를 탐하여 점점 들어가니, 운무(雲霧)가 자욱하고 길이 끊어졌으매 갈 바를 알지 못하더니, 문득 풍경(風磬)소리가 들리거늘, 절이 있는가 하여 올라가니, 한 노승이 나와 맞으며 이르기를,

존객(尊客)이 오시되 나가 맞지 못하니 죄를 사()하소서.”

소생이 황망이 답례하니, 노승이 소생을 인도하여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이 배례하고 은근히 반기며 석자(席子)를 올리거늘, 소생이 그 후대(厚待)함을 사례하며 이르기를,

정처(定處) 없이 다니는 객에게 이같이 관대하시니잇가?”

제승이 답하기를,

상공 댁의 금은(金銀) 수천 냥이 이 절에 있나이다.”

소생이 답하기를,

생은 본디 궁곤(窮困)하거늘 무슨 금은이 있으리오.”

노승이 웃으며 이르기를,

이 땅은 서천 영보산 청룡사라. 수십 년 전에 부처의 명을 받자와 상공 댁에 가온 즉, 금은 수천 냥을 시주하시기로, 이 절을 중수하고 발원하였더니, 세존이 감동하사 상공을 지시하심이요, 또한 상공이 소승과 오년 연분이 있으니 염려 마소서.”

소생이 듣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머물며, 노승과 더불어 병서(兵書)와 경문(經文)을 강론(講論)하니, 산중의 유발승(有髮僧)이 되었더라.

 

각설(却說) 성화 십삼 년에 각처에 도적이 벌이듯 하니, 천자(天子)가 근심하사 군기(軍旗)를 정제(定制)하더니, 각도(各道)에서 장문()이 급히 보()하되, 북흉노(北匈奴)가 서선우(西單于)와 더불어 정병 백만과 장사 천여 명을 거느려 변방을 침노(侵擄)하여서 십여 성이 항복했다 하거늘,

()이 대경(代耕)하여, 제신(諸臣)을 모아 의론(議論)하시고, 중랑장(中郎將) 유문경과 병마달연사 서성태로 하여금 정병(精兵) 오십 만과 용장 천여 명을 조발(調發)하여, 여러 날 만에 임관(臨關)에 다다라 호병(胡兵)을 만나 진세(陣勢)를 벌이고, 서성태가 호왕(胡王)을 꾸짖어 싸움을 돋우니 위한이 먼저 내달아 크게 외치기를,

무지한 오랑캐가 감히 천병(天兵)에 항거하니, 네 머리를 베어 대국의 위엄을 빛내리라.”

호왕이 대노하여,

뉘 능히 적장을 벨 것인가?”

굴둘통이 창을 빗기고 위한을 마자 싸워 수합(數合)이 못되어, 위한이 굴돌통을 베니, 호장(胡將)이 내달아 위한을 맞아 싸워 오십여 합()만에 머리를 베어 들고 좌충우돌(左衝右突)하거늘, 서성태 대노하여 호장을 취()하니, 호장이 진()을 닫거늘, 서성태가 본진으로 돌아가 유문경과 파적(破敵)할 묘책(妙策)을 의논하더라.

이적(夷狄)의 호왕과 호장 서융(西戎)이 세 길로 나누어 명진(明陣)을 엄살(掩殺)하니 서성태와 유문경이 불의지변(不意之變)을 당하매, 서융이 유문경을 죽이고, 호왕은 서성태를 베고, 명진을 마구 치니 주검이 뫼 같더라. 호왕이 대군을 몰아서 진관의 이르러 급히 치니, 수관장 조경이 대적(對敵)하지 못하여, 경사(京師)에 보()하니, 천자가 대경하사 만조(滿朝) 이르기를,

짐이 친정(親征)하고자 하나니 뉘 능히 선봉이 되리오.”

아문장군 호협이 주()하기를,

신이 재조가 없사오나 선봉이 되어 도적을 파하리이다.”

상이 대희하사 호협으로 선봉을 삼고, 모세징으로 군사장을 삼아, 정병 오십 만을 거느려, 상이 스스로 중군이 되어, 태자에게 도성을 지키게 하고 출사(出使)하시니, 이때는 성화 십삼 년 추() 구월이라.

 

재설(再說) 소생이 청룡사에서 오 년을 있으며, 매양 고향을 생각하매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일일은 공중에서 이르되,

용부(勇夫), 천운(天運)이 열렸다.”

하거늘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아무것도 없고 명월(明月)이 조용한데, 천문(天文)을 보니, 자미성(紫微星)이 신지(神地)를 떠나 서쪽으로 희미하고, 익성(翼星)이 좌()를 떠나 살기등등하여 자미성을 침노하는데,

소생이 탄식하기를,

반드시 오랑캐가 강성하여 중원(中原)을 침노함이라.’

하고 도로 방으로 돌아와 병서를 외우더니, 노승 아뢰기를,

이제 난세(亂世)를 당하였으매 이름을 빛내소서. 아까 꿈에 세존(世尊)을 뫼시고 옥경(玉京)에 올라가니,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옥제(玉帝)께 여쭈되, 익성이 자미성을 시살(弑殺)하나이다. 옥제께서 전지(傳持)하사, 익성에게 죄주어 인간에 두지 말라 하니 익성은 호왕의 주성(主星)이요 자미성은 천자의 주성이라. 이럼으로 짐작하나이다.”

하고 협실(夾室)로 데려가 한 보검(寶劍)을 내어주며 이르기를,

소승이 젊어서 태항산(太行山)에 올라가니, 청룡이 석벽에 서렸다가, 소승을 보고 놀라 공중의 오르며 이 칼이 석상에 놓였기로 집어와 감추었더니, 장군을 기다린 것이라.”

소생이 받아 보니 삼척(三尺) 강금(强金)이요, 명광(明光)이 찬란한 가운데, 은은히 칠성(七星)이 비추거늘, 소생이 사례하고 행장(行裝)을 수습할 새,

노승 이르기를,

이대로 수백 리를 가면 구할 사람이 있으리라.”

문득 간 데 없는지라.

소생이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하고 청룡사를 떠나 수백 리를 가더니, 날이 저물고 촌가(村家) 없거늘, 정히 민망하더니 홀연 청의동자가 나와 묻기를,

상공이 해동 소상공이 아니시니잇가.”

소생이 답하기를,

과연 그러하거니와 어찌 아느뇨?”

동자가 답하기를,

우리 노야(老爺)가 청하시더이다.”

소생이 동자를 따라 수 리를 가니 한 정결한 초옥이 있거늘, 보니 동불(銅佛)인가 한 가운데 한 노인이 서안(書案)을 의지하였으니, 이는 곧 청주 이승상이더라.

나아가 재배하니 승상이 반기며 소생의 손을 잡고 탄식하기를,

그대를 만난 후 여아의 혼사를 이루지 못하여 죽은 혼백이라도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부인 등의 잔학(殘虐)함을 내 통한(痛恨)하게 여기나니, 그대는 허물치 말라. 여아와 인연을 맺어 노부의 혼백을 위로하라.”

소생이 배()하며 이르기를,

삼가 교명(敎命)을 받자오리이다.”

승상이 칭사(稱辭)하고 한 벌 갑주(甲冑)를 내어주며 이르기를,

이것을 입으면 몸이 날내고 창검이 들지 않으며 수화(水火)가 범하지 못하나니 ,이름은 보신갑(保身甲)이라.”

하거늘 소생이 대희하며 사례하니,

천상(天上) 나타(哪吒) 제자 익성(翼星)은 범인(凡人)이 아니니, 경적(輕敵)지 말라 하고, 또 명일 오시(午時)에 용마(龍馬)를 만날 것이니, 가히 성공하리라.”

하고 자리에 눕거늘 소생이 또한 졸더니, 기러기 소리에 놀라 깨달으니, 승상과 집은 간대 없고 갑주만 놓였거늘, 소생이 공중을 향하여 사례하고 갑주 수습하여 행하더니, 한 노인이 갈건야복(葛巾野服)으로 청려장(藜杖)을 짚고 학춤을 보다가 소생을 보고 이르기를,

내 집이 누추하나 잠간 쉬어감이 어떠하뇨.”

소생이 따라가니 산수가 수려(秀麗)한 곳에 초옥(草屋)이 정결(淨潔)한지라. 좌정(坐定)한 후에 말씀하더니, 문득 우레 같은 소리 들리거늘 소생이 묻기를,

이 소리는 어디서 나니잇가?”

노인 답하기를

수년 전에 망아지를 얻었더니, 매우 사나워 사람을 해치고자 하여 굶겨 죽이려 하매, 그것이 더욱 장난하기로 민망하도다.”

소생이 청파(聽破) 후에 구경함을 청하니, 노인이 소생을 데리고 봉이니 짐짓 용마(龍馬). 소생이 내심 승상의 말씀을 생각하고 노인에게 이르기를,

갈 길이 머오니 말을 주시면, 후일 중가(重價)로 드리리다.”

하고 말곁에 가 경계(儆戒)하고 말하기를,

네 만일 청총마(靑驄馬)이어든 해동 소대성을 아느냐?”

그 말이 이슥히 보다가 굽을 치며 고개를 들어 소생의 팔의 얹거늘, 노인이 대소(大笑)하며 금안(金鞍)을 내여 주며 이르기를,

용이 여의주를 얻었으니 이름을 빛내라.”

소생이 사례하고 존성(尊姓)을 물으니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옥동선군(玉童仙君)이로라.”

하고 문득 간 데 없거늘, 소생이 놀라 산신(山神)인 줄 알고, 사례하고 수일 만에 도성의 이르니, 천자는 이미 친정(親征)하여 계신지라. 바로 대진(大陣)을 찾아가 군사장군 모세징을 보고 성명을 통하니, 모세징이 연소함을 보고 군중(軍中)의 두더라.

 

차시(此時) 천자가 호왕과 대진(對陣)할 새, 선봉장 호협이 호장 육환을 베고, 횡행(橫行)하다가 서융에게 죽은 바가 되고, 또 연()하여 명장 수십 인이 호장에게 죽은 바가 되니, 이럼으로 감히 나가 출두(出頭)할 자가 없는지라.

이때 소생이 양진(兩陣)의 승패(勝敗)를 보다가 분기(憤氣) 울울(鬱鬱)하여 말에 올라 외치기를,

반적(叛賊) 서융아. 나를 아느냐?”

하고 달려들어 서융의 머리를 베어들고, 본진(本陣)으로 돌아와 모세징을 보고 아뢰기를,

소장(小將)이 연소(年少) 협기(俠氣)로 장령(將令)을 어기었으니, 군법을 시행하소서.”

모세징이 대희(大喜)하여 그 손을 잡고 이르기를,

내 그대 연소함을 여겨 쓰지 아니하더니, 장군은 나의 용우(庸愚)함을 용서하라.”

대성이 사사(謝辭)하고 물러나매, 명진(明陣) 장졸(將卒)이 칭찬 아니하는 이 없더라.

차시(此時) 천자가 구장(九將)이 죽음을 보시고 한탄하시더니, 대성의 용맹을 보고 모세징에게 명초(命招)하사 물으시니,

모세징이 주()하기를,

이는 전임 병부상서 소량의 아들 대성이로소이다.”

천자가 인견(引見)하사 대성의 손을 잡고 이르기를,

네 아비 진충(盡忠)보국(保國)하고, 너 이제 또 이렇듯 기특하도다.”

하시더라.

이때 호왕이 제장(諸將)과 의논하기를,

대성을 힘으로는 대적하지 못하리니 계교로써 잡으리라.”

하고 섬한을 장안으로 보내어 엄습(掩襲)하게 하니라.

차시(此時), 체탐이 보()하되,

적병이 도성의 이르러 급히 치매 십분(十分) 위태하다.’

하거늘 천차가 대성을 원수로 명하시어 보내니라. 호왕이 대성을 유인하여 보내고 야심(夜深)한 때에, 서북 양문으로 짓이겨 들어가니,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죽는 자가 부지기수(不知其數). 천자가 망극하사 자문(自刎)하고자 하시더니, 호왕이 벌써 상이 타신 말을 질러 앞지르고, 항서(降書)를 올리라 하는지라. ()이 용포(龍袍) 소매를 덥히고 방성대곡(放聲大哭)하시니 천지(天地)가 참담(慘憺)하더라.

차시 원수가 장안의 이르니, 호왕은 아니 오고 섬한이 왔는지라. 원수가 분노하여 일 합에 섬한을 베고, 청총마를 경계(警戒)하여 순식간의 대진의 이르니, 천자가 곤욕(困辱) 중에 계신지라. 원수가 대노하여 호왕을 베니라.

원수가 호왕의 수급(首級)을 천자께 드리며 아뢰기를,

폐하가 곤욕 중에 계시게 함은 신의 불충이로소이다.”

천자가 만만(萬萬) 칭사(稱辭)하시고 환궁(還宮)하사, 제장(諸將)을 봉작(封爵)할 새, 대성으로 노왕을 봉하시니, 원수가 마지못하여 사은(謝恩)하고, 먼저 해동으로 행할 새, 백관(百官)이 성외(城外)에서 전송하니 위의(威儀)가 거룩하더라.

선산(仙山)의 이르러 제문(祭文)지어 제()하고 은금(銀金)을 흩어 노복(奴僕)을 반기며, 인하여 노국의 이르니, 승상 조겸이 백관을 거느려 봉각(封閣)에 모신 후 산호(山呼) 천세(千歲)하고, 조겸이 주()하기를,

전하(殿下)가 보위(寶位)의 거()하시매, 곤전(坤殿)이 비었사오니 성모(聖母)를 간택(揀擇)하소서.”

왕이 이를 따르며 이르기를,

중국 청주 땅 이진의 여식이 숙덕(淑德)이 있다 하니 간택하라.”

하다.

 

각설(却說) 이소저는 소생의 존망(存亡)을 알지 못하매, ()하여 부인께 여쭈어 아뢰기를,

소생이 반드시 세상을 버린다 하오니 금일부터 최복(衰服)을 갖추리니, 모친은 그리 아소서.”

하고 발상(發喪)거애(擧哀)하니 그 애원(哀怨)함을 차마 보지 못할러라.

일일(一日)은 노국 태감(太監)이 왔음을 보()하거늘, 부인이 태감을 청하여 볼 새 예필(禮畢) 후에, 태감이 아뢰기를,

전하가 곤전이 비어 외로이 계시더니, 귀택(貴宅)의 천세(千歲) 낭랑(娘娘)이 계시다 하기에 왔사오며, 또 노왕 전하께서 서간을 드리더이다.”

부인이 받아보니 소생의 필적이라. 바삐 소저의 침방(寢房)의 들어가 소저를 보며 이르기를,

세상의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소저 받아보니 일봉(一封)은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하였고, 일봉(一封)은 자기 지은 글이라. 문득 유체(流涕)하니 부인이 후회하고 소저를 위로하더라. 수일 후 예관(禮官)이 왔거늘 소저가 결연(訣宴)하여 부인에게 하직하니, 부인이 경계(警戒)하며 이르기를,

여자유행(女子有行)은 원부모형제(遠父母兄弟)라 하니, 과히 초창(悄愴)하지 말라.”

하더라.

여러 날 만에 노국의 이르니, 왕이 맞아 봉궐(鳳闕)의 들어가 행례(行禮)하니 위의(威儀) 거룩하더라. 그 후에 사관(辭官)을 보내어 왕부인과 이생 등을 청하여, 잔치하여 관대하며, 전사(前事)를 일호(一毫)도 괘념(掛念)하지 아니하고, 이 승상의 분묘(墳墓)도 치제(致祭)하다.

왕이 정사(政事)를 다스리매 문무(文武)의 성덕을 베푸니, 강구(康衢)의 격양가(擊壤歌)를 전하더라. 이십팔 년 춘 정월에 장자 윤인으로 세자를 삼고, 기여는 각각 봉군(封君)하여 행복을 누리더니 일일 왕과 왕후 춘경(春景)을 완상(玩賞)하다가 동일(同一)하게 승천(昇天)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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