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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daum.net/newmountain/1836
북 천 가
김 진 형
세상 사람들아, 이내 말씀 들어보소.
과거를 하려거든 청춘에 해야 하지
오십에 급제하여 흰머리로 고생하나.
벼슬이 늦었으면 처세나 약아야지.
눈치 없이 내달아서 소인배의 적이 되어
형벌을 무릅쓰고 조정에 상소하니
이전에는 빛나고도 옳은 일이었지만
시끄러운 세상에선 남다른 일이로다.
상소 한 장 올라가니 온 조정이 울컥한다.
어와 황송하네, 임금이 진노하니
삭탈관직 하시면서 엄하게 꾸중하니
운 없는 이 신세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추풍에 배를 타고 강호로 향하다가
남수찬의 상소 끝에 ‘명천’ 유배 놀랍구나.
귀양지로 떠나려니 추위 바람 괴상하다.
근심 많은 행색으로 ‘동문’에서 대죄하니
고향은 멀고멀고 ‘명천’은 이 천리라
두루마기 흰 띠 띄고 임금을 향해 서니
사고무친 고독단신* 죽는 줄 누가 알리.
사람마다 억울하면 울음이 나련마는
오히려 유쾌하게 임금 은혜 갚으리라.
신하가 되었다가 소인배의 모함으로
임금 분부 받들어서 외딴 곳에 가는 신세
예로부터 몇몇이며 조선에 그 뉘런고.
칼 짚고 일어서서 술 먹고 춤을 추나
천리 귀양이라 장부도 다 우는구나.
좋은 듯이 말하지만 ‘명천’은 어디인가.
*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 없이 외로운 처지에 있는 몸.
더위는 화로 같고 장마는 극악한데
몸종은 뒤 세우고, 밝은 달은 앞에 두고
‘다락원’ 잠깐 지나 ‘축성령’ 넘어가니
궁궐이 멀어진다.
슬프구나, 이내 몸이 홍문각의 교리로서
매일매일 책을 끼고 임금을 모시다가
하루아침 정을 떼고 하늘 끝에 가겠구나.
궁궐을 바라보니 안개구름 아득하고
남산은 우뚝하여 꿈속처럼 아득하다.
밥 먹으면 길을 가고 잠을 깨면 길을 떠나,
물 건너 언덕 넘어 십리 가고 백리 가니
‘양주’땅 지난 후에 ‘포천읍’ 길가이고
‘철원’ 경계 밟은 후에 ‘정평읍’ 건너보며
‘김화’ ‘금성’ 지난 후에 ‘회양읍’이 마지막이라.
강원 거쳐 함경도길 듣고 본 것 같구나.
‘회양’서 점심 먹고, ‘철령’ 향해 가니
아주 험한 청산이요, 촉도* 같은 길이로다.
요란한 안개는 햇빛을 가리우고
가마를 잡아타고 ‘철령’을 넘는구나.
숲에 나무 가득하니 엎어질 듯 자빠질 듯
고개 중턱 못 올라서 황혼이 다 되었다.
꼭대기에 올라서니 초경이 되었구나.
일행이 허기져서 기장떡 사먹으니
떡 맛이 독특하여 향기롭고 아름답다.
조심조심 횃불 들고 불 비추며 내려가니
남북도 모르는데 산 모습을 어이 알리.
삼경에 산 내려와 숯막에서 잠을 잔다.
새벽에 떠났는데 ‘안변읍’이 어디인가.
기약 없는 내 신세야 귀양객이 되었구나.
* 촉(蜀)으로 가는 길로 매우 험한 길을 뜻함
함경도는 초면이요 태조대왕 고향이라.
산천은 넓디넓고 숲은 들로 이어졌는데
‘안변읍’ 들어가니 본관이 나오면서
자리 깔고 병풍치고 음식을 들여온다.
시원하게 잠을 잔 뒤 북쪽으로 떠나가니
‘원산’이 여기인가, 인가도 굉장하다.
파도 소리 요란한데 물품도 장할시고.
‘덕원읍’서 점심 먹고, ‘문천읍’서 잠을 자고
‘영흥읍’에 들어가니 웅장하고 아름답다.
태조대왕 탄생지로 아름다운 집뿐이다.
비단 같은 산천 그림 바다 같은 요새로다.
선관이 즉시 나와 위로하고 대접하여
점심상 보낸 후에 채병화연* 준비하나
죄 지은 몸인지라 고마워도 돌려보내고
‘고원읍’ 들어가니 그곳 수령 오공신은
옛 정이 각별하여 날 보고 반겨하네.
천리객지 날 반길 이 이 어른뿐이로다
책방으로 맞아들여 음식을 대접하며
다정하게 위로하니 시름을 잊겠구나.
말을 주고 하인 주고 여비 주고 옷도 주니
가난한 고을 생각하니 불안하고 부담스럽네.
* 색칠한 병풍과 꽃돗자리
벼슬 잃고 떠나오니 운수도 괴이하다.
갈 길이 몇 천리며 온 길이 몇 천린가.
하늘같은 저 ‘철령’이 고향을 막아섰고
저승 같은 귀문관*이 우뚝이 서 있구나.
바람 같은 이내 몸은 어디로 향하는가.
‘초원역’서 점심 먹고, ‘함흥’ 감영 들어가니
만세교 긴 다리는 십 리에 뻗어 있고
끝없는 큰 바다는 아득하게 둘러 있고
큰 강은 거침없이 옛날부터 흘렀구나.
구름 같은 성벽 보소, 낙빈루는 높고 높다.
집집마다 저녁연기 가을 강의 그림이요,
서산에 지는 해는 귀양객의 시름이다.
술잔 들고 누각 올라 칼 만지며 노래하니
무심하게 뜬 구름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편안한 피리 소리 객의 시름 더하는구나.
고향 향한 이내 눈물 긴 강에 던져두고
백청루로 내려와서 성 안에서 잠을 자니
‘서울’은 팔백 리요, ‘명천’은 백구 리라.
비 맞고 유삼* 쓰고 ‘함관령’ 넘어가니
고개도 높거니와 수목도 더욱 장하다.
나는 듯한 가마 타고 고갯길은 굽이굽이
길가의 서 있는 비각 단청 아름답다.
태조대왕 젊은 시절 고려국의 장수되어
말갈족을 무찔렀던 공덕비가 어제 같다.
* 죽은 이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으로 죄를 많이 지은 이는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지옥으로 끌려간다고 함.
* 기름에 결은 비옷.
역말을 갈아타고 ‘홍원읍’ 들어가니
끝없는 바다 옆의 고을 모습 절묘하다.
점심 먹고 떠나가니 ‘평포역’이 숙소로다.
내가 온 길 생각하니 천만 리나 되었구나.
실 같은 목숨이요, 거미 같은 기력으로
천천히 길을 가면 편히 갈 수 있었거늘
지엄한 임금 명령 잠시라도 지체하랴.
죽기를 가리지 않고 물불을 구별 않으니
온 몸에 땀이 돋아 종기가 돋았구나.
골수에 든 더위에 날이 새면 설사로다.
사령이 하는 말이 “나으리 거동 보소.
숨이 끊어질 듯 위태하신 얼굴이라
하루만 조리하게 ‘북청읍’에 묵읍시다.”
“무식하다 네 말이야, 임금 명령 엄한지라
생사를 생각하랴, 잠시인들 지체하랴.
사람이 죽고 살기 하늘에 달렸으니
네 말이 기특하나 얼른얼른 가자꾸나.”
‘북청’에서 하루 묵고 ‘남송정’ 돌아드니
끝없는 넓은 바다 동쪽 하늘 끝이 없고
산들이 첩첩하여 남쪽이 아득하다.
‘마곡역’ 점심 먹고 ‘마천령’ 다다르니
안팎으로 육십 리라 하늘에 맞닿았고
공중에 걸린 길은 참바*처럼 굽이치네.
달래 덤불 얽혔으니 햇빛도 밤중 같고
충층 바위 위태하니 머리 위로 떨어질 듯
하늘인가 땅이런가, 이승인가 저승인가.
‘상이봉’에 올라서니
보이는 게 바다이고 넓은 것이 바다이다.
며칠이나 길을 가며 이 고개를 넘었던가.
이 고개 넘고 나니 고향 생각 다시없네.
햇빛만 은근하게 머리 위로 비췄구나.
‘원평’에서 점심 먹고 ‘길주읍’에 들어가니
성곽도 대단하고 여염집도 더욱 좋다.
비올 바람 일어나니 떠날 길이 아득하다.
읍내서 묵자하니 본관에게 불편하다.
수령 오고 책방 오니 초면인데 친구 같다.
음식은 먹거니와 기생 대접 관심 없다.
임금 명령 받든 몸 꽃자리 관심 없고
죄를 지었으니 기생이 웬일일까.
운이 없는 내 모습은 분상*하는 상주로다
기생을 물리치고 비단 자리 걷어내니
본관이 하는 말이 “영남 양반 고집이라.”
* 삼이나 칡 따위로 세 가닥을 지어 굵다랗게 드림
* 먼 곳에서 부모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감.
비 맞으며 떠나가니 ‘명천’이 육십 리라.
이 땅을 생각하면 묵특*의 옛 땅이라.
한 무더기 누런 모래 왕소군*의 무덤인가
팔십 리 ‘광연못’은 소무*의 강도로다.
‘회홍동’ 이릉*의 묘는 지금도 원통한가.
‘백용해’ 대문관은 앞 재 같고 뒷산 같다.
늙은 역마 잡아타고 귀양지로 들어가니
사람들은 번성하고 성곽은 웅장하다.
여관에 들어앉아 편지를 붙인 후에
맹동원의 집을 물어 본관에게 전하게 하니
본관이 공방형방 내보내어 안부 묻고
병풍치고 주안상을 대접하게 하고
육각 소리* 앞세우고 주인으로 나와 앉아
처소에 연락하여 모셔오라 전갈하네.
* 중국 전한 때 흉노족의 우두머리인 선우
* 중국 전한 원제의 후궁이었으나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보내짐.
* 전한에서 흉노로 보낸 사신으로 흉노의 선우가 투항시키려 했으나, 투항하지 않자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한나라로 돌려보내겠다.’고 하며 강도(지금의 바이칼호) 근처로 유배 보냄.
* 중국 전한의 장군으로 흉노에게 포위되어 항복함.
* 북, 장구, 해금, 피리, 태평소 둘로 이루어진 악기 편성
슬프다 내 일이야, 꿈속에서 들었던가.
이곳이 어디인가, 주인 집 찾아 가니
높은 대문 넓은 사랑 이천석군 집이로다.
본관과 초면이라 서로 인사 다한 후에
수령이 하는 말이
“김 교리의 귀양길이 죄 없이 오는 줄을
북관 수령 아는 바요, 모든 이가 울었으니
조금도 슬퍼 말고 나와 함께 놀아보세,
여기 기생 다 불러라, 오늘부터 놀아보세.”
무인의 호탕함인가, 마음씀씀이 장하도다.
그러나 내 신세는 귀양 온 사람이라
대접받는 꽃자리에 노랫가락 무엇이냐.
기생들을 돌려보내고 일없이 혼자 지내니
성내의 선비들이 소문 듣고 모여들어
하나 오고 두셋 오니 여러 명이 되었구나.
책 끼고 글 청하며 글 고쳐주길 바라는데
북관에 있는 관리만 보았다가
선비 왔단 소문 듣고 공부 하자 달려드니
내 일을 생각하면 남 가르칠 공부 없어
아무리 사양한들 모면할 길 전혀 없네.
밤낮으로 끼고 있어 세월이 글이로다.
한가하면 풍월 짓고 심심하면 글 외우니
세상과 인연 끊은 외로운 처지라.
시와 술로 회포 풀고 불출문*에 글 외우며
편케 편케 세월 보내니
봄바람에 놀란 꿈이 변방에서 서리 맞네.
남쪽 하늘 바라보면 기러기 처량하고
북방을 굽어보면 오랑캐 경계로다.
상놈들은 위 아래옷 개가죽옷 다 입었고
주린 백성들 조밥 피밥 기장밥이 아침저녁
* 문밖으로 나가기 않음
본관의 성덕이요 주인의 정성으로
실 같은 이내 목숨 한 달반을 보냈는데
천만 의외 집 편지를 명녹*이 가져 왔네.
놀랍고 반가워라. 미친놈이 되었구나.
귀양지에 있던 사람 고향에 돌아온 듯
나도나도 이럴망정 고향이 있었던가.
편지를 열어 보니 정든 편지 몇 장인고.
장장마다 친척이요 면면마다 고향이라.
종이마다 글자마다 아들조카 눈물이요,
옷 위의 비친 그림 아내의 눈물이다
소동파의 조운*인가 그리움이 불쌍하다.
이러다 급히 죽으면 어이 될 것인가.
명녹과 마주 앉아 눈물로 대화하니
“집 떠난 지 오래거든 그 후 일을 어이 알리.
산 깊고 길은 먼데 네 어찌 돌아가며
덤덤히 쌓인 회포 다 이룰 수 없겠구나.
명녹아. 말 들어라. 무사히 돌아가서
우리집 사람더러 살았다고 전하여라.
죄명이 가벼우니 풀려나기 쉬우리라.”
* 작자의 집 종
* 중국 북송의 시인과 그의 애첩
당당하게 추석이라 집집마다 성묘하네.
여기 사람들도 깨끗이 성묘하네.
본관이 하는 말이
“이곳의 ‘칠성봉’은 북쪽의 명승지라.
‘금강산’과 다툴지니 ‘칠봉산’ 한번 가서
깊은 산 찾아가서 구경함이 어떠한가.”
나 역시 좋지마는 주변 시선 난처하다.
귀양지로 쫓긴 몸이 명승지에서 노는 일이
분수에 미안하여 처음에 괴이하나
마음에 끌리지만 안 가기로 작정하나
주인의 하는 말이 “그렇지 아니하다.
악양루 환강경은 왕등*의 사적이요,
적벽강 제석놀음 구소*의 풍정이니
‘금학사’ 칠보놀음 무슨 허물 있으리오.”
* 북송 때의 문인 왕원지와 등자경
* 구양수와 소동파
그 말을 반겨 듣고 황망히 일어나서
나귀에 술을 싣고 ‘칠보산’ 들어가니
구름 같은 천만봉은 그림 같은 풍경이라.
‘박달령’ 넘어가서 ‘금장동’ 들어가니
곳곳의 물소리는 백옥을 깨치는 듯
봉우리마다 단풍 빛은 비단장막 둘렀구나.
가마를 높이 타고 개심사에 들어가니
먼 산은 그림이오, 가까운 산은 웅장하다.
선비들 육십 명이 앞서고 뒤에 서니
풍경도 좋거니와 광경이 더욱 좋다.
근심어린 나의 회포 ‘개심사’로 들어가서
잠을 설친 후에 새벽녘에 일어나서
청소하고 물을 여니 기생들이 앞에 와서
인사하고 하는 말이 “본관사또 분부하되
김교리님 ‘칠보산’에 너희 없이 놀이 될까?
교리는 사양하되 내 도리로 그럴쏘냐?
산신도 섭섭해 하고 원학도 슬프리라.
너희들을 딸려보내면 나으린들 어찌하랴.
부디부디 조심하고 ‘칠보산’에 모시어라.
사또의 분부 끝에 소녀들이 대령하오.”
우습고 부끄럽다, 본관의 정성이여
풍류남자 시주객*은 남쪽의 나뿐인데
신선이 사는 곳에 너희 어찌 보내리오.
이왕에 너희들이 칠십 리를 따른다 하니
풍류남자 호탕함을 숨기기가 어려워라.
방으로 들라 하고 이름 묻고 나이 물으니
한 년은 ‘매향’인데 나이는 십팔이요,
하나는 ‘군산월’로 십구 세 꽃이로다.
중 불러 음식하고 노래시켜 들어보니
매향의 평우조*는 구름을 흩는 듯
군산월의 해금소리 봉우리에 푸르도다.
* 시와 술을 즐기는 나그네
* 평조(낮은음)와 우조(높은음)
지로승* 앞세우고 두 기생 옆에 끼고
연꽃 가득한 골짜기로 ‘개심대’ 올라가니
단풍은 비단이요, 솔 소리는 거문고라.
‘상상봉’, ‘노적봉’과 ‘만사암’, ‘천불암’과
‘탁자봉’, ‘주작봉’은 그림처럼 둘러치고
높고 높아 대단하다.
아양곡 한 곡조를 두 기생이 불러내니
모든 산이 더 높아지고 단풍이 더 붉어진다.
고운 손으로 양금 치니 솔 소린가 물소린가.
군산월의 손길 보소. 곱고도 고을시고.
봄산의 여린 풀인가, 안동밧골* 비단주머니인가.
양금 위에 노는 손이 보드랍고 안쓰럽다.
* 산속에서 길을 인도하여 주는 중
가마 타고 방향 정해 산마루로 올라가니
아까 보던 산모양이 갑자기 모습 바꿔
모난 산이 둥그렇고 희던 바위 푸르구나.
절벽에 새긴 이름 조정의 신하들이네.
산을 끼고 들어가니 ‘방선암’이 여기로다.
기암괴석 첩첩하니 갈수록 황홀하네.
일 리를 들어가니 금강굴 이상하고
높고도 험한 굴에 푸른 이끼 이상하다.
‘연적봉’ 구경하고 ‘회상대’ 향하는데
두 기생 간 데 없어 찾느라 골몰한다.
어디서 노랫소리 하늘로 일어나니
놀라서 바라보니 ‘회상대’ 올라 앉아
푸른 옷 붉은 치마 단풍 가지 꺾어 쥐고
‘만장산’ 구름 위에서 사람을 놀랠 시고.
어와 기이하다.
이 몸이 이른 곳이 신선의 땅이로다.
* 서울의 한 지명
평생의 연분으로 조정에서 죄를 받아
바람으로 부친 듯이 이 광경 보겠구나.
‘연적봉’ 지난 후에 이 선녀를 따라가면
‘연화봉’ 저 바위는 청천에 솟아 있고,
‘배바위’, ‘채석봉’은 바로 앞에 펼쳐 있네.
‘생활봉’, ‘보살봉’은 신선의 굴이던가.
매향은 술잔 들고 만장운 한 곡조라.
군산월 앉은 모습 한 떨기 꽃이로다.
오동 목판 거문고에 금실로 줄을 매어
대쪽으로 타는 모습 거동도 곱거니와
섬섬한 손길 끝에 오색이 영롱하다.
네 거동 보고나니 임금 명령 엄하여도
반할 번 하겠구나.
영웅은 역사에도 절개 없다 하느니라.
내 마음 단단하나 네게 큰소리치랴?
본 것이 큰 병이요, 안본 것이 약일 텐데
이 천리 밖 유배지서 단정하게 몸 가지고
기적을 잘한 것이 아주 모두 네 덕이라.
양금 연주 마친 후에 절집으로 내려오니
산 중의 찬물 소리 정결하고 향기 있다.
이튿날 돌아오니 ‘회상대’ 놀던 일이
저승인가 꿈속인가 국은인가 천은인가.
귀양지의 나그네가 이런 호강 알았을까.
흥이 다해 돌아와서 종을 불러 분부하되
‘칠보산’서 유람할 때 본관이 보내기로
기생을 데려갔으나 돌아와 생각하니
호화롭지만 불안하다.
다짐하되 다시는 기생이 못 오리라.
선비만 함께 하자 마음속에 기록하니
청산이 그림 되어 술잔에 떨어지고
녹수는 길이 되어 종이 위에 단청이라.
군산월의 고운 차림 깨고 나니 꿈이로다.
지금은 어느 때인고 구월구일 오늘이라.
왕한림 이적선*은 ‘부용산’에 높이 쉬고
조선의 김학사*는 ‘재덕산’에 올랐구나.
맑은 술에 꽃을 두고 남쪽을 떠올리니
‘북병산’의 단풍경치 김학사 차지인데
이하의 황국화*는 주인이 없었구나.
파리한 늙은 아내 술을 들고 슬프던가.
가을 달이 낮 같으니 조자룡의 회포로다.
* 중국 당나라의 시인 왕유와 이백
* 지은이 자신
* 도연명의 시구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어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
‘칠보산’ 반한 놈이 소무굴*이 보려하고
팔십 리 ‘경성’ 땅에 구경차로 길을 떠나
깊은 숲에 들어가니 북해의 큰 연못*에
한가하고 외로워라.
가을빛은 끝없는데 갈대꽃은 슬프도다.
푸른 물결은 넓고 멀어 회색으로 이어졌고
낙엽은 분분하여 푸른 하늘로 날리는데
충신의 높은 자취 어디 가서 찾아보리.
어와 거룩하네. 소중량* 거룩하네.
나 또한 같은 신세 임금님 곁 멀리 떠나
낯선 곳에 몸을 던져 회포도 슬프더니
오늘날 이 섬 위에 정성은 같았구나.
해지는데 칼을 잡고 휘두르고 돌아서니
‘병산’의 눈보라는 촉도 같은 길이로다.
저승 같은 길에 서니 음침하고 괴이하다.
* 소무가 흉노의 포로가 되었을 때 유배 갔던 곳
* 큰 못(바이칼호) 가운데
* 소무
‘삼척’을 들어서니 이 몸이 송구하다.
노방에 일분토는 왕소군의 무덤인가.
처량한 어린 혼이 흰 들판에 슬프구나.
가을바람 차가워서 붉은 잎을 울리는 듯
쟁쟁한 환패* 소리 달밤에 우는 듯
술 한 잔 가득 부어 꽃다운 혼* 위로하고
‘유정’으로 들어가니 ‘명천읍’이 십 리로세.
* 괄리들의 관복에 늘어뜨려 차던 옥
* 왕소군의 꽃다운 혼
숯막에 들렀더니 하인이 달려와서
무슨 기별 왔다는데 석방 기별 내렸구나.
임금 은혜 망극하여 눈물이 흘러내려
문서를 손에 쥐고 남쪽으로 절을 하니
함께 간 이 거동보소. 축하인사 거룩하다.
식전에 말을 달려 주인을 찾아가니
모든 이의 경사로다 광경이 끝이 없네.
죄를 면하였으니 죄 없는 이 되었구나.
임금의 은혜입어 이 세상을 다시 보니
삼천리 고향 땅도 지척이 아니런가.
재촉하여 짐 꾸리니 군산월이 찾아온다.
선연한 거동으로 웃으면서 축하하네.
“나으리 유배 풀려 정말정말 감축하오.”
‘칠보산’ 우리 인연 춘몽처럼 아득하다.
여기에서 너를 본 일 그것도 임금 은혜
그리움에 만난 정이 맛나고도 향기롭다.
본관의 거동 보소 삼현육각* 거느리고
이곳을 나오면서 축하하고 손잡으며
“김교리인가, 김학사인가, 성군의 은혜인가,
나도 이리 기쁘거든 임자야 오죽할까.
홍문관 교리 정든 사람에게 전하라 하기에
즉시 죄명 없애고 그 길로 나왔노라.”
이렇게 생각하니 감사하기 끝이 없다.
군산월을 다시 보니 새 사람 되었구나.
아픔으로 썩은 난초 옥화분에 옮겼구나.
먼지속의 야광주*가 박물군자* 만났구나.
매운바람 묻힌 칼이 뉘를 보고 나왔더냐.
꽃다운 어린 자질 임자를 만났구나.
금연화촉* 깊은 밤에 광풍제월* 닭 밝은 날
글 지으며 화답하고 술 생기면 술 나누니
정분도 깊거니와 호사도 끝이 없다.
* 피리가 둘, 대금, 해금, 장구, 북이 각각 하나씩 편성되는 풍류
* 어두운 데서 빛을 내는 구슬.
* 온갖 사물에 정통한 사람.
* 금으로 수놓은 병풍과 꽃다운 촛불(혼인한 남녀의 첫날밤)
* 비 갠 뒤에 부는 맑은 바람과 달
시월에 말을 타고 고향을 찾아 가니
본관의 성덕 보소 옷을 주고 종 보내며
이백 냥 노자 주고 군산월을 따르게 하여
떠나는데 하는 말이 “뫼시고 잘 가거라.
나으리 서울 가도 너를 멀리할까.
천리강산 큰 길에서 김학사 꽃이 되어
비위를 맞추면서 좋게좋게 잘 가거라.”
가마를 앞세우고 풍류 남자 뒤 따르니
왔던 길이 넓고 넓어 돌아가는데 흥이 난다.
‘길주읍’ 들어가니 본관의 거행 보소.
금연화촉 넓은 방에 음악이 가득하다.
군산월가 하나 되니 풍류 정취 가득하다.
곱고 고운 군산월이 금상첨화 되었구나.
새벽에 출발하여 ‘익병’에서 점심 먹고
푸른 바다 넓고 멀어 동쪽 하늘 끝이 없고
산들은 겹쳐 있어 하나하나 섭섭도다.
추풍에 가마 타고 ‘성진’으로 들어가니
북병사 마중 오고 두 군관이 합석하니
‘상읍’ 관가 군인으로, ‘길주’ 관청에서 혈색 좋네.
촛불이 영롱한데 북병사의 호강이라.
* 조선 북병영의 병마절도사
북병사 하는 말이
“학사와 같이 온 이 얼굴이 기이하다.
서울사람인가 북쪽사람인가. 청지기*인가 방자*인가.
이름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인고.
손 보고 눈 대보니, 잘난 남자* 처음보네.”
웃으며 대답하되 ‘봉도’ 아이 데려다가
밤중에 옮긴 후에 장가들어 살리겠소.
군산월이 숨었다가 풍악 중에 다시 오니
북병사 취한 후에 소리를 크게 하되
“김교리 청직이야. 내 곁에 이리 오라.”
명령을 거역 못해 공손히 나아가니
“손 내어라 다시 보자. 어찌 그리 기이한가.”
총모피 털토시*에 고운 손을 반만 내어
덥석 쥐려 할 때 뿌리치고 일어서니
계집의 좁은 소견 미련하고 매몰차다.
만일 사내라면 손 달라면 손을 주고
기쁘고 자연스런 마음으로 했겠지만
가뜩이나 수상하게 아래로 내려보고
군관이나 기생이나 찬찬히 보던 차에
매몰차게 뿌리치니 제 버릇이 없을쏘냐.
* 양반집 몸종
* 동헌의 몸종
* 남자 중 잘 생긴 사람(남자옷 입은 군산월)
* 말의 갈기와 꼬리의 털로 만든 토시
병사가 눈치 채고 “몰랐노라, 몰랐노라.
김학사의 여자인 줄 내 정녕 몰랐구나.”
모든 이가 크게 웃고 뭇 기생이 달려드니
아까 남자 몸이 이제 계집이 되었구나.
양색단 두루마기 옥판* 달아 멋을 내고
꽃밭*에 섞여 앉아 노래를 받아 주니
청강의 옥동*인가 꽃밭의 범나비냐.
닭 울자 일출 구경 망양정 올라가니
촛불에 꽃이 피고 옥잔에 술을 부어
마시고 취한 후에 동해를 건너보니
햇빛이 오르면서 붉은 바다 되는구나.
지척에서 해가 뜨고, 햇빛은 내 마음이다.
크게 음악 연주하고 태산을 굽어보니
구름 같은 이 내 몸이 성은도 망극하다.
북관을 몰랐다면 군산월이 어찌 올까.
* 빛깔이 서로 실로 짠 비단 장식품으로 쓰는 옥조각
* 기생
* 옥황상제의 궁궐에서 산다는 맑고 깨끗한 용모를 가진 가상적인 어린이
북병사를 이별하고 ‘마천령’ 넘어간다.
구름 위에 길을 두고 가마로 올라가니
군산월을 앞세우면 눈앞에 꽃이 피고
군산월이 뒤 세우면 뒤쪽에 선동*이라.
‘단천’에서 점심 먹고 ‘북청읍’ 숙소하니
한 밤중의 깊은 정은 굳고 굳은 언약이요,
태산 같은 인정이라.
‘홍원’에서 점심 먹고 ‘영흥읍’에 숙소하니
본관이 나와 보고 밥 보내고 대접하네.
고을도 크거니와 기생 음악 대단하다.
대 풍악이 끝난 후에 행절이를 잡아두니
행절이 거동보소, 곱고도 고울시고.
곱고 고운 연꽃 같고, 함께 하고픈 태도로다.
새벽에 길을 떠나 ‘고원’을 들어가니
수령이 반기면서 내달아 손잡으니
경사를 만났구나.
‘문천’에서 점심 먹고 ‘원산장터’ 숙소하니
‘명천’이 천여 리요, 서울이 육백 리라
주막집 깊은 밤에 한 시각을 새운 후에
새벽녘에 세수하고 군산월을 깨워내니
몽롱한 해당화가 이슬에 휘젓는 듯
이상하고 아름답다.
* 신선을 따른다는 동자
유정하면 무정하다.
“옛일에서 이르노니 네 잠깐 들어봐라.
예전에 제주목사 장대장이 임기 후에
정들었던 수청기생 버리고 나왔다가
바다를 건넌 후에 차마 잊지 못하여서
배 잡고 다시 가서 기생을 불러내어
비수 빼어 베어 버리고,
돌아와 대장 되어 오래 이름 남겼으니
나는 본래 문관이라 무관과 다르기로
너를 도로 보내는 게 이것이 비수로다.
내 말을 들어봐라,
내 본래 영남 출신 졸렬한 선비인데
기생을 데리고서 이천 리를 함께 했다가
예전도 없는 호강 끝나게 되었으니
기생 끼고 서울 가면 분수가 황송하고
모양이 고약하다.
부디부디 잘 가거라. 다시 볼 날 있으리라.”
군산월의 거동보소 깜짝이 놀라면서
원망하며 하는 말이
“버릴 심사 있었으면 중간에 못하여서
어린 사람 유혹하여 누구 없는 외로운 곳
게발로 집어 물어 던지듯이 버리시니
이런 일도 있습니까. 나으리 성덕으로
사랑이 배부르나 나으리 무정하여
바람 앞에 떨어지는 꽃잎이 되었구려.”
“오냐 오냐 나의 뜻은 그렇지 아니하여
십리 만 가잤더니 천 리나 되었구나.”
“저도 부모 있는 이별하는 심회로서
웃으며 그리 하오, 눈물로 그리 하오.”
새벽빛은 은은하고 가을 강은 반짝이는데
붉은 치마 눈물 흘려 학사머리* 희겠구나.
가마에 태워 보내 저 멀리 돌려보내니
천고에 악한 놈 나 하나뿐이로다.
말 타고 돌아서니 눈앞에 어른거린다.
남자의 마음인들 인정이 없을쏘냐.
이천 리의 긴 풍류를 잠깐 새에 놓쳤구나.
풍류도 잠깐이라 즐거움이 다하여서
슬픔만 남았구나.
*작자의 머리카락
안변원이 하는 말이 “어찌 그리 무정하오.
판관사*가 무섭던가, 남의 눈이 무섭던가.
장부의 헛된 마음 상하기 쉬우리라.
내 기생 봉선이를 남복시켜 앞세우고
‘철령’까지 동행하여 회포를 잊게 하소.”
봉선이를 불러드려 따라가라 분부하니
자태가 뛰어나도 군산월의 고운 모양
마음속에 깊었으니 새 얼굴보고 잊을쏘냐.
눈보라가 아득한데 ‘북천’을 다시 보니
봄바람에 피는 꽃이 진흙에 구르다가
가을 하늘 외기러기 짝 없이 가는 이라.
‘철령’을 넘을 적에 봉선이를 하직하니
애꿎은 이 내 몸이 하는 것이 이별이라.
“좋게 있고 잘 가거라. 다시 어찌 못 만나랴.”
가마타고 내 건너니 북도산천 끝이 난다
* 조선시대 정팔품의 토관직 문관 벼슬.
설움도 지나가고 인정도 끝이 나고
풍류는 끝이 나고 남은 것이 귀흥이라.
‘회양’에 점심 먹고 ‘금화’, ‘금성’ 지난 후에
‘영평읍’ 들어가서 ‘철원’을 밟은 후에
‘포천읍’ 숙소하고 서울이 어디인가.
귀흥이 도도하다.
갈 때는 녹음방초 올 때는 눈보라요,
갈 때에 백의러니 올 때에 관복이네.
귀양객이 어제러니 영주학사 오늘이야
술 먹고 말을 타니 풍월도 절로 나고
산 넘고 물 건너며 노래로 예 왔구나.
만사여생 이 몸이오, 천하호걸 이 몸이라.
‘축성령’ 넘어가니 ‘삼각산’ 반가워라.
해가 높이 솟았으니 귀흥도 높아 있고
나무에 서리꽃 피니 눈 위에 봄빛이라.
삼각에서 절을 하고 다락원에 들어가니
여관 주인 마주 나와 울음으로 반길 시고.
동대문 들어가니 임금님이 건강할사.
*만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모습
행장을 다시 차려 고향으로 갈 때에
‘새재’를 넘어서니 영남이 여기로다.
‘오천’서 밤새우고 ‘가산’에 들어가니
마을이 탈이 없고 예전 모습 그대로다.
어린 것들 반갑구나. 이끌고 안에 드니
애쓰던 늙은 아내 부끄러워하는구나.
어여쁘네 수득 어미* 군산월이 여기 왔나.
술잔에 술을 부어 마시고 취한 후에
삼천리 남북 고생 일장춘몽 깨었구나.
어와 김학사야, 그르다고 한을 마라.
남자가 겪을 일을 다하고 왔느니라.
강호에 편케 누워 태평하게 놀게 되면
무슨 한이 또 있으며 구할 일이 없으리라.
글 지어 기록하니 불러들 보신 후에
후세에 남자들은 다른 남자 부러워말고
이 내 노릇 하게 되면 그 아니 상쾌할까.
* 지은이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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