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전 가
권본 화전가(權本 花煎歌)
1. 서 사
어화 우리 벗들아, 화전놀이 하여 보세.
이 해가 어느 해냐, ○○년 길년이요,
이때가 어느 해냐, 춘삼월 좋은 시절
규중 깊은 곳에 우리 벗들아
아니 놀고 무엇하리.
오랜 세월 흐르는 물 허튼 인생
봄빛으로 빛을 내니
아래 윗마을 벗들 불러 화전놀음 가자꾸나.
흘러가는 물 같은 이 세월에
뜬구름 같은 우리 인생
일만하고 말자던가, 아니 놀고 무엇하리.
2. 여자 신세 탄식
신선 같은 풍채에다 고운 얼굴
호탕하고 기개 있는 남자가 되었던들
풍류 한량 본을 받아 좋은 의복 기워 입고
남경 가자 북경 가자, ○○ 가자 ○○ 가자.
꽃버들 풍경 구경하니 이 놀음도 할 만하고
팔도 한량 다 모였으니
남자들이 어디에 있던 만나지 않으리오.
활 잘 쏘는 김 한량과 술 잘 먹는 이 한량이
가는 곳마다 만났으니 반갑도다.
틀림없이 서로 잘 들어맞아 쏘는 거동
호탕한 남자 되었으면 이 놀음도 할 만하고
청춘소년 젊은 때에
이 시대 제일가는 문장가를 벗을 삼아
풍류를 즐기면서 공부를 하였다가
소동파나 이태백과 함께 하는 시모임에서
장원으로 군림하면 이 놀음도 할 만한데
우습구나, 우습구나. 여자 한 몸 우습구나.
규중에 깊이 묻혀
얌전한 행실을 갖추라니 같을쏘냐.
우리 벗들 서로 만나 한번 놀기 어렵거든
무심하신 남자들아, 우리 말 좀 들어보소.
팔자 좋은 남자들이 부럽고도 애달프다.
소년이면 이름 날려 재주 있는 남자 되어
문장가와 명필 되려 포부 품어
혈기 방장 젊은 때에 한양 서울 올라가서
국가가 태평할 때 문무 과거 치를 게라.
출세하고 이름을 드높이 날릴 적에
과거에 급제하여 뜻한 바를 이루고서
번잡한 세속으로 달려들어
팔만 호 사람들이 살아가는 넓은 곳에
금 안장에 잘 달리는 말 비껴 타고
약주 석 잔 먹은 후에
꽃버들 구경하러 간다던가,
산천 구경 하자하고 천 리 승지 찾아가서
석 달 열흘 묵어가며 산천 구경 한다던가,
그리도 못 하오면 도화 시절 좋은 때에
마을 친구 고향 친구 웃음 웃고 마주 앉아
서편에서 술 마시며 시 모임에
동쪽에서 계 모임에 잔치를 한다건가,
앞 사랑에 장기바둑 뒤 사랑에 투전 골패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잇따라 모여 앉아
세력 좋게 놀음할 터이러니
팔자 좋은 남자 한 몸 이에 보니 부럽도다.
규중 안 여자라도 이리 놀 줄 알건마는
남자 놀음 열 가지에 한 가지도 못하오니
가소로운 여자 신세 어리고도 어린 마음
그 아니 애달픈가 애달프고도 애달프도다.
규중이 깊다 한들 몇 길이나 깊었던고.
십 리 출입 오 리 출입 마음대로 어이하리.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남편도 잘 섬기고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하며
규중의 여자 몸이 조심하기 그지없고
명주 길쌈, 삼베 길쌈, 길쌈 방적 골몰하다
이런 걱정 저런 걱정 어느 틈에 놀잔 말고.
추석 한가위와 설날 때는
봄날의 꿈인 듯이 만나보고
혼인 잔치 회갑 때는 번개같이 흩어지니
애달프도다, 우리 여자 한번 놀기 어렵더라.
금년도 그리 저리 명년도 그리 저리
아까워라, 이팔청춘 덧없이 허송할까.
무심한 저 세월에 걸린 고리 전혀 없네.
슬피 우는 저 두견아 너는 무슨 회포 많아
깊은 푸른 첩첩한 산에 밤낮없이 슬피 우나.
3. 새봄의 화전 계획
네 아무리 슬피 운들 세월 간 지 몰랐더니
나무하는 아이의 피리 소리
규중의 깊은 곳에 울려오니
애달픈 깊은 규중 화전 가서 풀어보자.
동창을 의지하고 적막히 앉았더니
어디서 오는 나비 푸른 하늘 지나다가
동군의 명을 받아 봄 기별 전하는구나.
홀연히 귀가 밝아 비단 창문 열고 보니
세상사에 썩는 마음 미물조차 아는구나.
어젯밤 삼경 초에 북두를 살펴보니
두병이 땅을 움직이니
온 세상이 삼월이 되었도다.
입춘 절기 지났으니 봄꽃 필 때 분명하다.
한식 절기 다가오니 좋은 삼월 분명하다.
반가워라 반가워라, 봄소식 반가워라.
춘하추동 네 계절에 춘삼월이 더욱 좋다.
오얏꽃 복숭아꽃 아래 봄밤 잔치에도
봄 춘자가 보기 좋다.
푸른 배에 석양 보며 배꽃 보는 봄날이니 꽃 화자가 보기 좋다.
우리나라 춘당대도 봄 춘자가 보기 좋다.
울긋불긋 두견화는 꽃 화자가 맛이 좋다.
따뜻한 봄 온갖 생물 흐드러진 시절이라.
동풍 소식 반갑구나.
희고 붉은 갖은 교태
따뜻한 봄 온갖 생물 흐드러진 시절이라.
놀아보세 놀아보세, 화전 하며 놀아보세.
남쪽 마을 북쪽 마을 윗마을 아랫마을
여러 얼굴 모여 보세.
길고 긴 봄날 긴긴 해에
화전 하자 의논하며 하는 말이
여자 벗들 서로 만나
깨우치고 타이르며 하는 말이
백 년 세월 헛된 인생 아니 놀고 무엇하리.
젊었을 때 고운 얼굴 덧없으니
온통 희게 센 머리가 장관이라.
이팔청춘 젊은 때에 우리 서로 청춘이라.
청춘에 못내 놀아
흰 머리에 아쉬운 한 말기지 말고
붉은 꽃이 아기자기 가득 필 제
좋게 한 번 놀아보세.
삼월 청명 못 놀고서 그 어느 때 놀잔 말고.
오월 유월 단오절은
푸른 버드나무에 그네뛰기 좋건마는
삼복의 뜨거운 날 화창한 날
너무 더워 못 놀러라.
팔월 구월 중추절은
노란 국화 붉은 단풍 좋건마는
앞 떨어진 나무에 그네 매기 가련하여
차마 차마 못 놀러라.
시월 동지 섣달에는 눈속 매화 좋건마는
눈 내리는 깊은 겨울 찬바람에
너무 추워 못 놀러라.
아마도 좋은 때는 춘삼월이 으뜸이라.
청명 한식 좋은 절기 이날로 정해 보세.
4. 화전놀음 기별
흰 편지지 골라내어 연상을 닦아 놓고
반월 연적 물 기울여 산수 동풍 먹을 갈아
왕희지의 필법으로 화전 통문 지어내어
남북 마을 집집마다 화전 가자 통지하니
그 통문에 하였으되
다른 말은 그만두고
기산의 물 깨끗하고 좋은 곳에
청명절 날을 받아
우리 벗들 성대하게 한 번 모여 보려니
갑갑함을 말로 풀어 보옵기를
천만다행 여기기를 바라노라.
하인에게 분부하여 남북 마을 통지하니
규중에 갇힌 벗들
미친 듯이 취한 듯이 야단일세.
아래 윗마을 벗들아, 이 내 말씀 들어보소.
층층 시부모 모시는 어려운 몸이 되어
부모 허락 받아 보세.
부모 침실 들어가서 두 무릎을 꿇고 앉아
거듭 절해 고마움에 비는 말이
모월 모일 아무 날에 화전 가자 통문 오니
명령을 내리시어 부디 허락 하옵소서.
시부모님 하는 말씀, 효녀로다, 너의 말이
모든 일에 순종하는 모든 행실
허락 않고 어찌하리.
부모 허락 받은 후에 기쁜 마음 둘 곳 없어
하마하마 그 날인가 손을 꼽아 기다린다.
그제 가고 어제 가니 나날이 잘도 간다.
오늘이 며칠이며 내일이 며칠인고.
기다리는 청명절은 화전 날이 분명하다.
황홀한 나의 심회 하루하루 길기만 하다.
5. 화전놀음 준비
어언간 순식간에 화전 날이 당도하니
반갑고도 반갑구나, 화전 날이 오늘일세.
놀이터가 절승지니 그 뉘라 마다하리.
아무리 그러한들 건
재미없는 풍류로 놀잔 말가.
옛 말씀에 하였으되
악양루도 배불러야 구경하는 법이라.
집집이 쌀을 내어 가지가지 떡이로다.
명월 같은 월편이며 동서남북 절편이며
늘어지는 인절미며 메밀 갈아 묵을 쑤고
집집이 가루 갈고 파를 내고 기름 모아
갖은 음식 갖추어서 경치 따라 놀음 가세.
이리저리 생각하니 어이어이 하잔 말고.
신기한 우리 놀음 세상 떠나 놀아보세.
일 년에 한 번 오는 날 노는 일이
단장 없이 나갈쏘냐.
침실에 들어가서 옥석경 앞에 두고
본디 고운 이내 얼굴 분단장을 앉아 하니
명월 같은 밝은 거울 동쪽 창문 열고 앉아
고운 얼굴 상대하며 인물 치장 야단일세.
단장을 어이할꼬, 팔자 눈썹 다스리며
고운 얼굴 성적분은 매화꽃 본을 받고
붉고 붉은 연지분은 목단꽃 닮아 있다.
아주까리 동백기름 머리 단장 곱게 하여
봄바람에 가는 버들 천연하게 흔들리니
푸른 구름 같이 틀었더라.
백옥 비녀 금비녀를 이걸 내어 꼽고 갈까.
옥반지 은반지를 이걸 내어 끼고 갈까.
꽃다운 단장 이 얼굴에 무엇무엇 입고 갈까.
오동 장롱 열어놓고 차례차례 내어놓아
송화색 줄저고리 이걸 내어 입고 갈까.
가야수 겹저고리 이걸 내어 입고 갈까.
초록 비단 푸른 치마 이걸 내어 입고 갈까.
연분홍 대단 당목 치마
이걸 내어 입고 갈까.
색색으로 찾아내어 철을 따라 입자 하니
갑사 치마 좋건마는 분홍치마 제격일세.
꽃처럼 달처첨 치장한 후
무엇을 신고 갈까.
보름새 세금 버선 이걸 내어 신고 갈까.
당목 보선 무명 버선 이걸 내어 신고 갈까.
보기 좋은 삼승버선 이걸 내어 신고 갈까.
삼노날 미투리를 이걸 내어 신고 갈까.
쌍코벵이 꽃당혜를 이걸 내어 신고 갈까.
치장 단장 다 끝내고 옥석경을 바라보니
인간 절색 여중 군자 천하절색 태도로다.
돋아오는 반달이요, 피어오른 꽃이로다.
그리저리 차려입고 화전놀음 가자꾸나.
산수 절승 넓은 곳에 그 어디로 가잔 말가.
산천 명승 살펴보니 그 어디로 가잔 말가.
동산으로 가자 하니 공자님이 놀으시고
서산으로 가자 하니 백이숙제 놀으시고
여유 있게 남산에서 놀자 하니
연명 처사 놀으시고
북산을 쳐다보며 놀자 하니
피맺힌 게 회포로다.
명승지 많건마는 어느 곳에 가잔 말고.
먼 데 승지 좋다 해도 거리 멀어 불평하니
우리들 노는 놀음 ○○산이 제일이라.
6. 화전놀음 출발
이팔청춘 고운 얼굴 누구누구 모였던고.
아랫마을 김서방댁 웃마을 박서방댁
뒷집에 큰며느리 앞집에 새며느리
북촌에는 늙은 처자 남촌에는 작은 처자
몸종 불러 앞세우고 화전놀음 가자 하니
은하수 막혀 막혀 견우직녀 그리다가
칠월칠석 당했던들 이보다 더 좋은가.
천리타향 먼먼 곳에
옛 친구를 만났던들 이보다 반가울까.
상쾌하네 이날이야, 즐겁구나 오늘이야.
기다리던 보람이야 이 아침이 황홀하다.
앞마을 썩 나서서 동네 어른 인사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앞에 서고 뒤에 서서
기묘한 바위와 괴상한 돌 서 있는 곳.
그 아니 좋을 손가.
산천 경치 둘러보니 경치조차 무궁하다.
산은 첩첩 쌓여있고 물은 철철 흘러난다.
임자 없는 산천 경치
달과 바람 주인 되어 즐겨 보세.
수양버들 쓸쓸한데 이것저것 후려잡고
새소리 이렁저렁 꽃나무 여기저기
왕손의 꽃다운 고운 풀만
푸릇푸릇 피어 있고
송이송이 피는 꽃은 벙긋벙긋 웃는구나.
희고 붉은 꽃들 흐드러지게 핀 중에
가지가지 봄빛이라.
수많은 산봉우리와 산골짜기 둘러보니
온갖 빛깔 고운 꽃이 붉어 있고
나무마다 벌레 소리 가지가지 나비로다.
어서 오소 바삐 오소, 꽃소식이 늦어가네.
발끝에 치맛자락 걸음걸음 훌쳐 안고
북소리에 발을 맞춰 걸음걸음 올라가서
좌우 산천 돌아보니
푸른 산에 맑은 물이 여기로다.
7. 산 속의 화전놀음
어서어서 둘러 모여
화전을 솜씨 부려 차려 보세.
두견화 꽃을 따다 짝짝이 편을 갈라
희고 고운 여인 손을 높이 들어
활짝 핀 붉은 꽃을 후려잡고
꽃을 뚝뚝 따는 모양 꽃과 꽃이 어울리네.
여기 사뿐 저기 사뿐 꽃잎 따며 노래하니
꽃 사이에 잠든 나비 소리 끝에 놀라 날고
숲속에 우는 새는 사람 자취 놀래더라.
붉은 꽃잎 어느덧 한 광주리 되었어라.
화전 굽세, 화전 굽세. 여러 모양 화전 굽세.
둥근 하늘 모난 땅 본을 받아
둥글게 구워 볼까.
아롱다롱 꽃을 섞어 보기 좋게 구워 볼까.
무럭무럭 김을 내어 먹기 좋게 구워 보세.
백설 같흔 밀가루와 놋저 같은 파를 섞어
넙적넙적 구워내니
빈 산에 밝은 달이 뜬 듯하다.
붉고 붉은 두견화를 아롱아롱 무늬 새겨
보기 좋게 구워내어 둘러앉아 맛을 보니
맛도 좋고 빛도 좋다, 이 솜씨가 뉘 솜씬고.
이리 굽고 저리 구워 솜씨 있게 구워낸다.
사각 소반 넓은 쟁반 한 쟁반 가득 구워 놓고
차례차례 맛을 보니 그 떡 맛이 어떠한고.
새봄에 피는 꽃이
먹어보니 산뜻한 맛이로다.
보기도 좋건마는 그 꽃 따서 떡 구우니
맛도 좋고 빛도 좋고 무늬 좋고 모양 좋다.
네모 납작 편떡이며 도리 납작 돈떡이며
둥글둥글 달떡이며 아롱아롱 꽃떡이야
모양도 눈에 맞고 입맛에도 맞는구나.
가늘고 가는 허리 맛대로 먹어보세.
칠팔월 호박적이 이보다 더 좋으며
팔구월 차노치가 이보다 더 좋으며
구시월 국화적이 이보다 더 좋으며
포릇포릇 쪽파적이 이 맛을 당할쏘냐.
○○○○ ○○○○ ○○○○ ○○○○
○○○○ ○○○○ ○○○○ ○○○○
먹다가 남았으니 남은 떡을 어이할꼬.
훤당의 늙은 부모 적막히 앉았으니
맛맛으로 가져다가 효성으로 봉양하세.
다 같이 부모 두고 그 뉘라서 흉을 보리.
오륙 세 어린 동생 인정으로 주어 보세.
다 같이 동생 두고 그 뉘라서 말을 하리.
그중에 ○○댁은 수치도 모르더라.
그 서방 주자하고 남모르게 몰래 싸네.
그중에 ○○댁은 염치도 모르더라.
손뼉 같은 넓은 떡을 냉큼냉큼 다 먹더라.
8. 꽃노래와 새노래
수많은 산봉우리와 산골짜기 붉은 꽃은
사랑도 끝이 없다.
머리에도 꽂아보고 입에도 물어보고
한 가지를 손에 쥐고 산유화를 노래하니
꽃아 꽃아, 물어보자. 너는 어찌 피었는고.
동군의 넓은 덕택 덕택 끝에 피었는가.
용왕이 물을 주어 조화 끝에 피었는가.
입춘 가고 한식 후에 벼랑에서 피었는가.
스물네 번 꽃 피려고 알리려는
바람끝에 피었는가.
꾀꼬리 우는 새는 봄날 흥취 자아내고
곳곳에 붉은 꽃이 봄날 정취 희롱한다.
풍경도 좋거니와 일기도 화평하다.
부느니 동풍이요, 넘노느니 나는 새로다.
산천 승지 좋은 곳에 화초가를 불러보세.
붉은 꽃 흰 꽃 잦아진 데 어느 꽃이 으뜸인고.
나라에서 제일 향나는 목련꽃은
꽃 중의 왕 되어 있고,
희고 고운 모래밭에 피어 있는 해당화는
꽃 중의 신선이 되어 있고,
초당 앞에 백일 동안 피어 있는
백일홍도 기이하다.
뒷동산 두견화는 어이 저리 붉었던가.
후원의 복숭아꽃 오얏꽃은
붉고 희게 잦아서 피어 있고
넓고 넓은 하늘에 핀 옥매화는
미인 단장 얼굴이요,
붉고 붉은 봉선화는 벙긋벙긋 웃는구나.
나라님이 내리시는 어사화는
당상관의 관복에 띠는 꽃이라.
○○○○ ○○○○ ○○○○ ○○○○
○○○○ ○○○○ ○○○○ ○○○○
삼천 곡조 우는 새는 어느 때가 으뜸인고
말 잘하는 앵무새는 길 위로 날아들고
빛 좋은 꾀꼬리는
무성한 나무 그늘에 벗 구하고
제비들 날아 강남에서 날아들고
촉혼조 두견새는 고국 산천 울어 있고
펄푸드득 나는 꿩은 무정한 세월 울어 있고
가련하다 종달새는 빈 산으로 울어 들고
듣기 좋은 풍덕새는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 든다 울어 있고
청천에 뜬 기러기는 북쪽으로 향하더라.
○○○○ ○○○○ ○○○○ ○○○○
○○○○ ○○○○ ○○○○ ○○○○
9. 화전놀음의 마무리
우리 벗들 서로 만나 즐기면서 놀아보세.
두둥실 춤을 추며 맵시 있게 놀아보세
지필묵을 가져다가 용지연에 먹을 갈아
희고 고운 손으로 붓을 잡아
흰 편지지 선화지에
가사 짓고 평을 하여
기쁘고 즐겁게 모여 놀아보세.
오늘날 우리 놀음 먹자고만 모였으리.
봄날에 봄바람 불 제 등산하여
봄날에 높고 귀한 지체가 되자 하고
높은 봉우리 올라가서 산천 경치 둘러보니
이때가 어느 땐고, 춘풍 삼월 좋을 때라.
석양 천지 기운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엷고 고운 저녁연기 남촌 북촌 흩어지고
수많은 산봉우리와 산골짜기 붉은 꽃은
어둠 속에 젖어 들고
머리 꽂힌 금비녀야, 너와 같이 늙지 말자.
석양 보고 우는 새는 수목 간에 날아들고
꽃가지에 놀던 새는 자취 없이 숨어 있다.
삼사월 긴긴 해가 어이 그리 쉬이 가노.
무정한 세월이 흐르는 물결 같단 말
이를 두고 이른 걸세.
꽃아 꽃아, 붉은 꽃아,
어지러이 꽃잎을 날리지 마라.
손에 낀 옥반지야, 너와 같이 변치 말자.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고
동쪽 언덕에 달이 솟네.
종일토록 놀던 풍정 파연곡이 되었구나.
꽃아 꽃아, 잘 있거라, 명년 봄날 다시 보자.
많은 정을 다 나누지 못했는데
서산에 해가 진다.
치맛자락 분홍 수건 고운 손을 서로 잡고
작별이야 작별이야, 이 작별을 하자 하니
잊지 못할 정과 회포 어찌 할꼬.
다만 회포가 남을 뿐이로다.
명년 삼월 꽃 피거든 부디부디 다시 보세.
아무 처자 아무 도령 혼인 잔치 만나보세.
늙지 말고 젊은 때에 후에 다시 만나보세.
아까워라 아까워라, 이별하기 아까워라.
찬찬한 저녁 연기 남쪽북쪽 흩어 있고
쌍쌍 지어 나는 새는 제집으로 찾아든다.
뒷기약을 다시 하고 어서 속히 집에 가자.
집에 계신 부모님은 저문다고 걱정한다.
이만하고 가자 하니 섭섭하기 그지없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슬픈 마음 먹지 말고
명년 기약 다시 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세.
서산에 지는 해를 뉘라서 말릴 손가.
섭섭한 이 말일랑 서로서로 하소연하며
명년 삼월 되거들랑 부디부디 만나보세.
그럭저럭 이별하고 각각이 돌아오니
연연하기 그지없고 섭섭하기 그지없다.
오늘 감회 풀 길 없어 규중에 깊이 앉아
화전가를 지어놓고 문장명필 자처하네.
젊고 고운 벗님들네 이 글 보고 웃지 말게.
첩첩이 쌓인 말씀 이만하고 끝이노라.
문장이 재주 없고
틀린 글자 대강 쓴 글 많으니
보느니 눌러보고 답가도 지어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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