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원목'
原牧(원목) ; 목민관의 근원
丁若鏞(정약용, 1762~1836)
신영산 옮김
牧爲民有乎, 民爲牧生乎.
民出粟米麻絲以事其牧, 民出輿馬騶從, 以送迎其牧, 民竭其膏血津髓, 以肥其牧.
民爲牧生乎, 曰否否, 牧爲民有也.
목위민유호 민위목생호
민출속미마사이사기목 민출여마추종 이송영기목 민갈기고혈진수 이비기목
민위목생호 왈부부 목위민유야
목민관은 백성들을 위해 있는 것인가, 백성들이 목민관을 위해 사는 것인가?
백성들이 곡식을 거두고 옷감을 짜내어 목민관을 섬기고, 가마와 말과 가마꾼을 내어 목민관을 보내고 맞이하며, 기름과 피를 뼛속에서 짜내어 목민관을 살찌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목민관을 위해 사는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
邃古之初, 民而已, 豈有牧哉.
民于于然聚居, 有一夫與鄰鬨莫之決, 有叟焉善爲公言, 就而正之.
四鄰咸服, 推而共尊之, 名曰里正.
수고지초 민이이 기유목재
민우우연취거 유일부여린홍막지결 유수언선위공언 취이정지
사린함복 추이공존지 명왈이정
아득한 옛날에는 백성들만 있었을 뿐이니, 어찌 목민관이 있었겠는가.
백성들이 넉넉해지면서 함께 모여 살게 되면서부터, 한 사람이 이웃과 다투게 되고,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게 되자, 말을 공정하게 잘하는 어른에게 가서 이 문제를 바로잡았다. 그러자 사방의 이웃들이 모두 감복하여, 이 어른을 함께 높여 추대하고, ‘이정’이라 이름하였다.
於是數里之民, 以其里鬨莫之決, 有叟焉俊而多識, 就而正之.
數里咸服, 推而共尊之, 名曰黨正.
數黨之民, 以其黨鬨莫之決, 有叟焉賢而有德, 就而正之.
數黨咸服, 名之曰州長.
어시수리지민 이기리홍막지결 유수언준이다식 취이정지
수리함복 추이공존지 명왈당정
수당지민 이기당홍막지결 유수언현이유덕 취이정지
수당함복 명지왈주장
이에 여러 마을의 백성들이, 마을에서 다투다가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자, 뛰어나고 지식이 많은 어른을 찾아가서 바로잡았다. 여러 마을이 모두 감복해서 이 어른을 함께 높여 추대하고, ‘당정’이라 이름하였다.
다시 한 무리의 백성들이 당을 만들어 싸우다가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자, 어질고 덕이 있는 어른을 찾아가서 바로잡았다. 여러 당이 모두 감복하여 ‘주장’이라 이름하였다.
於是數州之長, 推一人以爲長, 名之曰國君.
數國之君, 推一人以爲長, 名之曰方伯.
四方之伯, 推一人以爲宗, 名之曰皇王.
皇王之本, 起於里正, 牧爲民有也.
어시수주지장 추일인이위장 명지왈국군
수국지군 추일인이위장 명지왈방백
사방지백 추일인이위종 명지왈황왕
황왕지본 기어이정 목위민유야
그러다가 여러 고을의 주장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우두머리로 삼고, ‘국군’이라 이름하였다. 여러 나라의 국군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우두머리로 삼아 ‘방백’이라 이름하였다.
또 사방의 방백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우두머리로 삼고, 그를 ‘황왕’이라 이름하였다.
이렇게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 시작되었으니,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當是時, 里正從民望而制之法, 上之黨正, 黨正從民望而制之法, 上之州長.
州上之國君, 國君上之皇王.
故其法皆便民.
당시시 이정종민망이제지법 상지당정 당정종민망이제지법 상지주장
주상지국군 국군상지황왕
고기법개편민
이때에 이르러, 이정은 백성들의 바람에 따라 법을 제정하여, 당정에게 올렸고, 당정은 백성들의 바람에 따라, 법을 제정하여 주장에게 올렸다. 주장은 국군에게 올리고, 국군은 황왕에게 올렸다.
이 때문에 그때의 법은 모두 백성들을 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後世一人自立爲皇帝, 封其子若弟及其侍御僕從之人, 以爲諸侯.
諸侯簡其私人以爲州長, 州長薦其私人以爲黨正里正.
於是皇帝循己欲而制之法, 以授諸侯, 諸侯循己欲而制之法, 以授州長.
州授之黨正, 黨正授之里正.
후세일인자립위황제 봉기자약제급기시어복종지인 이위제후
제후간기사인이위주장 주장천기사인이위당정이정
어시황제순기욕이제지법 이수제후 제후순기욕이제지법 이수주장
주수지당정 당정수지이정
그런데 후세에는 한 사람이 스스로 일어서서 황제가 되었고, 자기 아들과 아우와 가까이 모시는 이들과 하인들을 모두 봉하여 제후로 삼았다.
제후들은 자기과 사사로운 사람들을 뽑아 주장으로 삼았고, 주장 역시 자기와 사사로운 사람들을 천거하여 당정과 이정으로 삼았다.
이에 황제는 자기 욕심에 따라 법을 제정하여 제후에게 내려주고, 제후는 자기 욕심대로 법을 제정하여 주장에게 내려주었다. 주장은 당정에게 내려주었고, 당정은 이정에게 내려주었다.
故其法皆尊主而卑民, 刻下而附上. 壹似乎民爲牧生也
今之守令, 古之諸侯也.
其宮室輿馬之奉, 衣服飮食之供, 左右便嬖侍御僕從之人, 擬於國君.
其權能足以慶人, 其刑威足以怵人. 於是傲然自尊, 夷然自樂, 忘其爲牧也.
고기법개존주이비민 각하이부상 일사호민위목생야
금지수령 고지제후야
기궁실여마지봉 의복음식지공 좌우편폐시어복종지인 의어국군
기권능족이경인 기형위족이출인 어시오연자존 이연자락 망기위목야
이 때문에 그 법은 모두 임금을 높이고 백성들을 낮추게 되었고, 아랫사람들 재물을 깎아 내어 윗사람에게 보태 주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백성들이 목민관을 위해 사는 것처럼 된 것이다.
지금의 수령은 옛날의 제후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궁궐처럼 받들어 모시고, 가마와 말을 바치며, 옷과 음식을 제공한다. 좌우에서 편하게 모시는 여인이나 내시나 노복들까지 국군과 견줄 만하다.
수령들의 권세와 능력은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형벌과 위엄은 사람을 두렵게도 할 수 있다. 이에 거만하게 스스로 높이고 태연하게 스스로 즐겨, 자신이 목민관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有一夫鬨而就正, 則已蹴然曰 : “何爲是紛紛也.”
有一夫餓而死曰 : “汝自死耳.”
有不出粟米麻絲以事之, 則撻之棓之, 見其流血而後止焉.
유일부홍이취정 칙이축연왈 하위시분분야
유일부아이사 왈여자사이
유불출속미마사이사지 칙달지부지 견기류혈이후지언
이제 한 사람이 싸우다가 이 문제를 가지고, 그에게 가서 바로잡아 달라고 하면, 얼굴을 찡그리고 말하기를,
“어찌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가?”
하고, 한 사람이 굶어 죽기라도 하면 말하기를,
“제 스스로 죽은 것일 뿐이다.”
라고 한다. 곡식을 거두고 베와 비단을 만들어 섬기지 않으면, 매질하고 곤장을 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친다.
日取筭緡, 曆記夾注塗乙, 課其錢布, 以營田宅.
賂遺權貴宰相, 以徼後利.
故曰 : “民爲牧生.”
豈理也哉, 牧爲民有也.
일취산민 역기협주도을 과기전포 이영전택
뇌유권귀재상 이요후리
고왈 민위목생
기리야재 목위민유야
날마다 돈을 계산하고 장부를 작성하면서, 돈과 베를 거둬들여 밭과 집을 마련한다. 그리고 권세가나 재상에게 뇌물을 보내, 훗날의 이익을 도모하곤 한다.
그러므로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 이치에 맞겠는가.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