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의 '장난삼아 농가의 가을 일을 읊다(희영전가추사 팔수)'
戲詠田家秋事 八首(희영전가추사 팔수) ; 장난삼아 농가의 가을일을 읊다
尹愭(윤기, 1741∼1826)
신영산 옮김
田夫(전부) ; 농사꾼
田夫喜有秋 전부희유추 농사꾼들 풍년이 들었다고 기뻐하며
刈稻引朋儔 예도인붕주 여러 벗들 이끌고 논에 가서 벼 베누나.
鄙俚恣諧謔 비리자해학 속되고 익살스럽게 제멋대로 농을 하며
謳謠任唱酬 구요임창수 농사 노래 마음대로 부르면서 주고받네.
磨鎌無使鈍 마겸무사둔 낫을 갈아 무디지 않게 하고
吸草有時休 흡초유시휴 담배를 피워 물며 이따금 쉬었더라.
指點仍相語 지점잉상어 익은 벼를 가리키며 말 나누며 걱정하길
得如去歲不 득여거세불 작년만큼 수확하지 못하면 어찌할까.
田婦(전부) ; 농가의 아낙
農家年少婦 농가연소부 농가의 나이 젊은 아낙들은
出野亦羞人 출야역수인 들판에 나갈 때도 수줍으니
逐伴悤悤步 축반총총보 종종걸음으로 사람들은 따라 걷고
裹頭箇箇巾 과두개개건 모두들 머리에는 수건으로 싸맸더라.
犬隨遙饁午 견수요엽오 개를 따라 들밥을 내가고
鷄唱獨炊晨 계창독취신 닭이 울 때 혼자서 새벽밥을 지었다네.
日暮恒先返 일모항선반 해 저물 때 늘 먼저 돌아오며
兒飢啼必頻 아기제필빈 아이들이 배고프다 울까 봐 근심하네.
村翁(촌옹) ; 시골의 할아범
村叟苦無睡 촌수고무수 시골 사는 할아범은 잠 없으니
晨興但吸煙 신흥단흡연 새벽에 일어나 담배만 피우더라.
恐差今日事 공차금일사 오늘 할 일 못 마칠까 염려되어
喚起一家眠 환기일가면 식구들을 모두 불러 아침잠을 깨웠다네.
牽犢隨前澗 견독수전간 송아지를 앞 시내로 끌고 가서
杖鳩望遠田 장구망원전 지팡이를 짚으면서 먼 밭을 바라보네.
兒孫自勤力 아손자근력 자손들이 스스로 부지런히 일하여서
只願飽殘年 지원포잔년 남은 생애 배불리 지내기를 바란다네.
村嫗(촌구) ; 시골의 할멈
村姆布裳短 촌모포상단 시골 할멈 몽당 삼베 치마 입고
齒空眼復昏 치공안불혼 이빨은 다 빠지고 눈도 역시 어둡지만
曬禾收散粒 쇄화수산립 볏단을 말릴 때면 흩어진 낟알 줍고
摘豆助晨飧 적두조신손 콩을 따다 새벽밥에 지을 때에 보탰더라.
夜碓隨諸婦 야대수제부 밤에는 며느리들 따라서 방아 찧고
暄簷弄稚孫 훤첨롱치손 따뜻한 처마에서 손자들의 재롱본다.
暮年多苦緖 모년다고서 늘그막에 괴로운 일 많더라도
時與隣婆論 시여린파론 이따금 이웃집 노파 찾아 하소연하지.
村兒(촌아) ; 시골 아이들
兒童亦何識 아동역하식 시골 사는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냐만
秋後喜年豐 추후희년풍 가을 되니 풍년든 것 기뻐하여
隨饁奔跳競 수엽분도경 들밥 내는 에미 따라 앞다투어 달려가고
呼朋嬉戲同 호붕희희동 동무 불러 즐거이 어울려서 노는구나.
取魚梁竭水 취어량갈수 물 마른 징검다리에서 물고기를 잡았다가
驅雀矢拈蓬 구작시념봉 쑥대 화살 손에 쥐고 참새를 쫓아가누나.
每候隣翁睡 매후린옹수 매번 이웃 할아범이 잠든 틈을 살피다가
偸來虬卵紅 투래규란홍 잘 익은 붉은 감을 남몰래 따오더라.
乞客(걸객) ; 얻어먹는 이들
民多無本業 민다무본업 백성 중에 일이 없는 이들이 많았으니
秋後乃如狂 추후내여광 가을이 지난 뒤에 미치광이 되었더라.
村老時時乞 촌로시시걸 시골의 늙은이는 때때로 구걸하고
山僧處處忙 산승처처망 산승은 곳곳에서 바쁘게 시주받네.
滯遺伊寡婦 체유이과부 홀어미들 이삭을 주우러 다니는데
果酒又諸商 과주우제상 장사치는 과일이나 술을 팔러 다닌다네.
最怕深宵裏 최파심소리 무엇보다 무서운 건 깊고 깊은 밤중에
偸兒暗伺傍 투아암사방 엿보다가 아이를 훔쳐 가는 것이라네.
監者(감자) ; 감독하는 지주
霜落黃雲野 상락황운야 황금빛 들녘에 서리가 내릴 적에
主人處處監 주인처처감 땅 주인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감독하지.
斗量分剖細 두량분부세 거둔 곡식 꼼꼼하게 일일이 말로 되고
束數照憑咸 속수조빙함 볏단 수를 모두 세어 일일이 확인하네.
談古心嫌小 담고심혐소 예전보다 수확이 부족한가 걱정하며
防奸視不凡 방간시불범 농간을 막으려는 눈빛이 범상치 않네.
午盤鷄酒爛 오반계주란 점심상에 닭과 술을 푸짐하게 올려주어
猶得慰窮饞 유득위궁참 굶주린 농사꾼들 배속을 위로하더라.
作者(작자) ; 소작인들
無田食人土 무전식인토 밭이 없어 남의 땅을 겨우 부쳐 먹으니
秋屆割黃雲 추계할황운 가을 되면 황금 들녘 거둔 것을 나눠야 하네.
用盡終年力 용진종년력 한 해 내내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데
輸他一半分 수타일반분 절반은 주인에게 바쳐야 한다더라.
欺偸嫌小小 기투혐소소 속여가며 훔치지만 적을까봐 염려하고
零剩喜紛紛 영잉희분분 남긴 것이 많게 되면 무척이나 기뻐하네.
藁稈留餘粒 고간류여립 볏단에 알곡이 남아 있으면
猶堪詑細君 유감이세군 그나마 아내에게 자랑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