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시,부

송규빈의 '무자년 가을에 거지를 보고 슬퍼하다(무자추애개자)'

New-Mountain(새뫼) 2022. 5. 2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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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子秋哀丐者(무자추애개자) ; 무자년 가을에 거지를 보고 슬퍼하다

 

宋奎斌(송규빈, 1696~1778)

신영산 옮김

 

 

宋梅谷奎斌 字爾衡              송매곡규빈 자이형

慷慨有器幹 嘗上疏論時務  강개유기간 상상소론시무

戊子秋哀丐者詩曰               무자추애개자시왈

     매곡 송규빈은, 자가 이형이다.

     강개하고 기량과 재간이 있었기에, 일찍이 상소하여 시무를 논하기도 하였다.

     ‘무자년(1768) 가을에 거지를 보고 슬퍼하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秋容焂廖廓 추용숙료곽   가을 되니 풍경은 어느덧 쓸쓸해지고,

溪閣漸生凉 계각점생량   시냇가 누각에도 서늘함이 감도누나.

萬實垂成日 만실수성일   온갖 곡식 햇볕 아래 드리워서 익어가니,

黃雲四野張 황운사야장   황금 물결 구름처럼 온 들판에 일어났도다.

嗟爾何處人 차이하처인    “아아! 그대들은 어느 고을 사람이기에,

扶挈到此方 부설도차방     부축하고 이끌면서 이 고을에 이르렀는가?”

 

云是東峽民 운시동협민   답하기를, “우리는 동협 사는 사람들로,

無食離家鄕 무식리가향     먹을 것이 없었기에 고향을 떠났습죠.

四月下霜雹 사월하상박     사월에는 서리와 우박이 내렸고,

五月遍螟蝗 오월편명황     오월에는 메뚜기 떼 온 밭에 번졌다오.

才經催剝餘 재경최박여     꺾여지고 벗겨지니 껍질만 겨우 남고,

又逢蟲損傷 우봉충손상     그것도 벌레 만나 큰 손실을 보았지요.

始從瀧上黍 시종롱상서     처음에는 갯가 옆의 밭에 심은 기장부터,

迤及水中秧 이급수중앙     이어져서 논에 심은 벼에까지 미쳤네요.

根穗皆蝕盡 근수개식진     뿌리며 이삭이며 모두 갉아 먹었기에,

處處莽空場 처처망공장     곳곳마다 빈터에는 거친 풀만 우거졌네요.

半歲費辛苦 반세비신고     반년 동안 모질게 고생을 하였지만

逢秋却成荒 봉추각성황     가을 되니 도리어 황무지가 되었다오.

十□皆呼饑 십구개호기     열 식구 모두 배고프다 호소하는데,

焉望有蓋藏 언망유개장     어찌 저장할 음식을 바랐겠소.

東家鬻牛馬 동가육우마     동쪽의 집에서는 말과 소를 팔았고,

西隣伐棗桑 서림벌조상     서쪽 이웃은 대추에 오디까지 따더군요.

糴期忽已迫 적기홀이박     환자를 갚은 때가 홀연 이미 닥쳐왔고,

身布又遑遑 신포우황황     신포까지 또 내라니 급하고도 급해졌죠.

官差猛如虎 관차맹여호     관아에서 온 놈들은 사납기가 범 같아서,

臨門肆槍攘 임문사창양     문 앞에 이르러서 멋대로 창 휘두릅디다.

環顧一室中 환고일실중     온 집안을 한 바퀴 휘 둘러 본다 해도

四壁惟頹墻 사벽유퇴장     네 벽에는 오로지 무너진 담뿐이네요.

深恐連縷洩 심공연루설     오랏줄에 묶여갈까 몹시도 두려워서,

盡賣弊衣裳 진매폐의상     다 해진 옷가지도 모두 팔았답니다.

哀哀幼稚哭 애애유치곡     슬프고도 슬펐지요, 아이들은 울어대며,

索飯呼爺孃 색반호야양     밥 달라며 애비와 에미를 찾았어요.

安土豈非願 안토기비원     내 땅에서 편히 살기 어찌 원치 않겠으며,

故鄕拒可忘 고향거가망     고향을 어찌 잊을 수 있었으리오.

甁無一粒粟 병무일립속     쌀독에는 한 톨이 곡식이 없었으니,

將何繼秕慷 장하계비강     장차 어찌 쭉정이인들 이어갈 수 있으리오.

一日不再食 일일부재식     하루에 두 끼를 먹을 수 없었기에

立地見危亡 입지견위망     땅에 서도 위태하여 죽음이 보였네요,

難於坐待死 난어좌대사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기도 어렵기에,

百計費商量 백계비상량     별별 계책을 헤아려도 소용이 없었다오.

率眷作流丐 솔권작류개     가족들을 거느리고 비렁뱅이 되려 하니,

天壤何茫茫 천양하망망     천지가 어찌 그리 막연하고 아득한가요.

痛哭辭故里 통곡사고리     통곡하며 정든 고향 마을을 떠나면서

血淚西白楊 혈루서백양     피눈물을 서쪽의 백양나무에 뿌렸지요.

傳聞他郡邑 전문타군읍     소문으로 듣자 하니 다른 고을에는,

往往登豊穰 왕왕등풍양     이따금 풍년이 들었다 하더이다.

我土獨何辜 아토독하고     우리 고을에는 무슨 허물 있었기에

毒災偏一坊 독재편일방     이리 독한 재앙이 여기에만 치우쳤나요.

地荒民四散 지황민사산     땅은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흩어졌으니

公私貽深殃 공사이심앙     공적으로 사적으로 깊은 재앙을 입었다오.

日月雙轉轂 일월쌍전곡     해와 달이 바퀴처럼 함께 구르고 굴러서,

流光落嚴霜 유광락엄상     세월 흘러 된서리 내리는 계절인데

旣無家與食 기무가여식     이제는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으려니,

半夜泣路傍 반야읍로방     한밤중에 길섶에 누워 울 뿐이라오.

流離不定居 유리부정거     정처 없이 흐르고 떠돌아다니다가,

溝壑任仆疆 구학임부강     도랑에 쓰러져서 엎어질 것이겠죠.”

 

老我聞此言 노아문차언   늙은 이 몸이 이 말을 들으면서

不覺涕盈匡 불각체영광   눈물이 가득한 걸 깨닫지 못했더라.

天心爲至公 천심위지공   하늘에서 품은 뜻은 지극히 공평하여,

好生本無疆 호생본무강   살리기를 좋아함이 본시 그지없었는데

古今有災珍 고금유재진   예나 지금이나 재앙이 있었으니

流行本無常 유행본무상   세상은 변하리니 본래 무상한 것이리라.

儉歲何代無 검세하대무   흉년이 어느 때인들 없으리오만,

救荒賴發倉 구황뢰발창   흉년 들면 구제하려 창고를 열었다네.

立視不拯溺 입시부증익   물에 빠진 사람을 서서 보고 건지지 않는다면

焉用彼黃堂 언용피황당   저 높은 관아를 무엇에 쓰리오.

黃堂皆如此 황당게여차   관아가 모두가 이와 같다면,

黎民安所望 여민안소망   백성들은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牧御非小可 목어비소가   다스리고 돌보는 게 작은 일이 아니러니

何不揀否臧 하불간부장   훌륭한 자 나쁜 자를 가리지 않겠는가?

若究災與祥 약구재여상   재앙이나 상서로움 이유를 살피자면

必先理陰陽 필선리음양   반드시 어렵고 넉넉함을 헤아림이 먼저로다.

百里亦君恩 백리역군은   한 지방을 맡게 됨도 또한 임금의 은혜이니,

愼勿汚賄贓 신물오회장   뇌물 받고 더러운 짓 말아야 할 것이라.

愛民如愛子 애민여애자   백성을 사랑하기 자식 사랑하듯 하면,

何恤外至謗 하휼외지방   밖에서 오는 비방 어찌 근심이 되겠는가?

嘆息復嘆息 탄식복탄식   탄식하고 다시금 탄식을 하였지만,

何以濟札傷 하이제찰상   죽어가는 백성들을 무엇으로 구제하리오?

靜念無他道 정념무타도   조용히 생각해도 다른 방도 없으리니,

莫如得人昌 막여득인창   큰 인재를 널리 구하는 일밖에는 없으리라.

 

* 동협 ; 경기도 동쪽 지방과 강원도 지방.

* 신포 ; 병역이나 부역 대신에 바치던 무명이나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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