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파지 마을 아전(파지리)'
波池吏(파지리) ; 파지 마을 아전
丁若鏞(정약용, 1762~1836)
신영산 옮김
吏打波池坊 이타파지방 관아의 아전놈들 파지 마을에 들이닥쳐,
喧呼如點兵 훤호여점병 군사들 점호하듯 시끄럽게 부르더라.
疫鬼雜餓莩 역귀잡아표 돌림병에 굶주림에 죽은 시체 뒤섞이어,
村墅無農丁 촌서무농정 마을에는 농사지을 장정 하나 없었구나.
催聲縛孤寡 최성박고과 고아 과부 고함치며 다그쳐서 묶은 뒤에
鞭背使前行 편배사전행 채찍으로 등을 쳐서 앞에 세워 끌고 가네.
驅叱如犬鷄 구질여견계 개처럼 닭처럼 욕을 하며 몰아가며
彌亘薄縣城 미긍박현성 읍내까지 묶인 사람 줄지어 가는구나.
中有一貧士 중유일빈사 그중에 가난한 선비 하나 있었는데,
瘠弱最伶俜 척약최영빙 야위고 약했어도 영리하고 호방하여
號天訴無辜 호천소무고 하늘을 부르면서 죄 없음을 호소했지.
哀怨有餘聲 애원유여성 “슬프고 원통하니, 할 말이 남았다오.”
未敢敍衷臆 미감서충억 가슴에 맺힌 마음 풀어내지 못한 채로
但見涕縱橫 단견체종횡 다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데,
吏怒謂其頑 이노위기완 아전놈이 화를 내며 “야, 이놈아.” 이르면서
僇辱怵衆情 륙욕출중정 사람들을 두렵게 하느라고 욕보이네.
倒懸高樹枝 도현고수지 높다란 나무에다 거꾸로 매어다니,
髮與樹根平 발여수근평 머리카락 나무뿌리 함께 땅에 닿는구나.
鯫生暋不畏 추생민불외 “미꾸라지 같은 놈이 무서운 줄 모르고서
敢爾逆上營 감이역상영 네 감히 감사의 명을 거역하려 하느냐?
讀書會知義 독서회지의 글줄이나 읽었으면 의리를 알 것이다.
王稅輸王京 왕세수왕경 임금께 바칠 세금 한양으로 보내려는데
饒爾到季夏 요이도계하 네 놈에게 말미 주어 늦여름이 되었어니
念爾恩非輕 염이은비경 네게 베푼 그 은혜가 가볍지 않았도다.
峩舸滯浦口 아가체포구 저 큰 배가 포구에 머물고 있는 것이
爾眼胡不明 이안호불명 네 놈 눈엔 어찌하여 보이지 않는 게냐?”
立威更何時 입위갱하시 아전들이 위세를 부리는 건 이때구나.
指揮有公兄 지휘유공형 이리저리 지휘하는 공형이 게 있었도다.
* 파지 ; 해남군에 있었던 지명
* 공형 ; 각 고을의 호장(戶長)·이방(吏房)·수형리(首刑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