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창의 '산골짝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협촌기사)'
峽村記事(협촌기사) ; 산골짝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
李建昌(이건창, 1852~1898)
신영산 옮김
1.
峽人豈好險 협인기호험 산골짝에 살아가니 어찌 좋아 산에 살리오.
野居無田宅 야거무전택 들녘에서 살자 해도 밭과 집이 없었지요.
靑山不拒貧 청산불거빈 푸른 산은 가난한 이 마다하지 않았으니
赤手來謀食 적수래모식 빈손으로 들어와서 먹을 것을 도모했다오.
烈炬燎灌莽 열거료관망 우거진 덤불 숲을 불을 놓아 태우고서
勁耒鑽磽𥕂 경뢰찬교척 거친 가래질로 척박한 땅 일구었죠.
皇天均雨露 황천균우로 하늘은 비와 이슬 고르게 내려주셔
歲課收粟麥 세과수속맥 매해마다 세금 낼 조와 보리 거뒀네요.
爲農誰不苦 위농수불고 농사짓기 누구인들 괴롭지 않으리오.
此穀眞堪惜 차곡진감석 이 곡식 먹자 하니 참으로 아깝더이다.
當盂不忍飽 당우불인포 밥그릇에 가득 담기 참을 수가 없었지만
暗喜盎中積 암희앙중적 항아리에 곡식이 채워지니 기뻤다오.
邇來逢穀貴 이래봉곡귀 근래에 곡식이 귀한 때를 만났으니
出山利販糴 출산리판적 산을 나가 곡식 팔아 이익을 보았지요.
前年買一犢 전년매일독 작년에는 송아지 한 마리를 사 왔고
今歲屋墁壁 금세옥만벽 올해에는 바람벽을 흙손으로 발랐어요.
且令兒有匙 차령아유시 더불어 아이에게 숟가락이 쥐어주니
寧可婦無幘 영가부무책 어찌 아내 위한 머리 수건 없으리오.
人生稍備物 인생초비물 사는 데 살림살이 조금씩 갖춰지니
如鷇方長翮 여구방장핵 새 새끼들 바야흐로 깃털 돋듯 하였네요.
豈敢望富厚 기감망부후 어찌 감히 부자 되고 넉넉하길 바라리오.
庶期償筋力 서기상근력 그저 일한 만큼 보상받기 기대했다오.
2.
此山無虎豹 차산무호표 이 산에는 호랑이도 표범도 없었으며
旁郡無盜賊 방군무도적 이웃한 마을에도 도적이 없었어요.
白晝屋中坐 백주옥중좌 그러다가 어는 대낮 집에 앉아 있었는데,
何意轟霹靂 하의굉벽력 벼락이 울리노니 이는 어떤 일인가요.
官校直入來 관교직입래 관아에서 나졸들이 곧장 달려 들어오니
未聲面先赤 미성면선적 소리도 지르기 전에, 얼굴 먼저 벌거네요.
皁衣肩半卸 조의견반사 검은 옷을 어깨에서 반쯤이나 풀어내고
紅縧手雙擲 홍조수쌍척 붉은 오랏줄을 두 손으로 던지데요.
撾翁與竊嫂 과옹여절수 노인들을 매로 치고 아낙들을 욕보이니
極口無倫脊 극구무륜척 말로는 이루 미처 말할 수 없었어요.
一辭那可鳴 일사나가명 한마디 말이라도 사정할 수 있었겠소.
生死繫拳踢 생사계권척 생사가 주먹질과 발길질에 달렸는데
罪狀且姑舍 죄상차고사 내 죄상이 무엇인지 알리지도 않으면서
財物先搜斥 재물선수척 재물부터 찾겠다고 먼저 집을 뒤지더이다.
瓮牖無藩蔽 옹유무번폐 가난한 집이기에 울도 담도 없는데도
何由得藏匿 하유득장닉 어디에다 감추거나 숨길 수 있으리오.
頃刻盡掃去 경각진소거 잠깐 사이 모든 것은 남김없이 쓸어가니
霜林風捲蘀 상림풍권탁 서리 내린 숲속에서 잎 날리듯 하였다오.
出門尙咆哮 출문상포효 그러고도 문을 나서 여전히 고함치니
餘怒猶未釋 여로유미석 남은 화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나요.
惡鬼生搏人 악귀생박인 악귀처럼 생사람을 잡아 묶어 버리니
隣里誰敢逼 인리수감핍 이웃의 누구인들 감히 가까이 오리오.
3.
山日翳將墜 산일예장추 산기슭에 해가 져서 뉘엿뉘엿 그늘지니
籬落異前夕 이락리전석 마을의 모습은 어젯밤과 달랐네요.
啼兒色半死 제아색반사 울던 아이 낯빛은 반쯤이나 죽어 있고
蹲犬猶喘息 준견유천식 움추린 개 오히려 숨 가쁘게 헐떡이네요.
何用更點檢 하용갱점검 다시금 쓸 것은 챙겨 봐야 무엇하리오.
空坑餘弊席 공갱여폐석 빈 구들에 다 해진 자리만 남았지요.
氣結不能歔 기결불능허 기가 막혀 탄식조차 할 수 없었으니
叩心復何益 고심복하익 가슴을 두드린들 무슨 소용 있으리오.
所悲力田久 소비력전구 슬픈 것은 농사에 오랫동안 힘썼기에
氣衰髮盡白 기쇠발진백 기운은 쇠진하고 머리 모두 세었지요.
已老不重少 이로불중소 이미 늙어 다시금 젊어질 수 없는 것처럼
已失難再得 이실난재득 이미 잃어 다시금 얻기가 어렵군요.
此地不可住 차지불가주 이 땅에서 다시 살아갈 수 없겠지만
舍此無所適 사차무소적 이곳을 버리고서 갈 곳도 없었네요.
城中多富人 성중다부인 성안의 부자들은 재산이 워낙 많아
破產猶得職 파산유득직 파산해도 오히려 일자리가 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