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재의 '산가서'
산가서(山家序)
- 산속에서 사는 뜻
길재(吉再, 1353~1419)
신영산 풀이
夫幼而學之, 壯而行之, 古之道也. 是以, 古今之人, 莫不有學焉.
若夫高蹈遠引, 㓗身亂倫, 豈君子之所欲哉.
然世旣有人, 則有如顔子陋巷自樂者焉. 時有不合, 則有如太公隱處海濱者焉.
然則其釣其耕, 詎敢譏哉.
부유이학지 장이행지 고지도야 시이 고금지인 막불유학언
약부고도원인 결신란륜 기군자지소욕재,
연세기유인 칙유여안자루항자락자언 시유불합 칙유여태공은처해빈자언
연칙기조기경 거감기재
무릇 어려서 배우고, 자라서는 행하는 것이 오래된 도(道)이리라.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배우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만약에 숨어 산다 하고 멀리 떠나, 제 몸만을 깨끗이 한다 하고 인륜을 어지럽힌다면, 어찌 군자가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러나 세상에 그러한 사람이 있었으니, 안연은 누추한 마을에 살면서도 스스로 즐거워했다. 때를 만나지 못했던 강태공은 바닷가에 숨어 살기도 했다.
그러하건데 낚시하고 농사를 지었던 그들을 어찌 비난할 수 있으리오.
余以至正之中, 卜宅于玆, 於今十餘年矣.
俗客不至, 塵事未聽. 伴我者山僧也, 識我者江鳥也.
忘名利之榮勞, 任太守之存亡, 慵則晝眠, 樂則吟哦,
但見日月之往來, 川流之不息.
여이지정지중 복택우자 어금십여년의
속객부지 진사미청 반아자산승야 식아자강조야
망명리지영로 임태수지존망 용칙주면 낙칙음아
단견일월지왕래 천류지불식
내가 지정 연간(1341~1361)에, 이곳에 집을 정했는데, 이제 십여 년이 되었도다.
속세에서 손님이 오지 않으니, 세상의 일을 듣지 못한다. 나와 함께하는 이는 산속의 스님뿐이고, 나를 알아주는 것은 강가의 새뿐이다.
명예와 이익에서 얻는 영화를 잊었으니, 원님을 맡은 자가 있건 없건 간에, 피곤하면 낮잠을 자고, 즐거우면 시를 읊는다.
오직 해와 달이 왔다가 갈 뿐이니, 강물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모습만 볼 따름이다.
有朋訪我, 則掃塵榻以待之, 庸流扣門, 則有下床而接之.
可以見君子和而不流之氣象也.
觀夫衆岫森列, 羣峯嵯峨.
恠石奇巖, 幽鳥異獸, 松風蘿月, 鶴唳猿啼.
유붕방아 칙소진탑이대지 용류구문 칙유하상이접지
가이견군자화이부류지기상야
관부중수삼렬 군봉차아
괴석기암 유조이수 송풍라월 학려원제
찾아오는 벗이라도 있으면, 평상을 덮고 있던 먼지를 쓸어 놓고 기다리고, 용렬한 자들이 문을 두드리면, 평상에서 내려가 맞이한다.
가히 화평하게 지내면서도 속된 이들과 휩쓸리지 않으려는 군자의 기상을 볼 수 있으리라.
산등성이는 빽빽하게 열을 지어 있고, 둘러싼 봉우리들은 우뚝 솟아 있다. 우람한 바위와 기괴한 돌과, 소리만 들리는 새와 기이한 짐승이 있고, 소나무에는 바람이 불고 덩굴에는 달이 비치며, 학과 원숭이가 울곤 한다.
山寒欲秋, 月淡將夕.
於斯時也, 寒心爽志, 想其神禹奠高山之功也,
江風不起, 波濤不興, 蕩蕩洋洋,
浩浩湯湯, 白鷗錦鱗, 悠然而逝, 商帆相望, 漁歌互答.
於斯時也, 棹頭浪吟, 想其神禹治洪水之功也,
산한욕추 월담장석
어사시야 한심상지 상기신우전고산지공야
강풍불기 파도불흥 탕탕양양
호호탕탕 백구금린 유연이서 상범상망 어가호답
어사시야 도두랑음 상기신우치홍수지공야
산이 싸늘해지면 가을이 오는 것이고, 달빛이 희미해지면 장차 저녁이 되려는 것이다.
이럴 때는 냉철한 마음과 맑은 뜻으로 우임금이 높은 산에 제사를 지내던 공로를 생각해 본다.
강바람이 불지 않아 물결조차 일어나지 않으니, 강물은 아득하게 멀고도 드넓기만 하다.
물살이 넘실거리면, 흰 갈매기와 비단 같은 물고기가 여유롭게 움직이고, 유유히 지나가는 돛단 장삿배들은 뱃노래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때 고개를 끄덕이며 낭랑하게 시를 읊으며, 홍수를 다스렸던 우임금의 공로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泉水淵淵, 可以療渴, 河水浼浼, 可以濯纓.
若夫有酒醑我, 無酒酤我, 獨酌獨飮.
自唱自舞, 山鳥是我歌朋也, 簷燕是我舞雙也,
登高望遠, 則想吾夫子登泰山之氣象, 臨流賦詩, 則學吾夫子在川上之咏歎.
천수연연 가이료갈 하수매매 가이탁영
약부유주서아 무주고아 독작독음
자창자무 산조시아가붕야 첨연시아무쌍야
등고망원 칙상오부자등태산지기상 임류부시 칙학오부자재천상지영탄
샘물은 졸졸 넘쳐나니 가히 갈증을 달랠 만하고, 강물은 넘실넘실 흘러가니 갓끈을 씻을 만하다.
마침 술이 있으면 몸소 거르고, 술이 없으면 몸소 술을 사 와서, 혼자 따라서 혼자서 마신다.
혼자서 노래하고 혼자서 춤을 추니, 산새들은 내 노래 친구가 되었고, 처마 밑의 제비들은 내 춤의 짝이 되었도다.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며, 공자께서 태산에 올랐을 때의 기상을 그려보고, 물가에 이르러 시를 지으며, 공자께서 강가에서 탄식한 것을 배우노라.
飄風不起, 容膝易安,
明月臨庭, 獨步徐行, 簷雨浪浪, 或高枕而成夢, 山雪飄飄, 或烹茶而自酌,
표풍불기 용슬이안,
명월임정 독보서행 첨우랑랑 혹고침이성몽 산설표표 혹팽다이자작
거센 바람도 일어나지 않으니, 무릎이 겨우 놀릴 좁은 방도 편안하기만 하다.
밝은 달이 뜰에 비추면 홀로 느릿느릿 거닐고, 처마에서 빗물이라도 뚝뚝 떨어지면 이따금 베개를 높이 베고 꿈이라도 꾸며, 산 위로 펄펄 눈이라도 날리면, 가끔 차를 끓여 홀로 마시기도 한다.
若乃春日暄姸, 禽鳥和鳴, 草樹菲菲, 採蘩祈祈.
楊柳絮飄, 桃李花開, 携其一二同志, 浴乎沂風于舞雩.
或以蒼鷹猛犬, 騎白馬而發金鏃, 或以綠蟻嘉肴, 策黎杖而趁花竹.
약내춘일훤연 금조화명 초수비비 채번기기
양류서표 도리화개 휴기일이동지 욕호기풍우무우
혹이창응맹견 기백마이발금족
혹이록의가효 책려장이진화죽
봄 날씨가 따뜻하고 아름다워지면, 지저귀는 뭇 새들과 서로 화답하고, 풀과 나무가 우거지면, 조용히 자라난 쑥나물을 캐러 간다.
버들개지 바람에 날리고, 복숭아꽃 오얏꽃이 피어나면, 한두 친구를 데리고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 언덕에 올라 바람을 쐰다.
이따금 푸른 매며 사나운 개를 데리고, 흰 말을 타고 금빛 화살 쏘며 사냥을 하러 간다.
때로 술지게미에 좋은 안주가 마련되면, 청려장을 짚고서 꽃밭과 대나무 숲을 찾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夏日薰蒸, 暑炎逼人, 則駕雲帆歸江湖.
薄暮微凉, 踈雨散絲, 則荷耒鋤歸田園.
至於秋霖初霽, 酷熱已解, 百稻皆熟.
하일훈증 서염핍인 칙가운범귀강호
박모미량 소우산사 칙하뢰서귀전원
지어추림초제 혹열이해 백도개숙
다시 찌는 듯한 여름날이 되어, 더위가 사람들을 괴롭히면, 돛을 단 배를 타고 강호로 찾아간다.
땅거미가 내려 서늘해져 성긴 빗발이 실처럼 흩날리면, 쟁기를 메고 논밭으로 돌아간다.
가을장마가 걷히고 무더위가 가시면, 모든 곡식이 모두 익게 된다.
鱸魚初肥, 偏坐漁舟, 直下絲綸, 從流而下, 溯流而上.
蘆花索索, 菰風細細, 煙雨明滅, 雲水汪洋, 浩蕩萬里, 其誰能馴.
又其風雪打窓, 冬氣慄烈, 或擁爐而開酒甕, 或開卷而事天君.
노어초비 편좌어주 직하사륜 종류이하 소류이상
노화색색 고풍세세 연우명멸 운수왕양 호탕만리 기수능순
우기풍설타창 동기율렬 혹옹로이개주옹 혹개권이사천군
농어들이 살이 찌니, 고깃배에 비스듬히 앉아, 낚싯줄 드리운 채 물결 따라 내려가기도 하고, 거슬러 올라오기도 한다.
갈대꽃은 버석버석 흔들리고, 줄풀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안개비는 오락가락하고, 떠다니는 구름과 흐르는 물은 늠실늠실 호탕하게 만 리를 달려가니, 그 누가 능히 막을 수 있으랴.
또 눈보라가 창문을 때리고, 겨울의 기운이 매서워지면, 때로는 화로를 끼고 앉아 술동이를 열기도 하며, 책을 펴고 마음을 가다듬기도 한다.
卓乎無邊而從容自樂者, 豈非隱者之所樂哉,
然所樂豈在是歟, 箇中之樂, 吁其微矣哉,
탁호무변이종용자락자 기비은자지소락재
연소락기재시여 개중지락 우기미의재
우뚝하고 드넓은 천지에서 홀로 조용히 즐기는 것이, 어찌 은자가 즐기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어찌 이런 것만 즐거워할까. 그러한 즐거움이란, 아아, 보잘것없는 것이리라.
有客來告於余曰 :
“今余到此, 氣象千萬.
子於此而闊於事情者也, 今又一循乎外, 而出入起居, 惟意所適.
出則釣于江耕于歷, 以承順父母, 入則講其書樂其道, 以尙于古, 疑作尙友千古.
然則眞無憂者也.”
유객래고어여왈
금여도차 기상천만
자어차이활어사정자야 금우일순호외 이출입기거 유의소적,
출칙조우강경우력 이승순부모 입칙강기서락기도 이상우고 의작상우천고
연칙진무우자야
어떤 손님이 와서 내게 말하였다.
“이제 내가 여기 와 보니, 풍경이 천만 가지이외다. 그대는 여기에서 세상의 사정에 어두워도,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며 살기를,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구려.
문을 나서면 낚시를 드리우고 밭을 갈면서, 부모님을 공순하게 모시고, 집에 들어오면 책을 읽으면서 도를 즐기며, 옛사람을 벗으로 숭상하고 계십니다. 그러하니 진정 근심이 없겠소이다.”
余應之曰 :
“何以無憂乎. 居廟堂之上,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我則憂其民憂其君.”
여응지왈
하이무우호 거묘당지상 칙우기민 처강호지원 칙우기군
아칙우기민우기군
내가 그 말에 답하였다.
“어찌 걱정이 없겠나이까. 조정에 있으면 백성을 걱정하게 되고, 멀리 강호에 있게 되면, 임금을 걱정하는 법이지요. 나는 지금 백성을 걱정하고 임금을 걱정한다오.”
尋自反之曰 : “樂天知命, 我何憂乎.”
客忘言而退.
심자반지왈 낙천지명 아하우호
객망언이퇴
그리고 스스로 돌이켜 보며 말하였다.
“천명을 알고서 즐기고 있으니, 내게 무슨 걱정이 있으리오.”
이에 손님은 말없이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