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창의 '수당기', 원문과 풀이
수당기(修堂記)
- 벗의 집수리에 붙여 -
이건창(李建昌, 1852~1898)
신영산 풀이
余家沁海之濱, 元八居大湖之西. 相距數百里, 聞其名, 而思見其人蓋十年矣.
今乃相聚于京師, 喜可知也.
여가심해지빈 원팔거대호지서 상거수백리 문기명 이사견기인개십년의
금내상취우경사 희가지야
내 집은 강화도의 바닷가에 있었는데, 원팔은 대호의 서쪽에 살고 있었다. 그 거리가 수백 리나 되었기에, 그의 이름을 듣고서, 만나 보리라 한 지가 무릇 10년이나 되었다.
그런데 이제 서로 한양 땅에 모여 살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야 어떠했을지를 알 만하리라.
巷之以芹號者, 介于會賢長興兩坊之間. 如螺旋如蟻折, 狹陋不能容車馬.
而吾兩人寓其中. 每欲訪則出門, 披衣帶, 未結而屨先及.
煮數杯酒, 走赫蹄邀之, 酒未煖而笑口已開, 斯又可樂也.
항지이근호자 개우회현장흥량방지간 여라선여의절 협루불능용거마
이오량인우기중 피의대 매욕방즉출문 미결이구선급
자수배주 주혁제요지 주미난이소구이개 사우가락야
사람들이 흔히 ‘미나릿골’이라고 부르는 곳은, 대체로 회현방과 장흥방 사이에 끼어 있었다. 마치 소라 껍질 같고, 개미 허리 같기도 한 곳이어서, 수레와 말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곳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 가운데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가고 싶을 때면 문을 열고 나섰는데, 옷의 띠를 풀어 헤치고, 옷고름을 매기도 전에, 신발이 앞서 나가곤 했다,
몇 잔 술을 데우기라도 하면, 쪽지를 보내어 모셔오게 하였는데, 술이 미처 데워지기도 전에 입이 벌어진 채로 나타나곤 하였다. 이 또한 가히 즐거운 일이라 할 것이다.
然余與君, 俱世于鄕守先人之田廬
美蔭之木淸泉之流, 登高望遠之景, 皆足以自愉.
연여여군 구세우향수선인지전려
미음지목청천지류 등고망원지경 개족이자유
그런데 나와 군(원팔)은 모두 대대로 시골에서 살면서 조상이 남긴 땅과 집을 지켜온 자들이다.
아름답고 무성한 나무의 그늘과 맑은 샘물이 흐르는 것을,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곤 하였는데, 이 모두가 스스로 즐길 만한 것이었다.
門前, 海水直通, 風順潮盛, 可一日而往來.
如其得遇於廣遠淸閑之區, 放心遺形, 快然悉攄其平生.
則其樂又可勝言耶.
문전 해수직통 풍순조성 가일일이왕래
여기득우어광원청한지구 방심유형 쾌연실터기평생
즉기락우가승언야
문 앞까지 바닷물이 바로 통하였기에, 바람이 순조롭고 밀물이라도 밀려 오게 되면, 가히 하루 동안에도 오고 갈 수 있었다.
아득히 넓고도 조용하며 맑고도 한가는 곳에서 만나는 것 같았으니, 마음을 터 놓고 따로 형체도 남기지 않은 채로, 평생 품은 생각들을 남김없이 쏟아내곤 하였다.
그러한 즐거움이야 이루 다 말로 할 수 있겠는가.
擾擾終歲 不足以當山中之一月, 雖隔壁而居, 不如越陌度阡之爲有味.
塵埃眯人自令風神蕉萃.
而起居動止, 皆若有受制於無形之中. 不知何故而然也.
요요종세 부족이당산중지일월 수격벽이거 불여월맥도천지위유미
진애미인자령풍신초췌
이기거동지 개약유수제어무형지중 부지하고이연야
세상에서 어지럽고 소란하게 한 해를 보내는 것은, 산속에서 단 한 달을 사는 것만도 못할 것이고, 담을 두고 가깝게 지낸다 해도, 밭둑길을 넘어 다니는 맛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속의 흙먼지에서 어지럽게 살다 보면, 스스로 몰골이 초췌해지는 법이다. 그렇기에 행동거지는 마치 형체를 남기려 하지 않아도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살려는지 알 수 없다.
惟學道而幾於化, 能忘天下之萬物, 則可無患是矣.
甘於富榮, 以是爲性命, 則可以忘之矣.
內外高下, 耦無所獲, 而徒以朋友相慰藉. 如魚之相濡於沼中.
유학도이기어화 능망천하지만물 즉가무환시의
감어부영 이시위성명 즉가이망지의
내외고하 우무소획 이도이붕우상위자 여어지상유어소중
다만 오직 도를 배워서 조화의 이치에 가까워져, 능히 천하의 만물을 잊을 수 있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면, 이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으리라.
부귀와 영화를 달게 여겨서, 이것을 자신의 천성과 운명으로 삼는다면, 이와 같은 걱정들을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직과 외직, 높은 벼슬, 낮은 벼슬을 막론하고 도무지 얻은 것도 없는데, 다만 벗들과 서로 어울리고, 위로하고 의지하려고만 한다. 이는 마치 연못의 물고기들이 서로 깊은 곳으로 몰려드는 형상과 같다.
齷齪如余, 固無足談者.
雖以君之長才雋識, 將有施展於當世.
而聞余之說, 其亦必有悵然而不自得者矣.
君新補葺其寓舍囑, 余爲修堂之記, 再三不已.
악착여여 고무족담자
수이군지장재준식 장유시전어당세
이문여지설 기역필유창연이부자득자의
군신보즙기우사 촉여위수당지기 재삼불이
물론 나 같이 속이 좁은 사람이야, 진실로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팔은 뛰어난 재주와 풍부한 지식이 있어, 장차 세상을 위해 한번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내 말을 듣게 된다면, 섭섭하고 서운함이 느끼게 될 터이니 마음이 편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원팔은 거처하고 있는 집을 수리하고, 나에게 집을 수리한 내력을 적은 글을 지어 달라고, 두 번 세 번 거듭 부탁하였다.
人生天地間, 固無之而非寓.
然修堂之於君, 又寓之寓也.
旣不挈眷以隨, 無書籍之玩, 無器服什百之具. 數椽以庇風雨, 一鐺以供饔飧.
一日捲且歸, 則付之守者而已. 此焉用修之, 又焉用爲之記.
인생천지간 고무지이비우
연수당지어군 우우지우야
기불설권이수 무서적지완 무기복십백지구 수연이비풍우 일당이공옹손
일일권차귀 즉부지수자이이 차언용수지 우언용위지기
우리가 이 천지간에 태어났다는 것은, 우연히 머무르며 살지 못할 곳은 어디엔들 없다는 것을 뜻함이라.
그러하니 원팔에게 있어서 고친 집이란, 우연히 머물러 사는 인생에서도 또 우연히 머무는 곳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족을 데리고 오지도 않았고, 즐길만한 서적이 있지도 않으며, 기물이나 옷이나 여러 세간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서까래 몇 개로 비바람을 막을 뿐이고, 노구솥 하나로 먹을 밥을 지을 뿐이다.
어느 날이든 돌아가고 싶어진다면, 이 집을 지키려는 자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이러한데 장차 수리하여 무엇에 쓸 것이며, 더구나 글을 지어서 무엇에 쓴다는 말인가.
然昔郭有道過逆旅, 必爲之灑掃. 而人又從以識之曰, 此有道宿處.
夫若是, 則君之修之, 與余之記, 皆無不可者.
惟不書其堂之若干楹, 與夫月日者, 志其寓也.
연석곽유도과역려 필위지쇄소 이인우종이식지왈 차유도숙처
부약시 즉군지수지 여여지기 개무불가자
유불서기당지약간영 여부월일자 지기우야
하지만 옛날에 곽유도란 사람은 여관을 거쳐 갈 때마다, 반드시 쓸고 닦곤 하였다. 그랬기에 사람마다 이를 알아보고 이르기를, 여기가 곽유도가 묵고 간 곳이다고 하였다.
만약 사정이 이와 같다면, 원팔이 집을 다시 수리하고, 또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모두가 결코 불가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다 이 집이 몇 칸짜리라던지, 언제 세웠다는지 등등은 쓰지 않고, 다만 묵고 간 것만을 기록하려 한 것이다.
文旣成.
而君又謂余, 可益之以銘, 俾我省覽而自修焉.
乃爲之辭曰 :
문기성
이군우위여 가익지이명 비아성람이자수언
내위지사왈
이렇게 글을 지었다.
그런데 또 원팔이 나에게 이르기를, 거기에 명(銘)을 덧붙여서 살펴 읽고 스스로를 수양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다음과 같이 사(辭)를 덧붙였다.
子將奚以修乎, 修且奚先乎.
寢乎子之所休也, 門乎子與賓客之所由也, 垣乎又寇盜之所朝夕伺而謀也.
孰非子之居, 孰可一日而不修
자장해이수호 수차해선호
침호자지소휴야 문호자여빈객지소유야 원호우구도지소조석사이모야
숙비자지거 숙가일일이불수
그대는 장차 어떻게 수리를 하겠는가, 수리를 한다면 또 무엇부터 먼저 하겠는가.
침실은 그대가 쉬려고 하는 곳이요, 문은 그대와 손님이 지나다니는 곳이며, 담장은 또 도적이 아침저녁으로 넘겨다 보며 모의하는 곳이다
어떤 곳인들 그대가 거처하는 곳이 아니며, 어떤 곳인들 하루라도 수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粉其壁而藻其栱, 而不知撓其棟, 雖曰已修, 吾必謂之不可以用.
紛乎其馳也, 遑乎其求也, 而可以語此者, 多乎.
不乎子幸不以余言爲狂, 盍與余而交修, 無爲堂之羞.
분기벽이조기공 이부지요기동 수왈이수 오필위지불가이용
분호기치야 황호기구야 이가이어차자 다호
불호자행불이여언위광 합여여이교수 무위당지수
담벽을 바르고, 기둥에 단청을 하면서도, 마룻대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비록 수리를 하였다고 말하여도, 나는 반드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라.
분주하게 내달리며, 황망하게 외물을 구하는데, 이런 말을 해 줄 만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그대가 다행히 내 말을 미친 소리라 하지 않는다면, 나와 서로 몸을 닦아, 이 집에 부끄럽지 않도록 함이 어떠한가.
* 원팔 : 이남규(李南珪, 1855~1907)
* 곽유도 : 중국 후한 말의 학자인 곽태(郭泰, 128~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