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성의 '봉산의 동쪽 마을에서 묵다가(숙봉산동촌)'
宿鳳山東村(숙봉산동촌) ; 봉산의 동쪽 마을에서 묵다가
李民宬(이민성, 1570~1629)
신영산 옮김
空山雪塞有微徑 공산설색유미경 눈이 쌓인 빈 산에는 희미한 오솔길만 나 있는데
孤村煙暝響疏杵 고촌연명향소저 외딴 마을에 저녁연기 오르지만 방앗소리 드물구나.
薥楷編縛代柴荊 촉해편박대시형 수숫대를 겨우 엮어 사립문을 대신한 집 안에서
倚壁無綜有機杼 의벽무종유기저 벽에 기댄 베틀에는 잉아* 없이 그저 북만 놓였더라.
七十老嫗膝過肩 칠십로구슬과견 일흔 먹은 늙은 할미 무릎이 어깨보다 높았는데
見客咿嚘泣且訴 견객이우읍차소 지나는 객을 보고 탄식하다 울면서 하소연하네.
一子年前屬右營 일자년전속우영 “자식 하나 몇 해 전에 황해도 병영으로 속했는데
身充火手渡遼去 신충화수도료거 명색이 포수라고 뽑혀가서 요동 땅을 건넜지요.
全師覆沒無得脫 전사복몰무득탈 모든 군대* 싸움에 져 몰살을 벗어날 수 없었으니
戰骨沙場收底所 전골사장수저소 전쟁터의 유골은 모래밭 어딘가에 뒹굴 거라오.
老身單獨與死伍 노신단독여사오 늙은 몸은 홀몸 되어 죽음을 벗 삼아 살려 해도
抱持幼孫無置處 포지유손무치처 안겨 있는 어린 손자 남길 데가 없으려니 어찌할꼬.
前冬戍兵數百騎 전동수병수백기 지난 겨울 수자리하던 병사들도 수백이나 들이닥쳐
劫掠村閭甚於虜 겁략촌려심어로 마을을 약탈하니 오랑캐들 짓거리보다 심하더이다.
缾缸一空菹醬竭 병항일공저장갈 곡식 담긴 항아리를 비우고서 김치와 장 거덜내니
遺資敢望留筐筥 유자감망류광거 빈 대나무 광주리라도 남겨주길 어찌 감히 바라리오.
數口充糊雜橡菽 수구충호잡상숙 우리 식구 도토리에 콩잎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니
四支羸困難掉擧 사지리곤난도거 팔다리는 야위어서 힘 빠지니 들 수조차 없었다오.
頑命雖存不如死 완명수존불여사 모진 목숨 살아는 있었지만 죽는 것만 못하나니
死後更有何思慮 사후갱유하사려 죽고나서 다시금 살고 싶은 생각이 있으리이까.”
我聞此言心骨悲 아문차언심골비 이 말을 듣고 나니 내 마음과 뼛속까지 슬프더라.
爾語且休聆我語 이어차휴령아어 “할미여, 잠시 말은 멈추고서 내 말을 들어보소.
我家亦有荷殳人 아가역유하수인 우리 집도 창을 메고 싸움터에 나간 이가 있었구려.
萬死生還命如縷 만사생환명여루 여러 번 죽을 뻔하다 살아오니 목숨이 실 같았소.
儂今來往爲此耳 농금래왕위차이 내 지금 이 길을 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니
聽渠不覺零如雨 청거불각령여우 할미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비처럼 쏟아지는구려.”
嗚呼哀哉可柰何 오호애재가내하 아아, 슬프도다. 이를 어이 할 것인가.
普天之下奚獨汝 보천지하해독여 넓은 하늘 아래에서 어찌 유독 그대만 그러겠나.
安得銷兵息戰鬪 안득소병식전투 어이하면 병장기를 녹이고서 전쟁을 쉬게 하여
普天之下無寡女 보천지하무과녀 넓은 하늘 아래에서 홀어미를 없어지게 할 것인가.
* 잉아 : 베틀의 날실을 한 칸씩 걸어 끌어 올리도록 맨 굵은 실.
* 군대 : 명나라의 요청으로 후금과의 전쟁에 동원되었던 강홍립의 군대. 작자의 아우도 이때 전쟁에 나갔다가 후금의 포로가 되었으나, 17개월 만에 풀려났으나, 다시 무고를 받아 평안도 지역에서 머무르고 있었음. 작자는 이 아우를 보러 가다가 황해도 봉산 땅에서 작중 노인을 만난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