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의 한시, '메뚜기가 끓는 외딴 섬에서(대황행)'
大蝗行(대황행) ; 메뚜기가 끓는 외딴 섬에서
金鎭圭(김진규, 1658~1716)
신영산 옮김
去年久旱且惡風 거년구한차악풍 작년에는 오랫동안 가물었고 바람까지 모질더니,
今年苦雨仍大蝗 금년고우잉대황 올해는 궂은 비에 메뚜기가 크게 일어나더라.
滛霖蒸濕産醜種 제림증습산추종 장마 지나 무더위에 습기 차니 생겨난 추한 벌레
滿野薨薨競飛揚 만야훙훙경비양 온 들판에 가득하여 붕붕대며 다투어 날아오르네.
須臾食節復食根 수유식절부식근 잠깐만에 줄기를 갉아 먹고 뿌리까지 파먹으니
詎望有穎與有方 거망유영여유방 어찌 이삭이나 새싹이 남아 있기 바랄 것인가.
畎畒蕭條漸無靑 견畒소조점무청 밭고랑은 스산해지고 점차로 푸른색이 사라지니,
可憐嘉穀萎而黃 가련가곡위이황 아깝도다. 곡식들이 누렇게 시들어 버렸구나.
老農投鋤對禾泣 노농투서대화읍 늙은 농부 호미를 던져두고 벼 앞에서 울고 있고
閭里相唁色凄凉 여리상언색처량 마을에선 서로를 달래지만 얼굴색은 처량하다.
小島磽确粟如玉 소도교학속여옥 작은 섬은 땅이 말라 곡식이 옥처럼 귀한데도,
何况年年洊失穰 하황연년천실양 어찌하여 해마다 거푸거푸 흉년이 닥치는가.
居人有田旣云急 거인유전기운급 밭이 있는 섬사람도 버티기가 급하다고 말하는데,
遠客餬口尤可傷 원객호구우가상 귀양온 이 입에다 풀칠하기는 더더욱 힘들구나.
胡爲我來三歲間 호위아래삼세간 어떠한 까닭인지* 이 섬에 내가 온 지 삼 년이어서
旅食再與凶年當 여식재여흉년당 얻어먹는 신세인데 또다시 흉년을 만나는가.
歎息無面見父老 탄식무면견부로 마을의 어르신들 이 형상 마주하다 탄식하는데,
吾道豈不如庚桑 오도개불여경상 열심히 농사를 지으라고 내 어찌 말하리오.
未知皇天亦何意 미지황천역하의 하늘에서 품은 뜻이 어떠한지 내 알지 못하는데,
偏使此地頻罹殃 편사차지빈리앙 이 땅에서 빈번하게 어려움과 재앙을 만나는가.
投荒猶恐未自省 투황유공미자성 궁벽한 곳 귀양살이 반성하지 못함도 두려운데,
無乃又欲餓其腸 무내우욕아기장 어찌 감히 굶주렸다 내 배를 채워달라 할 것인가.
平生願不在溫飽 평생원불재온포 평생에 따뜻하고 배부르기 바라지 않았는데,
豈以顑頷慕持粱 개이함함모지량 어찌하여 누렇게 굶주렸다 곡식 얻기 바라겠나.
極知貧賤是玉汝 극지빈천시옥여 지극하게 깨달으면 빈천함이 바로 귀히 된다 하던
古人有言吾敢忘 고인유언오감망 옛사람이 하신 말씀 내 어찌 잊겠는가.
顔氏之樂季氏富 안씨지락계씨부 가난해도 즐거웠던 안회와, 부유함이 넘쳐나던 계손씨가**
得失何須較而詳 득실하수교이상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어찌 금방 견줄 수가 있겠는가.
欣然稽首拜天賜 흔연계수배천사 흔연하게 머리 숙여 하늘이 주심에 감사하리라.
遮莫盎中無見糧 차막앙중무견량 설령 당장 항아리가 비었기에 양식을 못 볼지라도
* 1689년 이조좌랑으로 있던 작자가 기사환국을 만나 거제도로 유배갔던 일.
** 논어의 구절. ‘사람의 욕심을 다 없앤 뒤에야 안자(안회, 공자의 제자)가 즐거워한 점을 알 수 있다.’고 한 것과, 계손씨(노나라의 대부)가 주공보다 부유했는데, 더 부유해지려고 세금을 더욱 많이 거둬들였다.‘고 한 것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