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시,부

서거정의 한시, '토산의 시골집에서 농부의 말을 듣다(토산촌사 녹전부어)'

New-Mountain(새뫼) 2022. 3. 27. 20:34
728x90

兎山村舍 錄田父語(토산촌사 녹전부어)

토산의 시골집에서 농부의 말을 듣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신영산 옮김

 

 

我家佛岩下 아가불암하    “저희 집은 불암산 기슭에 있었기에

傍隣三四屋 방인삼사옥     근처에 이웃이란 서너 집이 전부였지요.

地薄皆荒田 지박개황전     땅은 척박하여 모두 거친 밭이라서

耕治半沙礫 경치반사력     농사를 짓자 해도 절반 너머 자갈인데도

去歲官沒田 거세관몰전     작년에 관가에서 저희 밭을 빼앗았고,

吏胥右豪猾 이서우호활     아전들은 교활한 무리들만 편들었네요.

貧家無立錐 빈가무립추     가난한 우리 집엔 바늘 꽂을 곳도 없어

空餘懸磬室 공여현경실     빈집에선 풍경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오.

僅僅起廢丘 근근기폐구     근근히 묵은 땅을 일구어도 보았지만

年荒稅不足 연황세부족     올해는 흉년들어 세금 내기도 부족한데도

吏來日徵督 이래일징독     아전들이 날마다 와 세금 내라 독촉하니

令嚴如火烈 영엄여화렬     호령의 엄하기는 불보다도 사납더이다.

剜肉未醫瘡 완육미의창     부스럼도 고치지 못했는데 심장을 도려내니*

逃竄匿崖谷 도찬닉애곡     도망하여 벼랑과 골짜기에 숨었다오.

飢火煎膓肚 기화전장두     굶주림에 불이 나니 위와 창자 타는 듯해

顏色日黎黑 안색일려흑     안색은 나날이 검게 타들어 갔었지요.

採薪入山中 채신입산중     땔나무를 벤다 하고 산속에 들어가면

山中盛薪棘 산중성신극     산속에는 땔나무가 많기는 하였다오.

家有黃犢兒 가유황독아     집에는 송아지 한 마리 있었지만

終年空復骨 종연공부골     한 해를 마치도록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해

䭾載亦不能 견재역불능     짐 싣게 하려 해도 싣지 못할 지경이라

一步二顚踣 일보이전북     한 걸음에 두 번이나 자빠져 버리데요.

行行親負荷 행행친부하     나라도 지려 하고 걸음걸음 나아가니

兩肩赬已肉 양견정이육     두 어깨는 벌겋게 속살이 드러났지요.

日暮始入城 일모시입성     저물게야 비로소 성안으로 들어올 제

路逢隴斷客 노봉롱단객     길에서 고약한 모리배를 만났다오.

折閱入錙銖 절열입치수     얼마 되지 않는다고 나뭇값을 깎아버리니

米貴賤估直 미귀천고직     쌀은 귀해도 품삯은 천하더라오.

尙念十口在 상념십구재     그래도 생각하면 식구가 열 명이라

嗷嗷待哺啜 오오대포철     아우성으로 먹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터

升㪷何足論 승㪷하족론     한 되이든 한 말이든 어찌 값을 논하리오.

聊以慰飢渴 요이위기갈     애오라지 주림이나 면하게 해야겠지요.

歸來對妻兒 귀래대처아     돌아와 처자식을 비로소 마주하니

稍亦得饘粥 초역득전죽     이제 겨우 죽이라도 먹일 수 있었지만

以此作生理 이차작생리     이렇게 매일매일 살아간다 생각하니

生理眞可惜 생리진가석     내 사는 게 참으로 가련하기 그지없네요.

近來豪勢家 근래호세가     그런데 요즘에는 힘 있는 권세가들이

權利到木石 권리도목석     나무나 돌에까지 이익을 얻겠다고

籠山作柴圃 농산작시포     농산**으로 만들고서 저들 산이라 주장하며

禁人之樵牧 금인지초목     나무 하고 꼴 베는 사람들을 금하데요.

西家採一薪 서가채일신     서쪽 집은 땔나무 겨우 한 번 하였다고

鞭韃恣流血 편달자류혈     채찍을 휘두르니 낭자하게 피 흐르고

東家蹊過牛 동가혜과우     동쪽 집은 소가 밭을 가로질러 갔다 하고

父子遭縶縛 부자조집박     아비와 아들을 함께 묶어 버렸다오.

公然掠民財 공연략민재     공연하게 백성들이 재물을 노략질하고

鎌斧盡漁獵 겸부진어렵     농사지을 낫이나 도끼마저 빼앗지요.

草木生山澤 초목생산택     산이나 못에서 절로 나는 초목이어서

天地之公物 천지지공물     하늘과 땅에서 함께 쓰는 것인데도

小民獨何辜 소민독하고     불쌍한 백성들만 무슨 잘못 하였다고

亦不蒙其渥 역불몽기악     은혜와 혜택을 입지 못한단 말인가요.

國家重貴近 국가중귀근     나라는 귀하거나 가까운 이들에겐

尊位厚其祿 존위후기록     벼슬을 높여주고 녹봉 후히 내렸는데

胡爲逐小利 호위축소리     어찌하여 자잘한 이익만을 좇아서

不仁至此極 불인지차극     어질지 못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나요.

君子尙節義 군자상절의     군자***께서 절의를 숭상하는 분이라면

見此欲嘔殼 견차욕구각     이를 보고 우리 아픈 사정을 알려 주오.

嗚呼我民生 오호아민생     아! 저희들 가엾은 백성들은

何以得生恩 하이득생은     어찌하면 살아가는 은혜를 얻게 되리오.”

 

我今聞此語 아금문차어    나는 지금 백성의 이 말을 듣고 나서

中夜獨嗚咽 중야독오연    한밤중에 홀로 깨어 목메어 흐느꼈도다.

 

 

()나라 시인 섭이중(聶夷中)의 시에 상전가(傷田家)에서 “이월에는 새로 짠 고치실을 미리 팔고, 오월이면 새 곡식 미리 팔아 세금 바쳐, 우선은 눈앞의 부스럼을 고쳤지만, 도리어 심장에 붙은 살을 도려내누나."라고 한 부분을 인용한 것임.
 
** 수목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산.
 
*** 작자를 가리키는 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