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시,부

허균의 한시, '늙은 아낙의 원망을 듣다(노객부원)'

New-Mountain(새뫼) 2022. 3. 2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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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客婦怨(노객부원)

許筠(허균, 1569~1618)

신영산 옮김

 

늙은 아낙의 원망을 듣다

 

東州城西寒日曛(동주성서한일훈)     동주 성 서쪽으로 차가운 해 지려는데

寶蓋山高帶夕雲(보개산고대석운)     보개산은 높았으니 저녁 구름 둘렀도다.

皤然老嫗衣藍縷(파연로구의남루)     머리 허연 할멈 하나 남루한 차림으로

迎客出屋開柴戶(영객출옥개시호)     길손을 맞으러 사립문을 여는구나.

 

自言京城老客婦(자언경성로객부)     이 할멈 하는 말이, “나는 서울 사람이러니

流離破産依客土(유리파산의객토)     재산 잃고 떠돌다가 객지 신세 되었다오.

頃者倭奴陷洛陽(경자왜노함락양)     지난날에 왜놈들 서울을 함락할 제

提携一字隨姑郞(제휴일자수고랑)     아들 끌고 시어미와 남편을 따라갔다오.

重跡百舍竄窮谷(중적백사찬궁곡)     먼 길을 부르트게 걷고 걸어 깊은 골에 들어가서

夜出求食晝潛伏(야출구식주담복)     밤이 나와 밥을 빌고 낮에는 몰래 숨어 살았습죠.

姑老得病郞負行(고로득병랑부행)     시어미가 병을 나자 남편이 업고 가니

蹠穿崢山不遑息(척천쟁산불황식)     험한 산길 발바닥이 뚫어져도 쉬지도 못했다오.

是時天雨夜深黑(시시천우야심흑)     그때에 비 내리니 밤은 더욱 캄캄한데

坑滑足酸顚不測(갱활족산전불측)     미끄럽고 다리아파 넘어지기 헤아릴 수 없었다오.

揮刀二賊從何來(휘도이적종하래)     어디서 왔을까요, 왜놈 둘의 칼을 내어 휘두르니

闖暗躡蹤如相猜(틈암섭종여상시)     어둠 속에 다투듯이 우리 뒤를 따라와서

怒刃劈脰脰四裂(노인벽두두사렬)     성난듯이 칼 놀리니 목이 잘려 찢어졌지요.

子母倂命流冤血(자모병명류원혈)     남편과 시어미는 모두 죽어 원한의 피 흘렸고

我挈幼兒伏林籔(아설유아복림수)     이 몸은 어린아이를 이끌고서 덤불 속에 엎드렸소.

兒啼賊覺驅將去(아제적각구장거)     아이는 울다가 도적에게 잡혀가고 말았다오.

只餘一身脫虎口(지여일신탈호구)     내 한 몸 겨우 남아 호랑이 입 벗어났지만

蒼黃不敢高聲語(창황불감고성어)     허둥지둥 경황없어 말 한마디 지르지 못했네요.

明朝來視二骸遺(명조래시이해유)     다음 날 아침에 찾아보니 두 시신이 버려졌는데

不辨姑屍與郞屍(불변고시여랑시)     시어미인지 남편인지 분간할 길 없었다오

烏鳶啄腸狗嚙骼(오연탁장구교격)     까마귀와 솔개가 창자 쪼고 들개는 뼈 뜯으니

虆梩欲掩憑伊誰(라리욕엄빙이수)     삼태기에 담아다가 묻으려도 그 누가 도와주리오.

辛勤掘得三尺窞(신근굴득삼척담)     겨우겨우 석 자 깊이 구덩이를 겨우 파서

手拾殘骨閉幽坎(수습잔골폐유감)     남은 뼈를 수습하여 봉분을 만들었다오,

煢煢隻影終何歸(경경척영종하귀)     외롭고도 외로운 내 그림자 어디로 돌아가리오.

隣婦哀憐許相依(린부애련허상의)     이웃 아낙 불쌍히 여겼는지 돕겠다 하였기에

遂從店裏躬井臼(수종점리궁정구)     이 주막에 방아 찧고 물 길어 더부살이 살았지요.

餽以殘飯衣弊衣(궤이잔반의폐의)     남은 밥 먹여주고 낡은 옷 입혀 주니

勞筋煎慮十二年(로근전려십이년)     지치고 마음 졸여 열두 해가 되었다오.

面黧髮禿腰脚頑(면려발독요각완)     검은 얼굴 빠진 머리 허리 다리 팍팍했지요.

近者京城消息傳(근자경성소식전)     요사이 서울에서 드문드문 소식을 들었는데

孤兒賊中幸生還(고아적중행생환)     혼자 남은 내 아이가 도적 땅에서 다행히 살아나와

投入宮家作蒼頭(추입궁가작창두)     대궐에 의탁하여 집종이 되었다 하더이다.

餘帛在笥囷倉稠(여백재사균창조)     옷장에는 비단 가득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하여

聚婦作舍生計足(취부작사생계족)     장가 들고 새집 지어 생계가 풍족한데

不念阿孃客他州(불념아양객타주)     타관에 살고 있는 제 어미는 생각도 하지 않으니

生兒成長不得力(생아성정불득력)     내 낳은 아이지만 장성해도 도움 얻지 못한다오.

念之中宵涕橫臆(념지중소체횡억)     그 생각에 한밤중에도 눈물은 가슴을 적시네요.

我形已瘁兒已壯(아형이췌아이장)     내 모습은 초췌하고 아들은 이미 장년이니

縱使相逢詎相識(종사상봉거상식)     만난다 하더라도 알아볼 리 있을까요.

老身溝壑不足言(노신구학불족언)    다 늙은 이 몸이야 구렁에 던져져도 할말 없지만

安得汝酒澆父墳(안득여주요부분)    어찌하면 아비 묘에 아들의 술 한 잔이 오르리요.

嗚呼何代無亂離(오호하대무란리)     아아, 어찌 난리 없는 시대가 있으리마는

未若妾身之抱冤(미약첩신지포원)     저처럼 원한 품은 여인네는 다시 또 없을거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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