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헌의 한시, '관북민(떠다니는 관북 백성)'
關北民(관북민) - 떠다니는 관북 백성
권헌(權攇 1713~1770)
신영산 옮김
哀哀關北民 애애관북민 슬프고도 슬프구나, 관북의 백성이여.
行在京西途 행재경서도 가다 보니 서울의 서쪽 길에 있었구나.
顚迫不得飧 전박부득손 뒤집히고 핍박 받아 저녁밥도 못 먹었는지
顔色一何枯 안색일하고 안색이 한결같이 저리도 여위었는가.
見我跪陳辭 견아궤진사 나를 보고 꿇고 앉아 간곡히 고하면서
叩頭乞爲奴 고두걸위노 머리를 조아리며 종으로 삼아달라네.
去年大雷雨 거년대뢰우 “지난해 큰 우레가 큰비가 내릴 적에
橫潦破天隅 횡료파천우 하늘의 한 모퉁이 깨진 듯이 퍼부었지요.
昨年夏霣霜 작년하운상 지난 해 여름에는 서리가 내리더니
今年旱亦殊 금년한역수 올해에는 유난히도 가뭄이 심했나이다.
豆枯霧霏霏 두고무비비 콩밭은 말라 붙고 먼지만 자욱하여
大野委平蕪 대야위평무 넓은 들판 버려지니 잡초만 무성했다오.
五載一不食 오재일불식 다섯 해에 한 해도 먹지를 못했으니
衆庶日益瘏 중서일익도 뭇 백성들 날이 갈수록 더욱 앓게 되었지요.
向我去家時 향아거가시 지난 번 이내 몸이 살던 집을 떠나려니
鄕里督稅租 향리독세조 마을에서 세금을 빨리 내라 재촉하데요.
老婦鬻小兒 노부죽소아 다 늙은 아내는 어린 자식 팔고나서
轉充布帛輸 전충포백수 그것으로 베를 바꿔 세금을 충당했지요.
兒啼抱我頸 아제포아경 자식 놈은 내 목을 끌어안고 울부짖고
轉輾不得扶 전전부득부 엎어지며 붙잡아도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恩愛遭逼迫 은애조핍박 부모 자식 사랑해도 이런 핍박 만났으니
安得生死俱 안득생사구 살거나 죽기를 어찌 함께 하겠나이까.
逶迤下嶺來 위이하령래 구불구불한 고갯길에 고개에서 내려오니
天寒一身孤 천한일신고 날은 추워 이 한 몸이 더더욱 외롭더이다.
每自痛心腸 매자통심장 늘 스스로 속으로 애통해 하였나니
所恨頑肌膚 소한완기부 한스럽기는 이 몸의 미련한 살갗이라오.
傳聞夏饑甚 전문하기심 소문에 듣자 하니 여름 기근이 너무 심해
易子還自屠 역자환자도 자식을 바꾸어서 잡아먹기도 한다네요.
我身尙苟完 아신상구완 이내 몸은 여전히도 간신히 보전했지만
我兒能存無 아아능존무 내 아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오.
我妻年已耄 아처년이모 내 아내의 나이는 이미 많이 늙었지만
流離安所糊 유리안소호 떠돌면서 어디에서든 풀칠이야 하겠지요.
更憶別離日 갱억별리일 다시금 떠올려보니 우리가 헤어지던 날
仰面增長吁 앙면증장우 얼굴을 마주하고 긴 한숨을 더했다오.
取糠備晨飧 취강비신손 아내는 겨를 끓여 새벽밥을 마련하려
惻惻向中厨 측측향중주 슬퍼하며 슬퍼하며 부엌으로 향했지요.
是時北風寒 시시북풍한 때마침 북풍이 차갑게 불어와서
星月滿寒衢 성월만한구 별과 달은 서늘한 하늘을 채웠네요.
臨歧吾痛哭 임기오통곡 갈림길에 다다라서 내가 통곡을 하였는데
淚盡血霑鬚 누진혈점수 눈물조차 다했는지 피눈물이 수염을 적셨다오.
人生異哀樂 인생이애락 사람마다 슬픔과 즐거움은 다르지만
誰知我崎嶇 수지아기구 어느 누가 내 기구한 신세를 알아주리오.
骨肉各異鄕 골육각리향 가족이 각각 다른 고을에 있으니
敢有後會圖 감유후회도 감히 훗날 만나기를 도모할 수 있으리오.”
眼枯心長痛 안고심장통 마른 눈에 마음은 너무도 애통한지
面垢色不敷 면구색불부 때 묻은 얼굴빛이 펴지지 않는구나.
但聞我王仁 단문아왕인 다만 듣기로는 우리 임금 어지시어
賑哺逮呴濡 진포체구유 구휼하여 먹이심이 고루고루 미치신다네.
辛勤活老弱 신근활노약 늙은 아내 어린 자식 다행히도 살아 있다면
願得見妻孥 원득견처노 처자식을 만나는 날 기약할 수 있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