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소설,가전 69

최충성의 자전소설 '산당서객전' 풀이

산당서객전(山堂書客傳) 최충성(崔忠成, 1458~1491) 주해 신영산 書生不知何許人, 姓字莫解, 貫源難評. 又未知所自來也, 其在山堂也. 以讀書爲業而衣縫掖之衣, 冠章甫之冠, 幾乎有儒者氣像. 故自號山堂書客, 其爲人也性喜澹泊, 心絶浮華. 서생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성(姓)도 자(字)도 알 길이 없고 관향(貫鄕)의 근원도 판단하기 어렵다. 또 어디에서부터 온 자인지 알지 못하여 다만 그를 산당(山堂)이라고 말할 뿐이다. 독서를 업으로 삼고 도포(道袍)를 걸치며 유건을 쓰니 유학자의 기상에는 거의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스스로 호를 산당서객(山堂書客)이라 하였으니, 그 사람됨엔 성품이 밝고 담박하며 마음으로 겉치레를 끊었다. 人雖譽之而不以爲喜, 人雖毀之而不以爲憂, 喜怒不見於榮辱. 憂樂不繫於得失, 不求人之知..

허균의 한문소설 '손곡산인전' 전문, 원문과 주해

허균(許筠)의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주해 신영산 蓀谷山人 李達字益之. 雙梅堂李詹之後, 其母賤, 不能用於世. 居于原州蓀谷, 以自號也. 達少時, 於書無所不讀, 綴文甚富. 爲漢吏學官, 有不合, 棄去之. 손곡산인 이달자익지 쌍매당이첨지후 기모천 불능용어세 거우원주손곡 이자호야 달소시 어서무소부독 철문심부. 위한리학관 유불합 기거지 손곡산인(蓀谷山人) 이달(李達)의 자는 익지(益之)이다.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의 후손이었지만, 모친이 천인(賤人)이어서 세상에 쓰여질 수 없었다. 원주(原州)의 손곡(蓀谷)에 살았기에 자신의 호(號)로 삼았다. 이달은 젊은 시절에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지은 글도 무척 많았다. 한리학관(漢吏學官)이 되었지만, 합당치 못한 일이 있어 벼슬을 버리고 가버렸다. 從崔孤竹慶昌,白玉..

허균의 한문소설 '엄처사전' 전문, 원문과 주해

허균(許筠)의 엄처사전(嚴處士傳) 주해 신 영 산 嚴處士名忠貞, 江陵人也. 父早卒, 家甚貧, 躬薪水自給. 養其母極孝, 晨夕不離側. 母稍恙則不解帶寢, 手調膳以進. 母嗜山雀, 結網膠竿, 必獲以供之. 엄처사명충정 강릉인야 부조졸 가심빈 궁신수자급 양기모극효 신석불리측 모초양칙불해대침 수조선이진 모기산작 결망교간 필획이공지 엄처사(嚴處士)는 이름이 충정(忠貞)으로 강릉(江陵) 사람이었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셨는데, 집안이 무척 가난하여, 몸소 땔감과 먹을 것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모친을 봉양하는 데 지극한 효성을 다하여, 새벽이나 저녁에도 곁을 떠나지도 않았다. 모친이 조금만 편찮으시면 마음 편하게 잠자리에 들지도 않았으며, 손수 음식을 만들어 드시게 하였다. 모친이 산작(山雀) 고기를 즐기시자, 그물을 짜고 ..

허균의 한문소설 '장생전' 전문, 원문과 주해

허균(許筠)의 장생전(蔣生傳) 주해 신영산 蔣生不知何許人. 己丑年間, 往來都下, 以乞食爲事. 問其名則吾亦不知. 問其祖父居住則曰 : “父爲密陽座首 生我三歲而母沒. 父惑婢妾之譖, 黜我莊奴家. 十五奴爲娶民女, 數歲婦死. 因流至湖南西數十州, 今抵洛矣.” 장생불지하허인 기축년간 왕래도하 이걸식위사 문기명칙오역불지 문기조부거주칙왈 부위밀양좌수 생아삼세이모몰 부혹비첩지참 출아장노가 십오노위취민녀 수세부사 인류지호남서수십주 금저락의 장생(蔣生)은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기축년(己丑年) 사이에 서울에 드나들며 비렁뱅이 노릇을 하였다. 누가 그의 이름을 물었지만, 역시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을 묻자, 답하기를, “부친이 밀양(密陽) 좌수(座首)로 계실 때에, 모친은 나..

허균의 한문소설 '장산인전' 전문, 원문과 주해

허균(許筠)의 장산인전(張山人傳) 주해 신영산 張山人名漢雄, 不知何許人也. 自其祖三世業痬醫. 其父嘗餌商陸, 能視鬼而役使之. 年九十八 如四十許人, 出家去莫知所終. 臨行 以二卷付之, 乃玉樞經及運化玄樞也. 장산인명한웅 불지하허인야 자기조삼세업양의 기부상이상륙 능시귀이역사지 연구십팔 여사십허인 출가거막지소종 임행 이이권부지 내옥추경급운화현추야 장산인(張山人)의 이름은 한웅(漢雄)인데 어떠한 내력을 지닌 사람임은 알 수 없다. 그의 조부 때부터 삼대에 걸쳐, 양의(痬醫)를 가업으로 삼았다. 그의 부친은 일찍이 상륙(商陸)을 먹고서, 귀신을 볼 수도, 부릴 수도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아흔여덟 살이 되어서도 마치 마흔 살 정도로 젊게 보였으며, 출가(出家)하여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이옥의 한문소설 '심생전' 전문, 원문과 주해

이옥(李鈺)의 심생전(沈生傳) 주해 신영산 沈生者, 京華士族也. 弱冠, 容貌甚俊韶, 風情駘蕩. 嘗從雲從街, 觀駕動而歸. 見一健婢以紫紬, 袱蒙一處子, 負而行. 婭鬟捧紅錦鞋, 從其後. 生自外量其軀, 非幼穉者也. 심생자 경화사족야 약관 용모심준소 풍정태탕 상종운종가 관가동이귀 현일건비이자주 복몽일처자 부이행 아환봉홍금혜 종기후 생자외량기구 비유치자야 심생(沈生)은 서울의 양반이었다. 이미 약관(弱冠)에 용모가 매우 준수하고, 풍정(風情)이 크게 넘쳤다. 일찍이 운종가(雲從街)에서 임금의 거둥을 구경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문득 한 건장한 계집종이 자주빛 비단 보자기로 한 여인을 씌우고, 업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아환(婭鬟)이 붉은 비단신을 들고 따르고 있었다. 심생은 겉으로 드러난 몸을 가늠하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