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정철의 '계주문'

New-Mountain(새뫼) 2022. 7. 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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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酒文(계주문) ; 술을 경계하는 글

 

鄭澈(정철, 1536~1593)

신영산 풀이

 

某之嗜酒有四.

不平一也, 遇興二也, 待客三也, 難拒人勸四也.

모지기주유사

불평일야 우흥이야 대객삼야 난거인권사야

 

아무개가 술을 즐기는 이유가 네 가지 있다. 편하지 않아서 마시는 것이 첫째이고, 흥이 나서 마시는 것이 둘째이고, 손님을 대접하느라 마시는 것이 셋째이고, 남이 권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해 마시는 것이 넷째이다.

 

不平則理遣可也, 遇興則嘯詠可也, 待客則誠信可也.

人勸雖苛, 吾志旣樹, 則不以人言撓奪可也.

然則捨四可, 而就一不可之中, 終始執迷, 以誤一生, 何也.

불평즉리견가야 우흥즉소영가야 대객칙성신가야

인권수가 오지기수 즉불이인언요탈가야

연즉사사가 이취일불가지중 종시집미 이오일생 하야

 

편하지 않으면 순리대로 풀어버리면 될 것이고, 흥이 나면 시나 노래를 읊조리면 될 것이고, 손님은 정성으로 대접하면 될 것이다. 남이 아무리 끈덕지게 권하더라도 내 뜻이 이미 굳게 서 있으면, 남의 말에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좋은 방도를 버리고, 옳지 못한 것 중 하나를 취하여, 끝내 혼미하게 되어, 일생을 그르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余休官退處, 五承恩旨. 到今年春, 迫不得已, 力疾趨召, 陳疏乞退.

志在丘壑, 則當杜門斂跡, 愼言與行可也.

여휴관퇴처 오승은지 도금년춘 박부득이 역질추소 진소걸퇴

지재구학 즉당두문렴적 신언여행가야

 

내가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쉬면서, 다섯 번이나 주상의 부름을 받았다. 금년 봄에는 마지못해 병을 무릅쓰고, 조정에 달려가 상소를 올려 물러나기를 청했다.

그렇기에 내 뜻이 정말 산수를 즐기는 데 있다면, 의당 문 밖으로 나서지 말고 말과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而動靜無常, 言語失宜, 千邪萬妄, 皆從酒出.

方其醉時, 甘心行之, 及其醒也, 迷而不悟.

人或言之, 則初不信然, 旣得其實, 則羞媿欲死.

이동정무상 언어실의 천사만망 개종주출

방기취시 감심행지 급기성야 미이불오

인혹언지 즉초불신연 기득기실 즉수괴욕사

 

그렇지만 동정이 일정하지 못하고, 말을 할 때마다 늘 실수를 범하는 등, 온갖 간사하고 망령된 것들이 모두 이 술에서 나오곤 한다. 한창 술에 취했을 때는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 행동거지를 놀리다가, 술이 깬 뒤에는 다 잊어버리고, 취했을 때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다른 이가 혹 취했을 때의 일을 얘기해 주면,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믿지 않다가, 나중에 참으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고 나면 부끄러운 생각에 꼭 죽고만 싶어진다.

 

今日如是, 明日又如是, 尤悔山積, 補過無時.

親者哀之, 疏者唾之.

褻天命, 慢人紀, 見棄於名敎者不淺焉.

금일여시 명일우여시 우회산적 보과무시

친자애지 소자타지

설천명 만인기 견기어명교자불천언

 

그러나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 또 그러하니,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여, 후회가 산더미처럼 쌓이되, 그 허물을 만회할 날이 없게 된다. 나와 친한 사람은 그런 나를 슬퍼해 주고,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은 내가 더럽다고 침을 뱉곤 한다.

그래서 천명을 더럽히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게을리한다고 하여, 유학하는 선비들로부터 버림받은 적지 않다.

 

月之初吉, 辭家廟, 出國門, 臨江將濟, 送者滿舟.

回首洛中, 追思旣往.

則恰似穿窬之人, 抽身鋒鏑, 白日對人, 惶駭窘迫 無地自容.

終日踧踖 如負大罪.

월지초길 사가묘 출국문 임강장제 송자만주

회수락중 추사기왕

즉흡사천유지인 추신봉적 백일대인 황해군박 무지자용

종일축적 여부대죄

 

이달 초하루에 집안 사당에 하직 인사를 드리고, 궁궐 문을 나와 강가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고 할 적에, 나를 전송나온 사람이 배에 가득했다.

이때 홀연히 한양 쪽으로 머리를 돌려, 내 지나온 옛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마치 도둑질하는 사람이 칼날과 화살에서 몸을 겨우 빼냈다가, 대낮에 사람을 만나게 되어, 두렵고 놀라 몹시도 다급하여 몸 둘 곳이 없는 것과 흡사하였다. 그래서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종일 편치 않았다.

 

及去而更來于江上也, 先忌適臨.

嗚咽呑聲, 哀慘之中, 善端萌露, 遂慨然自訟曰.

급거이경래우강상야 선기적림

오인탄성 애참지중 선단맹로 수개연자송왈

 

그곳을 떠나 다시 강가에 돌아왔는데, 마침 선친의 기일이 임박한 때였다.

목이 메어 울음을 삼키면서 애통해하는 가운데, 선한 마음이 우러나와서 마침내 몹시도 분하게 되어 자책하게 되었다.

 

喜獵何到於明道, 而萌動於十年之後. 好色何到於澹菴, 而繫戀於動忍之餘.

難操者心, 易失者志. 心兮志兮, 孰主張之. 主人翁兮, 常惺惺兮.

苟不如此言 吾何以更見江水兮

희렵하도어명도 이맹동어십년지후 호색하도어담암 이계련어동인지여

난조자심 역실자지 심혜지혜 숙주장지 주인옹혜 상성성혜

구불여차언 오하이경견강수혜

 

어찌하여 명도 같은 대학자의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십여 년 뒤에 사냥을 좋아하던 마음이 다시 우러나오게 되었는가. 어찌하여 담암 같은 대학자가 되어서도,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그리워하는 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는가.

잡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의지이다. 이 마음과 의지를 누가 주장하는가. 주인 늙은이 마음이여, 항상 깨어 있는가.

진실로 이 말처럼 하지 못한다면, 내가 어떻게 다시 이 강물을 보겠는가.

 

萬曆五年丁丑四月七日 書于西湖亭舍

만력오년정축사월 서우서호정사

 

만력 5년 4월 7일에 서호정사에서 쓰다.

 

* 명도 : 북송의 유학자인 정호(程顥).

* 담암 : 남송의 유학자인 호전(胡銓).
 
* 만력 5년 : 1577(선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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